LOGIN용도 여의치 않으면 개에게 물리는 법이었다지금의 하씨 집안이 딱 그런 처지였다.하이석의 행방을 찾기 위해 집안 사람 대부분이 수색에 나선 탓에, 현정민과 온유란 곁에는 왕 기사와 몇 명의 경호원만 남아 있었다. 그 정도 인원으로는 몰려든 기자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기자들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며 차량을 에워쌌다. 차창 너머를 들여다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창문을 두드리며 질문을 퍼부었다."현정민 여사님, 아직도 하이석 씨를 찾지 못한 겁니까?""현재 수색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하씨 그룹이 새 경영자를 선출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하백규가 유력하다는 말도 있고, 하이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이준은 하씨 집안 장남이었다.비록 두 다리를 쓰지 못했지만, 반듯한 이미지와 온화한 인품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고 있었고, 경성 상류층에서도 가장 유력한 차기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실제로 하이석이 실종된 뒤 며칠 사이 회사 내부는 이미 대대적인 인사가 단행됐다.핵심 요직은 거의 모두 새 인물로 교체된 상태였다.쏟아지는 질문에 현정민은 두통을 참지 못하고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녀는 왕 기사에게 계속 차를 몰라는 손짓을 보냈다.기자들 역시 취재가 목적일 뿐, 설마 정말 차 앞으로 몸을 던질 리는 없었다.그때였다.한 기자가 불쑥 입을 열었다."현정민 여사님, 하이석 씨가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입니까?"그 한마디가 이미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온유란의 마음을 그대로 후벼 팠다.온유란은 조용히 왕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했다."유란아!"현정민이 급히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차 문이 열리고 온유란이 밖으로 내렸다. 기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가을바람이 제법 차가웠지만 그녀는 얇은 연한 색 니트 하나만 걸친 채였다.희고 담백한 얼굴은 수척할 만큼 야위어 있었고, 금세라도 바람에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눈빛 또한 잔잔했
육씨 집안 본가.소식이 전해졌을 때, 서은주는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하이석이 습격을 당한 뒤 실종됐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도 핏기가 가셨다.육강민과 방주헌을 비롯한 사람들 역시 하이석과 아무리 심하게 틀어진 상태라 해도, 사람을 풀어 그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하이석은 원래 일 처리가 과감하고 냉정한 사람이라, 그만큼 지난 세월 동안 원한을 산 이들도 적지 않았다.게다가 하씨 집안은 오래전부터 악명이 자자했다. 세력이 큰 만큼 시기와 원망도 끊이지 않았다.그래서 하이석이 습격당했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에게도 그리 뜻밖의 일은 아니었다.온유란은 주변의 만류도 뿌리친 채 이틀 밤낮으로 인근을 헤매며 그를 찾아다녔다.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해 쓰러진 뒤에야 병원으로 옮겨졌다.정신을 차리자마자 온유란은 링거 바늘부터 뽑고 다시 나가려 했다."움직이지 마라!"유주만이 다급히 그녀를 막아섰다."할아버지…"온유란은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그 사람… 찾았어요?"유주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만으로도 답은 충분했다.불과 하루 이틀 사이였지만, 온유란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유주만은 그런 그녀를 차마 바라보기 힘든 듯 팔을 뻗어 품에 안았다."너부터 잘 쉬어야 한다. 더는 우리까지 걱정시키지 마라.""저 정말 괜찮아요. 몸도 멀쩡하고, 아무 문제도 없어요."온유란은 어떻게든 자신이 괜찮다는 걸 증명하려 했다.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유주만이 그녀를 수색 현장으로 돌려보낼 리 없었다.그는 타이르듯 차분히 말했다."네가 가면 다들 널 돌보느라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면 수색도 늦어질 수밖에 없어. 그러니 넌 병원에 남아서 시어머니를 잘 보살펴라."그는 잠시 말을 고른 뒤 무겁게 덧붙였다."하이석 어머니도 충격이 너무 커서 상태가 좋지 않다."온유란은 끝내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현정민의 곁을 지키기로 했다.이번 사건은 경성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사람들은 사소한 기척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하이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다가오는 차량을 응시했다.두 차량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질수록, 길가에 서 있던 남자의 움직임이 또렷해졌다.남자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잠시 후, 새까만 총구가 하이석을 향했다.순간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다음 순간.탕!총성이 적막을 갈랐다.총알이 앞 유리를 강타하는 순간, 강화유리는 충격을 견디지 못한 채 탄착점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갈라졌다.요란한 총성에 주변 숲에 숨어 있던 새와 들짐승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사방으로 흩어졌다.하이석은 급히 핸들을 꺾어 차를 돌리려 했다.그러나 뒤이어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졌고,탕! 탕! 탕!타이어가 터져 나갔다.총알이 차체의 금속을 때릴 때마다 귀를 찢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산산이 부서진 유리창 사이로 차가운 가을바람이 차 안으로 거세게 밀려들었다.하이석의 호흡도 점점 거칠어졌다.남자는 한 걸음씩 천천히 차 앞으로 다가왔다.차 안의 하이석을 겨눈 총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이윽고 다시 몇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고 세상은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멀리 서쪽 하늘에서는 저녁노을이 마지막 황금빛을 거두고 있었다.붉게 번져가는 노을은 마치 하늘과 땅마저 집어삼킬 듯 서쪽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였다.*그 시각.멀지 않은 산 위에서는 누군가 특수 장비를 들고 방금 벌어진 모든 일을 빠짐없이 촬영하고 있었다.총성이 완전히 멎자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끝났습니다.""정말 하이석을 쐈군."수화기 너머 남자가 낮게 웃었다."설마 진짜 방아쇠를 당길 줄은 몰랐는데.""지금 시신을 처리하고 있습니다."촬영하던 남자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지시하신 대로 영상도 모두 확보했습니다. 연위성이 사람인지 귀신인지야 중요하지 않습니다. 민간인의 피를 손에 묻힌 이상, 이제는 평생 되돌아갈 수 없겠죠. 앞으로는 마음대로 다루실 수 있을 겁니다."그는 비웃듯 웃음을 흘렸다."어차피 연위성은 당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설령 경찰
추석이 지나자 달은 점점 이지러지고 별빛도 옅어졌다.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푸르던 초목은 하나둘 누렇게 물들며 가을 끝자락으로 접어들었다.하이석과 온유란의 결혼식 날짜는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그 탓에 경성에는 온갖 소문이 퍼져 나갔다.결혼식이 취소됐다느니, 이미 남몰래 이혼 절차까지 끝냈다느니 하는 말들이 거리마다 떠돌았다."요즘 유란이랑은 연락했냐?"낚싯대를 드리운 하정현이 옆에서 묵묵히 찌를 바라보는 아들을 흘끗 바라봤다.하이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 침묵만으로도 답은 충분했다."도무지 모르겠다. 너희 젊은 것들은 체면이 그렇게 중요하냐? 가서 사과 한마디 하고, 좋은 말 몇 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하이석은 잔잔한 수면만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저희 일은 아버지가 이해 못 하십니다.""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정현이 코웃음을 쳤다."나도 연애해 본 사람인데 뭘 모른다는 거냐. 시간 내서 당장 시골에 가서 유란이 데려와."아들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그는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안 가면 내가 널 꽁꽁 묶어서 강에 던져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릴 거다."하이석은 담담히 그를 바라봤다."그건 살인입니다. 감옥 가셔야 해요."잠시 말을 멈춘 그가 덧붙였다."전 어머니가 이 나이에 과부 되시는 건 원치 않습니다."하정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속이 뒤집힐 만큼 열이 치밀었다.도대체 자신이 낳은 건 대체 뭘까."연위성이 요즘도 매일 유란이 근처를 지킨다던데. 그것도 첫사랑이라며? 하나도 안 불안하냐?"하정현이 슬쩍 떠보듯 물었다. 하지만 하이석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었다."아버지, 목소리 좀 낮추세요."그는 물 위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물고기 놀라 도망가겠습니다."하정현은 이를 악물었다.육강민을 비롯한 친구들과도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고, 지금 경성 사람들은 모두 하이석을 비웃고 있었다.심지어 아내도 떠나게 생겼는
"지금은 관계가 틀어진 상태라지만, 이대로 뒤통수를 치는 모양새가 되면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겠죠."육강민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당신은 아직 하이석의 자리를 잠시 대신 맡고 있을 뿐입니다. 아직 하씨 그룹의 진짜 결정권자라고 할 수는 없죠. 혹시라도 계약식 당일 하이석이 무슨 일을 벌인다면 수습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모두가 난처해질 수도 있고요."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그 문제만 당신이 해결할 수 있다면..."그 말만으로도 충분했다.하백규는 단번에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남은 일은 자신에게 맡겨 달라며 거듭 얘기하는 사이, 육강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욕탕에서 나온 그는 가운을 걸친 채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하백규가 허둥지둥 뒤를 따라붙었다."육 대표, 그냥 가시게요? 괜찮은 관리사 한 명 불러드릴까요? 제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정말 시원하게 모셔 드릴 겁니다."의미심장한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육강민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관리사'가 어떤 사람들을 뜻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육강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계약부터 성사시키죠. 즐기는 건 그다음이어도 늦지 않습니다.""맞는 말씀입니다."하백규는 더욱 비위를 맞추며 웃었다.이 스파에도 자신이 투자하고 있다며, 이곳 관리사들은 실력이 최고라고 연신 자랑을 늘어놓았다.육강민은 꽤 흥미가 생긴 듯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기회가 되면 한번 와보죠."그 말을 끝으로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육강민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하백규는 코웃음을 쳤다."육씨 부부의 금슬이 대단하다더니, 별거 아니었군."비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세상에 바람 안 피우는 고양이가 어디 있겠어? 이제 하이석만 처리하면 끝이야."*한편, 시골.온유란은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하이석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막상 보내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여자가 독해지면 무섭다고들 하지만 정말 마음을 독하게
서은주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하채린이 했던 말을 곱씹고 있었다.겉으로는 몇 마디 안 되는 대화였지만, 그 속에는 교묘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온유란과 자신 사이를 이간질하려 들면서도, 그 틈을 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려는 속셈이었다.하씨 가문은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만치 않았다.온유란 성격으로 과연 하채린을 상대할 수 있을까.설령 온유란이 그 속내를 간파하지 못했다 해도, 하이준이라면 다를 줄 알았다.그런데도 아무 일도 없는 듯 흘러가는 걸 보니,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육강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잠시 통화를 마친 그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이 시간에 또 나가요?"서은주가 시계를 힐끗 바라봤다.벌써 밤 아홉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사람을 좀 만나기로 했어."하이석과 틀어진 뒤로는 방주헌조차 집에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육강민 역시 평소 업무상 약속 외에는 밤늦게 나가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런 시간에 누굴 만나러 가는 걸까.*경성의 한 최고급 스파.육강민이 도착했을 때, 하백규는 이미 욕탕 안에서 몸을 담그고 있었다.그는 육강민을 보자마자 얼굴 가득 비위를 맞추는 웃음을 띠며 손을 흔들었다."육 대표, 몇 번이나 모시려고 했는데 이제야 와 주시는군요."육강민은 아무 말 없이 겉옷을 벗어 한쪽에 걸어두고 천천히 탕 안으로 들어갔다.하백규는 하이석의 외숙부뻘 친척으로, 쉰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불룩 나온 배에 온몸은 살집으로 가득했고, 욕탕 안에서도 존재감이 상당했다.그는 육강민의 탄탄한 몸을 훑어보며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특히 시선을 슬쩍 아래로 내렸다가, 이내 제 몸을 내려다보는 순간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비교하지 않으면 상처될 일도 없으련만. 도대체 평소에 뭘 먹고 사는 거지? 같은 남자인데도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는 괜히 민망해져 몸을 물속으로 더 깊이 담갔다."계속 절 보자고 하셨는데 무슨 일 때문입니까?"넓은 욕탕에는 두 사람뿐이었다.하백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