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불혹에 하이틴 퀸카로 환생하다: Chapter 11 - Chapter 20

36 Chapters

Time after time

“브리아나? 음? 너 어디가?“ 엘리샤가 작게 불렀다. 브리는 성큼성큼 단상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단상 위에는 작은 현악단이 있었다. 턱수염이 긴 첼로 연주자가 무릎 사이에 첼로를 낀 채 브리를 바라보았다. 브리는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순간 홀 안이 술렁였다. “쟤 지금 뭐 하는 거야?” “설마 노래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 상황에서?” 뒤늦게 파티장으로 들어온 에이든이 무대로 걸어가려 했다. “야, 비켜.” 그가 낮게 내뱉으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려는 순간, 누군가 옆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이안이었다. 그는 파티에 조금 늦었다. 이안 케네디. 캘리포니아의 가장 유명한 갤러리 소유자의 아들이었다. 그의 가문은 노블리스오블리주로 유명했고, 겸손한 애티튜드와 자선활동으로 유명했다. 금발의 머리카락, 짙은 쌍커풀과 꽤 귀여운 눈매. 끝이 완벽하게 올라간 입꼬리와는 대비되는 근육질의 어깨. 에이든이 날카롭게 그를 돌아보았다. “놔.” 이안은 단상 위의 브리를 바라본 채 낮게 말했다. 은근한 미소로 브리를 바라보면서. “기다려봐. 뭐하는 진 봐야 할 거 아니야.“ 브리는 마이크 앞에 섰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아까보다 차분했다. 브리는 로버트 선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마거릿 여사께서 Cyndi Lauper의 〈Time After Time〉을 좋아하셨다고요.” 로버트 선생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브리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제가 감히 이 자리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그 노래만큼은 진심으로 부르겠습니다.” 홀 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브리는 현악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 연주해주실 수 있을까요?” 첼로 연주자는 잠시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옆의 피아니스트와 눈을 마주쳤다. 짧은 침묵. 이윽고 피아노가 조심스럽게 첫 음을 눌렀다. 익숙한 전주가 아주 느리게 흘러나왔다. 물결이 흐르듯 전주가 나왔다. 브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첫 소절을 불렀다.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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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안다기보다

“아니 뭐 어떻게 안다기 보다... 그냥 저절로.”에이든은 고개를 대충 끄덕이더니 옅게 미소지었다. 그의 각진 턱과 부드러운 입술이 눈에 들아왔다. 뭐지? 그것도 잠시, 에이든은 브리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빠르게 미소를 걷히곤 자세를 고쳤다. ”뭐 그건 그렇고, 아까 말한 거 있지? 오늘 초대 받은 사람들 이름 다 외우고...“”알겠다고. 자슥아.“브리는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럼 그렇지. 따라다니며 잔소리나 하는 게 계약 연애라는 건 여간 피곤한 게 아니구나. 말은 추모파티지만 고인을 그리는 사교 파티에 가까웠다. 바네사의 부모, 에이든의 가족들 등 엘리즈 하이의 부모들도 꽉꽉 채워 참석한 곳이었다. “브리, 이번에 너희 아버지는 안 오셨나봐?” 바네사의 시녀 중 한 명이 물어왔다. 브리는 대충 아버지가 이 파티에 왜 참석하지 않은지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에이든의 부모가 참석하는 이 곳에서 에이든의 눈치를 보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 오늘 아버지가 좀 아프시대.” 추모파티인데도 이들은 여유롭고 행복해보였다. 죽음도 값비싼 사람들. 브리는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다. 원작의 주인공도 그랬을까. 이런 느낌은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았지. 꽤 주인공이 외로웠을 거 같은데, 미영은 이 주인공이 꽤 특별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식당에서 본 왁자지껄 웃는 사람들, 돌아가면 녹초가 된 자신도. 해외여행을 꿈꾸던 황미영을 생각하면서. 그런 브리에게 웨이터로 보이는 누군가가 브리를 불렀다.“저 브리씨. 블랙 드레스입니다.” 단정하게 접혀있는 우아한 실크드레스였다.“누..누가 보냈어요?” 보낸 사람이 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파우더룸에서 갈아입고 나오시죠. 언제 이런 걸 준비했지, 브리는 블랙 드레스를 받아들고 파우더룸으로 향했다. 조금 피로한 얼굴. 그래도 부드러운 살결과 발그레한 볼 때문에 환하게 빛났다.“어머 브리아나, 오랜만이네요.” 알알이 빛나는 전구가 눈부시게 빛나는 화장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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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첫등장

알렉산더는 아무말 없이 비상등 깜빡이를 넣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브리의 엄마 사진을 쳐다본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학교 다녀올게요.”하고 인사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는지 몰라도. “파티는 어땠는데?“할 말이 없는지 흠흠, 기침하더니 첫말이 그거였다. 브리는 심신이 피곤한 탓에 데리고 온 아버지를 옆에 구고 하이힐부터 벗었다. “아버지 뭘 여기까지 왔어요.”구두를 가방에 넣는 브리를 보더니 알렉산더가 운을 뗐다. “파트너도 없이 그렇게 나가는데 누가 데려다줄라고?” “아니에요. 그래도 에이든이..””밀러가에서 자금 수혜 받았다. 너도 알고 있었냐?“ 아 그게 오늘이었구나. 오늘을 기점으로 알렉산더가의 자금난이 조금 줄어들었으니까. 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에 줄줄이 폐업했던 호텔이 밀러가의 자금과 납품 때문에 겨우 설비 공사에 착수한 시점이었다. 유서 깊은 로즈가의 호텔들, 끽하면 밀러그룹에 흡수될 뻔했지만 올드머니의 자존심과 체면 그리고 브리의 희생으로 버텨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응?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난 내 몸 하나 추리기도 바쁜데, 남자 으른들 일에 내가 왜 끼어들겠어. 아빠. 하하.“ 브리는 어색하게 시치미를 뗐다. 로즈가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할머니때부터 대대손손 물려받은 유서 깊은 호텔이었기 때문에, 그건 곧 엄마의 유물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그래서였을 것이다. 브리가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에이든한테 무릎을 꿇은 이유가. “네가 에이든한테 부탁한 건 아니고?”잠시 생각에 잠긴 브리를 의식하듯 알렉산더가 브리를 떠봤다. “어우 아빠. 그런 소리 좀 하지마. 내가 뭐가 아쉬워서 걔한테 부탁해? 이상한 소리하지말고 운전 집중해.” 꽤 친근해진 딸의 말투에 알랙산더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데리고 오면 먼저간다, 친구들이랑 밤새 파티를 하고 들어와도 그거 층계를 올라갈 뿐이었던 딸. 오늘은 자신의 차를 넙죽 얻어타더니 잔소리까지하네? 알렉산더는 핸들을 잡은 손을 까딱거리다, 옆자리에 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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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부 쇼핑몰

이안은 꽤 귀여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안의 뒤에 앉은 브리는 이안 흰 셔츠에 비친 잔근육들을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일부러 시선을 돌려보려곤 했지만 저 널찍한 등이 서브 남주의 등이라는 게 계탄스러웠다. 이안과의 첫만남은 아직 멀었다. 서브 남주라 그런지 장면들이 더 없었다. 브리는 수업 시간에 말을 한 번 걸어볼까 싶었지만, 딱히 용기가 나지않아 브리 앞에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로버트는 첫수업 때보다 안정된 느낌이었다. 영어의 역사와 라틴어를 조금 배웠고, 꿈꾸는 것만 같았다. 앞치마에 회화책 넣어다니며 읽던 시절이 보상받나 싶을 정도로 브리는 수업을 감명 깊게 들었다.”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그 말만 학수고대하고 기다리던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짐을 챙겨일어났다. 브리는 수업이 끝나는 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옆을 보니 엘리샤가 엎드려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클로이와 브리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클로이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여념이 없었다. ‘뭐든 재밌을때지.’“아 개웃겨. 입 벌린 거 좀 봐. 야 브리 얘 좀 봐!” 엘리샤는 꿈에서 뭘하는지 히히덕 히히덕 웃으며 아잉~하고 교태를 부리기도 했다. 브리는 톡톡하고 엘리샤의 작은 어깨를 흔들어깨웠다. 엘리샤의 눈이 번쩍 뜨였다.“아 저스틴 비버랑 키스 직전이었는데! 더 잘래! 으앙!”“우리 오늘 말리부 아울렛에 쇼핑가기로 했잖아!” 엘리샤의 눈이 더 크게 번쩍뜨였다. “맞다! 오예!” 엘리샤는 금방 잠에서 깬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클로이는 그런 엘리샤와 팔짱을 꼈다.“ Hey, 빨리 너도 안 끼고 뭐해?”브리는 둘은 지켜보다가 깜짝 놀라 자신도 팔짱을 꼈다. “히힛! 쇼핑몰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아~!”“간드아~~~!” 브리는 있는 힘껏 단전에서 두 사람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둘은 살짝 놀란듯했지만 다시 웃어보였다.** 브리는 말리부 비치 로드를 드라이브해 가는 동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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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가장한

왜 그런 거 말이야. 드라마에서 우연으로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 같은 거. 미영은 드라마를 보면서 우연처럼 에이든이 브리 앞에 섰을때, 저건 드라마 속에 존재하는 우연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든과 브리의 통화가 원작에서 삭제된 장면이었다니. 에이든은 브리가 있는 곳을 찾았고, 끊임없이 전화하고, 끈질기게 브리를 따라다닌 거였구나. 으휴. 못난 놈. ”야! 일어나.” 뭐 일어나? 일어나라는 게 지금 나보고 그런 건가? 계약이랍시고 브리를 이렇게 괴롭혔다니. 브리는 반 쯤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탁 내려놓고 에이든을 똑바로 쏘아봤다.“니가 뭔데 오라가라야. 나 지금 먹고 있는 거 안 보여?”“안 보이는데.” 에이든은 브리의 작은 어깨 턱하고 손을 놨다.“치워.”“싫다면.” 클로이와 엘리샤는 불구경이 재밌는지 음식을 더 맛있게 오물오물 먹으며 그들을 동물원의 원숭이들처럼 구경했다. 빨리 엔딩을 보기 위해선 그의 말을 따라야했지만, 이 새끼 하는 꼴을 보니 그의 말에 순순히 따라주기 싫었다. 참 멋진 남주였는데. 아쉽게 되었네. 그래도 어째저째 바네사의 공작을 피해 에이든이랑 엔딩은 할 예정이었다. “다섯 셀 때까지 안 일어나면 끌어낼거야.“ “오” 브리는 계속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 맛있다. 살짝 심장이 쫄렸지만 대담한 머리는 계속 앉아있으라고 명령했다.“사” 하. 그냥 일어설까. 메인 남주랑 기싸움해봤자 얻는 게 어디있다고. 브리는 냠냠 쩝쩝 먹던 샌드위치가 거의 끝나가는 걸 눈치챘다.‘그래 일어나자. 이것만 먹고.’“이것만 먹고 일어날게.”“삼.” 브리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에이든의 카운팅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이틴물에 회귀한 거? 슬슬 짜증이 나려고 했다.”시간 다 됐어. 샌드위치 다 먹었으면 가자.“ 브리는 여차저차 말할 기회도 없이 손목을 잡혔다. 브리의 가녀리고 흰 손목이 에이든의 큰 손아귀에 잡혀 끌려나갔다.”아..아프다고!“ 에이든은 브리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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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아래 처음 만난 것처럼

브리는 큰 쇼핑백을 들고 투덜투덜 쇼핑몰 안을 살펴보았다. 브리가 지나갈때마다 시선들이 꽂혔고, 누군가는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어보였다. 브리는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펴보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은 것도 아닌데, 한 걸음 내딛는 순간마다 남성을 가진 자라면 브리를 돌아보았다. ‘휘이익-’ 휘파람 소리가 들리자 브리는 신경이 곤두섰다. 저런 게 캣콜링이라고 하는 건지. 자꾸 거슬리게 지나가는데 휘파람을 불어댔다. “확-씨. 한 번만 더 해봐. 너 죽고 나 죽어!“ 가히 미영다운 처세였다. 브리는 휘파람 무리에게 손을 주먹을 들고 한껏 인상을 구겼다. 아름다운 미녀의 얼굴에서 험상 궂은 표정이 내비치자 남자가 캄다운!하며 도망갔다. 브리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여러 매장에 들어가 옷들을 구경했다. 안 맞는 옷이 없었고 안 어울리는 옷이 없었다. 점원들은 블랙카드를 보자 브리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꽤 즐거운 쇼핑이었다. 꼬르륵- 하고 브리의 배꼽시계가 울렸다. 브리는 고풍스러운 장식이 눈에 띄는 라이삐탕 매장 옆 한 프렌치 카페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원목 탁자에 예쁜 컵이나 디저트 하나씩을 올려놓고 수다를 떨거나 권태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다들 엄청 여유롭고 할 거 없어보인다.’ 브리는 약간 불안했다. 이렇게 좋은 곳에 자신이 있어도 되는지. 그럼 어때. 그런 생각을 빠르게 집어삼키곤 에이든 밀러라고 적힌 블랙 카드를 집어들었다. ‘끼야호!’ 메뉴판에서 제일 예쁘고 비싼 말리부 비치 프라페를시켰다. “와 예쁘다!” 점원의 섬세한 서빙을 받고 프라페가 나왔다. 브리는 생크림을 솜사탕처럼 작은 스푼에 듬뿍 얹어 입에 가져갔다. 구름 같은 맛이었다. ”맛있어...“ 브리는 어떻게 돌아가야할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바깥을 보니 수평선에 조금씩 해가 뉘엿뉘엿 누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브리는 연락 없는 에이든 놈에게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관두었다. ’택시 부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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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하나 때문에

같은 시각.밀러 저택의 서재 문이 거칠게 닫혔다.에이든은 문가에 선 채 잠시 숨을 골랐다. 넓은 방 안에는 묵직한 정적이 깔려 있었다. 벽마다 고서와 계약 서류가 빼곡했고, 중앙의 거대한 책상 위엔 정리된 보고서 더미가 놓여 있었다. 언제나처럼 차갑고, 언제나처럼 숨 막히는 방이었다.그리고 그 뒤에 밀러가 앉아 있었다.서류철 하나가 책상 위로 탁, 던져졌다.“니가 정신이 있는 게야, 없는 게야!”그 목소리만으로도 공기가 쩌렁 울렸다.에이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서 있었다. 익숙했다. 어릴 때부터 이런 톤의 목소리를 안 듣고 산 날이 더 적었으니까.“말해 봐. 네가 독단으로 알렉산더 호텔 라인에 자금 넣었다는 게 사실이야?”“예.”짧은 대답에 밀러의 눈썹이 꿈틀했다.“예?”그가 허탈하게 웃었다.“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예?”에이든은 고개를 들었다.“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뭐가 어쩔 수 없어?”밀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두 손으로 책상을 짚은 채 몸을 숙였다. 분노에 찬 눈빛이 서재 조명 아래 번들거렸다.“그래, 니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이유가 뭐야? 뭐냔 말이다!”에이든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알렉산더의 호텔로 들어가는 납품 목록 중 저희 회사와 관련되지 않은 게 없습니다. 그대로 부도나는 걸 지켜보다간 유서 깊은 호텔 하나가 사라지는 걸 넘어서, 저희 그룹 이미지에도 타격이 올 게 분명합니다.”밀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니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썼어?”그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사업은 냉철한 숫자 싸움이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우리가 손해 보면서까지 자금을 수혜할 이유가 뭐냔 말이야!”에이든은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었다.“손해라고 단정하기엔 이릅니다.”“웃기지 마.”밀러는 서류철을 다시 집어 들더니 책상 위에 내리쳤다.“로즈가는 이미 끝물이다. 그런 집안 체면 살려주자고 우리가 먼저 돈을 넣어? 네가 지금 자선사업 하냐?”자선사업.에이든의 입꼬리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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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엔 없던 책장

‘브리가 책도 읽었어? 아 진짜 미치겠네.’원작 속 브리는 덤 걸 그 자체였다. 유수의 하이틴물이 보여주듯, 그저 사랑을 쫓고 킹카랑 결혼하는 엔딩의 소유자. 그런데 그런 애가 책을 읽었다니.브리는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낯설면서도 싫지 않았다. 미영이던 시절에도 앞치마 주머니에 회화책을 넣고 영단어를 외우곤 했으니까. 어떤 이유로 숨겼든, 사람이 품은 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그래서 더 찾고 싶어졌다.이안에게서 빌려간 그 책을.그런데 문제는, 회귀한 뒤로 브리가 손대는 곳마다 따라붙어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바로 저 구석에 요염한 자세로 누워있는 하얀색 치와와였다. 브리아나가 가방 안에 넣고 다닐 정도로 작고 귀여운 생물체. 샐리는 그 치와와를 퓨리라고 불렀다.“퓨리야~ 이리 온.”브리는 구름보다 폭신한 밍크 쿠션 위에 앉아 있는 퓨리에게 손을 뻗었다. 조명에 반짝이는 이마가 너무 귀여워서 한 번쯤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다.“크르르릉, 킁킁! 크크트르릉!”예상 외로 센 놈이었다. 손이 닿은 것도 아닌데 깨알 같은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 기세였다.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앞발을 꼼지락거리는 꼴이 영락없는 작은 맹수였다.‘관두자. 관둬.’한두 번도 아니었다. 서랍을 열려고만 하면 캉캉 짖고, 창문 쪽으로 가기만 해도 예민하게 굴어 밤잠까지 설치게 만들었다.“퓨리야, 나 좀 봐주라. 좋게 좋게 가면 좋잖아?”퓨리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앙칼진 입으로 입맛을 다시더니 밍크 쿠션 바닥을 앞발로 사각사각 긁어댔다.브리는 눈을 반짝였다.“오? 뭘 먹고 싶구나? 샐리 아주머니께 간식 달라고 할까?”“컁컁!”스낵이라는 단어는 찰떡같이 알아듣는 듯했다.브리는 서랍에서 별 모양 간식을 하나 꺼냈다. 사람은 절대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고소하고 짭짤한 냄새가 났다. 브리는 손끝으로 그 알록달록한 간식을 집어 조심스럽게 퓨리에게 내밀었다.“퓨리아~ 우쭈주~ 이거 먹을래?”“그르르으응… 그르르…”조금 누그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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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꿈2

브리는 잠깐 멈칫했다. 방학 때 이안한테서 빌려간 책을 찾으러 간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소문이라도 나면...... 뒷감당이 어려울 게 뻔했다. “그냥… 도서관.” 클로이가 포크를 들다 말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도서관? 네가?” “도서관이라니. 브리야. 어디 아파? 이게 무슨 일이야? 천하의 브리아나 로즈가 도서관? 백화점이 아니구?” 엘리샤가 과장되게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어디 아프거나, 무슨 일 있으면 우리한테 꼭 말해야돼.“ 앨리샤가 빵을 뜯으며 키득거렸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보다.“ 브리는 어이없다는 듯 둘을 한 번씩 흘겨봤다. “둘 다 나중에 봐.”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섰지만, 도서관으로 가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계속 복잡했다. 방학 때 빌려간 책. 원작엔 한 줄도 안 나오던 방학, 이안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냥 책을 주고 받는 사이? 브리는 계단을 올라 2층 복도 끝, 도서관 유리문 앞에 섰다. 안쪽은 햇빛이 길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엘리즈 하이 도서관은 이름만 도서관이지, 거의 소규모 대학 도서관에 가까웠다. 높은 천장, 진한 원목 책장, 카펫이 깔린 바닥,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공기까지. 문을 여는 순간, 바깥 복도의 소란이 반쯤 멀어졌다. 대출 데스크 뒤엔 얇은 은테 안경을 낀 중년 사서가 앉아 있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올려 묶은 데다 표정까지 엄격해서, 얼핏 보면 학생들 손톱 때까지 기록 카드에 적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브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어보였다. “안녕하세요.” 사서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브리를 보자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브리아나.” 브리는 속으로만 놀라고 겉으론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지?” “저… 혹시 제가 예전에 대출했던 책들 기록, 볼 수 있을까요?” 사서의 눈썹이 조금 더 올라갔다. “갑자기?” 브리는 목을 가다듬었다. “방학 때 빌렸던 책이 생각이 안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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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더룸의 영웅

브리는 화장실 칸에서 볼일을 보고 나가려고 하는데 여자애들 한 무리가 왁자지껄 수다를 떨면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네사, 에이든이 정말 당황스러운 선택을 한거야. 아마 널 질투나게 하려는 작전일수도 있어.“ 브리는 나가려던 걸 그 자리에서 멈췄다. ”맞아. 바네사. 너보다 훨씬 못 생기고, 집도 못 사는 앨 에이든이 뭐가 좋다고 선택하겠어? 그냥 성격이 호구 같으니까 데리고 놀다 버릴려는 거지.“ “아니야. 뭐. 진짜 좋아할 수도 있지.” 바네사는 온갖 드라마에도 품위를 잃지 않은 여배우인 척, 풀이 죽은 묵소리로 말했다. 원작에서 바네사가 브리에게 개인적으로 직접한 말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면전에다가 대고 데리고 놀고 버릴 거라는 둥 하지 않았나? 새삼 바네사의 페르소나가 소름 돋을 정도로 느껴졌다. 브리는 화장실을 박차고 나가려다 이어지는 내용에 놀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그 년이 에이든을 어떻게 꼬셨냐는 거야. 아는 거라곤 사치 밖에 없는데.“ “그러게. 걔네 둘이 안 어울려도 한 참 안 어울려. 브리도 참, 넘볼 땔 넘 봐야지 안 그래?” 브리아나 시녀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한바탕 지나갔다. “아 맞다 참. 걔네 집 이번에 부도나기 직전까지 갔다는 소문이 있던데.” ”우리 엄마가 봤는데 거기 호텔 전염병 때문에 스태프들 다 자르고 난리도 아니었었잖아.“ ’전염병이 사람만 여럿 죽인 게 아니라 거지 근성까지 덤으로 줬네.‘ 흥미롭게 대화를 듣던 바네사는 한 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아 정답 나왔네.“ ”뭔데?“ ”딱 봐도 에이든 비행기 탈려는 심산이지. 에이든 이름으로 뭐라도 얻을려는 거 아니겠어? 요즘 누가 그런 호텔 알아줘?“ “걔 기부금이 아니라 성적으로 들어왔다는 소문도 있던데?” “엥? 그런 거였어?” 시녀 중 한 명이 너무 놀랍다는듯 큰소리로 대답했다. ”와 이제 엘리즈하이에도 헝그리정신으로 인생 사는 애가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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