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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ua Bab 형수의 밤: Bab 91 - Bab 100

167 Bab

91. 증거의 실종

정지윤 변호사의 사무실은 도심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안쪽에 있었다.크지 않은 건물이었지만 간판은 분명했다. 법률사무소 지윤이라는 이름이 깔끔하게 걸려 있었다.건우는 건물 앞에 서서 잠시 간판을 바라봤다.“여기 맞아.”하나가 말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이 문을 열면, 형이 마지막으로 준비하려 했던 것의 일부를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하나는 먼저 문을 밀었다.사무실 안은 조용했다.책장이 벽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가운데에는 단정하게 정리된 책상이 놓여 있었다.책상 뒤에 앉아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예약하셨나요?”목소리는 차분했다.하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윤신우 대표 관련해서 왔습니다.”그 순간. 여자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그 반응은 짧았지만 분명했다.“윤신우 대표.”그녀가 천천히 말했다.“그 이름… 오랜만에 듣네요.”건우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그럼.”그가 조용히 말했다.“기억하신다는 거네요.”정지윤은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그리고 물었다.“두 분은.”건우가 먼저 대답했다.“동생입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정지윤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예상은 했어요.”그녀가 말했다.“언젠가는 누군가 찾아올 거라고.”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형이.”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고 이어 말했다.“사고 전에 여기 오셨죠.”정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의 대답은 단순했다.“맞습니다.”건우의 숨이 조금 무거워졌다.“무슨 얘기 했습니까.”지윤은 잠시 침묵했다.그리고 말했다.“그건.”그녀의 시선이 조금 낮아졌다.“원래 말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하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그래도.”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지금 상황은 다르잖아요.”정지윤은 한동안 두 사람을 바라봤다.그리고 결국 말했다.“윤 대표님은.”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회사 내부 자금 흐름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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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흐르는 돈

지윤 변호사 사무실에서 돌아온 뒤, 집 안 공기는 오래 가라앉아 있었다.하나는 거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었다. 화면에는 형의 회사 재무 자료가 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숫자들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여기 봐.”그녀가 조용히 말했다.건우는 소파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이 계좌.”하나는 숫자를 가리켰다.“자회사 결제 계좌인데.”그녀는 마우스를 움직였다.“세 달 간격으로 큰 돈이 빠져나가.”건우의 눈이 좁아졌다.“얼마.”“평균 삼십억.”잠시 침묵이 흘렀다.건우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근데.”그가 말했다.“회사 결제면 문제 없잖아.”하나는 고개를 저었다.“문제는.”그녀는 다음 화면을 열었다.“이 돈이 어디로 가는지야.”화면에는 해외 송금 기록이 나타났다.싱가포르.케이맨 제도.그리고 이름 없는 투자회사.건우의 시선이 멈췄다.“페이퍼컴퍼니.”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형이 본 것도 이거일 거야.”잠시 정적이 흘렀다.이건 단순 횡령이 아니었다.회사 안에서 조직적으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었다.건우는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형의 얼굴이 떠올랐다.조용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감정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항상 먼저 확인하고, 그다음에 행동하는 사람이었다.그 사람이 굳이 변호사를 찾아갔다는 건 이미 확신에 가까운 증거를 잡았다는 뜻이었다.“그래서.”건우가 말했다.“형이 자료를 넘기려 했던 거네.”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응.”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근데 그걸 누가 가져갔지.”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었다.형의 죽음은 단순히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그 자료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막아야 했던 사건일 수도 있었다.밤이 조금 깊어졌을 때. 하나는 노트북을 덮었다.건우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건우.”그녀가 조용히 불렀다.그는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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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배신의 상흔

자금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숫자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하나는 노트북 화면을 확대했다.여러 개의 송금 기록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회사 결제처럼 보이던 금액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었다.“건우.”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이거 봐.”건우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여기.”하나는 특정 계좌를 가리켰다.“처음에는 회사 자회사 계좌로 돈이 들어와.”마우스가 움직였다.“그 다음.”다음 화면이 열렸다.“싱가포르 투자회사.”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하나는 화면을 하나 더 넘겼다.“여기서 다시 빠져.”새로운 계좌가 나타났다.건우의 눈이 멈췄다.“개인 계좌.”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잠시 침묵이 흘렀다.건우는 계좌 번호를 바라보고 있었다.“이거.”그가 말했다.“회사 계좌 아니네.”하나는 천천히 말했다.“응.”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개인 이름이야.”건우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누구.”하나는 화면을 확대했다.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이거.”그녀가 말했다.“이름이 익숙해.”건우가 고개를 들었다.“누군데.”하나는 화면을 돌렸다.김도현건우의 눈이 아주 미묘하게 흔들렸다.그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형의 회사 재무담당 부사장.형이 가장 신뢰하던 사람이었다.잠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건우는 화면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형이 죽기 전에 추적하던 돈의 끝이 형이 가장 믿던 사람에게 연결되어 있었다.“설마.”건우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확정은 아니야.”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근데.”잠시 후 이어 말했다.“가능성은 높아.”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건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창밖을 바라봤다.형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김도현의 얼굴도.항상 웃고 있던 사람.형이 해외 출장 갈 때마다 회사 일을 대신 맡기던 사람.그 사람이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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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믿었던 사람의 얼굴

김도현이라는 이름이 화면 위에 떠 있는 동안, 거실 안의 공기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숫자와 계좌를 따라가던 시선이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화면에만 머물지 못했다. 건우는 노트북 앞에 서 있었고, 하나는 의자에 앉은 채 그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었다. 틀릴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싶었지만, 계좌 흐름은 지나치게 선명했다.형이 죽기 전에 추적하던 돈의 끝에, 형이 가장 믿던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그 사실은 단순한 충격으로 끝나지 않았다.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기억들까지 한꺼번에 흔들어 놓았다.“다시 봐.”건우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아무 말 없이 로그 화면을 다시 열었다. 자회사 계좌로 들어온 돈이 싱가포르 투자회사를 거쳐 개인 계좌로 빠져나가는 흐름은 숫자만 달라질 뿐 몇 달 동안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었다. 우연이나 일회성 실수라고 보기에는 구조가 너무 정교했다.“계좌 명의는 확실해.”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동명이인 가능성도 확인해봤는데, 주민번호 뒤 두 자리랑 회사 신고 자료가 일치해.”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창가 쪽으로 걸어가려다 멈춘 그는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김도현.형이 해외 일정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회사 안을 대신 맡던 사람. 중요한 결재가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보고를 올리던 사람. 집에도 몇 번이나 드나들었고, 건우에게도 늘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형이 뒤쫓던 돈의 끝에 있었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칼을 들고 형을 죽였다는 사실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형이 알았겠지.”건우의 입에서 낮게 말이 흘러나왔다.하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아마.”그녀도 쉽게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그래서 변호사를 찾았을 거야.”건우는 그 말을 듣고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정지윤 변호사를 찾아간 이유, 기록에 남기지 않은 약속, 사고 직전에 주고받으려 했던 봉투, 그리고 그날 바로 회수된 자료. 모든 조각이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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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뒤돌아선 조력

김도현이라는 이름이 화면 위에 남아 있는 동안, 거실의 공기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노트북 화면은 이미 몇 번이나 잠금 상태로 넘어갔지만 아무도 다시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건우는 창가에 서 있었고, 하나는 테이블 옆에 서서 노트북을 닫은 채 손을 그대로 얹고 있었다. 서하는 창문 근처 어둠 속에 기대 서 있었는데, 평소처럼 말을 던지지도, 일부러 분위기를 흔들지도 않았다. 세 사람 모두 같은 이름을 떠올리고 있었고, 그 이름이 가진 의미가 생각보다 무겁다는 사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건우의 머릿속에는 오래된 기억들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도현이라는 사람은 회사에서 단순히 높은 직책을 가진 임원이 아니었다. 건우가 어릴 때부터 집에도 몇 번씩 드나들었고, 형이 바쁘게 회사를 키우던 시절에는 거의 가족처럼 보이던 사람이었다. 부모님 장례식 때도 가장 먼저 달려와 형 옆에 서 있던 얼굴이었고, 건우가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도 병실 문 앞에서 조용히 서 있던 사람이었다.그래서 그 이름이 지금 이 사건의 끝에 있다는 사실이 더 납득되지 않았다.건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창밖 도로에는 새벽 택시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고, 그 불빛이 거실 바닥을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형이… 언제부터 의심했을까.”건우의 목소리는 크게 높지 않았지만, 그 질문은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것이 아니었다.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확신은 못 했을 거야.”그녀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아마 처음에는 단순한 자금 이상 정도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커. 회사 돈이 해외로 빠지는 건 흔한 일이니까.”건우는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그 말은 맞았다. 대기업이나 투자회사들이 복잡한 구조를 이용해 자금을 이동시키는 일은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형은 그 흐름을 단순히 보고 넘기지 않았다. 변호사를 만나려고 했고,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따로 자료를 모으고 있었다.그건 의심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까운 행동이었다.“그럼 어느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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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남겨진 시간의 흔적

새벽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이었지만, 집 안의 공기는 아직 밤의 온도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거실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던 노트북 화면은 다시 어둡게 식어 있었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새벽빛이 바닥 위에 얇게 깔려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김도현이라는 이름이 화면 위에 떠 있었고, 그 이름 하나가 세 사람의 기억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아직도 공기 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건우는 창가에 서 있었다.밤새 제대로 앉아 있지도, 잠을 자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낸 탓인지 몸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또렷했다. 창밖 도로를 바라보고 있자니 형과 함께 회사 앞 골목을 걸어 나오던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형 옆에 서 있던 사람이 김도현이었고,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가볍게 웃고 있었다.그 장면이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는 단순했다.그때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뒤에서 조용히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였다.그녀는 밤새 노트북을 붙잡고 있던 탓인지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생각보다 차분해 보였다. 그녀는 건우의 옆에 나란히 서서 창밖을 바라봤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묘한 공감이 흐르고 있었다.“잠깐 눈 붙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하나가 조용히 말했다.건우는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못 자.”그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이 상태로 눈 감으면 아마 계속 같은 생각만 할 것 같아.”하나는 그 말을 듣고 더 말하지 않았다.대신 팔짱을 가볍게 낀 채 창밖 도로를 따라 움직이는 새벽 차량 불빛을 바라봤다. 그 불빛이 지나갈 때마다 거실 벽에 그림자가 잠깐씩 흔들렸다.잠시 후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어제 자료 다시 정리해봤어.”건우의 시선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계좌 흐름.”하나는 짧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처음 시작된 시점이 형 사건보다 훨씬 전이야.”건우는 그 말의 의미를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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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공백의 역설

아침이 완전히 밝기 전에 집 안 공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밤새 이어지던 긴장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둠이 물러나자 생각의 방향이 조금씩 현실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출근 차량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버스 소리가 평소보다 또렷하게 들렸다.건우는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노트북 화면에는 여전히 같은 계좌 흐름이 떠 있었지만, 이제 그는 숫자보다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김도현.형이 가장 신뢰하던 사람.회사 재무를 거의 전적으로 맡고 있었고, 중요한 계약이나 투자 결정이 있을 때마다 형 옆에 서 있던 인물.건우는 커서를 천천히 움직이며 화면을 다시 살폈다. 숫자들은 이미 몇 번이나 확인했던 것들이었지만,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를 드러냈다. 회사 계좌에서 시작된 돈이 자회사를 거쳐 싱가포르 투자회사로 넘어가고, 그 뒤 다시 개인 계좌로 돌아오는 구조는 단순한 실수나 일회성 거래로 설명하기 어려웠다.그 흐름은 너무 오래 이어져 있었고, 너무 정교하게 반복되고 있었다.하나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밤새 모아 둔 자료들을 하나씩 다시 확인하며 메모를 덧붙이고 있었는데, 그녀의 손놀림은 평소처럼 빠르지 않았다. 생각이 더 많은 날에는 항상 그랬다.“건우.”그녀가 펜을 멈추며 말했다.건우가 고개를 들었다.“응.”“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하는 건.”하나는 잠시 말을 고른 뒤 천천히 이어갔다.“김도현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그녀의 시선이 노트북 화면으로 향했다.“김도현이 움직였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건우는 그 말을 곱씹었다.의심과 증명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었다. 의심은 마음속에서 시작되지만, 증명은 반드시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특히 상대가 오랫동안 회사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계좌 말고도 뭔가 있어야겠네.”건우가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계좌만으로는 부족해.”그녀는 노트를 덮으며 말을 이어갔다.“돈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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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남겨진 방

형의 집은 몇 주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특유의 정적이 먼저 맞아왔다. 사람이 살던 공간이라는 흔적은 분명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 흐르던 생활의 온도는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낮빛이 거실 바닥 위에 길게 깔려 있었고, 먼지가 얇게 쌓인 테이블 위에는 시간이 그대로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건우는 잠시 문 앞에 서 있었다.그 집에 다시 들어올 때마다 같은 생각이 반복되었다. 형이 아직 여기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방 안을 둘러보게 되는 습관 같은 것.하나는 먼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이미 몇 번이나 이 집을 확인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사건 직후라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았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김도현이라는 이름이 나타난 뒤로 이 집은 단순한 범죄 현장이 아니라, 형이 남긴 흔적을 찾는 공간이 되었다.“거실은 지난번이랑 같네.”하나가 조용히 말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으로 걸어갔다.소파, 책장, 테이블 위에 놓인 몇 권의 책.형이 평소에 읽던 경제 관련 서적과 회사 보고서들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쌓인 먼지를 보니, 사건 이후 이 집을 드나든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건우는 테이블 옆에 서서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가볍게 밀어 보았다.책이 조금 움직이며 먼지가 얇게 흩어졌다.“형이 여기서 일 많이 했지.”그는 천천히 말했다.하나는 그의 옆에 서서 책장을 바라봤다.“회사에서도 늦게까지 있었잖아.”건우는 잠시 웃었다.“그래도 집에 와서 다시 일했어.”그의 말투에는 어딘가 익숙한 체념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형은 늘 그랬다. 회사 일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중요한 문제가 생기면 결국 집에서도 책상 앞에 앉아 자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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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메모의 단서

서재 안 공기가 조금 달라진 것은 노트북 화면 때문만은 아니었다.형이 직접 정리해 둔 자료를 눈앞에서 확인하고 나자,그 방 자체가 이전과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펜 하나, 서랍에 남아 있는 종이 몇 장, 벽에 걸린 시계까지도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어떤 시간의 끝에 남겨진 흔적처럼 느껴졌다.건우는 노트북 앞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엑셀 화면에는 계좌 흐름이 정리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형이 직접 입력했을 것으로 보이는 메모들이 남아 있었다. 날짜와 금액 사이에 짧은 문장들이 몇 개 섞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짧은 표시나 숫자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중 몇 줄은 분명히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하나는 화면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여기.”그녀가 말했다.건우의 시선이 그쪽으로 움직였다.셀 하나에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확인 필요 - 지분 이전 전하나는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지분 이전.”그녀가 낮게 말했다.건우는 그 단어를 곱씹었다.형이 죽기 직전에 회사 지분을 정리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은 적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그 가능성이 여러 번 언급되었다고 했다.그때는 단순한 경영 판단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상황이 조금 달라 보였다.“형이.”건우가 말했다.“김도현 지분을 정리하려 했을 수도 있겠네.”하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화면을 한 번 더 훑어본 뒤 조용히 말했다.“가능성은 있어.”그리고 조금 뒤에 덧붙였다.“김도현이 회사 돈을 개인 계좌로 빼돌리고 있었다면.”그녀의 시선이 건우에게 향했다.“형이 그걸 알고 가만히 있었을 리는 없잖아.”건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형의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직접 정리하려 했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엄격하게 판단하던 사람이었다.그래서 더 위험했을지도 몰랐다.건우는 마우스를 움직여 두 번째 파일을 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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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지워진 흔적

서재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아침이 완전히 시작되기 전의 시간이었다. 밤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으면서도 낮이 천천히 공간을 밀어내고 있는 묘한 경계 같은 시간. 형의 집 안은 여전히 조용했고, 세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노트북 화면과 책상 위 서류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건우는 잠시 손을 들어 눈가를 문질렀다. 밤을 거의 새운 상태라 몸이 피곤한 것은 분명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형이 남겨 놓은 문서와 계좌 흐름이 하나씩 맞물리면서 사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지윤 변호사.”건우가 말했다.하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응.”건우의 시선은 여전히 노트북 화면 위에 있었다.“형이 이 자료 들고 만나려고 했던 거 맞지.”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형이 직접 정리한 계좌 흐름이 있고, 김도현 이름까지 적어 놨고, 그 다음 날 변호사 만나려고 했어.”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덧붙였다.“흐름이 자연스럽잖아.”건우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생각했다.형은 단순히 의심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어느 정도 정리된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그 자료를 법적으로 남기기 위해 변호사를 찾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건이 벌어졌다.그 순서가 너무 명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그럼.”건우가 조용히 말했다.“김도현이 형이 뭘 알고 있는지 알았을 수도 있겠네.”하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문서를 다시 한번 내려다봤다. 형이 직접 적어 놓은 짧은 문장들과 날짜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몇 개는 분명히 사건 직전의 시간과 겹쳐 있었다.“알았을 가능성도 있고.”그녀는 천천히 말했다.“눈치챘을 가능성도 있어.”건우가 고개를 들었다.“차이가 있어?”하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많이.”그녀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의미는 분명했다.“알았다는 건 누군가가 직접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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