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Bab 161 - Bab 170

195 Bab

161. 좋아한다는 말

월령은 봉서를 내려다보았다."마마께서 보실 종이라면, 봉을 푸는 자리에 예관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예관이 어디 있느냐.""소녀가 먼저 펼까 두렵습니다."숙비가 웃었다. 웃음은 입가에서 그쳤다."네가 그 종이를 들고 여기까지 온 것은, 펴지 않기 위해서였구나.""그리 보였다면 송구합니다. 예관 앞에서 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월령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끝이 둥글었다. 거스르는 말도 그렇게 하면 거스르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숙비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심 부인이 가르쳤느냐.""어머니께서는 말을 적게 하라 하셨습니다.""적게 하는 것과 잘 고르는 것은 다르다."월령은 고개를 더 낮추었다."명심하겠습니다."숙비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내민 손을 거두는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 처음부터 내밀지 않은 사람 같았다."네 아비의 글을 잘 알아보더구나."월령의 손끝이 봉서 가장자리에서 멈췄다."그저 아버지의 글이 좋아, 늘 곁에 두고 보았을 뿐입니다."위명서 앞에서 내려놓았던 답과 결이 같았다. 두 번 묻는 자리에서 답이 달라지면, 흔들린 그 틈이 곧 약점이 되었다. 그래서 같은 답을, 같은 결로 내려놓았다."좋아한다."숙비는 그 말을 천천히 되풀이했다."궁에서는 좋아한다는 말도 쓸 곳을 보아야 한다."월령은 대답하지 않았다.아버지의 글은 곧고 좁았다. 글자 사이가 멀지 않았고, 끝을 길게 끌지 않았다. 급한 날에도 마지막 획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월령은 어릴 때 그 글자들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본 적이 있었다. 종이에 닿지도 않는 손끝으로.그때는 글자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그저 아버지가 멀리 있어도, 글자는 집에 남는다고 생각했다.지금은 글자 위에 다른 글자가 얹혔다. 아버지의 글 위에 금선 내지가, 금선 내지 위에 자녕궁의 향이, 그 위에 아직 마르지 않은 먹이 얇게 놓였다."네 아비는 북문에 있다."화제가 옮겨졌다. 옮겨진 자리가 더 추웠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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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한 뼘

자녕궁의 첫 번째 문 앞.위지헌은 들어가지 않았다.궁문 밖에서 기다려 달라는 숙비의 말을 그는 들었다. 들었다는 것이 멈춘다는 뜻은 아니었다."문은 셋입니다."기윤이 낮게 말했다."동문, 서협문, 그리고 후원으로 도는 수문.""수문은 언제 여느냐.""새벽에 한 번. 물을 갈 때."위지헌은 첫 번째 문의 돌계단을 보았다. 세 번째 단이 다른 단보다 닳아 있었다. 사람이 많이 밟은 단이 아니라, 무거운 것이 여러 번 지난 단이었다. 수레가 아니라 들것. 들것이 아니라 함.종이를 빼낸다면 서협문이었다. 기록이 가장 얇은 문.한 번 지나온 길이었다."서협문에 둘을 세워라. 잡지 말고 적어라."기윤이 물러났다.위지헌은 닫힌 문을 보았다. 그 너머에 월령이 있었다.그가 들어가면, 그녀의 마음이 정치가 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발은 문지방의 그림자 앞에 가서야 멈췄다.그 한 뼘을 넘으면 그녀가 있었다.한 뼘이었다. 그는 그 거리를 오래 보았다. 칼이 닿는 거리도, 말이 닿는 거리도 아닌,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문틀에 손이 닿아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나무의 결을 따라 한 번 굳었다가, 천천히 풀렸다. 그는 그 손을 거두었다. 거두는 데 평소의 두 배가 걸렸다.안에서 향이 한 번 바뀌었다.단맛이 늘어난 향. 사람을 머물게 하는 향.위지헌의 목 안쪽이 말랐다.그는 월령이 그 안에서 얼마나 오래 견디는지 알았다. 충분히 오래. 그것도 그의 앞에 펼쳐진 길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녀의 손끝이 차가워지는지, 숨이 얕아지는지, 그를 한 번이라도 부르는지. 그것만은 어디에도 펼쳐지지 않았다.한 번 지나온 생에서, 이 시각의 월령은 자녕궁에 있지 않았다.그녀가 무엇을 겪는지 모르는 길을, 그는 처음 걷고 있었다.아는 길과 모르는 길이 같은 문 앞에서 겹쳤다. 그래서 문은 더 가까웠고, 더 멀었다.위지헌은 닫힌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두 번째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선과 걸음이 같은 방향이 아니었다. 몸의 절반은 여전히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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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글자가 늙는다

기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접은 종이를 두 손으로 올렸다.위지헌은 종이를 펼쳤다.글자는 길지 않았다.'금선 내지는 문서방 것이 아닐 수 있음.''남쪽 별원 물목에 쓰던 종이와 닮음. 겉에 앉은 금가루.''독고가 상단 물표. 오상궁.'위지헌의 손가락이 종이 아래쪽에서 멈췄다.심가에서는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서원당의 병든 부인이, 서윤이, 은매가, 각자 볼 수 있는 만큼을 보고 있었다.위명서는 그 접힌 종이를 보았다.심월령의 곁에는 늘 누군가 있었다. 그녀가 크게 부르지 않아도, 누군가는 작게 움직였다. 그 사실이 그의 속을 천천히 긁었다."허도겸에게 닿게 하라."위지헌이 말했다."문 안쪽은 노은이 막고 있습니다.""문이 열릴 때를 보아라."기윤이 물러났다.위명서는 닫힌 문을 다시 보았다. 안에서 향이 한 번 더 짙어졌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알 수 있었다.그 향이 누구를 위해 피워졌는지, 그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자녕궁 안에서, 월령도 그 향을 알아차렸다.처음의 향보다 단맛이 늘었다. 사람을 졸리게 하는 향이 아니라, 시간을 잊게 하는 향이었다.월령은 손안의 바둑돌을 한 번 굴렸다. 흰 돌과 검은 돌이 작게 부딪쳤다.그 소리가 향의 단맛을 한 번 끊었다."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숙비가 물었다."돌입니다.""바둑을 두느냐.""두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누구에게."월령은 잠시 멈췄다."혼자 둡니다."거짓이었다. 그러나 모두 거짓은 아니었다. 그는 돌을 주었을 뿐, 두는 것은 늘 월령의 손이었다.네가 두기 좋은 곳에 놓아라.나를 변에 두어도, 버림돌로 써도 된다.그 말이 올라오자 손끝이 조금 따뜻해졌다.따뜻해지는 손은 자녕궁 안에서 약한 손이었다. 월령은 흰 돌을 손바닥 깊이 쥐었다."심월령.""예.""네가 그 종이를 펴지 않고 버틸수록, 밖에서는 다른 말이 자란다."숙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섭정왕이 역적의 딸을 감싸기 위해 자녕궁의 문 앞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그런 말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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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스물네 대

서협문의 빗장이 들린 뒤, 작은 함 하나가 마른 빨래 아래를 지나갔다.그와 거의 같은 때였다.끼이익—!자녕궁 바깥 돌길에서 말굽이 미끄러졌다."히이잉!"말 한 마리가 옆구리를 바닥에 부딪쳤다.쿵!방 안의 찻물에 잔물결이 일었다.노은 내관이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문밖에서 젖은 신이 끌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회암역 급보이옵니다."허도겸이 먼저 일어섰다.역졸의 바지는 무릎 아래가 검붉게 젖어 있었다. 한쪽 소매는 찢겨 있었고, 품에서 꺼낸 군보에도 손자국 모양으로 피가 배어 있었다.그는 숙비 앞에 엎드리다 팔꿈치부터 무너졌다.젖은 입술이 두 번 달싹였다."스물네 대가 옛길로…."그 뒤의 말은 피 섞인 기침에 묻혔다.허도겸이 군보를 받아 펼쳤다.검은 먹 아래로 스물네 대, 일곱, 열아홉이라는 수가 차례로 보였다.마지막 줄의 글씨는 피에 젖어 번졌으나 `서른여섯 대 대기`만은 남아 있었다.심도윤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글에는 월령이 무릎 위에 받든 봉서와 같은 날짜, 같은 길, 같은 군량 수가 적혀 있었다.역졸의 옷에서는 빗물과 피 냄새가 났다.군령 한 귀퉁이만 이상하리만치 말라 있었고, 수레 축에 바르는 유채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숙비의 손에서 옥반지가 멎었다.월령은 봉서를 보지 않았다.역졸의 찢어진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을 보았다. 피가 손끝을 타고 마룻바닥에 떨어졌다.창호 위 햇빛이 이미 반을 넘고 있었다.옥빛 소매가 바닥을 스쳤다. 월령은 역졸 쪽으로 몸을 낮췄다."의원을 먼저 불러 주시옵소서."허도겸이 노은을 보았다. 노은은 숙비의 눈치를 살피다 문밖으로 사람을 보냈다.허도겸의 붓이 `오시` 옆에서 멎었다.숙비는 피 묻지 않은 군령과 피에 젖은 역졸을 번갈아 보았다."어보가 없다. 이 군령만으로는 남은 수레를 세울 수 없겠구나."월령은 허리춤의 작은 옥패를 풀었다. 어머니가 궁에 들기 전 매어 준 심가 장녀의 패였다.차탁 위에 패가 놓였다.관자놀이에 붙은 잔머리가 뺨을 스쳤다. 속눈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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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함은 남쪽으로

두 번째 군령을 넣은 함은 서협문 담장을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기윤이 지붕 끝에서 손을 들었다.담장 그늘에 몸을 구기고 있던 강무진이 곧장 뛰어나갔다. 바로 전까지 잡지 말라던 명은 역졸이 쓰러진 순간 바뀌었다."함을 잡아라."기윤의 말이 뒤에서 떨어졌다.함을 품은 사내가 골목 어귀의 채소 수레를 걷어찼다. 무와 파가 돌바닥을 굴렀다. 장을 보던 여인들이 광주리를 끌어안고 벽으로 붙었다.강무진은 사람을 밀치지 못해 반 박자 늦었다.그 사이 사내가 포목전 차양 아래로 몸을 틀었다. 회색 겉옷 자락 밑에서 칼날이 번뜩였다.말고삐를 잡고 있던 아이가 놀라 손을 놓쳤다.말이 앞발을 들었다. 아이가 수레바퀴 곁에 주저앉았다."앗!"강무진은 달아나는 사내 대신 아이 쪽으로 몸을 던졌다. 큰 손이 아이의 뒷깃을 잡아 말발굽 아래에서 끌어냈다."숨 쉬어라."아이는 입만 벌린 채 소리를 내지 못했다.사내는 그 틈에 골목을 빠져나갔다.기윤의 검은 그림자가 지붕 위를 건넜다.와장창!기왓장 하나가 깨졌고, 다음 순간 그는 사내의 앞쪽 처마에서 떨어졌다.칼이 먼저 들어왔다.기윤은 몸을 비켜 칼등을 흘렸다. 사내가 오른쪽으로 꺾이자 골목 끝을 돌아온 강무진의 어깨가 길을 막았다."비켜라."사내가 칼을 다시 들었다.강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칼을 쥔 손목을 잡아 벽에 눌렀다."악!"챙그랑!칼이 돌바닥에 떨어졌다.작은 함도 품에서 빠져나왔다.사내가 발끝으로 함을 걷어찼다. 함은 배수로 쪽으로 미끄러졌다.덜컹!기윤이 몸을 낮춰 손잡이를 낚아챘다.뚜껑의 봉랍은 이미 반쯤 깨져 있었다."열어."강무진이 사내의 팔을 꺾은 채 말했다."예관이 없습니다.""수레가 먼저 간다."기윤은 칼끝으로 남은 봉랍을 갈랐다.안에는 군령 두 장과 회암역의 붉은 통행패가 들어 있었다. 첫 장에는 서른여섯 대를 옛길로 돌리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둘째 장에는 옛길 초입의 호송군을 다른 봉수대로 보내라는 명이 있었다.아까 구한 아이가 벽을 짚고 일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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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따뜻한 것

흑옥 군패를 받은 기윤이 계단을 세 칸씩 내려갔다.회랑 끝에서 대기하던 호부 참의가 앞을 막았다. 가슴에 품은 공문 가장자리가 땀에 젖어 있었다.참의가 어보 없는 공문을 펴 보였으나 위지헌은 종이 쪽으로 눈도 주지 않았다."내 이름을 적어라."그 한마디 뒤에 참의의 붓이 떨렸다.위지헌은 동영의 교위에게 흑옥 군패를 보였다."기병 마흔. 수레를 세우고, 살아 있는 자부터 끌어내라."교위가 무릎을 짚었다.말들이 궁문 아래로 끌려 나왔다. 굴레의 놋쇠가 서로 부딪쳤고, 말 입김이 낮은 그늘을 희게 메웠다."히이잉!"강무진이 마지막 말에 올랐다. 아까 아이를 끌어내다 까진 손등에 흙이 박혀 있었다.그는 이미 옛길 쪽으로 말머리를 돌리고 있었다.위지헌은 대답 대신 그의 말 옆구리를 한 번 쳤다.두두두두—!마흔 필의 말이 궁문을 빠져나갔다. 돌바닥이 울렸고, 수문 내관들의 청색 옷자락이 바람에 들렸다.위지헌은 닫힌 자녕궁 문을 한 번 돌아보았다.문이 닫히기 전 보였던 것은 옥빛 소매와 젖은 속눈썹, 차탁 위에 놓인 작은 패였다.들어가 그 찬 손에서 패를 빼내고 싶었던 마음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그는 군패를 쥔 손으로 말고삐부터 잡았다.그가 탄 말은 자녕궁과 반대쪽을 향했다.닫힌 문을 보던 눈만 말머리보다 늦게 돌아왔다.*자녕궁 안에서도 그 말굽 소리가 들렸다.월령은 차탁 위 옥패를 내려다보았다.허도겸의 기록에는 시각과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심월령의 청.섭정왕 위지헌의 명.숙비가 그 두 줄을 읽었다.옥반지가 두 이름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월령의 손끝이 소매 안에서 한 번 접혔으나, 입은 열리지 않았다.문밖에서 의원이 역졸의 상처를 씻는 물소리가 났다. 피가 섞인 물을 받은 놋대야가 옮겨질 때마다 가장자리에서 붉은 물이 넘쳤다.묵련 나인이 새 기록지를 펼쳤다. 붓을 쥔 손목 안쪽에 두 겹의 붉은 자국이 보였다가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숙비의 눈도 그 자리에 잠깐 머물렀다."묵련."묵련의 어깨가 굳었다."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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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회암역

자녕궁의 화로에서 물이 끓기 시작한 때, 회암역의 종이 세 번 울렸다.댕—! 댕—! 댕—!서른여섯 대의 군량 수레가 줄지어 움직였다.수레마다 북문군의 검은 글자가 찍혀 있었다. 마른 곡식 냄새가 마당을 채웠고, 짐을 묶은 밧줄은 밤이슬을 먹어 짙어져 있었다.역승은 심도윤의 인장이 찍힌 군령을 두 손으로 들고 서 있었다."옛길로 돌린다."호송 교위가 말 위에서 군령을 내려다보았다."첫 수레는.""먼저 들어갔다.""돌아온 전령은."역승의 입술이 굳었다."없다."호송 교위가 손을 들었다.첫 수레의 바퀴가 회암역 남쪽 문턱을 넘었다.그때 땅이 울렸다.처음에는 군량 수레의 진동처럼 낮았다. 곧 말굽 수십 개가 한꺼번에 돌길을 찍는 소리로 바뀌었다.북경군의 검은 깃발이 언덕을 넘어왔다.기윤이 선두에서 흑옥 군패를 들었다."수레를 세워라!"역승이 군령을 가슴에 끌어안았다."진북대장군의 명이다.""섭정왕 전하의 패다."두 패가 수레 사이에서 마주 섰다.호송 교위가 손을 내리지 못했다. 뒤의 수레바퀴가 앞 수레의 나무판을 밀었다. 말들이 코를 울리며 발굽을 굴렀다.역승 곁에 있던 마부 하나가 갑자기 채찍을 들었다.채찍 끝에서 짧은 칼날이 나왔다.호송 교위의 목을 향한 칼을 강무진의 손이 중간에서 잡았다. 날이 손바닥을 얕게 갈랐다.강무진은 칼날째 손을 움켜쥐고 마부를 수레 옆으로 내던졌다.퍽!"컥!""수레를 멈춰라."첫 수레의 말이 놀라 옆으로 뛰었다.덜컹!바퀴 하나가 도랑 턱에 걸려 기울었다.후두둑.포대가 쏟아지며 누런 곡식이 흙 위로 흘렀다.역승이 달아났다.기윤이 뒤를 좇으려는 순간 옛길 쪽 숲에서 화살이 날아왔다.푹!화살은 역승의 등을 꿰뚫었다.두 번째 화살이 군령을 든 손에 박혔다.기윤이 역승을 끌어 수레 뒤로 눕혔다. 흰 종이에 붉은 피가 번졌다. 심도윤의 인장은 피 아래에서도 또렷했다."숲에 셋."북경군 병사들이 말에서 내렸다. 방패가 수레 사이에 세워졌고, 창끝이 숲으로 돌아갔다.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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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사라진 사람

궁녀는 문턱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헉, 헉…."말 대신 내수사 수레에서 뜯긴 청동 표식을 내밀었다.고방 뒤창의 푸른 칠이 표식 모서리에 묻어 있었다.숙비가 묵련을 내려다보았다.묵련의 손이 마루 위에서 오므라들었다.그녀가 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지난겨울 북문에서 온 장계의 빈 여백마다 같은 글자가 빼곡했다.묵련은 숨을 제대로 들이지 못했다. 옷깃 아래가 짧게 오르내렸다.맨 아래에는 군량 수와 날짜가 한 번만 적혀 있었다.그 줄을 덮은 손목의 붉은 자국이 다시 드러났다.숙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세답방은 하루 종일 잿물에 손을 담그는 곳이었다. 겨울이면 어린 궁녀의 손톱부터 벗겨졌다."동생을 데려갔습니다.""흑…."묵련의 눈에서 물기가 떨어졌다. 입술이 닫힌 뒤에는 더 큰 울음이 새지 않았다.묵련이 내놓은 세답방 출입패에는 어젯밤 도장이 없었다.대신 패의 끈에서 젖은 볏짚과 유채기름 냄새가 났다.월령은 소매 안에서 손가락을 폈다.묵련은 바닥에 떨어진 먹을 닦으려 손을 내밀었다. 손목이 떨려 천 조각이 얼룩 위에서 자꾸 미끄러졌다.허도겸은 청동 표식과 출입패를 같은 종이에 싸고 장부를 덮었다.숙비의 옥반지가 차탁을 한 번 두드렸다.자녕궁 안의 물건을 밖으로 가져가겠다는 뜻을 묻는 소리였다.허도겸은 깊이 고개를 낮춘 뒤 그 꾸러미를 품에 넣었다.그는 문밖으로 나갔다.숙비는 붙잡지 않았다.문이 열린 사이 바깥의 찬 공기가 들어왔다. 월령의 뺨에 붙었던 잔머리가 가볍게 들렸다.표식과 출입패에 밴 냄새는 찬 공기보다 늦게 빠져나갔다.노은 내관이 새 군보를 들고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서른여섯 대는 멈췄사옵니다."방 안의 숨이 한꺼번에 풀렸다가, 다음 말에 다시 굳었다.군보 아래에는 부러진 화살깃 하나가 함께 묶여 있었다.대연 군이 쓰지 않는 검은 깃이었다.종이 끝에는 골짜기 쪽에서 본 불빛이 붉은 먹점 세 개로만 표시되어 있었다.월령의 손이 치맛자락 위에서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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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일곱 명패

옛길 골짜기에는 타는 곡식 냄새가 가득했다.수레 두 대가 길을 가로막은 채 불타고 있었다. 젖은 포대에서는 검은 연기만 났고, 마른 포대는 불꽃이 지붕처럼 솟았다.타닥타닥. 탁!강무진이 불붙은 수레의 끌채를 잡았다."뒤로 물러서십시오."호송병 둘이 달라붙어도 움직이지 않던 나무가 그의 어깨 아래에서 조금씩 밀렸다. 베인 손바닥에서 다시 피가 났다.기윤은 연기 속으로 몸을 낮췄다."살아 있는 사람부터!"도랑 아래에서 신음이 들렸다.뒤집힌 수레 밑에 호송병 하나가 깔려 있었다. 다리 위로 곡식 포대 세 개가 눌려 있었다.북경군 병사들이 포대를 걷어 냈다. 호송병은 눈을 뜨자마자 허리춤을 더듬었다."군패가…""여기 있다."기윤이 진흙 속에서 나무패를 찾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호송병의 손가락이 패를 감싸다 힘없이 풀렸다."심 장군은 옛길로 군량을 보내지 않습니다."말 사이로 기침이 터졌다."지난겨울 눈사태 뒤에 직접 막으셨습니다. 그런데 인이 찍혀 있어서… 우리가…"기윤은 물을 적신 천을 그의 입술에 댔다."나머지는 돌아간다."호송병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왔다.골짜기 아래에서 강무진의 목소리가 났다."여기 한 명 더 있습니다."무너진 바퀴 곁에서 어린 마부가 나왔다. 얼굴의 그을음 사이로 눈물 자국이 두 줄 나 있었다. 아이는 빈 포대 안에 몸을 말고 있었다.강무진은 아이를 한 팔로 들어 올렸다."곡식은요."아이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콜록, 콜록.""사람부터다.""혼납니다.""내가 혼난다."아이는 그 말도 믿지 못한 얼굴로 불타는 수레를 돌아보았다.해가 기울 무렵, 스물네 대 가운데 열일곱 대가 골짜기를 빠져나왔다. 일곱 대는 타거나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살아 나온 사람들은 수레 위에 누웠다. 곡식 포대 대신 젖은 담요가 몸을 덮었다.돌아오지 못한 일곱 사람은 길 한쪽에 나란히 놓였다.강무진은 허리를 굽혀 그들의 허리춤에서 나무 명패를 하나씩 풀었다.서른둘.마흔하나.열아홉.나이는 패 뒤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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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천천히

첫 군보가 자녕궁에 닿았을 때는 해가 기울어 있었다.묵련의 기록지에는 쉰세 대, 일곱 대, 열아홉이라는 숫자가 차례로 놓였다.사망자 칸에는 일곱 줄이 비어 있었다.숙비는 월령의 옥패를 기록지 위에 올려놓았다.`심월령의 청`과 `섭정왕 위지헌의 명` 사이에 패의 젖은 끈이 가로놓였다.월령은 옥패를 소매 안에 넣었다.묵련은 별실로 옮겨졌다. 동생을 찾을 때까지 자녕궁 궁녀 둘이 곁을 지키기로 했다. 감시인지 보호인지, 문이 닫히자 구별할 수 없었다.월령은 일어나려다 차탁 모서리를 짚었다.오래 접혀 있던 무릎이 바로 펴지지 않았다. 엷은 옥빛 치맛자락 아래에서 발끝이 한 번 미끄러졌다.숙비가 그 모습을 보았다."가거라."월령은 다시 예를 갖추었다."소녀 물러가겠사옵니다."자녕궁 문이 열렸다.문밖의 공기에는 말 땀과 피, 젖은 흙 냄새가 섞여 있었다.위지헌이 첫 번째 문 앞에 서 있었다.검은 장포 끝에 회암역에서 날아온 먼지가 묻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의 얼굴에는 그 길을 함께 달린 사람 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월령이 문지방을 넘자 그의 시선이 얼굴에서 손으로 내려갔다. 옥패를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식어 있었다."쉰세 대가 돌아왔다. 일곱은 돌아오지 못했다."눈가에 얇게 고였던 물기가 속눈썹 끝으로 몰렸다. 월령은 눈을 감지 않았다."이름은요.""오고 있다."위지헌이 한 걸음 다가왔다.사람들이 보는 문 앞이었다. 그의 손이 월령의 팔 가까이까지 왔다가 멎었다.젖은 잔머리 한 올이 월령의 뺨에 붙어 있었다.그것을 떼어 주고 싶은 손이 소매 아래에서 천천히 말렸다.전장에서는 한 번 뻗은 손을 거둔 적 없는 사람이었다.월령 앞에서만 닿기 전의 거리가 자꾸 길어졌다.첫걸음에서 무릎이 늦게 따라왔다.위지헌은 반걸음 앞에 섰다. 월령이 흔들리면 어깨가 닿을 거리였고, 바로 걸으면 닿지 않을 거리였다."천천히."그는 더 재촉하지 않았다.궁문 아래에 윤백이 서 있었다. 흰 천에 싼 작은 죽 그릇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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