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을 위장한 후, 복수를 시작하다: Chapter 11 - Chapter 20

23 Chapters

제11화

어젯밤 연화를 떠나보내고 왕부로 돌아오던 길에, 나는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는 왕비를 우연히 목격했다.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수상한 차림새였기에 나는 그 뒤를 쫓았고, 그녀가 낯설고 생소한 차림새의 남자와 은밀히 만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왕비가 그에게 물었다."이 독약이면 사람을 확실히 죽일 수 있는 것이냐?""걱정 마십시오. 저희 서쪽 지역의 독약은 독성이 매우 강해, 삼키기만 하면 절대로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왕비는 묵직한 돈주머니를 남자에게 던져주었다."만약 그 애가 죽지 않는다면, 네가 대신 죽어야 할 것이다.""소인의 목숨을 걸고 장담하건대, 그 독을 삼킨 자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합니다."그가 거듭 장담하자, 왕비는 그제야 흡족한 얼굴로 떠났다. 왕비가 떠난 뒤, 나는 그 남자의 뒤를 밟아 집까지 쫓아갔다.그는 독을 다루는 데는 능했으나 무공은 전혀 없었기에, 목에 단검을 겨누자 꼼짝없이 굴복했다.그는 내게 몰래 독을 쓰고 내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렸으나, 내가 멀쩡히 서 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왜? 내가 멀쩡해서 실망했느냐?"생문에 있을 때 독극물 훈련을 받았기에, 흔한 독약 따위는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얌전히 굴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 인내심이 바닥날지도 모르니까."단검을 목에 조금 더 바짝 대자, 그는 겁에 질려 두 손을 번쩍 들었다."낭자, 살려주십시오.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드릴 테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방금 그 여인이 산 약이 무엇이냐? 해독법은 있느냐?""그 손님과 비밀 유지 계약을 맺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말하면 전 죽습니다.""그 여자에게 약을 팔고도 네가 살 수 있을 것 같느냐? 처음에는 무공을 없애는 약을 찾다가, 방금 갑자기 독약으로 바꾼 것이냐?""그걸… 어찌 아십니까?""묻는 말에나 대답하거라."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말을 이었다."무공을 없애는 약은 목숨을 앗아가지 않지만, 독약이라면… 결과는 뻔하지.""게다가 너는 독에 중독된 사람은 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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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벌레가 몸에서 빠져나가자 순간 온몸이 가벼워지는 듯했으나, 이내 뼈를 찌르는 듯한 통증과 극심한 추위가 밀려왔다.온 힘을 다해 물가로 헤엄치려 했으나 의식이 점차 흐려지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벌레를 없애고 나면 마침내 자유를 얻어,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죽는 것인가 싶었다.체념하고 눈을 감으려던 찰나, 누군가 두 손으로 나를 붙잡은 뒤 온 힘을 다해 나를 물 밖으로 끌어올렸다.이어서 내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의식을 잃기 직전, 아득하면서도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그리고 누군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낯선 방 안이었고, 진한 약재 냄새가 가득했다.내가 천천히 눈을 뜨자, 시녀 차림의 한 소녀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내가 깨어난 것을 확인한 소녀는 멍하니 서 있더니, 이내 목청껏 소리쳤다."마님, 아가씨께서 깨어나셨습니다!"그 가녀린 체구에서 나오는 우렁찬 목소리에 나의 머릿속이 완전히 맑아졌다.침상에 기대어 앉아서 보니 손목의 상처는 이미 붕대로 감겨 있었고, 몸도 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심지어 배 안쪽에서는 따뜻한 기운이 조금씩 느껴졌다.나는 몸의 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급히 뛰어 들어와 내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익숙한 향기가 다시 한번 코끝을 맴돌았다.그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부인의 차림새였으나 고운 자태를 지녀, 옅은 화장만으로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그녀는 내 맥을 짚고 몸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당신은…"내가 한 마디를 내뱉는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었다.그녀의 눈, 얼굴, 그리고 몸에서 풍기는 향기까지 모든 것이 낯설지 않았다.내가 멍하니 바라보자 그녀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고였다."유주야, 나를 알아보겠느냐?"‘나를 아는 사람인가?’기억을 더듬어보았으나 떠오르지 않았다.그녀는 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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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어머니는 당시 왕부를 떠나기 위해 약으로 죽은 척했던 것이라 말씀하셨다.어머니와 화태수는 본래 소꿉친구였으나, 당시 외할아버지의 관직이 낮아 집안 차이가 너무 커서 안왕께서 두 사람의 혼인을 강하게 반대하셨다고 했다.당시 세자였던 화태수는 사랑하는 이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폭우 속에서 안왕의 서재 앞에 무릎을 꿇고 빌다가 결국 쓰러지기까지 했고, 어머니는 며칠 동안 그의 침상 곁을 지키며 간호했다.그가 깨어나 다시 안왕을 찾아가려 하자, 어머니는 그를 만류하고 직접 안왕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결과 안왕의 허락을 받아내어 혼인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혼인 후 두 사람의 금슬은 매우 좋아 천림성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낳은 뒤 몸이 많이 약해져 기력이 크게 상해 오랫동안 앓아누워 일어나지 못하셨다.처음에는 화태수 역시 매일 곁을 지키며 지극정성으로 돌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발길은 뜸해졌다.당시 변방의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그는 자원하여 도적 떼를 무찌르겠다며 떠났고, 그 길로 3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안왕께서 세상을 떠나셨을 때도 돌아오지 못해, 앓고 있던 어머니가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안왕의 장례를 도맡아 치렀다.그 뒤 도적 떼를 말끔히 무찌른 그는 군사들을 이끌고 당당히 돌아왔는데, 그의 곁에는 지금의 왕비인 맹은수가 함께 있었다.화태수는 맹은수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어머니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맹은수를 왕부로 데려왔다.맹은수는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왕부의 또 다른 안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심지어 수시로 어머니를 찾아와 거만하게 굴었고, 화태수 앞에서는 어머니의 험담을 일삼으며 어떻게든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이간질했다.왕부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고, 어머니와 화태수는 맹은수 때문에 자주 다투었다.한번은 화태수가 홧김에 혼인을 끝내겠다는 말을 내뱉었고, 상심한 어머니는 그의 말대로 혼인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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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나 주먹을 꽉 쥐었다.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닦아주고는, 나를 품에 안고 다정하게 달래주었다.어머니가 화태수와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할아버지께서는 관직에서 물러났고 가족 모두 남쪽 지역으로 이사했다.어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서신을 주고받을 때마다 좋은 소식만 전하고 걱정스러운 일은 숨겼지만, 외할아버지께서는 늘 화태수가 어머니를 구박할까 염려되여 주기적으로 천림성으로 사람을 보내 어머니의 안부를 살피게 했다.내가 태어난 후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자, 외할아버지께서는 강남(江南)에서 명성이 자자한 의원을 한 명 더 보내셨다. 그는 매번 보름 동안 어머니의 몸을 돌봐준 뒤, 외할아버지께서 보낸 사람들과 함께 다시 강남으로 돌아갔다.이후 왕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결국 숨길 수 없게 되자, 외할아버지께서 몇 번이나 어머니를 데려가려 하셨지만 어머니는 매번 거절하셨고, 내가 실종된 후에야 어머니는 마음을 완전히 접으셨다.단 한 순간도 왕부에 머물고 싶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결국 그 의원에게 간곡히 청하여 죽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약을 얻어내셨던 것이다.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화태수는 어머니를 화씨 가문의 묘지에 묻으려 했으나, 외할아버지께서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천림성으로 올라와 어머니의 관을 빼앗아 강남으로 모셔갔다.강남의 그 의원은 오랜 시간에 걸쳐 어머니의 몸을 치료해 주었고, 어머니는 그의 제자가 되어 의술을 배우며 외할머니의 성인 송씨로 성을 바꾸고 '송 낭자'라는 이름으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다.그동안 어머니는 나를 찾는 것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으셨지만 매번 허탕을 치셨고, 최근에 화태수가 잃어버린 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강남에서 한달음에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오셨다.그런데 길에서 물에 빠진 나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의원으로서 차마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나를 구하게 하셨고, 내가 바로 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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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강남을 떠나기 전, 나는 대장간에 들러 미리 주문해 두었던 날카로운 송곳 무기를 찾아왔다.생문에 있을 때 내가 즐겨 쓰던 무기였으나, 생문을 떠날 때 챙기지 못해 단검 하나만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녔었다.만약 그때 이 무기가 있었다면 맹소양과 고윤우는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터였다.우리는 천림성에 도착한 후, 어머니가 예전에 마련해 둔 작은 집으로 갔다.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왕부의 상황을 살피러 가기로 했고,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설아와 함께 가라고 하셨다."유주야, 설아는 타고난 천하장사라 네게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도울 수도 있으니 같이 가거라."문득 예전에 무슨 일이든 늘 나와 함께하려 했던 연화가 떠올랐다. 왕부에서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일만 했다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었을 텐데, 나를 따르는 바람에 모진 고생을 겪어야 했다."괜찮습니다, 어머니. 설아가 어머니 곁을 지켜주어야 저도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 실력은 어머니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누군가 내 발목을 잡을까 봐 걱정해서가 아니라,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까 봐 두려웠다.거듭된 설득 끝에 어머니는 마침내 내가 혼자 나가는 것을 허락하셨다.왕부의 경비는 예전보다 훨씬 허술해져 있었기에, 나는 손쉽게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안으로 들어가 길을 걷다 보니 하인들과 마당을 지키는 시위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 있고, 정원의 화초들도 일부 시들어 죽어 있는 것이 보였다.맹소양이 집안 살림을 맡은 뒤로 왕부는 이 지경에 이르렀고, 가슴 한구석에서 문득 기묘한 느낌이 치밀어 올랐다.화태수의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숨을 죽인 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창문 틈으로 들여다보니 화태수는 탁자에 엎드려 있었고, 그의 발치에는 술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강남에 있던 두 달 동안 설아가 전해준 소식에 따르면 화태수가 매일 술만 마신다고 했는데, 나는 그저 가식적으로 며칠 슬퍼하는 척하는 줄로만 알았다.그런데 실제로 저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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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화태수는 맹소양의 얼굴을 바라보며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소양아, 너도 이 아비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느냐?"맹소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당연히 아버지의 잘못이지요. 자식들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하실 거였다면, 애초에 화유주를 데려오지 마셨어야 했습니다. 화유주가 예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십니까?""가족이 생겼다는 헛된 희망을 심어주고는, 사랑받고 싶어 하던 간절한 바람을 친히 짓밟으셨지요. 화유주에게 떳떳한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겨우 스무 살도 안 된 아이가 왜 집안싸움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맹소양은 이를 악물며 따져 물었고, 탁자 위에 놓인 주먹을 꽉 쥐기까지 했다.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맹소양이 대체 무슨 연극을 하고 있는 거지?’‘나와 사사건건 다퉜었는데, 지금은 내 편을 들어주며 나서다니.’그동안 그녀에게서 느꼈던 여러 가지 이상한 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한 가지 추측이 서서히 모습을 갖춰 갔다.맹소양은 의자를 걷어차고 문을 쾅 닫으며 나가버렸고, 그녀가 멀어지자 나 역시 조용히 자리를 떴다.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예전에 범이 일행이 머물던 폐옥에 도착해 있었다.그날 화재 이후 이곳을 수리하는 사람이 없어, 결국 폐허로 변해 버렸다.당시 나는 왕부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기에 범이 일행의 시신이 수습되었는지, 또 어디에 묻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묵묵히 문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문득 범이 일행이 화재로 죽은 것이 아니라 그전에 이미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만약 그들의 시신이 밖으로 나왔다면, 그 많은 인명 피해 때문에 관아에서 반드시 수사에 나섰을 터였다.하지만 나는 폐옥에서 열여섯 명이 죽은 사건에 대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당시 화재 수습이 허술하게 끝났거나, 누군가 이 일을 의도적으로 묻어버렸을 가능성이 컸다.순간 나는 고윤우를 떠올렸고,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발길을 돌려 재상부로 향했다.왕부와 달리 재상부는 불이 훤히 켜져 있었고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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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나는 재상부 밖의 골목길에서 저택을 지키는 시위가 두 번이나 순찰을 돌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렸고, 그제야 고윤우가 몹시 초라한 모습으로 개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그는 달아나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들키지 않았는지 살폈고, 그러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와 정면으로 부딪쳤다.그는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었다."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것이냐?!"나는 송곳을 쥔 채 그를 가로막고 섰다. 손목을 살짝 움직이자 송곳은 달빛 아래 차가운 빛을 반짝였다."오라버니, 오랜만입니다."내 얼굴을 확인한 고윤우는 비명을 지르며 나를 가리켰고, 한참이 지나서야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너, 너 죽지 않은 것이냐?"나는 차갑게 웃었다."오라버니도 살아 있는데 제가 어찌 죽겠습니까?"그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내가 한발 앞서 그의 다리를 찔렀고 그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나는 그를 끌고 그 폐옥으로 향했다.차가운 바람이 윙윙거리며 귓가를 스쳐 지나갔고, 내가 그에게 물었다."오라버니, 이 바람 속의 울음소리와 분노의 외침이 들리십니까?""그들은 모두 오라버니의 목숨을 거두러 온 사람들입니다."고윤우는 겁에 질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날 겁주지 마라! 난 무섭지 않다. 이 세상에 귀신 따위가 어디 있다고."나는 쪼그리고 앉아 송곳의 끝으로 그의 목덜미를 훑어 내렸다."맞지요. 귀신이 있었다면 오라버니는 진작에 죽었을 겁니다.""화유주, 잘난 척하지 말거라. 넌 날 죽이지 못한다. 난 재상의 아들이고, 넌 그저 신분을 잃은 유령일 뿐이다! 날 죽이면 너 역시 무사히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나는 날카로운 송곳을 그의 어깨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도망칠 수 있을지는 오라버니를 죽이고 나서 생각할 일이지요."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떨었다."유주야, 내가 잘못했다.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할 테니 제발 살려주거라."그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아까와는 완전히 딴사람 같았다."폐옥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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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이튿날, 거리의 백성들은 그 폐옥 앞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다며, 그 시신이 다름 아닌 재상부의 도련님 고윤우라고 수군거렸다.고정훈은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해 버렸다.황제 역시 이 소식을 듣고 크게 화가 나 사람을 보내 조사하게 했다.천림성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낯선 얼굴들은 일일이 검문을 받아야 했으며,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들은 모조리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백성들은 혹여나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힐까 봐 전전긍긍했다.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았다."유주야, 이곳까지 수사망이 좁혀오기 전에 어서 떠나거라. 왕부는 나중에 복수해도 늦지 않다.""어머니, 걱정 마십시오. 이따가 왕부로 모시겠습니다. 그곳은 함부로 수색하지 못할 테니, 마침 잘됐지요. 가서 옛날에 진 빚을 청산해야겠습니다.""유주야, 왕부는 정말 안전한 것이냐?""그럼요.""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너는 지금 바로 왕부로 가거라. 나는 너와 함께 가지 않고 황궁으로 갈 것이다."어머니는 내게 서신 한 통을 건네주셨다.예전에는 어머니의 친구였고, 지금은 황제의 후궁이 된 여비 고선영이 보낸 서신이었다.어머니가 약으로 죽은 척한 사실을 천림성에서 아는 사람은 여비뿐이었고, 당시 외할아버지를 불러 어머니의 시신을 수습하게 한 것도 그녀였다.서신에는 자신이 병에 걸렸는데 강남 쪽에 유명한 의원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어머니에게 사람을 수소문해 천림성으로 불러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유주야, 여비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란다. 그녀를 모른 척할 수 없으니, 왕부가 안전하다면 너는 그곳에 가 있거라. 일을 마치고 내가 어떻게든 연락하마."내가 함께 가겠다고 했으나 어머니는 단호히 거절하셨고, 심지어 어머니라는 신분까지 내세우며 나를 말렸다.나는 하는 수 없이 동의하는 척한 뒤, 몰래 어머니의 뒤를 밟아 황궁으로 들어갔다.살수로서 사람을 죽이는 기술 외에도 목숨을 건져 달아나는 기술도 반드시 익혀야 했다.생문에서 늘 나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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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맹소양이 화려한 옷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한 채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낮에 고윤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네가 살아 있을 거라 짐작했다. 분명 복수하러 돌아온 것이겠지. 수사망을 피해 왕부로 와서 숨을 거라 생각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와봤는데, 정말 내 예상이 맞았구나."그녀는 무척 기뻐 보였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나는 그녀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이곳의 탁자와 의자는 미리 깨끗하게 닦여 있었고, 탁자 위에는 찻잔까지 준비되어 있었다.맹소양은 차를 한 잔 따라 내게 건넸다.나는 찻잔을 묵묵히 내려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맹소양은 피식 웃었다."왜? 내가 독이라도 탔을까 봐 걱정되느냐?"말을 마친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나는 손을 뻗어 찻잔을 들어 올린 뒤, 손가락으로 찻잔의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리며 나지막이 말했다."맹소양, 어쩌면 난 널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구나."나는 고개를 들어 찻잔의 물을 그녀의 얼굴에 뿌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송곳을 뽑아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내리 그었다.맹소양은 손을 들어 물을 막아냈고, 넓은 소맷자락이 찢겨 나갔다.그녀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는데, 이번에는 여인의 목소리가 아닌 남자의 목소리였다."결국 들키고 말았구나."맹소양은 얼굴을 가로막던 손을 내렸다. 얼굴에 상처가 났지만 피는 흐르지 않았고, 자세히 보니 상처 주변이 살짝 말려 올라가 있었다."사람 가죽 가면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지난번 것도 네가 찢어놓는 바람에 내 고운 피부만 상했다. 십삼아, 정말 너무하구나."그는 얼굴의 상처를 만지며 내게 투정을 부렸다.십삼은 내가 생문에 있을 때 불리던 이름이었다.그리고 눈앞의 이 남자는 나의 옛 동료였던 천면서생이었다.처음 그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내가 가위로 자신의 얼굴을 그었다며 모함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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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내 말을 들은 천면서생은 갑자기 다급해졌다."십삼아,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6년이나 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 떠날 수 있느냐? 널 곁에 두고 싶어 한 게 잘못이라도 된단 말이냐? 넌 우리 중 가장 먼저 2등 살수로 승급한 타고난 살수인데, 왜 이런 빌어먹을 왕부에 갇혀 답답한 아가씨 노릇이나 하려는 것이냐?""첫째, 우린 대장님이 맺어준 동료였을 뿐,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둘째, 살수라는 직업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 아니고, 타고난 살수인 사람은 없다. 그동안 우리 손에 죽어간 무고한 목숨이 얼마나 많았는지 잊었느냐?""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삶을 살지는 내가 결정하지, 넌 간섭할 권리가 없다."내가 그와 확실하게 선을 긋자, 그는 표정이 바뀌더니 화를 냈다."좋은 말로 할 때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손을 쓸 수밖에 없겠구나."그는 허리춤에서 피리를 꺼내며 나와 거리를 벌렸다.‘음악을 이용해 공격하려는 건가? 예전에는 저런 걸 배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내가 의아해하는 사이, 그가 말을 이었다."대장님의 계획을 망치게 둘 수는 없으니, 미안하지만 조금만 고생 좀 하거라."그가 피리를 불자, 몽환적이고 애절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천면서생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네 몸속의 벌레는 왜 반응하지 않는 것이냐?"내 몸속의 벌레를 자극해 나를 제압하려 한 모양이었다.나는 미소를 지었다."아쉽게 되었구나. 내 몸속의 벌레는 이미 제거했다. 마침 피리 연주도 끝났으니, 이제 널 저세상으로 보내주마."천면서생은 내 상대가 되지 못했고, 송곳으로 그의 목덜미를 겨누었을 때도 그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십삼아, 왜 날 죽이려 하는 것이냐?""그 폐옥의 열여섯 명을 죽인 게 너냐?""내가 그랬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느냐? 우리가 그동안 죽인 사람이 한둘도 아닌데.""그들은 내가 처음으로 선의를 베풀어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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