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안에는 귀한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 끓인 팔진탕 한 그릇이 있었는데, 기혈과 원기를 크게 보충해 주는 훌륭한 보양식이었다.“이 팔진탕은 소자가 부엌에 특별히 일러 달이게 한 것이옵니다. 기혈을 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니 맛보시옵소서.” 태자는 공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특유의 존경과 흠모가 담긴 말투로 말했다. 황제를 위하는 그의 진심이 묻어났다.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태자가 이곳을 찾은 진짜 이유는 연정 때문이라는 것을.황제는 팔진탕을 바라보다가 그릇을 들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숨에 마셨다. 매콤하고 씁쓸한 탕의 향이 순식간에 퍼지며, 연정이 남긴 옅은 피비린내와 소녀 특유의 맑고 달콤한 향을 밀어냈다.“네 정성이 갸륵하구나.”장내가 다시 한번 조용해졌다. 태자는 의아해하며 연정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보이지 않고 신하로서의 본분만을 지켰다. 태자는 다시 황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바마마, 삼공주는 어디 있사옵니까?”연정도 그 말에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가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했다.“옆의 난각에 있으니, 가서 살펴보아라.” 황제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답했다.연정과 태자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연정은 황제가 정말로 삼공주를 곁에 남겨두었을 줄은 몰랐다. 삼공주는 결코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다. 상서방에서 함께 공부할 때도 담을 넘고 나무에 오르며, 몰래 엿듣거나 새알을 훔치는 등 온갖 짓을 다 했다. 난각에서 얌전히 공부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않았다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녀와 황제가 이곳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삼공주는 겨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심지어 어서방 안쪽으로 바로 통하는 작은 문까지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연정은 조금 불편해졌다. 연정과 삼공주는 어느덧 십 년을 알고 지낸 진정한 벗이었다. 연정은 이런 추잡한 일로 천진난만한 삼공주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황제의 말에 태자는 미간을 찌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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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어서방 안은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해,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듯했다.평소 가장 무례하고 시끄러운 삼공주 복경조차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시선을 연정에게 고정했다.복경은 열네 살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부터 은밀히 배필감을 물색했고, 남녀가 잠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상궁도 여러 차례 가르침을 주었다. 그래서 복경공주는 연정의 몸에 남은 흔적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연정은 복경공주의 시선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켕겼다. 이번에는 확실히 그녀가 복경공주에게 미안한 짓을 했지만, 싸움이란 원래 잔인하고 더러운 법이었다. 그녀에게는 돌아갈 길이 없었다. 연정은 훗날 복경공주에게 보상하리라 다짐했다.그때 복경공주가 몸을 굽혀 겉옷을 주워 연정에게 걸쳐주고는,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가려주며 옷매무새를 정리할 공간을 마련해주었다.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태자는 여전히 황제를 바라보았고, 황제의 시선도 태자에게 머물러 있었다. 태자는 해명을 기다렸다. 하지만 상대는 누구에게도 해명하지 않는 황제였다. 게다가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은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무시하거나, 의아해하거나, 화를 내면 그만이었다.“가을철이라 반진이 또 도진 모양이구나. 몸조심하렴. 내 나중에 태의를 하나 보내 진찰하게 하마.”복경공주가 먼저 침묵을 깨고 웃는 얼굴로 연정을 바라보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했다.연정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복경공주의 미소 뒤에는 불쾌함이 서려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를 감싸주고 있었다.“예, 공주마마께 감사드리옵니다.” 연정이 살짝 무릎을 굽혀 감사를 표하고, 고개를 숙여 황제와 태자에게 예를 갖췄다. 답답하게 잠긴 그녀의 목소리에는 알아채기 힘든 흐느낌이 배어 있었다.“폐하, 태자전하, 신녀가 결례를 범하였사옵니다. 다시는 궁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옵니다.”두 사내의 시선이 일제히 연정에게 향했다. 황제는 언제나처럼 평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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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연정은 관찰하듯 태자의 안색을 살폈다.태자는 연정을 무척 좋아했지만, 그 마음을 내보이지 않고 늘 신중하게 감췄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날을 제외하면 직접 연정을 향해 마음을 표현한 적도 없었다.그런데 이번에는, 태자가 거듭해서 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곧 잃게 되자 뒤늦게 아쉬워하는 천박한 집착이거나,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었다.“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황제가 연정을 바라보며 물었고, 연정은 감정을 감추고 답했다. “신녀는 스스로 태자전하를 곁에서 보필할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사옵니다.”태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연정을 바라보았다. 황제가 먼저 단호하게 말했다.“태자, 후궁과 동궁 모두 정절을 잃은 여인은 들일 수 없다. 네가 계속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면, 태부 가문도 그 여인도 모두 화를 입게 될 것이다.”이 말은 극히 준엄하고도 싸늘했다. 그녀를 정절을 잃은 여인으로 못 박아버린 것이다.이 낙인이 밖으로 새지 않으면 연정이 잃는 것은 태자의 측비 자리뿐이었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면 경성의 풍문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었다.이는 경고이자, 위협이었다.만약 태자가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그가 잃게 되는 것은 태자의 자리와 외척의 지지뿐만이 아니었다. 연정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연정은 다시 한번 황제에게 이용당하는 도구가 되었다.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당하니 괘씸했다.복경공주는 넋이 나갔다. 일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곳에 자신이 낄 자리가 없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구나.’태자는 낯빛이 무겁게 가라앉은 채, 오래도록 침묵했다.그는 깊고 애틋한 눈빛으로 연정을 한 번 바라보았지만, 연정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예, 소자, 명을 받들겠사옵니다.”쉬어 갈라진 태자의 대답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비로소 안도했다.오직 연정만이 불만스러웠다.오늘 일어난 일은 실로 너무나 기이했다.‘이렇게 매서운 말 한마디로 태자를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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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한 시진 후, 연정은 글씨를 연습하고 있었다. 곁에는 조금 전 복경공주가 사람을 시켜 보내온 서신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짧은 한 줄이 적혀 있었다.“오늘 일은 잠시 묻어두겠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서신으로 알려라.”복경공주는 확실히 호탕한 사람이었다. 분명 불쾌했음에도 연정이 곤란해질 때 돕겠다고 손을 내밀었다.부득이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연정은 복경공주를 이 일에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이다.곧이어 새의 지저귐이 들렸고, 복실이가 남월루 안으로 날아 들어와 연정의 책상에 앉았다. “태자를 진주로 보내 재해를 구제하게 할 것이고, 공부상서 민고용과 호부시랑 구홍희가 보좌할 것이며, 사흘 후에 출발한다더라.”“성지 초안을 잡는 걸 내 눈으로 봤고 하달됐으니 내일이면 조정에 공표될 거야.”“그리고 이번 재해 구제에는 겉으로 삼십만 냥을 지급하지만, 은밀히 칠십만 냥을 더 내어 전부 태자가 주관하게 될 거라고 하더라.”연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진주는 강줄기에 인접한 외지고 낮은 땅이었다. 큰비가 내릴 때 물길을 제때 다스리지 못하면 어김없이 홍수가 났다.사오 년에 한 번씩은 있는 일이었다.조정은 해마다 재해가 나면 세금을 면제하고 부역을 줄였으며, 십만 냥 이내의 자금을 보태 재건을 도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지역을 중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순간 무언가가 연정의 뇌리를 스쳤고, 그제야 오늘 벌어진 모든 일이 명확해졌다.‘진태우, 진소림, 참으로 대단한 부자구나.’둘이서 짜고 그녀를 백만 냥에 팔아넘긴 것이다.그녀는 오히려 고마워야 할 판이었다. 그녀의 순결이 백만 냥의 값어치나 할 줄이야.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기녀보다도 값이 더 나갔다.오늘 이전까지는, 태자가 어쩌면 그녀에게 진심이었기에 갖은 수를 써가며 황제와 다투었던 것인지도 몰랐다.옷이 흘러내리며 드러난 정절을 잃은 흔적, 황제와 함께 있던 모습을 보았다는 복경공주의 증언, 그리고 그날 밤의 음탕한 소리까지.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 태자가 뒤늦게 진실을 알아차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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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내려놓지 못했다.연정은 복경공주가 보내온 서신을 집어 들고 천천히 어루만졌다.그녀를 기녀 취급하며 헐값에 넘겨버렸으니, 자신도 그들의 방식대로 되갚아줄 작정이었다.*동궁의 곁채, 의란전.민서영이 아침 일찍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태자를 발견하고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중 나왔다.“신첩, 태자전하를 뵈옵니다.” 민서영이 살짝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고, 그녀의 몸짓은 나긋나긋하면서 아름다웠다.그녀는 연정만큼 화사하고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우아하고 고아한 풍취가 있었다. 늘 옅은 빛깔의 의복만 입어 속세를 벗어난 듯한 은은한 매력을 풍겼다.태보의 서녀 김화월과 공부상서의 적녀 민서영이 태자의 측비가 되었다는 소식은 진작에 공표되어 황실 족보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다만 신혼을 맞은 태자비 도명주만이 총애를 받았을 뿐, 두 사람은 아직 승은을 입지 못한 상태였다. “날씨도 더운데 어찌 여기서 기다렸소. 더위를 조심하시오.” 태자가 온화하고 다정한 어조로 말하며, 손수 손을 내밀었다.그 모습에 민서영 입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수줍은 기색을 머금은 채 손을 뻗어 태자의 손 위에 얹었다.“신첩은 전하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기쁘옵니다. 더위 따위는 두렵지 않사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서영이 그 힘을 빌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태자가 힘을 주어 그녀를 끌어당겼다.발을 헛디딘 민서영은 태자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겼고, 그 바람에 얼굴이 붉게 타올라 감히 태자를 바라보지 못했다. 주위의 궁인들은 이 광경에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물러나 각자 맡은 일을 했고, 넓디넓은 곁채는 온전히 두 사람의 것이 되었다.“그대는 참으로 사리가 밝군.”태자의 목소리가 민서영의 귓가에 울렸다.민서영이 나직이 말했다. “부친께서 모두 전하의 뜻에 따르라고 신첩에게 당부하셨사옵니다. 이번에 측비가 되지 못했더라면, 전하의 양제로라도 남았을 것이옵니다.”민서영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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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이틀 후, 수옥재에서 연정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힘겹게 목소리를 짜내며 최근 벌어진 일을 낱낱이 털어놓았다.다만 자신이 계략을 꾸민 부분은 숨겼다.그 결과 이야기 속의 연정은 완전한 피해자가 되었다.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녀도 정치적 다툼의 노리개로 비칠 뿐이었다.설령 그녀와 복경공주가 자매처럼 친밀한 사이라 할지라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이는 서로의 정을 지키는 방편이자, 동시에 복경공주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던 복경공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화가 난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너에게 그토록 더러운 수단을 쓴 사람이 누구란 말이냐! 내 어머니께 이 사실을 고하고 조사하게 하겠다!”복경공주가 뛰쳐나가려 하자, 연정이 앞을 막아섰다.복경공주의 어머니는 현 황제의 가비로, 형부상서 가문 출신이었다. 후작이었던 형부상서는 단용후로 봉해졌으며, 삼대에 걸쳐 조정을 섬긴 원로대신으로 강직하고 공정하기로 유명했다.가비는 입궁할 당시 빈의 지위에 있었으나, 쌍둥이 남매를 낳은 후 단숨에 비로 봉해져, 육궁을 다스리는 권한까지 갖게 되었다.“황실의 체면과 태자전하의 명예가 걸린 일인 만큼 공주마마를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사옵니다. 가비마마께서는 귀하신 신분에 아드님까지 두고 계시온데, 괜히 이 일에 연루되게 할 수 없사옵니다. 여러 억측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만에 하나 배후의 계략을 꾸민 이로 오해라도 받으신다면, 그야말로 득보다 실이 클 것이옵니다.”“그리고 진실은 저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사옵니다.”연정이 진지한 표정으로 복경공주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성을 되찾은 복경공주는 연정의 뜻을 이해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연정이 그 일에 연루되는 한,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너의 인생이 망가질 것이다.” 복경공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연정은 미소를 지으며 복경공주의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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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저는 평생 움츠리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게 남은 길은 오직 입궁뿐이옵니다.”방 안에 쥐 죽은 듯한 고요함이 찾아왔다.복경공주는 힘이 빠진 듯, 천천히 상석에 주저앉으며 연정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복잡한 심경이 가득했다.‘이제는 도저히 모르는 척할 수 없게 되었구나. 연정은 기어이 입궁하려는 모양이구나.’ 일단 입궁하게 되면, 연정의 가문과 미모, 재주가 문제가 될 것이었다. 연정이 황실 사람들과 부딪혀 자신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까 봐 복경공주는 몹시 불안했다. 그녀는 연정을 찬찬히 뜯어보았다.연정은 여전히 곱고 아름다웠다. 조금의 공격성도 없이 새하얗게 빛나는 모습에서는 온화한 기품이 흘러, 마치 잔잔하게 흐르는 세월 같았다.“진정으로 결심했다면, 그리하려무나.”후궁이라 해서 암투와 술수만 난무하는 것은 아니었다.“큰오라버니와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둘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아바마마께서는 너를 더 냉대하실 것이니.”“그리되면 나도 너를 도와줄 수가 없다.”복경공주의 당부가 끝나자, 방 안에 흐르던 기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연정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돌덩이가 비로소 내려갔다. 입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예.”*연정이 막 수옥재를 나섰을 때였다.복실이가 처마 위 유리기와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다,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태자가 방금 도명주와 함께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한 후, 어화원으로 향했어.”이것이야말로, 연정이 오늘 입궁한 진짜 목적이었다.연정의 얼굴에 걸려 있던 화사한 미소가 사라지고, 눈빛은 아득하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어화원으로 걸음을 옮겼다.가만히 앉아 당하지도, 태자와 거리를 두지도 않을 작정이었다.태자는 그녀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연정이 어화원에 도착했을 때, 태자와 도명주는 천리 연못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전하, 진주는 산이 높고 길이 먼 곳인데, 어찌하여 어마마마께서 보내신 호위를 받지 않으셨사옵니까?” 도명주는 태자 곁에서 걸으며,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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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갑작스러운 사고에 도명주가 넋을 잃고 굳어버린 사이, 태자는 이미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천리 연못으로 뛰어들었다.“전하!”도명주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앞으로 나아가 살펴보고 싶었지만, 발목 통증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초조함에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게 아무도 없느냐! 어서 오너라!” 도명주가 목청껏 사람들을 불렀다.태자와 단둘이 있기 위해 궁인을 모두 물렸던 것이 이토록 후회될 수가 없었다.궁인만 물리지 않았어도, 태자가 직접 물에 뛰어들어 연정을 구하는 일까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빌어먹을! 어디에나 소연정이 있구나!’연못에 빠진 연정은 처음 몇 번 버둥거리다가, 이내 기절한 척 연못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그녀가 수영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없었다.태자가 그녀를 구하러 올 것은 뻔한 일이었다. 애초에 태자를 자극하려고 꾸민 일이었으니까. 태자는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동시에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도 남아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그는 반드시 그녀를 구하러 올 것이었다.설령 태자가 정말로 모질게 그녀를 모르는 척한다 해도, 은밀히 숨어 있던 지아가 그녀가 죽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었다.어느 쪽이든 그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태자의 억센 두 팔이 연정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는 연정을 안은 채 물가로 헤엄쳐 가 그녀를 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연정은 오늘 일부러 얇은 매미 날개 같은 천잠사 치마저고리를 골라 입었다. 청량한 느낌과 함께 신선처럼 가벼운 자태를 뽐내는, 천금을 주어도 구하기 힘든 귀한 옷감이었다.다만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물과 불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것이었다.지금 물에 젖어 훼손된 그녀의 천잠사 치마저고리는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어, 숨겨진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묘한 유혹을 자아냈다.미간을 찌푸린 태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황급히 자기 겉옷을 벗어 연정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명주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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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태자는 연정을 품에 꽉 끌어안고, 끊임없이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소녀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걷잡을 수 없이 그의 코끝으로 파고들어,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였다.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연정은 곁눈질로 멀지 않은 석가산 위의 참새를 바라보았다. 복실이었다.복실이가 말했다. “지아가 암위 수장 암야를 찾아갔어.”연정의 눈에 웃음기가 스쳤으나, 이내 재빨리 지워졌다.‘나를 감시하겠다며? 이 정도면 지아가 헛걸음한 것도 아닐 테고.’*반 시진 후, 황제가 대신들과의 접견을 마치자, 암야가 은밀한 곳에서 걸어 나와 한쪽 무릎을 꿇고 지아가 보고한 내용을 낱낱이 고했다. “태자전하께서 사정을 아는 궁인들을 모두 태자 명의의 황장(皇莊)으로 보내셨사옵니다. 회유와 위협을 동시에 사용하여 입단속을 하셨사옵니다.”황제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침착함을 유지했다.다만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이를 악무느라 뺨의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한참 후, 황제가 명했다.“연정을 은밀히 어서방으로 데려오거라.”“예, 소신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암야가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방 안에는 황제 혼자 남았다.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곁에 있던 붓을 집어 들어 다시 상소를 검토하기 시작했으나, 붓을 쥔 손에 비정상적으로 힘이 들어갔다.뚝! 붓대가 갑자기 부러지며 황제의 손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황제는 갑작스레 분노하며 붓을 내던졌고, 탁자 위의 상소들이 한꺼번에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몹시 어수선했다.“폐하, 들어가 보아도 되겠사옵니까?”밖에서 소리를 들은 상덕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으로 조심스레 물었다.“꺼져라.”싸늘한 호통이었다.“어서방 안팎의 사람들을 모두 물려라.”“예! 소인,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상덕이 황급히 물러났다.곧 어서방 반경 일 리 내에는 황제 혼자 남았다.그는 용상에 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귓가에는 여전히 암야가 보고한 말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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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연정은 어서방으로 옮겨졌다. 황제의 손에 난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렀다. 그는 핏방울이 청석판 위에 떨어져 붉은 매화처럼 번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폐하, 소저를 모셔왔사옵니다.” 암야가 한쪽 무릎을 꿇고 보고했고, 지아가 정신을 잃은 연정을 안고 들어와 바닥에 내려놓았다.두 암위는 황급히 자리를 떴고, 방 안에는 황제와 연정 둘만 남았다. 황제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에 든 용봉 문양의 옥패를 조용히 어루만졌다. 그 동작은 부드럽고 애틋했다.피가 용봉 문양의 옥패를 물들여 본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도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이것은 황제와 선황후 도완아가 나눈 정표였다.도완아가 세상을 떠난 후, 황제는 어서방에 몰래 간직해두다가 이따금 꺼내어 보며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만약, 완아가 아직 살아있다면,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랄까?’“음…” 연정이 앓는 소리를 내며 깨어나려 하자, 황제의 깊은 사색도 끊겼다.그는 용봉 문양의 옥패를 다시 비단 상자에 넣고, 고개를 들어 연정을 바라보았다.순간, 그의 주먹이 꽉 쥐어졌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연정은 여전히 태자의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세상 사람들이 둘이 간통을 한 것을 모르기라도 할까 봐 이리 티를 내는 것인가?’어느새 눈을 뜬 연정은 주위를 둘러보며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황제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났다.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그 사실을 깨달은 황제는 몹시 불쾌해졌다.그는 스스로 이미 연정에게 각별히 관대하게 대해왔다고 여기고 있었다. 다른 이였다면 진작 죽었을 텐데도, 그녀는 오히려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옷을 벗어라.”싸늘한 목소리로 곧장 명령했다.연정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으나, 옷을 벗기는커녕 오히려 겉옷을 더 여몄다.황제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서늘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짐이 직접 나서게 만들지 마라.”“예,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막 깨어난 그녀의 목소리는 나른하고 부드러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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