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재현이 없는 낮 시간, 나는 오피스텔 거실 한복판에 주저앉아 먼지 쌓인 조향 키트를 꺼냈다. 대학 시절 교양 수업 때 호기심으로 샀던 그 작은 병들. 사회가 나를 부정하고, 소영이 나를 외면할 때 오직 이 병들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처음으로 섞어본 향은 '비'였다. 창밖으로 내리는 우울한 진눈깨비 냄새를 재현하고 싶었다. 시더우드 오일 몇 방울에 흙내음이 나는 패출리를 섞었다. 코끝을 찌르는 그 축축하고 서늘한 향기를 맡는 순간, 나는 3년 만에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최 부장의 호통 소리도, 불합격 통보 메일도, 형의 시선도 닿지 않는 나만의 방어막이 형성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향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형의 눈치를 보느라 향이 강한 베이스 노트들은 베란다 창틀 뒤에 숨겨두고, 재현이 잠든 새벽에만 몰래 꺼내 시향지에 묻혔다.형은 가끔 집안에서 나는 기묘한 냄새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야, 너 요새 이상한 냄새 안 나냐? 무슨 숲속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지하실 냄새 같기도 하고." 나는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형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낙오된 자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낸 마지막 생존의 향기였으니까.하지만 소영에게 그 모습은 최후의 타락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통해 내 마지막 비상구마저 폐쇄하려 했다. "오빠, 정신 차려. 이게 돈이 돼? 이 냄새 나는 병들 가지고 놀면 누가 돈을 줘?"그날, 좁은 나의 방에서 수화기 넘어로 들리는 그녀의 이별 통보를 들었다. 8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이별은 단 3분 만에 통화로 끝났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영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칼날에 베이는 순간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듣고 있어? 우리 여기까지 하자고.”그 짧은 문장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을 때,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때 내가 느꼈던 그 감정—그건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8년 동
最後更新 : 2026-07-10 閱讀更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