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첫 나들이는 물목 때문이라는 명분을 달고 나섰다.겨울 채비에 쓸 비단과 약재를 왕부 사람 손에만 맡길 수 없다 하니, 상엄도 말리지 못했다. 법도를 아는 왕비가 살림을 챙기겠다는데 말릴 법도가 없었던 것이다. 가마가 문루를 나설 때 담장 안쪽에서 하인들이 목을 뺐다. 왕비의 첫 나들이가 어찌 되는지, 왕부의 눈들이 죄 등 뒤에 얹혀 있었다.가마 곁에는 시종 둘이 붙었다. 경성에서부터 따라온 그녀의 사람들이었다. 하나는 입이 쉴 새 없는 앵무 같은 계집으로, 저자 어귀에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소문을 세 자루쯤 주워 담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종일 말이 없는 키 큰 계집으로, 눈만은 지나는 사람들의 손과 허리춤을 훑고 있었다. 떠드는 입과 지키는 눈. 온보요가 남쪽에서 데려온 것은 손발이 아니라 귀와 칼이었다.저자는 가마를 알아보고 술렁였다. 길을 비키는 등들 사이로 수군거림이 낮게 흘렀다. 세작이라더라, 경성의 눈이라더라 하는 소리는 없었다. 고우시더라, 젊으시더라, 왕야께서 푹 빠지셨다더라. 소문은 이미 저자에 먼저 와 있었다. 서신보다 빠른 것이 소문이었다."마마, 저기예요. 새로 연 남쪽 전이래요."앵무가 재잘거리며 가리킨 곳에, 아직 현판의 옻칠도 마르지 않은 전포 하나가 있었다."소인이 오다 들었는데요, 동문 우물가에서는 왕야께서 상사병이 나셨다 하고요, 서문 방앗간에서는 마마께서 선녀시라던데요. 소인이 보기엔 둘 다 참말······."키 큰 시종이 앵무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앵무는 입을 다물었다가, 세 걸음 만에 도로 열었다.전 안은 남쪽 냄새가 났다. 말린 귤피와 차, 물들인 비단, 소금기 밴 새끼줄 냄새. 남쪽을 통째로 말려 실어 온 것 같은 냄새였다. 온보요는 잠깐, 사는 일처럼 그 냄새를 맡았다. 늙은 행수가 허리를 깊이 굽혔다. 처음 보는 낯이었다. 처음 보는 낯이어야 했다."왕비마마께서 몸소 걸음하시니 소인, 몸 둘 바를······.""남쪽 차가 있다 들었네.""예, 예. 마침 올해 첫물이 닿았습니다."행수가
Dernière mise à jour : 2026-07-2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