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제 12화9.늦은 밤—수양대군의 처소에는 희미한 촛불만 흔들리고 있었다.“전하께서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시는군요.”조용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수양대군은 놀라지 않았다.그저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자네 생각은 어떠한가.”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희미하게 웃었다.“중전이 변수가 되었습니다.”“허나…”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가장 위험한 쪽은,오히려 전하이십니다.”“전하라…”수양대군이 희미하게 웃었다.“그럴지도 모르겠군.”잠시 잔을 내려다보던 그의 눈빛이천천히 가라앉았다.“오늘 보니—”낮고 느린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마치 어미 잃은 새끼 범이처음으로 젖을 떼고 사냥을 배우는 듯하더군.”짧은 침묵.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사내가말없이 서찰 한 장을 내밀었다.수양대군은 천천히 그것을 받아들었다.“무엇이지.”사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아무래도… 전하의 뒤에는김종서 대감이 계신 듯합니다.”순간—수양대군의 표정이 아주 잠깐 싸늘하게 굳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이내 다시 옅은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역시 그런 것인가.”그의 손끝이 서찰 위를 천천히 두드렸다.“그렇다면…”수양대군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지금 전하의 곁에는중전에 김종서까지 붙어 있다는 뜻이군.”말을 마친 수양대군은손에 들고 있던 서찰을 촛불 위에 천천히 가져갔다.종이가 타들어 가는 냄새가조용히 방 안을 메웠다.불길 끝까지 서찰을 바라보던 수양대군이이내 시선을 돌려 사내를 바라보았다.“한명회.”처음으로 이름이 불렸다.수양대군의 눈빛이 조용히 가라앉았다.“자네… 내 책사가 되고 싶다 하지 않았는가.”“예, 대군마마.”한명회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였다.수양대군은 희미하게 웃었다.“그렇다면 책사답게—”그의 손끝이 천천히 책상을 두드렸다.“김종서와 전하를 갈라놓을 묘책을 내보게.”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리고—한명회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김종서만 떼어놓으실 생각이십니까?”순간,수양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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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11화 왕의 숨겨진 선택소하의 몸 상태에 조금씩 차도가 보이기 시작하자,지우는 그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그런데—아직 이른 아침이었다.갑작스러운 발소리와 함께중궁전 밖이 술렁이기 시작했다.곧이어 금군들이 처소 주변을 빈틈없이 에워쌌다.지우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잠시 후,한 내관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와 왕명을 전했다.“전하의 명이옵니다.”“중전마마께서는 편전 앞에서 석고대죄를 하여궁의 질서를 어지럽히셨으므로—”내관이 잠시 숨을 골랐다.“당분간 중궁전에 유폐되시어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실 수 없사옵니다.”순간—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지우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지금.”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유폐라 했느냐?”“예 그러니 중전께서는 지금 이 시각부터는이곳 외에는 나갈실 수 없습니다.”내관의 대답을 들은 지우는중궁전 밖을 에워싼 금군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싸늘한 긴장감이 처소 안을 짓눌렀다.잠시 침묵하던 지우는다시 내관에게 시선을 돌렸다.“…전하의 명이더냐.”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내관은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조심스럽게 품 안에서 작은 서찰 하나를 꺼냈다.“중전마마께서 그리 물으실 듯하여—”내관이 두 손으로 서찰을 바쳤다.“전하께서 이것을 전하라 하셨습니다.”지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이걸?”지우는 서찰을 내려다보며 낮게 되물었다.“전하께서 직접?”“예, 마마.”내관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그리고…”잠시 말을 멈춘 내관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읽으신 뒤에는 반드시 불에 태우라 명하셨습니다.”지우는 잠시 말없이 서찰을 내려다보았다.얇은 종이 한 장.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손끝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천천히 봉을 뜯자,익숙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순간—지우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서찰에는 길지 않은 글이 적혀 있었다.「당분간은 짐을 원망하고 계시오.」짧은 한 줄.그러나 그 아래에는—「이것은 벌이 아니라,중전을 지키기 위한 짐의 선택이오.」지우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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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10화 흔들리기 시작한 믿음단종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그리고—오늘 있었던 일을 천천히 떠올렸다.소복 차림으로 무릎을 꿇었던 중전.그리고—편전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수양대군의 눈빛까지.단종의 손끝이 천천히 굳어졌다.“짐은…”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오늘 처음으로 알았소.”촛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숙부께서—”단종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중전을 위험하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을.”“오늘 편전에서…중전마마께서 석고대죄를 하셨다 들었습니다.”김종서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혹, 그 일 때문이옵니까.”단종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잠시 시선을 내린 채 침묵하던 그는이내 낮게 입을 열었다.“…그보다.”단종의 눈빛이 천천히 흔들렸다.“편전에서 숙부와 단둘이 나눈 이야기가… 마음에 걸리오.”김종서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무슨 말씀을 들으셨사옵니까.”단종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그리고—“숙부께서 그러더군.”방 안의 공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중전의 행동을 자중시키라’고.”단종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헌데…”단종의 손끝이 천천히 굳어졌다.“그 말이… 어찌 그리 섬뜩하게 들리던지.”“전하…”김종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려던 순간—단종이 먼저 말을 이었다.“김 대감.”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아무래도… 불안하오.”단종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혹여 이러다 중전까지 잘못되면…”짧은 침묵.“짐에겐 정말 아무도 남지 않을 것 같소.”촛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단종은 쓴웃음 비슷한 숨을 내쉬었다.“짐에게 가족이라곤… 숙부들뿐이었소.”“허니 알지 않소.”단종의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가족이 아닌 이를 믿는다는 것이—”“…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순간,김종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처음으로 드러난 단종의 불안과 외로움이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기 때문이었다.김종서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가슴 한켠이이상하리만큼 답답해져 왔다.“지키고 싶소.”단종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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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9화 수양대군의 경고-편전-모두 물러간 뒤—넓은 편전에는단종과 수양대군만이 남아 있었다.무거운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먼저 입을 연 것은 단종이었다.“숙부… 아니.”단종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대군께서는 어찌 아직 자리를 뜨지 않으신 겁니까.”낮은 목소리였다.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한 경계가 담겨 있었다.“혹…”잠시 말을 멈춘 단종이수양대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중전의 말이 그리 불편하셨습니까.”“설마 그러겠사옵니까.”수양대군은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중전의 뜻은 틀리지 않았습니다.”잠시 시선을 내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니 전하께서도 중전에게 힘을 실어주셔도 됩니다.”담담한 말이었다.하지만—그 말이 끝난 뒤에도수양대군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등을 돌려 몇 걸음 옮기던 그는,문득 다시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단종을 바라보았다.“헌데…”짧은 침묵.“중전의 행동이 지나치게 눈에 띄는군요.”수양대군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았다.“부디—”“행동에 있어 자중하라 일러주십시오, 전하.”수양대군의 말을 들은 순간—단종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서늘한 감각이 천천히 등을 타고 스며들었다.익숙한 분위기였다.지금의 수양대군이 짓고 있는 표정과 말투.단종 자신에게 무언가 일이 생기기 전마다—늘 보아왔던 그것이었다.그런데 이번에는,그 시선이 중전을 향하고 있었다.단종의 손끝이 천천히 굳어졌다.“대군께서는…”잠시 숨을 고른 단종이 입을 열었다.“중전을 경계하시는 겁니까.”수양대군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가늘어졌다.그러나 입가의 미소는 여전했다.“경계라…”나직한 목소리.“전하께서는 그리 보이셨습니까?”수양대군의 말이 끝난 뒤—편전 안에는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단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수양대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수양대군은 그런 단종의 시선을 조용히 받아내다가,천천히 입을 열었다.“전하.”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사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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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8화 무릎을 꿇은 중전중궁전은 어제 사냥대회의 어수선함과는 또 다른 이유로 소란스러웠다.사냥을 끝까지 마치지도 못한 채 돌아온 일,그리고—궁녀 소하가 화살을 맞은 사건 때문이었다.“마마, 소인은 여기서 돌볼 터이니 이만 쉬시지요…”몇 시각이 지났음에도,지우는 한 번도 소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다른 궁녀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번갈아 가며 쉬시라 청했지만—“됐으니 그만 물러가.”짧고 단호한 말이었다.“나 대신 다친 아이야.내가 돌보는 게 맞아.”“마마…”지우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조용히,소하의 이마에 맺힌 땀을 천으로 닦아낼 뿐이었다.한참의 침묵 끝에—지우가 낮게 입을 열었다.“범인은… 어떻게 됐어?”궁녀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아직 입을 열지 않고 있다 합니다.”“……”“마마가 아닌 소하가 맞았으니…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으면,일이 크게 번지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듯합니다.”‘…여긴 조선이다.’‘그것도—역사상 가장 어린 왕이 군림하고 있는 시대.’지우의 입술이 천천히 굳어졌다.‘하…’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그리고—“그럼 전하와 대신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낮게 깔린 목소리였다.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궁녀는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송구하옵니다, 마마.”대답은 없었다.그 침묵이—오히려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자신을 대신해 화살을 맞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소하를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지우는,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아무래도… 내가 전하를 뵈어야겠어.”짧은 말이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그리고—지금 당장 하얀 소복을 가져와.”지우의 말에 궁녀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예, 마마.”곧 소복이 준비되어 들어왔다.“이 소복은… 어찌하시려고…”“뭐하긴.”지우는 담담하게 답했다.“내가 입어야지.”그리고 시선을 들었다.“최대한 초췌해 보이게 꾸며줘.”“예…? 마마, 어찌 그런—”지우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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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 7화 사냥대회의 시작새벽에 내린 눈이 아직 그대로 쌓여 있는 연못가를,단종과 지우는 나란히 걷고 있었다.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눈 위로 희미한 소리가 남았다.고요한 궁 안에서 그 소리만이 유일하게 흐르고 있었다.‘일단… 폐하께 궁 안을 안내해 달라 부탁해 수양대군은 떼어냈지만…사냥대회는 어쩌지…’‘분명 그냥 주청한 게 아닐 텐데…’연못가를 반쯤 돌 즈음,단종이 걸음을 멈췄다.그리고—조용히 지우를 바라보았다.“이제 말씀해 보시오, 중전.”‘…눈치챈 건가.’예상보다 빠른 반응에 지우의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수양대군을… 얼마나 믿으십니까.”단종은 잠시 생각하듯 시선을 흐렸다.“숙부를 말하는 것이오?”짧은 되물음 뒤, 이내 옅은 숨이 섞였다.“글쎄요… 그런 질문을 제게 던진 이는 없어서 말이오.”지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만히 단종을 바라보았다.그리고—“그럼 질문을 바꾸겠습니다.”한 박자.시선이 곧게 맞닿았다.“저는… 얼마나 믿으십니까, 전하.”“전 사실… 숙부도, 중전도 반반이오.지금 제 위치가 그러하니 말이오.”의외의 대답이었다.지우의 입가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스쳤다.“그렇다면 다행이군요.”지우는 한 발짝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전하, 소신의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단종은 말없이 지우를 바라보았다.“수양대군은… 속을 헤아리기 어려운 분이라 여겨집니다.”잠시 멈춤.“그리고 그런 이일수록,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중전.”단종의 짧은 부름이 공기를 가르듯 떨어졌다.그러나 지우는 멈추지 않았다.“전하께 숙부와의 연을 끊으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다만—”지우의 시선이 더욱 또렷해졌다.“그 뜻을 알 수 없는 자라면,그만큼 조심하셔야 합니다.”“전하.”“그 말은 선을 넘은 것이오.다른 이들 앞에서는 삼가시오.”단종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그 순간—지우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마치…과거의 자신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혼자 남겨졌던 그때처럼.지우가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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