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1 화태경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하지만 지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내 목표는 복수예요." 지안의 눈빛이 독기로 번뜩였다. 조금 전 침대에서 신음을 내뱉던 여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완성하기 위해 지옥에서 돌아온 복수귀의 눈빛만이 남았다. "서유라랑 강민우. 그 두 인간을 완벽하게 파멸시키고 서그룹을 내 손에 온전히 쥐기 전까지는, 내 인생에 사랑 같은 거, 연애 같은 거 끼워 넣을 생각 없어. 아니, 그럴 여유조차 없어요." 지안은 태경을 밀어내는 것이 스스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는 일이라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9
Chapter: 100 화62화 진심(2) 태경은 한 손으로 지안의 매끄러운 맨어깨를 느릿하게 쓰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치익- 후우. 푸른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담배 향과 두 사람의 정사 후 냄새가 끈적하게 뒤섞였다. "차태경." 지안이 나지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 "나한테 왜 이래요?" 태경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지안을 품에 더 꽉 끌어안았다. "뭐가." "방금 집무실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당신 진짜 미친 사람 같았어.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아니,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9
Chapter: 99 화61화 진심(1) 서그룹 부사장 집무실 안.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서류들과 뜯겨 나간 블라우스 단추들이 방금 전까지 이 공간에서 벌어졌던 폭력적이고 원초적인 정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태경은 소파에 늘어진 지안의 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며,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의 헐벗은 어깨 위로 덮어주었다. "일어나.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태경의 목소리는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라 그런지 낮고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안은 욱신거리는 허리와 허벅지 안쪽의 뻐근함을 느끼며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재킷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9
Chapter: 98 화태경이 신음을 내뱉으며 지안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그의 척추 근육이 불끈거리며 터질 듯한 압박감을 견뎌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아파, 너무 깊어, 태경 씨…… 흣!" 지안이 결박된 손을 풀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태경은 그녀의 손목을 더욱 꽉 누른 채 가차 없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팍! 팍! 팍! 팍! 벽면에 부딪히는 지안의 등과, 두 사람의 살덩이가 날것 그대로 맞부딪히는 격렬한 타격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철썩! 철썩! 쿵, 쿵! "아! 아앗! 아아! 태경 씨! 하앙! 살살, 제발…… 아앙!" 지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
Chapter: 97 화60화 태경의 폭주(2) "태경 씨…… 읍!" 지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경의 입술이 폭탄처럼 떨어져 내렸다. 기자회견장에서도, 어제 펜트하우스에서도 보지 못했던 가장 난폭하고 가학적인 키스였다. 태경은 지안의 입술을 부서뜨릴 듯이 짓누르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으읍, 읍……!" 지안의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신음이 터져 나왔지만, 태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타액을 거칠게 빨아들였다. 혀와 혀가 얽히는 소리가 벽면에 부딪혀 외설적으로 울렸다. 츕, 츄우욱-, 찌걱. 태경은 지안의 양손을 한 손으로 모아 머리 위 벽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
Chapter: 96 화59화 태경의 폭주(1) 강민우가 비참하게 끌려 나간 집무실에는 지독한 정적이 감돌았다. 지안은 책상 안쪽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그가 남기고 간 불쾌한 흔적들을 지워내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윤 비서." 인터폰을 누르는 지안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네, 부사장님." "방 안 공기가 너무 탁하네. 환기 좀 시키고, 강민우가 만졌던 소파나 서류들은 전부 처분해 줘요. 새로 들여놓든가 소독을 하든가."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윤 비서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우의 난동으로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
Chapter: 92 화제56화. 추락의 시작, 침묵의 대가(2) 서재 밖, 거실에는 윤세희가 가소롭다는 듯 샴페인 잔을 들고 서 있었다. 채원은 세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도진과 함께 살던 그 펜트하우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날 밤. 펜트하우스. 도진은 늦은 시간까지 서재에서 결재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채원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도진은 반가운 마음에 서재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왔어?” 도진의 다정한 물음에, 채원은 현관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도진의 얼굴을 차마 정면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9
Chapter: 91 화제55화. 추락의 시작, 침묵의 대가(1) 성북동 JS그룹 명예회장 저택. 평소라면 단정한 정원사와 집사들의 발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려 퍼질 곳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설 경호원들이 정원 곳곳을 장악했고, 거실에는 서태만 회장의 분노가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채원 씨. 오셨습니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채원을 향해, 집사 김 실장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인사했다. 채원은 문득 불길한 예감을 직감했다. 도진의 호출도 없었는데 갑작스러운 회장의 호출. 게다가 경호원들의 살벌한 분위기까지.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9
Chapter: 90 화책상 앞에 다소곳이 서 있는 윤세희는, 두 손을 모아 쥐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안쓰러운 표정을 연기하고 있었다. “저도… 저도 믿고 싶지 않았어요, 할아버님.” 세희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내며 가련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아빠가 신도시 인허가 건 때문에 국토부 쪽에서 자료를 검토하시다가…… 우연히 이 기밀문서가 다크웹 브로커 시장에 매물로 올라온 걸 발견하셨대요.” “……다크웹에?” “네. 아빠가 너무 놀라셔서 즉시 사설 보안팀을 풀어 역추적해 보니…… 최초 유출 경로가 도진 오빠의 펜트하우스 내부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
Chapter: 89 화제54화. 독사들의 결탁, 그리고 조작된 덫(2) “당신이 볼 필요 없어요.” 세희가 차갑게 웃었다. “이 기밀문서가, 한채원의 이메일을 통해서 당신의 그 유령 회사 서버로 전송된 것처럼 ‘조작’하기만 하면 돼.” “뭐……? 조작?” “스토리 완벽하잖아? 한성그룹을 집어삼키기 위해 JS그룹의 자금줄을 마르게 하려고, 한채원이 서도진의 펜트하우스에서 이 기밀을 훔쳐내어 당신과 한성 측에 팔아넘겼다. 당신들은 그 기밀을 경쟁사에 넘겨서 뒷돈을 챙기려 했다. 어때요?” 배정아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그것은 단순히 한채원을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
Chapter: 88 화모든 것이 끝났다. 서도진이라는 거대한 배경을 업은 한채원에게 철저하게 도륙 당했다. 그때였다. 쾅, 쾅, 쾅!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히익-!” 배정아가 숨을 들이켜며 침대 구석으로 기어 들어갔다. “누, 누구야! 나 돈 없어! 명동 놈들이냐?! 안 열어! 돌아가!!” 철컥. 하지만 모텔 문은 마스터키로 맥없이 열려버렸다. “윽, 무슨 냄새야. 썩은 내가 진동을 하네.” 코를 틀어막으며 안으로 들어온 것은 빚쟁이 조폭들이 아니었다. 최고급 맞춤 정장을 빼입고 하이힐을 신은 젊은 여자,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
Chapter: 87 화제53화. 독사들의 결탁, 그리고 조작된 덫(1) 쨍그랑-!! 최고급 샴페인 잔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바닥에는 이미 박살 난 화병과 찢겨나간 쿠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5성급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은 그야말로 폭격을 맞은 듯 아수라장이었다. “그 미친년이… 감히 나한테…!” 윤세희가 제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기며 짐승 같은 비명을 질렀다. 한성그룹 대표이사실에서 한채원에게 손목이 꺾인 채 쫓겨난 직후였다. [넌 아빠 배경 믿고 짖어대지만, 난 내 목숨 걸고 물어뜯어.]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
Chapter: 제24화 우아한 포식자와 거친 야수의 대면(2)제24화 우아한 포식자와 거친 야수의 대면(2)악수를 나누는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턱관절에 찰나의 힘이 들어가는 것을 서아는 놓치지 않았다."아내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젊고, 재능 있고, 무엇보다 통제하기 힘든 예술가라고."도진이 먼저 선제공격을 날렸다.그의 말투는 칭찬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함이 깔려 있었다."아, 윤 큐레이터님이 제 칭찬을 그렇게 하셨습니까? 작업실에서는 매번 잔소리만 하시더니."이안이 서아를 힐끗 바라보며 씩 웃었다.그의 시선이 서아의 아찔한 드레스 자락을 한 번 훑고 지나가는 것을, 도진은 묵묵히 관찰하고 있었다."칭찬이라기보단, 걱정에 가까웠죠. 거친 야생마를 갤러리라는 규격화된 마구간에 집어넣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도진이 맞잡았던 손을 빼며 와인잔을 고쳐 쥐었다."그래도 다행입니다. 오늘 전시를 보니, 아내의 고생이 헛되진 않은 것 같아서요.""어떤 면에서 말입니까?""권 작가님의 그 다듬어지지 않은 폭력성이, 결국은 제 아내의 기획과 통제 아래 완벽하게 제어되어 벽에 걸렸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걸 '길들여졌다'고 표현하죠."도진의 도발.그것은 단순히 예술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다.'내 아내가 너를 이용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남편으로서의 노골적인 영역 표시였다.순간 이안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길들여졌다라……."이안은 샴페인 잔을 한 모금 마시며 도진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작가님은 글을 쓰시는 분이라 세상 모든 걸 활자 안에 가둘 수 있다고 믿으시나 봅니다.""…….""하지만 그림은 다릅니다. 특히나 살아 숨 쉬는 피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9
Chapter: 제23화 우아한 포식자와 거친 야수의 대면(1)제23화 우아한 포식자와 거친 야수의 대면(1)갤러리 아르테의 메인 홀은 눈이 시릴 만큼 밝은 조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클래식 현악 4중주의 연주가 부드럽게 홀을 채우고 있었지만, 윤서아의 귀에는 그 어떤 우아한 선율도 들리지 않았다."수석님, VIP 명단 확인 부탁드립니다. K일보 문화부 기자님도 방금 도착하셨어요.""네. 안내해 드려요. 샴페인 잔 비지 않게 케이터링 팀에 전달해 주시고요."서아는 기계적으로 지시를 내리며 입가에 완벽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블랙 실크 드레스. 목선을 우아하게 드러내는 올림머리. 그리고 남편 도진이 작년 결혼기념일에 선물했던 다이아몬드 목걸이까지.오늘의 윤서아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갤러리 아르테의 수석 큐레이터였다.하지만 드레스 자락 아래, 하이힐을 신은 그녀의 발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샴페인 잔을 쥔 손가락은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숨이 막혀…….'서아는 애써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전시회 오프닝 파티.수십 번도 더 치러본 행사였지만, 오늘만큼은 도살장에 끌려온 것 같은 끔찍한 압박감이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이 홀 중앙의 벽면을 향했다.그곳에는 이안의 100호짜리 신작이 걸려 있었다.추상과 구상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폭력적일 만큼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색의 붓 터치.그림 속에는 형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여자의 실루엣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일반 관람객들의 눈에는 그저 역동적인 추상화로 보이겠지만, 서아는 알 수 있었다.저 붉은 물감의 궤적이 자신의 쇄골을 어떻게 타고 내렸는지.저 검고 거친 선들이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벌어진 허벅지를 얼마나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는지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9
Chapter: 제22화 낯선 향기, 그리고 관찰자의 시선(2)제22화 낯선 향기, 그리고 관찰자의 시선(2)그리고 거울을 노려보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모델 서준 것뿐이야. 그림을 위해서. 큐레이터로서의 비즈니스라고. 도진 씨도 이해할 거야…… 아니, 알 필요조차 없는 일이야."필사적인 자기합리화.서아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샤워기 아래로 들어갔다.같은 시각.주방에서 전기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있던 도진의 표정은, 방금 전 서아를 향해 짓던 다정한 미소와는 전혀 달랐다.그의 얼굴에는 묘한 활기와 기분 나쁜 흥분감이 서려 있었다.도진은 찬장에서 최고급 다즐링 티백을 꺼내며 낮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거짓말이 제법 늘었네. 우리 완벽한 아내께서.'도진은 서아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녀의 모든 미세한 변화를 감지했다.새로 산 원피스의 구김 없는 질감.평소보다 짙게 바른 립스틱.그리고 무엇보다, 그 코를 찌르는 역겨운 향수 냄새.그 향수는 서아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녀는 늘 과하지 않은 은은함을 추구하는 여자였다.그런 여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면서까지 그토록 자극적인 향을 뒤집어쓰고 왔다는 건, 그보다 더 끔찍하게 감추고 싶은 악취가 있다는 뜻이었다.테레빈유. 싸구려 유화 물감. 지포 라이터의 기름 냄새.그리고 젊고 거친 수컷의 체취.어젯밤 서아의 코트에서 났던 그 냄새가, 오늘은 훨씬 더 짙고 농밀하게 그녀의 피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배어 나오고 있었다.'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온 걸까.'주전자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도진은 뜨거운 물을 찻잔에 부으며 생각에 잠겼다.상식적인 남편이라면 당연히 분노해야 마땅했다.자신의 완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
Chapter: 제21화 낯선 향기, 그리고 관찰자의 시선(1)제21화 낯선 향기, 그리고 관찰자의 시선(1)엘리베이터가 상승하는 내내, 서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뚫어지게 살폈다.흐트러진 곳은 없는가.표정에 불안감이 묻어나지는 않는가.그녀는 핸드백에서 새로 산 샤넬 향수병을 꺼냈다. 오늘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러 충동적으로 결제한, 아주 무겁고 관능적인 일랑일랑과 머스크 베이스의 향수였다.칙, 칙.귀 뒤쪽과 손목 안쪽에 향수를 한 번 더 뿌렸다.평소라면 머리가 아프다며 절대 쓰지 않았을 독한 향이었지만, 지금 서아에게는 이 숨 막히는 향기가 절실했다.'이 정도면…… 가려지겠지.'오후 내내 해방촌의 그 낡은 옥탑방에서 이안의 시선 아래 발가벗겨졌던 시간.그의 작업실에 배어 있던 테레빈유의 매캐한 냄새와, 그의 몸에서 나던 짙은 담배 냄새가 아직도 자신의 피부 밑에 들러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옷은 갈아입었다.아침에 입고 나갔던 네이비색 수트와 블라우스는 갤러리 근처 세탁소에 쑤셔 넣듯 맡겨버렸다. 지금 입고 있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와 원피스는 백화점에서 향수를 사며 급하게 맞춰 입은 새 옷이었다.완벽하다.이성적으로 따져봤을 때, 남편 도진이 자신의 일탈을 의심할 만한 물리적 단서는 단 하나도 없었다.띠- 띠- 띠- 띠.철컥.익숙한 도어락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도진 씨. 나 왔어요."서아는 현관에 들어서며 평소처럼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꾸며냈다."……어, 왔어?"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도진이 책을 덮으며 일어났다.늘 그렇듯 단정하게 다려진 면바지에 얇은 니트 차림.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남편의 모습이었다."오늘 좀 늦었네. 갤러리에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
Chapter: 제20화 시선이라는 이름의 해체(2)제20화 시선이라는 이름의 해체(2)서아는 엉덩이를 떼고 당장이라도 문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이 불결하고 숨 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서늘한 남편의 품으로 돌아가야 맞았다.하지만.스툴에 닿은 그녀의 몸은 마치 납덩이라도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이안의 시선.도망칠 테면 쳐보라는 저 오만하고 확신에 찬 눈빛.그 눈빛이 서아의 오기를, 아니, 그녀의 가장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기묘한 피학성을 자극하고 있었다."……빨리 끝내."침묵 끝에 서아의 입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있었다."나 시간 많지 않아."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항복 선언.서아는 입술을 짓이기며 핸드백을 무릎 위에 꽉 끌어안았다.이안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그는 만족스러운 포식자의 미소를 지으며 이젤 앞에 자리를 잡았다."자세가 너무 굳었어. 어깨에 힘 빼."이안의 지시가 떨어졌다."됐어. 그냥 그려.""내가 그리는 건 정물화가 아니라 인물화야. 그따위로 경직되어 있으면 죽은 사람을 그리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이안이 스케치북을 내려놓고 성큼 다가왔다.그의 커다란 손이 서아의 어깨 위로 툭, 얹혀졌다.서아는 숨을 들이켰다."힘 빼."이안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그의 거친 굳은살이 얇은 실크 블라우스 너머로 서아의 쇄골을 지그시 눌렀다.단순히 자세를 교정하기 위한 터치였지만, 서아에게는 그 손길이 벌겋게 달아오른 쇠인두가 살갗에 닿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그녀의 어깨가 저항하듯 뻣뻣해졌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고 그녀의 승모근부터 목덜미까지 느릿하게 쓸어내렸다."하아…&hell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
Chapter: 제19화 시선이라는 이름의 해체(1)제19화 시선이라는 이름의 해체(1)해방촌의 좁고 가파른 골목길.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오르막길을 오르며, 서아는 거칠어지는 숨을 몰아쉬었다."하아, 하아……."또각, 또각.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히는 지미추 힐의 마찰음이 유난히 신경질적으로 울려 퍼졌다.자신의 매끈한 검은색 벤츠는 골목 초입에 간신히 구겨 넣듯 주차해 둔 상태였다. 평소라면 흠집이라도 날까 봐 절대 세워두지 않았을 비좁은 자리였지만, 지금 서아의 머릿속에는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미쳤어. 내가 여길 왜…….'서아는 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발걸음을 저주했다.당장이라도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의 발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조종당하는 인형처럼, 이안이 알려준 낡은 적벽돌 빌라를 향해 맹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다음번엔 핑계 대지 말고, 그냥 작업실로 와.''그때는 진짜로 벗겨줄 테니까.'오전 내내, 아니 갤러리를 빠져나와 이곳으로 향하는 내내 이안의 그 오만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서아는 그 말도 안 되는 도발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온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했다.수석 큐레이터로서, 전시를 코앞에 둔 작가의 작업 진행 상황을 불시 점검하러 온 것뿐이다. 그 건방진 입에서 다시는 그런 천박한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자신의 지위와 권력으로 그를 완벽하게 짓눌러버리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빌라의 옥탑방으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 앞에 섰을 때, 서아의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녹슨 철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매 순간, 그녀가 겹겹이 껴입은 사회적 체면과 방어기제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끼익
Última actualización: 2026-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