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날 아침 식사 시간.
식당은 저택에서 두 번째로 빛이 많이 드는 공간이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은식기와 얇은 도자기 접시가 정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빵은 이미 적당한 두께로 썰려 있었고, 수프에서는 희미한 김이 올라왔다.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오른편, 반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시선은 낮게. 숨은 일정하게. 소리는 나지 않게. 아가씨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어왔다. 아가씨의 아버지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말보다 시선이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었다. 궁정 대신. 왕의 곁에서 재정을 맡고, 조약을 검토하고, 귀족들의 이해를 조율하는 사람. 그는 집에서도 걸음이 일정했다. 과장도, 낭비도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기 전 식탁을 한 번 훑어보았다. 식기, 접시, 딸의 표정, 그리고 딸의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 그 시선이 아주 잠깐 멈췄다. 짧았지만, 분명히 멈췄다. 그림 하일드는 그 멈춤을 느꼈다. 고개를 더 숙이지도, 더 들지도 않았다. 그저 그대로. "저 아이가.. 새로 들어왔다는 하녀냐." 남자의 목소리는 낮았다. 부드럽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사실을 확인하는 어조였다. 아가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며칠전부터 제 곁에 서기로 했어요."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림 하일드를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였다. 손을 먼저 보았다. 굳은 손. 짧게 정리된 손톱. 하녀장의 규칙을 잘 지킨 자세. 그는 천천히 말했다. "손은 쓸 줄 아는군." 칭찬도, 감탄도 아니었다. 평가였다.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배운 대로 하겠습니다." 남자는 그 말에 작게 코로 숨을 내쉬었다. 웃음도 아니고, 불만도 아니었다. "배운 대로라." 그는 딸을 보았다. "마음에 드느냐." 아가씨는 잠시 포크를 내려놓고 아버지를 향해 미소 지었다. "네. 마음에 들어요." 식당 안의 다른 하인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 하일드의 심장은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남자는 다시 수프를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 바꾸면 된다." 아주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날카롭지도 않았다. 위협도 아니었다. 그저 이 집의 질서를 설명하는 문장이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말의 무게를 몸으로 이해했다. 이 저택에서 바꾼다는 건 물건에도, 사람에게도 같이 쓰이는 단어라는 걸. 아가씨는 아무렇지 않게 빵을 작게 잘랐다.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림 하일드는 틀리지 않거든요." 식탁 위의 빛이 잠시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그림 하일드를 보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그림 하일드는 손끝에 힘을 더 주었다. 남자는 수프를 내려놓고 말했다. "틀리지 않는 건 능력이 아니라 운이다." 식당 안의 공기가 한 겹 더 무거워졌다. "운은 언제든 바뀐다." 그 말은 딸에게 한 것인지, 그림 하일드에게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아가씨는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다. "아버지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녀는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전 운보다 습관을 믿어요." 그리고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잘 길들여진 습관은 운보다 오래 가거든요." 그림 하일드의 등줄기가 식은 듯 서늘해졌다. 아버지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멈췄다. 이번에는 딸에게서 그림 하일드로. 잠깐의 침묵.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 그림 하일드는 알았다. 자신은 이 집에서 단순히 '아가씨의 하녀'가 아니라— 관찰 대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틀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이제는 아가씨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날 아침의 식사는 끝까지 조용했다. 은식기는 정확히 부딪혔고, 빵 부스러기는 흩어지지 않았으며, 아가씨는 단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림 하일드는 그날 이후로 자신의 손뿐 아니라 등 뒤의 시선까지 의식하게 되었다. 그날 점심의 살롱 시간. 왕실과 가까운 몇몇 가문의 영애들이 모여 있었다. 이 모임은 사교의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실상은 왕의 귀에 가장 가까운 두 가문의 딸들이 나란히 앉는 자리였다. 한쪽은 왕의 정책을 설계하는 궁정 대신 가문. 그리고 다른 한쪽은 왕실 재정을 장악한 재무대신 가문. 정책과 돈. 왕의 양쪽 팔이라고 불리는 두 가문은 겉으로는 협력했지만, 왕이 누구의 말을 더 오래 듣는가에 따라 궁정의 바람은 달라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각 가문의 외동딸이 있었다. 재무대신 가문의 영애는 오늘도 단정하고 절제된 차림이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눈을 피하지 않는 옷. 자신의 집안이 실리를 다룬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 아이가.. 새로 들어왔다는 영애의 하녀인가요?" 시선은 궁정 대신의 딸, 아가씨의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에게 향해 있었다. 아가씨는 부드럽게 웃었다. "네. 며칠전부터 제 곁에 두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영애의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갔다. "그림 하일드." 아가씨가 자연스럽게 말했다. "과자 접시가 비었네. 가서 더 가져다 줄래?" "네, 아가씨." 그림하일드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문쪽으로 향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그 순간 그 영애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저 아이.. 고아원 출신이라 들었는데..." 찻잔을 들며 무심하게 덧붙였다. "생각보단 꽤 예쁘장하게 생겼더군요." 테이블 위 공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다른 아가씨들이 아주 작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가씨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저도 걱정했어요." 말은 부드러웠다. "혹시 둔하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해력도 빠르고, 일도 야무지게 잘하더라구요." 칭찬처럼 들리는 문장. 영애는 찻잔 가장 자리를 손끝으로 가볍게 돌렸다. "그렇군요." 잠시 침묵. 그리고, "그런데..." 말끝이 조금 느려졌다. "저런 근본도 모르는 고아원 출신 아이를 곁에 두면..." 그녀는 고개를 기울였다. "영애의 가문의 품격이... 조금 떨어져 보이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걱정. 그 단어가 너무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게다가..." 그녀는 일부러 말을 멈췄다. 시선이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예전에, 영애의 동생이 알 수 없는 사고로 떠난 이후로..." 테이블 한쪽에서 찻잔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가문의 소문도 조금은 뒤숭숭했잖아요." 말은 낮았지만 분명히 들렸다. "그런 상황에서 출신도 모호한 아이를 곁에 두면..." 그녀는 미소 지었다. "...괜히 더 말이 붙지 않겠어요?" 다른 아가씨 중 하나가 작게 숨을 삼켰다. 살롱 안의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게 팽팽해졌다. 아가씨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소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손에 들린 찻잔의 손잡이를 잡는 힘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품격은..." 목소리는 여전히 고왔다. "...피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태도에서 나오는 거라고 저는 배웠어요." 영애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가씨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문은 늘 사실보다 빨리 자라죠."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걸 두려워해서 사람을 쓰지 않는다면 그건 품격이 아니라 겁이겠죠." 말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끝음이 조금 단단했다. 영애는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웃었다. "역시.. 말씀은 참 곱게 하시네요." 그녀의 눈빛은 웃고 있지 않았다. "다만 전..." 찻잔을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예쁜 건 가까이 둘수록 위험하다고 배웠거든요."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림 하일드가 과자 접시를 들고 조용히 들어왔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얼굴로. 하지만 공기가 아까와 다르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접시를 내려놓는동안 영애의 시선이 아주 노골적으로 그 얼굴 위에 머물렀다. 잠시. 그리고 다른 아가씨를 향해 돌아갔다. 아가씨는 그림 하일드를 한 번 보았다. 그 시선은 다정했지만, 그림 하일드의 얼굴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그날 저녁 식사 전, 아가씨의 방. 아가씨의 방에는 해가 거의 기울어 빛이 부드럽게 바닥을 스치고 있었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커튼이 느리게 흔들렸다. 거울 앞에 앉은 아가씨의 머리카락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오늘은 리본이 아니라 얇은 진주 장식이 달린 핀을 꽂은 상태였다. 그림 하일드는 조용히 말했다. "아가씨. 저녁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아가씨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을 움직였다. 거울 속에 그림 하일드의 모습이 함께 비쳤다. 작고, 조심스럽고, 늘 반 걸음 뒤에 선 얼굴. "그림 하일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네, 아가씨." "넌... 고아원에서 자랐다 했지." 질문은 가볍게 던져졌다. 마치 날씨를 묻는 것처럼. 그림 하일드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네." 아가씨는 거울을 보며 말을 이었다. "거기선... 어떤 걸 배웠어?" 공기는 여전히 고요했다. 하지만 질문은 가볍지 않았다. 그림 하일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고아원에서 배운 것. 울지 않는 법. 눈에 띄지 않는 법. 먼저 말하지 않는 법. 쓸모 있는 아이가 되는 법. 하지만 그 말들은 이 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그냥..."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을... 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가씨의 눈동자가 거울 속에서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일을?" "네." 그림 하일드는 시선을 더 낮추었다. "청소하는 법, 바느질하는 법,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법." 마지막 말은 아주 작게 흘러나왔다. 아가씨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직접,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았다. "그건 기술이지."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난... 그게 아니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다가왔다. "사람을 믿는 법이라든지, 누군가를 미워하는 법이라든지, 자기 걸 지키는 법 같은 건 배운 적 없는지 물어보는거야." 그림 하일드는 숨이 잠시 막힌 듯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질문은 익숙하지 않았다. 고아원에서 누군가를 믿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미워하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지키는 건... 애초에 가진 것이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아가씨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네."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숙였다. "그냥... 쓸모 없는 아이가 되지 않는 게 중요했습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창밖에서 마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아가씨는 한동안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았다. 마치 처음으로 하녀가 아닌 사람을 보는 것처럼. "쓸모 없는 아이." 그녀가 낮게 되뇌었다. "그럼 지금은?" 그림 하일드는 살짝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지금은... 아가씨께 필요 있는 사람이 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비굴하지도, 과장되지도 않았다. 그저 사실처럼 들렸다. 아가씨는 그림 하일드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다시 거울 쪽으로 돌아섰다. "넌 참... 이상해." 작게 웃었다. "화도 안 내고, 바라는 것도 없어 보이고." 그녀는 천천히 덧붙였다. "그렇게 살면... 언젠가는 누군가한테 다 빼앗기지 않을까?" 그림 하일드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빼앗길 것. 애초에 자기 것이라 부를 만한 게 무엇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빼앗길 게 있다면, 그때 생각해보겠습니다.” 아가씨는 그 대답에 아주 조용히 웃었다. "그래."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넌... 누가 빼앗아도 괜찮은 아이구나." 그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잠시 후— 아가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바꾸었다. "가자. 저녁 늦겠다."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숙였다. "네, 아가씨." 문을 나서기 전 아가씨는 거울을 한 번 더 보았다. 거울 속에는 자신과, 그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가 함께 비쳤다. 잠깐, 아주 잠깐 아가씨의 시선이 그림 하일드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고아원 출신. 예쁘장한 얼굴. 바라는 게 없는 아이. 그 조합이 왜인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가씨는 처음으로 자기 옆에 선 하녀의 얼굴을 조금 더 또렷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식당 안. 촛대의 불빛이 길게 늘어진 테이블 위를 따라 차분히 흔들리고 있었고, 은식기는 정확한 간격으로 놓여있었다. 상석에는 아가씨의 아버지, 궁정 대신이 앉아 있었다.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대지는 않았지만, 몸은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었다. 하루 종일 궁정에서 말을 다루던 사람의 피로가 아주 얇게 남아 있었다. 그의 오른편에는 귀족 부인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표정은 단정했고, 손은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문이 열렸다. 아가씨가 들어섰다. 걸음은 일정했고, 고개는 곧았다. 그 반 걸음 뒤를 그림 하일드가 따르고 있었다. 궁정 대신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딸에게 닿았다가, 곧 그 뒤에 선 그림 하일드에게 옮겨졌다.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그림 하일드의 얼굴에서 잠시 더 머물렀다. 미심쩍은 눈빛이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더 숙이지도, 들지도 않았다. 그저 정해진 위치에 서 있었다. 궁정 대신은 아주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딸을 바라보았다. "늦었구나." 목소리는 낮았고, 감정은 실려 있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서 아주 미세하게 자세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서 먹자." 그날 밤. 저택의 복도는 낮보다 더 고요했다. 촛불이 벽을 따라 길게 흔들렸고, 하인들의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대신의 서재 문이 닫혔다. 안에는 책장과 문서 더미, 그리고 낮게 타는 촛불 하나가 있었다. 귀족 부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대신은 책상에 놓인 문서를 덮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아이." 짧은 두 음절. 귀족 부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혹시.. 그림 하일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대신의 목소리는 낮았다. "어떤 아이 같소." 귀족 부인은 잠시 미소를 띠었다. "그 아이라면... 그냥 묵묵히 일 잘하는 아이로 보이던데요."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말도 많지 않고, 우리 애 시중도 잘 들고 있고... 우리 애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덧붙였다. "왜 그러십니까." 대신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그 아이가 탐탁지 않소." 귀족 부인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탐탁지 않다니요." 대신은 기억을 더듬듯 천천히 말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았소." "..."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눈은 죽어 있지 않았소." 귀족 부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대신은 이어 말했다. "무엇이든 다 이루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담긴 눈이었소."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귀족 부인은 작게 웃었다. "고아원 출신 아이에게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대신은 고개를 저었다. "출신과 욕심은 다르오." 그는 천천히 말했다. "관상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고 했소." 귀족 부인이 조용히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신의 시선이 촛불 위로 잠시 멈췄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야욕이 있소." 단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확신이 있었다. "지금은 얌전해 보이오. 하지만 그런 눈은...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오." 귀족 부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애는 그 아이를 아끼는 것 같았습니다." 대신의 눈빛이 조금 단단해졌다. "그래서 더 문제요." 짧은 침묵. "우리 애 곁에 두는 건 좋소. 하지만..."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너무 가까이 두지는 마시오." 귀족 부인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설마... 하녀 하나가 우리 애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대신은 조용히 답했다. "영향은 힘 있는 자에게서만 오는 게 아니오." 촛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때로는 곁에 서 있는 사람이 가장 깊이 스며드는 법이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 아이를 우리 애와 너무 가까이 두지 마시오."마굿간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희미한 등불이 흔들리고, 짚 냄새와 말들의 낮은 숨소리가 천천히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갔다. 하인은 여전히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루시안은 낡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하지만 모자 아래에 가려진 눈동자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사과나무만큼... 마력이 잘 스며드는 과일나무도 없지. 열매도. 껍질도. 뿌리조차도."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이어갔다. "옛날부터 그랬다. 사과는.. 참 순순한 아이들이었지. 조금만 속삭여주면 아주 잘 자라주고, 아주 잘 물들어주니까." 그의 눈빛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산길. 후레지아. 사과나무라... 참 아름다운 조합이군." 그 순간, 루시안의 그림자 뒤편 어둠이 아주 잠깐 일렁였다. 마치 누군가가 웃는 것처럼. 일주일 후. 점심 햇살이 드 로베르 저택의 정원을 비추고 있었다. 현관 앞에는 이미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검은 말들이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었고, 하인들은 양옆으로 가지런히 서 있었다. 끼익. 현관문이 열렸다. 먼저 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갈한 외출복 차림으로. 그 뒤로 부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 뒤. 엘로이즈와 클레르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엘로이즈는 오늘도 단정했다. 흑발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햇빛 아래에서 그녀는 조용하고 우아하게 부모를 바라보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어머니,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대신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 역시 아주 옅게 미소지었다. "...그래. 오늘도 중요한 연회가 있어서..." 그녀는 장갑 낀 손으로 목걸이 끝을 살짝 만지며 말을 이었다. "...좀 늦을 거란다." "...네." 그 순간, 부인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클레르. 연한 노란빛 드레스를 입은 둘째 딸이 조용히 서 있었다. 평소처럼 들떠 뛰어나가지는 않았지만, 며칠 전처럼 풀이 죽은 얼굴도 아니었
그날 밤. 드 로베르 저택은 이미 깊은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복도에는 촛불 몇 개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창밖 정원은 달빛 아래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하인들의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택 뒤편, 사람들의 눈이 잘 닿지 않는 오래된 마굿간 쪽으로 한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검은 망토를 깊게 눌러쓴 젊은 남자 하인. 그는 몇 번이고 주변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발소리는 최대한 죽여져 있었다. 끼익. 낡은 마굿간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안쪽에서는 희미한 등불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른 짚 냄새. 낡은 나무 냄새. 그리고 말들의 낮은 숨소리. 남자 하인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마굿간 안쪽 구석. 낡은 의자 하나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허리가 굽은 늙은 마부. 해진 외투. 거칠게 갈라진 손. 깊게 눌러쓴 모자 아래로는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 공기만큼은, 평범한 늙은이의 것이 아니었다. 카일 로웬의 아버지. 그리고 오래전부터 그림자 속에서 움직여 온 마법사, 루시안 로웬. 남자 하인이 낮게 고개를 숙였다. "...루시안 님." "말해라." "...다음 주에 후레지아 꽃을 꺾으러 산으로 간답니다." "...산으로." "예. 둘째 영애와 큰 영애 둘이서요." "...그래. 드디어 때가 왔구나. 꽃을 좋아하는 계집 아이들은... 늘 경계가 없지." "...그리고 마침, 그 산으로 가는 길에 사과나무를 심어놓기 좋은 장소가 있다고 합니다." "...사과나무." "예. 햇빛도 잘 들고, 땅도 꽤 깊다고 들었습니다." 루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자 아래 그림자 속에서, 그의 입가가 아주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사과나무. 그 단어가 마굿간 안에서 조용히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등불 불꽃이 다시 한 번 길게 흔들렸다. 루시안의 눈빛이 천천히 깊어졌다. "...그래. 좋군." 루시안은 천천히 몸을 뒤로 기대었다. 늙은 마부의 허름한 그림자 아래
엘로이즈는 끝까지 말을 끊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손이 굳어 있었다. 마침내 클레르의 떨리는 목소리가 다시 작게 이어졌다. "...언니. 정말... 어머니, 아버지도 나 싫어하시고...언니도 나 싫어할 거야?" "아니야." 엘로이즈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영애가.. 괜히 심술 부린거야." "아니야.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고 웃어주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고.. 어머니도.. 항상 나만 보면 한숨 쉬셨고... 방금도 아버지가 나 조심성없다고 혼내신 것도..." "아니야." 엘로이즈가 조금 더 빠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두 분 다. 너가 걱정돼서 그러신거야. 네가 다칠까봐, 또 남들이 함부로 말할까봐. 그래서 엄하게 말씀하시는 거지." "...나. 그런 것도 모를 정도로 바보 아니야." 엘로이즈의 눈이 멈췄다. 클레르는 울먹이는 얼굴로 계속 말했다. "...사람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 볼 때 어떤 눈 하는지는 나도 알아..."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식당 안 공기가 아주 조용히 가라앉았다. 엘로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울음을 참으려 애쓰는 동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의자가 아주 작게 밀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클레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멈춰섰다. 클레르는 눈물을 훔치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순간, 툭. 엘로이즈의 손이 조용히 클레르의 어깨를 붙잡았다. 클레르의 몸이 아주 작게 움찔했다. "...클레르. 너 언니 눈 똑바로 봐."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언니 말 못 믿겠어?" 클레르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게 젖어 있었다. 눈물 때문에 흐려진 시선 너머로, 엘로이즈의 얼굴이 보였다. 엘로이즈는 그런 동생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언니는 거짓말 안 해." 그녀가
엘로이즈는 잠시 말없이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금방 "죄송해요..."하고 웃어 넘겼을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클레르는 달랐다. 너무 조용했다. 엘로이즈의 시선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클레르..." 클레르의 어깨가 움찔했다. 엘로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걱정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푹 숙인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신은 잠시 더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아이. 테이블 위에 번진 소스. 굳어버린 손끝. 그는 낮게 혀를 찼다. "쯧." 그리고 냅킨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밀며 낮은 소리를 냈다. 부인이 눈을 들었다. "왜, 더 안 드시고요?" "입맛이 없어졌소." 대신은 아무 말도 더 하지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무거운 발소리가 멀어졌다. 식당 안은 더 조용해졌다. 클레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포크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입술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클레르... 아버지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면..." 말이 거기서 멈췄다. 클레르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큰 눈 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울음을 참고있는 얼굴.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부인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녀는 잠시 클레르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 한숨에는 피곤함과 복잡한 감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부인은 결국 아무 말도 더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 위를 조용히 스쳤다. "...먼저 일어나마." 그녀는 잠시 두 딸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걸어 나갔다. 곧 문이 조용히 닫혔다. 덜컥. 이제 식당 안에는 엘로이즈와 클레르 둘만 남았다. 엘로이즈는 한동안 말없이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참고있는 동생. 평소처럼 밝게 웃지도 못하고, 포크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던 모습. 엘로이
덜컥. 살롱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다시 조용함이 내려 앉았다. 복도에는 늦은 오후의 햇빛만 길게 깔려 있었다. 클레르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방금 전 넘어졌던 자세 그대로. 작은 손에는 하얀 손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하녀가 다가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작은 아가씨. 괜찮으세요?" 하지만 클레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눈은 멍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네스가 서 있던 자리. 부드럽게 웃던 얼굴. 다정했던 목소리. '언니분까지 영애를 창피해하시고, 싫어하게 되실지도 모르잖아요.' 그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클레르의 손이 떨렸다. "...아가씨?" 하녀가 다시 조심스럽게 불렀다. 클레르는 그제야 아주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손수건. 자기 손 안에 쥐어진 새하얀 천. 조금 전까지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차갑게 느껴졌다. 손가락이 천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꾸깃. 하얀 천이 손안에서 천천히 구겨졌다. 하녀의 얼굴이 더 굳었다. "...작은 아가씨, 어디 다치신 건 아니시죠?" "...진짜.." "...네?" "내가 진짜로... 언니를 창피하게 만들어?" "아가씨..." "내가 자꾸 뛰어다녀서... 말도 안 듣고... 그래서 언니도...나 싫어하게 되는 거야?"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작은 아가씨." 하녀가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클레르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손수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까지 그렇게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복도 창문 사이로 바람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에 클레르의 금빛 머리카락 끝이 아주 약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손안에서, 하얀 손수건이 점점 더 작게 구겨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드 로베르 저택의 식당은 조용했다. 하인들이 벽 쪽에 조용히 서 있었고, 식당 안에는 나이프와 포크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엘로이즈는 평소처
이네스는 아주 천천히 입가를 움직였다. "...괜찮아요." 미소였다. 완벽하게 단정하고, 부드럽게 만들어낸 귀족 영애의 미소. 이네스는 구겨진 소매를 가볍게 정리한 뒤, 천천히 클레르 쪽으로 다가갔다. 클레르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이네스는 그런 반응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영애께서... 드 로베르 가문의 둘째 영애신가요...?" 이네스는 잠시 클레르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그녀 앞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손수건을 꺼냈다. 하얀 손수건 끝이 클레르의 드레스에 묻은 먼지와 흙자국을 아주 천천히 털어냈다. 툭, 툭. 동작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네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치진 않았나요, 영애?" "...네." 클레르는 눈을 깜빡이며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작게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무서워 보였던 얼굴이, 갑자기 너무 다정해진 탓이었다. 이네스의 입가가 아주 부드럽게 올라갔다. "다행이네요." 그녀는 여전히 손수건으로 드레스 끝을 정리해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드 로베르 영애께... 동생분 이야기는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어요." "언니가요?" "네." 이네스는 미소지었다. "동생분이 참 착하고..." 손수건이 천천히 멈췄다. "...순수한 아이라고 하셨거든요." 그녀의 눈이 아주 천천히 클레르를 향했다. "정말 그런 것 같네요." 말은 다정했다. 너무나 부드럽고, 너무나 친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미소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숨이 막혔다. 이네스는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조금 조심해서 다니셔야겠어요, 영애." 클레르의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이네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으시려면요." 그 말에 클레르의 눈이 아주 살짝 커졌다. 이네스는 그
살롱 안에는 은은한 차 향이 퍼져 있었다.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작았고, 웃음소리도 지나치게 커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귀족 영애들의 다과 시간. 하지만 왕의 양쪽 팔이라 불리는 두 가문의 외동딸이 마주 앉아 있는 이상, 이 자리는 단 한 번도 단순한 사교 모임이었던 적이 없었다. 엘로이즈 드 로베르. 그리고 재무대신 가문의 영애, 이네스 드 몽브랑. 두 사람의 대화는 언제나 부드러웠고, 언제나 우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얇은 칼날 같은 긴장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같이 차를 마시러 온 다른 영애들은
저택 안.문이 열리자, 바깥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밀려왔다. 조용하고, 정돈되어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유지된 공간.엘로이즈가 먼저 들어섰다. 걸음은 일정했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뒤를 귀족 부인이 따랐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그림 하일드가 문턱을 넘었다. 문이 닫혔다. 덜컥. 소리와 함께, 바깥의 일은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세 사람 모두 잠시 말이 없었다. 하인들은 멀리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복도는 여전히 정숙했다.귀족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엘로이즈."부드러운 목
마차 문이 닫히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고, 시선은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시선만,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안장 위. 카일. 그는 이미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눈. 하지만 그 시선이 닿는 순간, 그림 하일드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목이 아주 미세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되살아났다. "..."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쾅!!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