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오늘만 사랑한다고 하면, 내일도 듣고 싶어질 텐데요.”하진은 거울 속 서우를 바라봤다.빌려 입은 셔츠의 소매가 손등까지 내려와 있었다.서우는 그의 뒤에 서 있었지만 먼저 손을 대지 않았다.“듣고 싶으면 내일 다시 물어.”“오늘 대답부터 해요.”“사랑한다.”하진의 손가락이 단추 위에서 멈췄다.“오늘만요?”“네가 허락한 오늘까지.”“더 욕심내고 싶지 않아요?”“싶다.”서우의 시선이 거울 속 하진에게 머물렀다.“그래서 참는 게 아니라 묻는 거다.”“뭘요?”“가까이 가도 되나?”하진은 몸을 돌려 서우의 손을 끌어 자기 허리에 올렸다.“여기까지요.”서우의 손이 셔츠 위에서 멈췄다.“더 가까이 가고 싶다.”“원하는 걸 말한 건 허락이 아니에요.”“그럼 허락은?”하진이 그의 넥타이를 손가락에 감았다.“오늘 밤 다시 물어요.”입술이 가까워지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두 사람이 임시 숙소로 들어가는 사진이 기사 첫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해임된 강서우, 핵심 피해자와 한밤 동행.][한성그룹, 윤하진을 공동 보상 협의 창구에서 제외 요청.]이유는 강서우와의 사적 관계로 인한 이해충돌이었다.서우가 허리에서 손을 뗐다.“회의에는 혼자 가.”하진이 떨어진 손을 다시 가져왔다.“방금까지 묻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면서요.”“내가 같이 가면 네 말보다 우리 관계가 먼저 보일 거다.”“같은 문까지는 같이 들어가요.”“회의실은?”“거기부터는 혼자 갈게요.”서우는 더 막지 않았다.“밖에서 기다리겠다.”피해 작가 공동대응단 회의가 열리는 건물 앞에는 취재진이 몰려 있었다.서우가 별도 출입구를 가리켰다.“원하면 피할 수 있다.”하진은 정문 계단을 올랐다.“숨지 않을래요.”“내가 어디에 서면 되지?”하진은 걸음을 멈췄다.“내 앞에도, 뒤에도 서지 마요.”“그럼?”“옆에요.”두 사람은 같은 높이에서 계단을 올랐다.카메라와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강서우 씨에게 회유당한 겁니까?”“보상 협의에서 제외되면 어
“평생 같은 말은 함부로 하지 마요.”하진은 서우의 이마에서 천천히 떨어졌다.당일 조사를 마친 서우는 추가 소환에 응하는 조건으로 귀가를 허가받았다.조사기관 정문 앞에는 아직 취재진이 남아 있었다.“그럼 오늘은?”“오늘은 내 옆에 있어요.”“내일은 다시 묻고.”“네.”그때 변호인에게 빌린 서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강씨 저택에서 온 호출이었다.오혜련은 가족 식탁에 마지막으로 참석하라고 통보했다.“혼자 다녀와요.”서우가 먼저 말했다.하진은 차 문을 열었다.“들을지 말지는 내가 정해요.”저택의 긴 식탁에는 서우의 자리만 남아 있었다.하진이 앉을 의자는 벽 쪽으로 밀려 있었다.태겸이 잔을 내려놓았다.“가족도 아닌 사람까지 데려왔네.”하진은 벽에 밀린 의자를 직접 끌어와 서우 옆에 놓았다.누구도 내어주지 않은 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다.“가족으로 온 게 아니야.”하진은 태겸을 바라봤다.“이 사람 옆에 있으려고 왔어.”오혜련이 서우 앞에 저택 출입패와 가족 명의 카드를 내려놓았다.“윤하진과 관계를 정리하면 이 집의 지원은 유지해주마.”서우는 두 물건을 상자 안으로 밀어 넣었다.“필요 없습니다.”태겸이 하진을 향해 웃었다.“형한테 남은 건 조사와 빚뿐이야.”하진은 대꾸하지 않았다.“병원에서 버렸고, 육 년 동안 숨었고, 네 이름을 지킨다면서 다른 사람들 이름까지 묶었어.”서우의 손에 들린 잔이 기울었다.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드러났다.“강태겸.”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하진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앉아요.”서우는 태겸이 아니라 하진을 봤다.잠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하진은 그제야 알았다.이 집의 누구도 멈추지 못한 남자가 자기 손 하나에는 멈췄다.그 사실이 조금 무서웠다.오혜련이 물었다.“저런 남자 옆에 얼마나 버틸 수 있겠니?”“모르겠어요.”서우의 시선이 하진에게 향했다.“그래서 오늘 하루만 정했어요.”“그 아이는 널 믿지 않는다는 뜻이야.”“믿는 법을 다시 배우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태겸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하진은 화면에 뜬 이름을 한동안 지우지 못했다.연결하자 태겸의 얼굴 대신 검은 천장이 보였다.“형은 이제 아무것도 없어.”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대표 자리도 집도 네 이름을 돌려줄 힘도 없어졌다고.”“그래서?”“그런데도 형 옆에 설 거야?”태겸의 질문이 귓속에 남았다.여섯 해 전에도 같은 방식이었다.서우에게 가면 다 잃는다고 겁을 주고, 태겸에게 남는 것만이 안전하다고 믿게 했다.그런데도 하진의 손은 종료 버튼 위에서 멈췄다.수사관의 감독 아래 연결돼 있던 서우가 그 모습을 봤다.“내가 끊어줄까?”하진이 서우를 바라봤다.“아니면 네가 직접 끊을래?”서우는 태겸의 전화를 빼앗지도, 대신 답하지도 않았다.하진이 직접 종료 버튼을 눌렀다.“이번에는 내가 끊었어요.”“봤다.”“잘했다고 하지 마요.”“네가 정한 일이니까 평가하지 않겠다.”하진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물었다.“숨긴 거 또 있어요?”“있다.”“뭔데요?”“대표이사 해임안이 곧 표결에 들어간다.”이재가 회사 공시망을 열었다.표결까지 남은 시간은 서른여덟 분이었다.명의 도용 작품 판매 유지.내부 보안 인증서 관리 실패.회사 자산을 이용한 무단 보호 계약.마지막 사유에는 윤하진과의 관계로 인한 기업 신뢰 훼손이 적혀 있었다.“왜 말하지 않았어요?”“네가 나를 지키려고 들어올 것 같았다.”“또 내가 뭘 할지 당신이 정했네요.”“그래.”“해임을 막을 거예요?”“아니.”“잘못한 책임은 지되, 오혜련이 만든 거짓 사유까지 받아들이지는 마요.”서우는 잠시 하진을 바라봤다.“네가 말할 기회가 없다.”이재가 곧바로 조사위원회와 이사회에 참고인 진술 요청서를 보냈다.표결 십 분 전, 이사회 의장이 하진에게 제한된 원격 발언을 허용했다.화면 속 오혜련이 먼저 입을 열었다.“피해자가 가해자의 자리를 지키러 왔군요.”“자리 지키러 온 게 아닙니다.”하진은 서우와 다른 화면에 앉았다.“강서우 씨가 저지른 잘못은 제 사랑
하진은 첨부 문서를 열었다.기억을 지우는 치료도, 영구적인 접촉 금지도 아니었다.고용량 진정제와 급성 스트레스로 인한 기억 혼란이 안정될 때까지과거 사건의 직접 고지와 관련 인물의 면담을 제한한다.적용 기간은 삼십 일이었다.그 뒤에는 의료진이 하진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연장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다.동의자 강서우.이재가 다음 장을 넘겼다.삼십 일째 작성된 재평가 기록이었다.환자는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인지함.과거 사건을 단계적으로 고지할 수 있음.환자가 요청한 인물과의 면담도 가능함.연장 불필요.접촉 제한은 그날 종료됐다.그 뒤의 육 년은 의료 조치가 아니었다.서우가 스스로 이어간 부재였다.재평가 기록 아래 하진의 자필 요청이 붙어 있었다.창문으로 들어왔던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람이 약속했습니다.하진은 끝으로 갈수록 힘이 빠진 글씨를 알아봤다.“나는 찾았어요.”전달 기록도 남아 있었다.수신자 강서우.열람 시각 오전 9시 14분.답변 시각 오전 9시 19분.면담 거부.정민이 숨을 삼켰다.“직접 거절한 거예요?”하진은 같은 두 글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내가 못 알아봐서 안 온 게 아니었네요.”첨부 영상은 하진의 재평가가 끝난 뒤 촬영된 의료진과 서우의 상담 기록이었다.의사가 먼저 말했다.“윤하진 씨가 당신과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확인했습니다.”“현재 상태라면 짧은 대화가 가능합니다.”서우는 문고리를 바라보다가 손을 내렸다.“내가 들어가면 하진은 나를 따라오려고 할 겁니다.”“그 선택은 환자에게 있습니다.”“그 선택 때문에 다시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위험을 설명한 뒤에도 본인이 원한다면요?”서우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오늘은 만나지 않겠습니다.”현재의 하진이 영상을 멈췄다.“오늘만 거절한 것처럼 말했네요.”이재가 상담 뒤에 첨부된 문자 기록을 열었다.오혜련이 보낸 메시지였다.윤하진에게 접근하면 병원에서 가져온 원고와 원저자 목록을
'나는 오늘 강서우를 죽였다.'하진은 첫 문장을 다시 읽었다.죽은 사람은 몇 시간 뒤 내 앞에 나타나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고 말했다.원고에는 장소와 시각이 적혀 있었다.강태겸의 집 이층 서재.새벽 5시 08분.이재가 6년 전 출입 기록을 불러왔다.“공식 기록에는 없어.”“한 번 더 들어온 거예요.”서우는 새벽 3시 41분 정문으로 들어갔다가 6분 만에 쫓겨났다.그로부터 한 시간 남짓 뒤, 담장을 넘어 다시 들어온 흔적이 원고에 남아 있었다.하진은 다음 문장을 열었다.강서우는 손등이 찢어진 채 서재 창문으로 들어왔다.그는 나를 데려가러 왔다고 하지 않았다.대신 한 가지를 물었다.“전화한 사람이 너를 버렸다고 말했나?”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그는 그 목소리가 자신이 아니라고 했다.하진의 손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나는 가짜 통화라는 걸 알고 있었네요.”정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런데 왜 기억이 안 나는 걸까요?”하진은 답하지 않고 원고를 더 내렸다.나는 그 말을 믿었다.믿는다고 말하면 다시 약을 맞을 것 같았다.그래서 그에게 돌아가라고 했다.강서우는 내가 싫다고 한 말은 무시하면서, 떠나라는 말만은 너무 쉽게 믿었다.화면 속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누군가의 옷깃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을 줬던 감각이 되살아났다.기억은 없었다.그러나 붙잡았던 손만은 낯설지 않았다.“이걸 어떻게 쓴 거지?”이재가 파일의 생성 기록을 열었다.“태겸이 계약 확인용으로 건넨 태블릿이야.”하진이 입력한 모든 내용은 태겸의 개인 서버에 자동 저장됐다.태블릿에는 병원 보호 계정도 남아 있었다.같은 내용이 서우의 보안 서버에 백업된 시각은 이틀 뒤였다.“서우 씨는 육 년 전에 이 원고를 읽었어.”하진은 예약 메일 본문을 열었다.네가 나를 기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다시 나를 선택했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면서도 돌려주지 않았다.하진은 입술을 다물었다.“왜 숨겼는지도 썼어요?”그 아래 문장이 이어졌다.이 원고를 돌려주
“난 아직 놓으라고 안 했어요.”꺼진 화면은 대답하지 않았다.하진은 조사위원회가 보낸 진술서 첫 장을 열었다.강서우와의 관계가 진술에 영향을 주었습니까.하진은 예에 표시했다.정민이 옆에서 그를 바라봤다.“괜찮겠어요?”“사랑한 걸 숨기면 내 진술도 거짓말이 돼요.”하진은 답변란을 채웠다.강서우는 나를 강압하지 않았다.나는 그를 스스로 선택했다.그러나 그가 피해 작가들의 출간을 유지하고 의심을 묵인한 책임은 별개다.다음 질문은 선처를 요청하겠느냐는 것이었다.하진은 아니오에 표시했다.사랑을 감형 사유로 제출하지 않겠습니다.진술서를 전송하자 조사위원회가 공개 가능한 범위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원저자를 확인하고도 판매를 유지한 작품 열한 건.명의 도용 정황을 알고도 조사를 미룬 작품 열여덟 건.윤하진의 동의 없이 체결한 권리 보호 계약 한 건.폐기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인증서 한 건.모든 항목 아래 강서우의 책임 인정이 적혀 있었다.마지막 문항만 답변이 공개되지 않았다.윤하진과의 관계를 수사 목적으로 이용했습니까.조사위원의 질문이 생중계가 아닌 공식 기록 영상으로 남았다.서우가 카메라를 바라봤다.“아닙니다.”“자진 진술서에는 왜 그렇게 작성했습니까?”“윤하진을 공모 의심에서 제외하려고 사실을 왜곡했습니다.”“두 사람의 관계는 무엇입니까?”서우는 한동안 답하지 않았다.“내가 책임을 피할 때마다 상처 입힌 사람입니다.”그가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영상은 거기서 끝났다.하진은 재생 버튼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곧 권리 심사 결과가 도착했다.오혜련의 임시 관리 신청은 기각됐다.원저자 자료가 확인된 열한 작품에는 원저자 이름이 임시 병기됐다.판매와 정산은 최종 판단 전까지 계속 중지됐다.정민은 《겨울의 뒷면》 표지에 올라온 자기 이름을 손끝으로 짚었다.서정민.그 아래에는 원저자 확인 절차 진행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완전히 돌아온 건 아니네요.”“그래도 내 이름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