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나를 망친 남자의 형 침대에서, 나는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전 연인 태겸에게 원고와 이름, 삶까지 빼앗긴 작가 윤하진. 다시 시작된 협박 끝에 그는 태겸이 가장 두려워하는 형, 강서우의 펜트하우스로 숨어든다. 차갑고 위험한 재벌가의 실세 서우는 하진을 숨겨주지만, 결코 대가로 삼지 않는다. 단 하나의 조건은 하진이 원할 때만 다가오는 것. 닫힌 문, 젖은 셔츠, 새벽의 악몽 속에서 피난처는 금지된 욕망으로 변하고, 태겸의 질투와 재벌가 스캔들은 두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하진은 더 이상 빼앗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하기 때문에, 서우의 품을 선택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은 추문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유일한 계약이 된다. 둘은 세상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Ver más"저를 숨겨주세요."
빗물이 코트 자락에서 뚝뚝 떨어져 대리석 바닥에 얼룩을 만들었다.
하진은 그 얼룩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펜트하우스 현관, 안에서만 열리는 두꺼운 문 앞에 강서우가 서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로비를 지나오는 십 분 동안, 하진은 몇 번이나 돌아설까 생각했다.
우산도 없이 걸었다.
신호등 앞에서 두 번 멈춰 섰고, 로비 회전문 앞에서 한 번 더 멈췄다.
그때마다 휴대폰 진동이 손안에서 울렸다.
태겸이었다.
받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삼십 층을 오르는 동안 유리벽에 비친 제 얼굴이 낯설었다.
물에 젖은 머리, 핏기 없는 입술, 벼랑 끝에 선 사람의 눈.
검은 슈트에 넥타이는 이미 풀려 있었고, 셔츠 첫 단추가 열려 있었다.
늦은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그는 하진을 위아래로 훑지 않았다.
대신 젖은 어깨와 떨리는 손끝만 잠깐 보았다.
시선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안심이 됐다.
"강태겸 동생이 아니라, 강태겸 형한테 왔다는 거군."
"맞아요. 태겸 씨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당신이니까요."
서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나."
"아니요. 위험한 걸 알아요. 그런데 지금 저한테는, 위험한 게 제일 안전해요."
빗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채웠다.
하진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추워서인지, 두려워서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서우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안쪽에서 흘러나온 온기가 하진의 뺨에 먼저 닿았다.
"들어와서 말해. 여기서 다 젖은 채로 서 있지 말고."
"동정 안 받으려고 왔어요."
"동정할 시간 없다. 나는 지금 네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궁금할 뿐이야."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알면, 저를 안 받아줄 수도 있어요."
"그럼 말하지 마. 지금은."
하진은 잠시 문턱을 내려다보았다.
넘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발끝이 대리석 바닥의 냉기를 느꼈다.
그래도 발을 뗐다.
젖은 구두가 대리석에 자국을 남겼다.
거실은 넓고 어두웠다.
유리창 너머로 도시의 야경이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줄기가 도시의 불빛을 잘게 부수고 있었다.
낮은 조명 하나만 켜진 거실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보다 아무도 몰래 숨어드는 은신처처럼 보였다.
서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을 하진 쪽으로 밀었다.
화면에는 태겸에게서 온 메시지가 떠 있었다.
[내가 가진 거 다 돌려받을 때까지 못 도망가.]
"이거, 오늘 받은 거예요."
"몇 번째냐."
"세는 걸 그만뒀어요."
서우가 소파에 걸쳐 있던 담요를 집어 하진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손끝이 어깨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닿지 않았는데도 하진의 숨이 먼저 흔들렸다.
담요에서 낯선 온기가 전해졌다.
"조건 없이 재워줄 순 없다.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야."
"조건이 뭔데요."
"내일 얘기해. 오늘은 일단, 그 몸부터 말려."
"오늘 하루만 재워주고 내일 내쫓을 생각이면, 지금 말해줘요.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내쫓을 거였으면 문도 안 열었다."
하진은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서우를 올려다보았다.
이 남자의 얼굴에서 태겸과 닮은 선이 언뜻 보였다.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이상하게도 숨이 트였다.
두 감각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게 스스로도 낯설었다.
"강서우 씨."
"말해."
"저 오늘 밤만 재워달라는 거 아니에요. 저를, 태겸이 못 건드리는 곳에 두고 싶어요."
서우가 처음으로 하진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거실 공기를 갈랐다.
"그럼 내일부터 너는 내 계약 아래에 있는 거다. 그런데 하나만 미리 말해두지."
"뭔데요."
"네가 대가가 되는 계약은 하지 않는다. 숨겨줄 수는 있어도, 사지는 않아."
하진의 눈이 흔들렸다.
그 말이 위로인지 경고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서우는 몸을 돌려 안쪽 복도로 걸어가다가, 문득 멈춰 섰다.
복도 끝, 어둠 속에서 그의 뒷모습만 선명했다.
"방은 두 개다. 네 방은 안에서만 잠긴다. 내가 원해도 못 연다는 뜻이야."
"그럼 당신 방은요."
서우가 어깨 너머로 하진을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 잠깐 다른 것이 스쳤다.
창밖 도시의 불빛이 그의 옆얼굴에 얇게 걸렸다.
"내 방은, 네가 열고 싶을 때만 열린다."
하진은 그 말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젖은 옷자락에서 물방울이 발치로 떨어졌다.
이 집의 문이, 태겸의 손아귀보다 무겁고도 안전하게 느껴졌다.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하진이 메시지를 열자,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옛날, 태겸과 함께 찍었던 사진이었다.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화면 속에서 낯설게 느껴졌다.[이거 뿌리면, 네 새 소설도 못 나갈 텐데.]서우가 그 화면을 넘겨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태겸이군.”“저 사진, 어떻게 아직도 가지고 있는 거예요.”“모른다.”“근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네가 어떻게 대응하고 싶은지다.”하진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었다.“무섭지만, 숨고 싶지 않아요.”“그럼 정면으로 받자.”“명운이한테 바로 연락한다.”명운이 십 분 만에 도착했다.화면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굳었다.“발신 번호 추적하겠습니다.”“근데 이런 협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각오하고 있다.”하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사진 뿌려지면, 저는 또 예전처럼 무너질까요.”서우가 하진의 어깨를 감쌌다.“안 무너진다.”“이번엔 너 혼자가 아니니까.”“그래도 무서워요.”“무서운 거 당연하다.”“근데 이번엔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내가 같이 있으니까.”그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이번엔 다른 사진이었다.하진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이건…”서우가 화면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뭔데.”“이거, 제 예전 원고 초안이에요.”“태겸이 훔쳐갔던 그 파일이에요.”“그것도 가지고 있었다는 거군.”“네.”“이걸로 절 다시 흔들려는 거예요.”[돌아와. 안 그러면 이거 다 공개할 거야.]메시지를 읽는 하진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더 이상 예전처럼 무너지는 눈빛이 아니었다.“강서우 씨.”“어.”“저 답장하고 싶어요.”서우가 잠시 그 눈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써봐.”“근데 무리하지 마.”하진이 휴대폰을 들고 천천히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뿌려. 어차피 그 원고는 이제 내 이름으로 다시 나올 거야.네가 뭘 흘리든, 나는 이제 안 무너져.]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끝
“임시 안건 상정, 통과됐습니다.”명운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서우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담담하게 되물었다.“안건 내용 그대로인가.”“네.”“대표님의 사생활 문제로 회사 신뢰도가 훼손되고 있다는 취지입니다.”“발의자는 강태겸 이사입니다.”“그 사람이, 아직도 이사회에 자리가 있어요?”“명목상으로는 있습니다.”“실권은 없지만, 발의권은 남아 있죠.”서우가 재킷을 걸치며 웃었다.“끝까지 발버둥이군.”“오늘 회의, 저도 가도 돼요?”하진의 물음에 서우가 잠시 멈칫했다.“위험할 수도 있다.”“카메라도 있을 거고.”“위험해도 갈게요.”“이건 저에 대한 안건이잖아요.”“제가 없는 자리에서 제 얘기가 오가는 건, 이제 싫어요.”서우가 그 눈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같이 가자.”회사에 도착하자 로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직원들의 시선이 두 사람을 따라왔다.회의실 문 앞에서 하진이 잠시 숨을 골랐다.“떨려요.”“떨리면 내 손을 잡아.”“여기서는 아무도 뭐라 못 한다.”하진이 그 손을 잡았다.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회의실로 들어섰다.긴 테이블 상석에 오혜련이, 그 옆에 태겸이 앉아 있었다.태겸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번졌다.“형, 이 자리에 그 사람까지 데려올 줄은 몰랐네.”“내 사생활에 대한 안건이라면서.”“당사자가 없는 게 더 이상하지.”“당사자?”“그쪽은 그냥 스캔들의 원인 아닌가.”하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서우가 그 손을 더 세게 쥐었다.“태겸아.”“말 가려서 해.”“왜, 사실이잖아.”“형이 이 사람 때문에 회사 신뢰도를 얼마나 깎아먹었는지, 다들 알고 있는데.”오혜련이 손을 들어 정적을 갈랐다.“둘 다 앉아.”“오늘은 감정싸움 하는 자리가 아니야.”서우와 하진이 자리에 앉았다.태겸의 시선이 하진에게 오래 머물렀다.그 시선 속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미련과 조롱이 뒤섞여 있었다.“자, 시작하지.”“발의자 강태겸 이사, 안건 설명해.”
“어머님이 저녁 식사에 부르셨어요.”하진이 휴대폰 화면을 내밀며 말했다.서우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그 문자를 오래 들여다보았다.“그냥 식사가 아닐 거다.”“무슨 뜻이에요?”“어머니가 갑자기 부르는 자리엔, 늘 목적이 있다.”저녁, 저택의 긴 식탁에는 이미 다른 손님이 앉아 있었다.차윤서였다.하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오혜련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두 사람 다 앉아.”“오늘은 그냥 식사 자리니까.”“어머니,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드신 이유가 있으실 텐데요.”“윤서 양 집안에서, 여전히 너와의 혼사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이사회 절반이 아직도 그쪽을 원한다.”하진의 숟가락이 멈췄다.서우가 그 손을 식탁 아래에서 조용히 감쌌다.“어머니,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끝난 게 아니라, 네가 끝냈다고 우기는 거지.”“회사는 여전히 그 결합을 원해.”윤서가 조용히 잔을 내려놓았다.“어머님, 저도 그 결합 원하지 않아요.”“제 입장도 좀 들어주시겠어요.”식탁 위로 팽팽한 침묵이 내려앉았다.하진은 식탁 아래에서 잡힌 서우의 손을 마주 쥐었다.그 온기만이 유일한 확신이었다.오혜련의 시선이 천천히 하진에게 향했다.“하진 씨.”“이 결혼 이야기, 어떻게 생각해?”모두의 시선이 하진에게 쏠렸다.심장이 크게 뛰었지만, 하진은 고개를 들었다.“저는 그 자리에 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서우 씨 옆은, 제가 선택한 자리니까요.”오혜련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대담하네.”“솔직한 거예요, 어머님.”윤서가 끼어들었다.서우는 하진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어머니, 오늘 이 자리로 뭘 확인하고 싶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제 대답은 변하지 않습니다.”오혜련이 냅킨을 접으며 조용히 일어섰다.“두고 보지.”“이사회가 그렇게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으니까.”그 말을 남기고 그녀가 방을 나섰다.식탁에 남은 세 사람 사이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윤서가 먼저 정적을 깼다.“두 분, 놀라
아침 햇살이 커튼 틈으로 스며들었다.하진은 눈을 뜨자마자 서우의 팔 안에서 몸을 뒤척였다.“잘 잤어?”“네.”“이렇게 푹 잔 거, 오랜만이에요.”서우가 하진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협탁 위에는 물컵과 따뜻한 담요가 놓여 있었다.“몸은 괜찮아?”“괜찮아요.”“조금 나른하긴 하지만.”“나른한 거,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오늘 회의 있지 않아요?”“미뤘다.”“이런 아침은 자주 없으니까.”하진은 그 배려에 웃음이 났다.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아침이었다.“강서우 씨, 저 요즘 자주 생각해요.”“뭘.”“그날 밤, 비 맞으면서 여기 왔던 거요.”“그때 제가 여기 안 왔으면 어떻게 됐을까요.”“모른다.”“근데 매일 아침, 네가 여기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저도요.”창밖으로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비 오는 밤 이 집 문을 두드렸던 그날로부터, 어느새 한 계절이 지나 있었다.“이재가 새 원고 마감 언제냐고 재촉하던데요.”“써야지.”“이번엔 마음 편하게.”“당신은요?”“이사회 일은 좀 안정됐어요?”“안정됐다.”“어머님도 이제, 가끔 먼저 연락하신다.”“신기하네요.”“그 어머님이.”“나도 아직 적응 중이다.”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태겸은 그 뒤로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조용했다.“강서우 씨.”“말해.”“저 오늘, 그 계약서 다시 보고 싶어요.”“서랍에 있는 거.”서우가 서랍에서 낡은 종이를 꺼내 건넸다.하진은 그 위의 글자들을 손끝으로 천천히 짚었다.“이제 이 조항들, 다 의미 없어졌네요.”“의미 없어진 게 아니라, 완성된 거다.”“우리가 이렇게 될 때까지의 증거니까.”하진은 그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강서우 씨, 저 다음 소설 제목 정했어요.”“뭔데.”“그 남자의 형에게 안기면.”서우가 웃으며 하진을 끌어안았다.“그 제목, 이제 완전히 다른 뜻이 됐네.”“네.”“이제는 굴복이 아니라, 선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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