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민건우의 걸음이 서재 문턱에서 멈췄다.
창업주 맞은편에 장성우가 앉아 있었다. 두 손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고, 옆에는 압수된 휴대폰과 외장 메모리가 놓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전략실 회의실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는지, 민건우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장성우가 먼저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민건우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장성우.
테이블.
통화가 끝난 뒤에도 회의실 안은 한동안 조용했다.리치몬드는 김다온을 요구했다.국내 자금줄이 끊겼고, 민건우도 잡혔다. 남은 위험은 김다온이라는 말도 틀리지 않았다.하지만 이다정이 신경 쓰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상대는 김다온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거래 조건을 꺼내지 않았다.그건 아직 보여주지 않은 패가 있다는 뜻이었다.이다정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보안실로 가요.”정유리가 노트북을 챙겼다.“여기서 하면 안 돼?”“기자들 장비가 너무 많아요.”이다정은 유리벽 너머를 바라봤다.회의가 끝났는데도 기자들은 떠나지 않았다. 재단 사무국 직원과 수사관들도 계속 드나들고 있었다.“저쪽은 다온 씨 전화번호뿐 아니라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었어요.”김다온이 낮게 말했다.“대표님 판단이 맞습니다.”
오전 여덟 시 오십삼 분.송하재단 본관 앞은 이미 기자들로 가득했다.검은 차량이 입구로 들어설 때마다 카메라가 한꺼번에 돌아갔다. 전략실 불법 사찰, 창업주 건강정보 유출, 의료법인 차명 자금, 대표 권한 박탈 문건까지. 밤사이 터진 기사만 열두 건이었다.재단은 평소처럼 조용한 얼굴을 유지할 수 없었다.이다정이 탄 차량이 정문 앞에 멈췄다.김다온이 먼저 내렸다.주변을 확인한 뒤 뒷문을 열었다. 이다정은 재킷 단추를 잠그며 차에서 내렸다.플래시가 쏟아졌다.“대표님, 민건우 자문위원과 재단이 관련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창업주 의결권이 이미 위임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김다온 경호팀장과의 사적 관계가 경영 판단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이다정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마지막 질문.밤새도록 자신을 끌어내리기 위해 반복된 문장이었다. 사적 관계. 감정적 판단. 불안정한 승계자.이다정은 질문한 기자를
민건우의 걸음이 서재 문턱에서 멈췄다.창업주 맞은편에 장성우가 앉아 있었다. 두 손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고, 옆에는 압수된 휴대폰과 외장 메모리가 놓여 있었다.조금 전까지 전략실 회의실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는지, 민건우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장성우가 먼저 웃었다.“기다리고 있었습니다.”민건우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장성우.테이블.창업주.그리고 닫힌 서재 문.“자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군.”목소리는 평온했다. 놀란 기색도, 당황한 기색도 없었다.장성우는 그 평온함을 오래 알고 있었다. 민건우는 문제가 생겼을 때 화내지 않는다. 상대가 아직 쓸모 있는지부터 계산한다.장성우가 낮게 말했다.“저도 제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습니다.”“그런가.”민건우가 안으로
철문 밖에서 차량 문이 동시에 열렸다.하나.둘.셋.짧게 끊기는 소리가 지하 주차장 안으로 번졌다.이어지는 발소리.여럿이었다.서두르지 않는다.서로의 간격도 일정했다.김다온은 철문 앞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오른손에는 권총.왼손은 뒤로 뻗어 있었다.이다정의 앞을 막는 손이었다.“몇 명이에요.”“확인되는 인원은 열둘입니다.”낮고 차분한 대답.이다정은 김다온의 등 뒤에서 철문을 바라봤다.“나갈 수 있어요?”“예.”“이길 수 있냐고 물은 거예요.”
복도를 빠져나온 시각은 새벽 한 시를 넘긴 뒤였다.회사 건물 대부분은 불이 꺼져 있었다. 비어 있는 사무실 사이로 전략실 층의 조명만 유난히 밝게 남아 있었다.이다정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민건우가 내일 열 시에 나온다고 했죠.”“예.”김다온이 바로 답했다.“송하재단 비공개 이사회.”“그전에 우릴 칠 거고요.”“가능성이 높습니다.”이다정이 피식 웃었다.가능성.김다온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건, 사실상 온다는 뜻이었다.“그럼 민건우를 만나러 갈 필요 없겠네요.”김다온의 시선이 움직였다.“무슨 말씀이십니까.”“열 시까지 기다려줄 이유가 없잖아요.”이다정이 대표실 문을 열었다.“민건우가 아침에 들고 나올 패부터 전부 없애요.”대표실 안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서류로 가득했다. 전략실에서 가져온 단말기와 저장장치가 회의용 테이블 위에 놓였다.정유리는 들어오자마자 노트북 세 대를 펼쳤다. 서하진은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창가에 섰다.이다정은 테이블 상석에 앉았다.김다온은 옆에 섰다.한 발 뒤가 아니었다.“장성우가 민건우한테 마지막으로 보고하기로 한 시간부터 확인해요.”정유리의 손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정기 보고는 새벽 두 시.”화면 하나가 열렸다.“직접 통화는 안 해. 장성우 계정에서 파일을 올리면 외부에서 가져가는 방식이야.”이다정이 시계를 확인했다.한 시 십칠 분.“사십삼 분 남았네요.”정유리가 고개를 들었다.“가짜 보고 올리게?”“아뇨.”이다정이 장성우의 계정 기록을 바라봤다.가짜는 들킬 수 있다.민건우는 오랫동안 아버지 옆에 붙어 있던 사람이었다. 장성우의 문장과 습관까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그렇다면 가짜를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장성우가 원래 올리려던 보고를 보내요.”대표실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정유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그대로?”“마지막 한 줄만 바꾸고.”이다정이 말했다.“정리안 2차 노출. 대상 통제 실패.”한 박자 쉬었다.“긴급 직접 지시 요청
“예은아, 왜?”“또 뭐 말하려고?”이다정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황예은은 문을 닫자마자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딸깍.“이다정.”예은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기사 뭐야.”그 말에 이다정의 펜 끝이 잠깐 멈췄다.“아침에 봤는데.”예은은 일부러 천천히 말을 끌었다.“너무 잘생겼는데?”이다정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그거 말하려고 들어왔어?”“지금 회사야.”그러자 예은이 어깨를 으쓱했다.“회사 이전에—”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이다정 책상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쳤다.“우리 초등학교 때부터
똑똑.“올라오시면 됩니다.”문 너머로 들린 비서의 목소리는 차분했다.김다온은 짧게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네, 비서님. 알겠습니다.”문을 열자, 넓은 회장실이 한눈에 들어왔다.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도심과 그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이다정의 아버지, 이회장이었다.그는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마치 김다온이 들어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문 닫게.”김다온은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찰칵—이회장은 그제야 몸을 돌렸다.손에는 태블릿 하나가 들려 있었다.“출근 첫날은 어땠나.”“무사히 마쳤습니다
운전석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전화 끊지 마십시오.”아버지가 아니라, 그가 말했다.낮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지금은—제가 운전하고 있습니다.”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했다.“지금 위치 말해주십시오, 기사님.”숨이 거칠었다.“돈은… 부르는 대로 다 드리겠습니다.”이다정은 눈을 깜빡였다.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거래가 아니라 부탁이었다. 잠시 후 남자가 입을 열었다.“어르신.”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무례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
비는 길게 내리고 있었다.밤공기를 적시는 빗방울이 건물 입구 캐노피를 두드렸다.톡, 톡, 톡. 일정한 박자가 귀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이다정은 그 아래 서 있었다.검은 원피스 자락이 무릎에 붙어 있었고,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손에는 휴대폰. 화면에는 대리 호출 앱이 켜진 채였다.술이 꽤 올랐다.머리는 살짝 어지러웠지만, 정신이 아주 흐린 건 아니었다.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왜 이렇게 오래 걸려?’입술을 살짝 깨물며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대기 중.주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