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그 성미대로라면 서로 안 싸우고 지나가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그런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는 건 말이 안 됐다.“하중현한테도 그렇게 설명할 거냐?” 진무천은 어느새 자신이 중현을 상당히 경계하게 됐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하중현 쪽은 직접 조사하게 두십시오.” 도엽은 괜히 손을 많이 대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어차피 여태진에게 정보를 넘긴 사람이 저희 밑에 있던 사람인 건 사실이니까요.”진무천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어제 일이 끝난 뒤에는 다시는 강솔을 볼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강솔은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고, 정작 여태진이 덫에 걸렸다.“이번 일로 우리는 기존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합니다.” 도엽은 웬만한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여태진이 그렇게 판을 깔아 놓고도 강솔이 무사했다는 건, 강솔 곁의 사람들과 하중현의 능력이 저희 예상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뜻입니다. 기존 방식은 통하지 않습니다.”“그럼 네 생각은 뭐냐?” 진무천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애초에 진무천은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판을 짜는 일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예전에 진정숙을 상대할 때도 엄청난 공을 들여야 했는데, 지금의 강솔은 진정숙보다 더 까다로웠다. 게다가 강솔 뒤에 있는 중현은 도저히 계산이 안 되는 변수였다.“요즘 들리는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하씨 집안에서 강솔을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도엽이 말했다. “그쪽을 이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진무천의 눈썹이 움직였다.‘하씨 집안이라니... 하중현의 집안이잖아.’“구체적인 건 하씨 집안 쪽과 먼저 접촉해 본 뒤 정하겠습니다.” 도엽은 아버지가 지나치게 위험한 수는 꺼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말이 통하면 손을 잡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네 형한테는 들키지 마라.” 진무천은 더 나은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도엽에게 맡겼다.“알겠습니다.”“그럼 가서 네 일 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니까 들키지만 마.”“네.”
“걱정 마. 진씨 집안에 정말 그 사람과 손잡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집안을 맡고 있는 이상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거다.” 진무천은 선뜻 약속했다. “다만 이건 알아보기가 좀 까다로워. 너는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니?”“작은외삼촌이요.” 강솔은 일부러 엉뚱한 미끼를 던졌다.진무천과 도엽이 동시에 말을 멈췄다.두 사람 모두 강솔의 입에서 진우찬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네 작은외삼촌이 너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데다 평소 말투나 성격도 좋은 편은 아니지.” 진무천은 은근히 진우찬을 깎아내리면서도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여씨 집안 사람들과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은데, 설마 네 작은외삼촌이기야 하겠니?”강솔은 태연하게 둘러댔다. “그래서 의심만 하는 거예요. 정말 그런지는 외삼촌께서 자세히 알아봐 주셔야죠.”진무천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곤란하시면 억지로 부탁드리진 않을게요. 두 분은 친형제시잖아요.” 강솔은 진무천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일부러 말을 보탰다. “외삼촌께 친동생을 조사해 달라고 하는 것도 사실 편한 부탁은 아니니까요.”“걱정하지 마. 내가 분명히 확인해 주마. 정말 네 작은외삼촌이 한 짓이라면 나도 절대 감싸지 않을 거다.” 진무천은 단호하게 약속했다. “다만 이런 건 알아보는 데 시간이 좀 걸려. 조금 기다려야 해.”“괜찮아요.” 강솔은 예의를 갖춰 답했다.세 사람은 그 뒤로도 한동안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처음과 달리 대화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후반에는 강솔도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건넸지만, 진심이 담긴 말은 하나도 없었다.“시간도 늦었으니 나랑 네 사촌오빠는 먼저 가마.” 진무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른다운 차분함을 보였다.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우리한테 연락하고.”강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두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오자 신동이 강솔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아가씨도 이제 상대 봐 가면서 말하는 법을 배우셨네요.” 신동은 웃으면서도 묘
처음에 만나기로 했던 날은 강솔이 습격을 당하는 바람에 약속이 미뤄졌다.이제 시간이 난 만큼 미뤘던 이야기를 마칠 필요가 있었다.그날 오후, 레미가 강솔을 찾아왔다.여태진이 어떤 수를 더 준비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레미는 만날 장소를 강솔의 집으로 정했다.짧게 안부를 나눈 뒤 강솔은 바로 용건을 말했다. “조사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레미가 곧바로 물었다. “진씨 집안 관련?”강솔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이렇게 바로 맞힐 줄은 몰랐다.레미는 편안한 어조로 설명했다. “사고 나기 전에 네가 나한테 전화했던 걸 보면 여태진 쪽 관련 일은 아닌 것 같았어. 스승님한테도 부탁하지 않은 일이라면 남는 건 진씨 집안 쪽이고.”강솔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예전에 진 회장님이 크게 아파서 입원했던 내막을 알고 싶어.”레미가 바로 답했다. “알았어.”강솔이 덧붙였다. “오래전 일이라 다 못 찾아도 괜찮아.”레미는 확신 있게 말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면 반드시 어딘가에 흔적은 남아 있기 마련이야. 다만 너무 오래돼서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어. 찾고 나면 연락할게.”강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 아래층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잠시 뒤 홍일이 올라와 보고했다. “아가씨, 진씨 집안 쪽에서 사람이 왔습니다.”강솔이 물었다. “누구?”“진무천과 진도엽입니다.”강솔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잠깐 생각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강솔이 내려오자 진무천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아, 괜찮니?”강솔은 겉으로는 예의를 갖췄다. “큰외삼촌이랑 오빠가 여기까지 웬일이세요?”진무천이 직접 말했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이 있었다고 듣고 놀라서 와 봤다.”진무천은 강솔을 위아래로 살펴보며 물었다. “몸은 괜찮은 거지?”강솔이 답했다. “네, 괜찮아요.”진무천이 안도한 듯 말했다. “다행이다. 우리가 그 소식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강솔은 가볍게 웃기만
시후가 도착했을 때 중현은 강 비서에게 일을 지시하고 있었다.지난 일 때문에 중현은 아직 시후에게 불만이 남아 있었다.시후가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내 꼴도 보기 싫다는 거 알아. 나도 부탁받은 거 아니었으면 굳이 와서 네 눈앞에 안 나타났어.”두 사람은 원래 점잖게 돌려 말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시후는 성큼성큼 걸어가 중현의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중현은 한 번 쳐다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후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그래도 강솔의 부탁을 떠올리며 중현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자, 한번 안아보자.”중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옆 소파에 있던 레미도 고개를 들었다.강 비서의 눈이 커졌다.세 사람 모두 시후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도무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시후는 엄청난 부담을 견디며 중현을 안으려 했다. “지난 일은 내가 잘못했어. 사과할게. 서로 한번 안고 지난 일은 다 없던 걸로 하자. 어때?”중현은 한 손으로 시후를 막았다. “갑자기 왜 이래?”강 비서는 눈치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지금은 자리를 비워주는 게 좋다는 직감이 들었다.연애를 해 본 적 없는 시후는 강솔이 말한 ‘여자친구처럼 대하기’가 정확히 어떤 건지 몰랐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본 장면과 주변 연인들의 행동을 떠올렸다. “이렇게 막 거절하면 나 서운한데. 넌 내가 안 불쌍해?”중현의 짙은 시선이 시후에게 꽂혔다. 헛소리를 한 번만 더 하면 바로 밖으로 던져 버리겠다는 뜻이 분명했다.시후는 한발 물러섰다. “됐다. 내가 참지, 뭐.”시후는 책상에서 내려오며 자연스럽게 중현의 컵을 집었다. “따뜻한 물 좀 받아 올게. 날도 추운데 찬 거 너무 마시지 마.”중현이 손으로 막았다. 눈빛만으로도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레미는 더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노트북을 들고 일어났다. “난 먼저 갈게. 둘이 천천히 얘기해.”시후가 입을 열어 해명하려 했다.레미가 갑자기 다시 돌아섰다. “아, 맞다.”시후와 중현
강솔이 아주 차분하게 답했다. “지안 아빠가 친구끼리는 원래 그렇게 지내는 거라고 했어요.”시후는 할 말을 잃었다.‘무슨 친구가 그렇게 지내?’시후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그럼 제가 할게요. 대신 정식으로 시작하기 전에 작은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강솔이 답했다. “말해 봐요.”시후는 진지하게 물었다. “나중에 하중현이 이 일 때문에 저를 없애 버리려고 하면, 그때는 강솔 씨가 한마디만 해 줄 수 있어요?”강솔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바라봤다.시후가 덧붙였다. “막 애원해 달라는 게 아니라요. 그냥 자연스럽게 저 좀 놔주라고 말해 주면 돼요.”강솔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만약에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기면 그렇게 할게요.”중현은 적에게는 가차 없지만 친구까지 함부로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후와 오랜 친구였으니 정말 화가 나도 크게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사람을 시켜 짐과 함께 J시로 돌려보내는 정도일 터였다.게다가 이 일은 원래 강솔과 시후 사이의 약속에서 시작됐다.이야기를 마친 뒤 시후는 돌아갔다.시후를 보내고 강솔은 신동과 홍일을 찾았다. 자신에게 경호가 필요한 건 맞았다. 하지만 이번에 신동이 자신 때문에 죽을 뻔한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두 사람과 이번 일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강솔이 왜 불렀는지 들은 신동은 웃음을 터뜨렸다.강솔이 의아하게 물었다. “왜 웃어?”신동은 웃을 때 밝고 보기 좋았다. “어떤 사람들은 경호원이 목숨까지 걸고 지켜 주길 바라는데, 아가씨는 저희가 다칠까 봐 더 걱정하시잖아요. 아가씨, 경호받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지실 각오가 좀 부족하십니다.”강솔이 눈으로 경고했다. “장난치지 마.”홍일이 차분하게 말했다. “아가씨를 보호하는 건 저희 일입니다. 계약할 때부터 위험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으니 계속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신동도 맞장구쳤다. “맞습니다.”강솔이 다시 말하려 했다. “그래도...”신동은 가
강정숙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강솔은 다른 핑계를 대고 서재로 올라갔다.문서 하나를 열어 놓았지만 그 속의 글자가 단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중현의 모습과 그가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을 구한 사람이 중현이라는 걸 알았을 때 마음이 복잡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안도감과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중현을 향해 단단히 세워 둔 벽에도 아주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하지만 다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좋아하고 신경 쓰는 마음과, 가까이 오는 걸 거부하고 밀어내는 마음이 공존할 수 있었다.그때 핸드폰이 짧게 두 번 울렸다.강솔은 빠르게 생각에서 빠져나왔다.발신자가 시후인 걸 확인한 뒤 마음을 정리하고 전화받았다. 강솔이 말하기도 전에 시후가 먼저 물었다. [저 지금 집 앞인데요. 집에 있어요?]“네. 잠깐만 기다려요.” 강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시후는 밖에서 기다렸다.얼마 뒤 강솔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강솔을 보자 시후는 조금 미안해졌다. 지안의 생일에 강솔과 중현을 같은 공간에 억지로 남겨 둔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강솔은 그 일에 대해 시후에게 따질 생각이 없었다. 지금 머릿속에는 중현과 자신 사이에 계속 생기는 애매한 연결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중현이 자신에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싫었고, 둘이 자꾸 마주치고 얽히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지안의 생일 파티 이후, 두 사람이 만나고 대화하는 횟수는 현저히 늘었다.시후가 먼저 물었다. “어제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어요.” H시에 오기로 한 뒤 레미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이 일을 알게 됐다. 원래는 강솔과 중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미 삼아 물어보려던 참이었다.강솔은 담담하게 답했다. “네.”“몸은 괜찮아요?”“괜찮아요.”시후는 안도했다. 강솔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 가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앞으로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 생기면 그냥 중현이한테 연락해요. 감정 없는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