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한 지 5년, 강솔은 남편에게서 믿기 어려운 청을 받는다. “아연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야. 네가 그 존재를 인정해 줬으면 해.” “네가 허락한다면, 본처의 자리는 언제까지나 너일 거야. 그건 변하지 않아.” 그가 사랑이라 부르는 방식은 강솔에게 배신과 다르지 않았다. 강솔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 하중현이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그 손을 붙잡았다. 하중현은 아내를 맞이한 뒤, 아낌없이 사랑하고 모든 걸 내어주었다. 강솔은 믿었다.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남편뿐이라고. 그러나 이제 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이었는지를. 하중현은 몰랐다. 부드러운 이름을 가진 여자가 얼마나 단단한 의지를 품고 있는지. 그녀는 단 한 번 물러섰고 그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끝냈다. 그리고 그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 하중현은 처음으로, 진짜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른 남자의 팔을 끼고 나타난 강솔이 그의 세계를 다시 뒤흔들었다. 하중현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문 뒤에서 그녀를 몰아세웠다. “강솔... 넌, 정말... 독한 여자야.”
View More몇 달간 팽팽하게 조였던 강솔의 마음이 그제야 완전히 풀렸다. 신동의 이야기를 듣고, 홍일의 기상천외한 답변을 듣고, 여윤재와 진환식이 가끔 주고받는 말다툼을 들으며.시간은 흐르고, 즐거움은 이어졌다.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모두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즐거워했다.저녁 식사는 8시가 넘어서야 완전히 끝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여윤재가 자진해서 설거지를 맡았다. 강정숙이 자기가 그저 와서 먹기만 한 사람이라고 여기길 원치 않았다.중현은 어떻게 됐을까?식사를 마치고 다들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었다.진환식이 신동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중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화면을 보니 하준호의 전화였다.“전화 좀 받고 올게.”중현이 강솔과 지안에게 한마디 남기고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강솔과 지안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별다른 말은 없었다....정원 밖에서.중현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밤하늘 아래에서 통화 버튼을 옆으로 밀었다. “무슨 일이세요.”[아직 안 들어오고 뭐 하는 거야?]하준호는 의자에 앉아 자기 앞에 놓인 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고 있었다. 어조는 차갑고 엄숙했다. [음식 다 식어가.]중현이 짧게 답했다. “안 갑니다.”하준호가 단번에 화를 냈다. [명절에 안 들어오면 뭐 하자는 거야? 모두 너 기다리고 있어.]“기다려서 뭐 하시려고요?” 중현의 말투에 옅은 비웃음이 묻었다. “제가 아버지의 젓가락이라도 됩니까, 아니면 그릇입니까?”[하중현!]하준호의 목소리가 단숨에 높아졌다.중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감정 변화도 없었다.“다른 일 없으시면 끊겠습니다.”[너 지금 강솔이랑 있는 거지?]하준호가 중현이 전화를 끊기 전에 한마디 던졌다. 미간이 무겁게 가라앉고 안색이 험악했다. [평소엔 네가 강솔이랑 같이 시간 보내면서 회사 일 신경 안 써도 한마디 안 했지만, 명절 가족 식사조차 안 오는 건 이 집안을 너무 안중에 두지 않는 거 아니야!]중현은 이런 말이 지긋지긋했다.
“그건 정숙이가 절 안쓰러워한 거고, 겸사겸사 하중현 그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혼자 시험해 보려 한 거예요.” 여윤재가 자기 자신을 위해 변명거리를 찾아냈다. 자기가 못한다고 인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나 같은 늙은이를 속이는 거야 별문제 아니지만,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게 진짜 안쓰러운 거지.” 진환식이 받았다.여윤재가 입을 다물었다.‘도무지 이해가 안 됐네.’ ‘하중현 그놈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사업도 잘되고, 외모도 출중하고, 이젠 요리까지 할 줄도 알고...’‘그리 바쁘게 사는 시간 동안, 그놈은 그렇게 한가했단 말인가?’이 의문은 강정숙에게도 살짝 호기심을 일으켰다. 중현이 침착하게 두 가지 요리를 마치고 마지막 찌는 단계만 남았을 때, 강정숙이 입을 열어 물었다. “요리는 언제 배웠어?”“16살쯤이에요.” 중현이 답했다.강정숙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중현이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해외로 유학하러 가서 거기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직접 만들어 보다가 배우게 됐어요.”이 대답이 오히려 강정숙은 더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하씨 집안의 재력과 권세라면, 현지 음식을 만들어 줄 요리사 한 명 정도는 쉽게 붙여줄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직접 요리에 손을 댔을까?’사실은 그때 하준호가 서씨 집안과 한창 다투던 중이라 중현 쪽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중현의 머릿속에는 학업을 마치고 빨리 돌아갈 생각밖에 없어, 요리사 같은 것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그 뒤 한 시간 동안, 중현과 강정숙은 계속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강솔이 부른 도우미 두 사람은 오히려 별로 도울 거리가 없었다.강솔과 홍일 일행은 바깥쪽을 멋지게 꾸며 놓았다. 사방에 명절 분위기가 가득하면서도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는 분위기였다. 평소엔 여윤재도 진환식도 이런 일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올해만큼은 새해가 유난히 격식 있고 의미 있게 느껴졌다.순식간에 저녁 6시가 되었다.모든 음식이 준비돼 식탁에 올라왔다. 색과 향과
“이거 다 처리할 수 있어?”강정숙이 중현 앞에 놓인 식재료들을 한번 훑었다.“네.”“그래.” 강정숙은 덤덤하게 말했다.“이건 자네한테 맡기고, 난 다른 일 보러 갈게.”중현이 답했다.“네.”강솔은 1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중현이 강정숙한테서 호감을 얻어냈다는 사실에 전혀 생각이 못 미쳤다. 진환식과 이야기를 마치고 정원으로 나가 홍일 일행과 두어 마디 나눈 직후,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여윤재가 건 전화였다. 강솔이 받았다. “회장님.”[새해 복 많이 받아, 솔아.] 여윤재의 목소리가 낮고 느렸다. [네 엄마는? 방금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엄마 주방에 계세요. 핸드폰은 서재에서 충전 중이에요.”여윤재가 가볍게 헛기침했다. [미안하지만 핸드폰 좀 가져다줄 수 있겠니?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네.”강솔이 답하고 나서 막 걸음을 옮기려는데, 지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엄마!”강솔의 발걸음이 멈췄다. “왜?”“오늘 저녁 진짜로 아빠가 만든 음식 먹는 거야?” 지안의 목소리는 또랑또랑하면서도 멀리까지 잘 들렸다. “아빠 몇 달째 요리 안 하셨잖아. 예전 같을 수 있어?”전화 너머의 여윤재가 멈칫했다. ‘하중현이...?’강솔이 지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예전에도 석 달이나 요리 안 하다가 했는데, 너 그때도 잘만 먹었잖아.”마음속으로는 의아했다. ‘지안이는 입맛이 별로 까다롭지 않은 편인데...’‘자기 아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지?’[솔아.]여윤재가 강솔을 불렀다.“바로 엄마한테 갈게요.” 강솔이 지안의 볼을 살짝 꼬집은 뒤 자리를 떴다.여윤재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중현이 거기 있어?]강솔이 잠시 생각하더니 솔직히 답했다. “진환식 회장님 모시고 왔어요.”‘진 회장도 거기 갔다고?’[아빠가 갑자기 좀 처리할 일이 생겨서...]여윤재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차분하던 어조에 평소보다 감정이 묻어 있었다. [
강솔의 마음이 조금 조였다.진환식이 강솔이 걱정하는 걸 보고 안심시켰다. “괜찮아, 진짜로.”“앞으로 외출하실 때 천천히 다니세요.” 강솔이 거듭 생각한 끝에 결국 그 말을 꺼냈다. “불편한 거 있으시면 바로 병원 가시고요.”“그래, 그래.” 진환식은 강솔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게 즐거웠다. “할애비가 우리 솔이 말대로 하마.”강솔이 그를 부축해 거실로 안내했다.중현은 줄곧 강솔 곁에 따라붙어 있었다.진환식에게 차와 간단한 다과를 내놓고 나서야 강솔은 중현에게 첫마디를 건넸다. “지안이는 위층에 뭐 가지러 갔어. 좀 있다 내려와서 홍일 씨랑 같이 작은 장식등 걸 거야.”“응.” 중현이 짧게 답했다.그는 가지 않고 그대로 있자 강솔의 눈에 의구심이 더해졌다.“넌...” 중현이 물었다.“뭐가?” 강솔은 잠시 알아듣지 못했다.“좀 있다가 뭐 할 거냐고.” 중현이 주변을 한번 훑어 도우미가 보이지 않자, 천천히 말했다. “내가 도울 일 없어?”강솔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중현이 진환식과 함께 온 게 아니었다면 진작 쫓아냈을 것이다.“안 바쁘면 주방으로 와.” 강정숙이 갑자기 나타났다. 강솔만큼 거리낄 게 없는 강정숙에게 중현은 어차피 같이 저녁을 먹을 사람이었고, 그렇다면 일손으로라도 부려 먹는 게 나았다.“네.” 중현이 답했다.그는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지안이 마침 자기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들고 내려왔다.곁눈으로 중현을 발견한 지안은 인사도 안 하고 짧은 두 다리로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보드라운 목소리에 살짝 들뜬 기색이 묻어 있었다.“신동 삼촌, 이것 좀 나무에 달아 줘.”“그래.” 신동이 답했다.지안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도.”“알았어.” 신동은 지안의 부탁을 다 들어주었다....어느새, 집 전체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신동과 홍일은 지안을 데리고 집 안을 꾸미기도 하고 함께 놀아 주기도 했다. 아이는 수시로 까르르 웃어댔다.강정숙과 중현은 주방에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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