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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Author: 희나리K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9 06:11:28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남은 와인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

따뜻한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는 거실, 커다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은하를 제외한 세 사람은 이미 약간 취기가 오른 듯 볼이 발그레 붉어져 있었다.

민희는 소파에 몸을 푹 던지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기분 너~무 좋다.”

태하는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미세하게 느긋해진 말투가 살짝 취기가 올랐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이현이 소파 한쪽에 기대 앉아 피식 웃었다.

“정민희 완전 술고래 아니냐?”

“웃겨. 지는 그럼 술취한 꽃게냐?”

“그놈의 꽃게 얘기 좀 그만 해라 진짜.”

은하는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사이다가 든 잔을 만지작거렸다.

자신만 취하지 않은 채, 세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조금은 신기하고 어색했다.

잠시 후, 민희의 핸드폰이 울렸고 화면을 확인한 눈이 반짝였다.

“히잇, 우리 수혁이잖아? 나 전화 좀.”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남긴 채, 신나게 2층으로 올라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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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135화

    하루종일 불안했던 이현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우주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은하는요? 깨어났어요?” “아니, 아직.”이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적어도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깨어났을 줄 알았는데.“혹시 문제 있는거 아니에요? 왜 아직도 못깨어나요?”“호흡도 안정적이고, 산소포화도도 정상 범위야. 지금은 의식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우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 감춰진 긴장감은 숨길 수 없었다.“아, 그럼 저희는 서연이한테 좀 들렀다가 병원으로 갈게요.”“그래.”은하도 소중했지만, 서연이도 소중한 친구였다.장례식장에서 은하가 쓰러지면서,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했고.하지만 도착한 장례식장 분위기가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뭔가가 부산스러운 느낌이랄까.소식을 듣고 온 태하가 이현과 민희를 향해 다급히 다가왔다.“얘들아. 서연이… 새벽에 발인을 한다고 하네.”“뭐? 그렇게 빨리?”최소한 삼일장은 치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고작 하루 만에 장례가 끝난다고? 아직 제대로 된 인사도 못했는데…?“벌써? 왜?”“할머니가 그렇게 하길 바라신대.”다시 한번 둘러본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아니, 너무 조용했다.얼마 후면 서연이는 이제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지는데, 왜 이렇게 허무하고 맥이 빠지는 건지. 아직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은하는 깨어나지도 못했는데.민희가 태하와 이현의 등을 떠밀었다.“너네는 얼른 은하한테 가.”“뭐? 너는?”“나는 서연이 옆에 있을게. 나까지 가면 외롭잖아.”이현과 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함 반, 고마움 반.“그럼 시간 맞춰 올게.”이현과 태하는 서연이의 영정 사진을 한 번 더 바라본 후, 조용히 장례식장을 빠져 나갔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지만, 은하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왔어?”“형님. 도대체 왜 이러는 거에요?”“이상해요.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잖아요.”호흡도, 산소포화도도, 심박수도 안정적이었다. 수치들은 모두 당장이라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134화

    이현과 태하는 우주가 이러는 이유를 도무지 몰랐다.“도대체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예요?”“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너희는 이제 고3이야. 대학도 가야 하고, 각자의 미래도 준비해야 해.”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현이 씩씩거렸다.“그래서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형님, 저는 같은 대학을 가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친듯이 노력하고 있다고요. 제 미래에는 이미 강은하가 포함이라고요.”우주는 이현의 대답에 놀라긴 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이현아. 그런 뜻이 아니야. 앞으로 너희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야.”우주의 말은 지독히도 현실적이었다. “나한테는 선택지가 없어. 나는 은하를 위해 의사가 됐고, 내 선택은 이미 끝났어. 하지만 너희는 다르잖아. 아직 어리고, 앞길이 창창하고, 남은 인생은 모조리 기회란 말이야.”태하는 우주와 이현의 대화를 한참을 듣더니,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시작했다.“형님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를 미리 걱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지금 은하에겐 저희가 필요하고, 저희에게도 은하가 필요합니다.”우주의 눈동자가 아래로 향했다. 오늘따라 이 녀석들이 자신보다 더 어른같달까.“그리고 은하요, 전보다 많이 밝아지고 강해진 거 아시잖아요. 혹시 알아요? 정말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그때 은하가 오히려 저희보다 더 강해져 있을지.”이현도 태하의 말을 듣고는 이제야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형님. 형님까지 이러시면 저희 정말 서운합니다. 우리 미리 겁먹지 말아요. 네?”이현과 태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더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그저, 고맙고 애틋했다.“쪽팔리네. 형이 걱정이 너무 과했다. 아, 내일 학교들 가야지! 어서들 들어가.”“아… 형님은 아직도 저희를 잘 모르시네요.”“진짜. 서운하네요. 그동안 같이 먹은 밥이 몇 끼인데.”우주는 그들의 말 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오늘도 은하를 두고 떠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133화

    민희는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한참을 입을 다문 우주가 이현과 태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잠깐 나가자.”“네? 은하는요?”“약 기운 때문에 한참 동안 잘 거야. 나가서 얘기 하자.”조심스레 병실을 나와 병원 한 켠에 위치한 휴게실로 향했다. “장례식장에서 은하가 어떻게 쓰러졌는지,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처음에는 그냥… 힘들어하는 것 같았어요. 서연이 영정사진을 보고 나서부터, 은하 얼굴이 점점 하얘지더라고요.”이현이 말을 이었다.“그러다 갑자기 한참을 움직이지 않더니, 손을 떨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확실히 이상했어요.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고, 그동안 은하가 힘들 때 보이던 반응이랑 비슷했어요.”우주의 표정이 더욱 더 심각해졌다.“은하가 아무래도, 기억을 떠올린 것 같네.”“네? 무슨 기억이요?”“아마도 부모님에 대한 기억 일거야… 지금은 어디까지 떠올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부모님 사고와 관련된 무언가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아.”“형님, 단순한 사고가 아니셨던 거에요?”“아니, 사고 맞아. 다만, 은하가 자책할 만한 사고인 건 분명해.”이현과 태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부모님의 사고를 왜 강은하가 자책을 해? 말이 안 되잖아.“…그게 무슨 뜻이에요?”“형님…?”한참을 고민하던 우주는 결국 모든 걸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은하가 사건 이후 많이 힘들어했어.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그때부터 부모님 사이에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어. 어머니는 하루빨리 정신과 진료라도 받기를 원하셨고, 아버지는 은하가 그것조차 싫어하니까 시간을 좀 갖자고 하셨고. 그리고 그날… 결국 동료 의사분께 상담이라도 받아보시겠다고 급하게 나가신 거야.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거든.”“그래서 비 오는날 천둥 소리를…”우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 은하가 유괴 당하던 날도 비가 많이 왔어.”비 오는 날, 천둥이 치는 날. 은하가 두려워했던 요소들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132화

    서연이의 빈소가 차려졌다.학교 앞의 혼란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이곳은 조용했다.아니, 차라리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았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만이 가슴을 치며 울고 계셨다.“아이고, 우리 서연이… 우리 착한 서연이…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 이 나쁜 놈들아… 우리 서연이가 뭘 잘못해서… 도대체 그 착한 아이를 왜….”비통한 광경에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담임 선생님이 말없이 할머니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할 뿐이었다.네 사람은 꺽꺽거리며 서연이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귀여운 얼굴. 도무지 이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 친구 서연이.은하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서연아….”한참을 흐느끼며 서연이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무언가 익숙한 장면이 은하의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그건 어릴 적, 이곳의 분위기와 비슷한 장례식장의 모습이었다.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 눈물을 쏟아내며 자신을 안아주던 사람들.그게 다가 아니었다. 옆에서 흐느끼던 오빠의 모습은 물론, 환하게 웃던 부모님의 얼굴이 담긴 영정사진까지 또렷해졌다.'뭐지….'이상했다.납치, 부모님의 죽음. 어린 시절의 기억은 물론 그 해의 기억은 마치 삭제된 듯 없어져 버렸는데. 하필이면 지금, 장례식장 분위기가 전해주는 그 분위기를 느낀 순간. 모든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서늘한 감각이 빠르게 온몸을 덮쳐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하지만 한 번 떠오르기 시작한 기억은 멈추지 않았다. 또 다시 다른 기억으로 빠르게 연결되었다. ***유괴 사건 이후, 은하는 말을 잃었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고, 혼자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다. 부모님은 그런 은하를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지만 은하는 그 역시도 거부했다.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부모님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던 건.그날 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밤.부모님은 처음으로 격한 목소리를 쏟아내며 말다툼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131화

    상담실에 들어선 후, 담임 선생님이 어두운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의자에 앉으면서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모두의 시선이 선생님에게 집중되었다.“얘들아, 이미 소식들은 들어서 알 테지만… 너희가 서연이랑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었으니까.” 은하가 가장 먼저 힘겹게 입을 열었다.“선생님… 도대체 서연이 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담임 선생님은 한참을 망설이듯 주먹을 쥐었다가 풀다가를 반복했다.“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경찰에서도 이 사건을 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 중이야.”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의 입에서 직접 듣는 순간, 그 사실은 비로소 선명한 현실이 되었다.태하가 물었다.“…사인은요?”“너무나도 잔인하지만, 목이 졸려 살해 당했어. 손 발도 묶인 상태로 발견됐고.”네 사람의 얼굴이 일순간 하얗게 질렸다.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까. 차라리 이 모든 게 그냥 끔찍한 꿈이었으면 좋았을까. 잔혹한 진실이 그들의 가슴을 후벼팠다.“오늘 오후에 부검 결과가 나오면, 장례식이 진행 될 거야.”장례식이라는 단어조차도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서연의 죽음을 더이상 부정할 수 없다는 걸 강제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처절한 단어.“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너희들도 절대 혼자 다니지 말고 꼭 붙어 다니고.”수업이 시작되기 전, 학교 전체에 방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학생들은 당분간 범인이 검거될 때까지 절대, 밤늦게 혼자 돌아다니지 않도록 주의 하시길 바랍니다.]아이들의 눈빛이 공포와 긴장으로 가득 차 올랐다.***진료실 안,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우주는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긴장감을 가라앉히려 깊게 숨을 들이마셨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속이 울렁거렸다. “박 형사님. 안녕하세요. 강우주입니다.”“아 네. 우주 씨. 은하양은 잘 지내고 있나요?”익숙한 목소리였다.9살이던 은하가 유괴를 당했던 당시 사건을 맡았던 형사.부모님 장례식에도 오셨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130화

    한참을 앉아 흐느끼던 은하가 우주에게 뛰어가 안기더니,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깜짝 놀란 우주가 은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손바닥으로 등을 쓸어 내렸다.“은하야… 왜 울어? 응? 무슨 일 있었어?”“오빠… 서연이가….”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기만 하는 은하.우주는 그런 은하를 안아주며 이현과 태하, 민희를 바라보았고 이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태하야, 다들 무슨 일이야? 응? 서연이가 왜?”“….”“무슨 일이길래 다들 이러고 있어. 말 좀 해봐.”태하가 입술을 달달 떨며, 한마디를 내뱉었다.“서연이가… 죽었대요.”“…뭐?”우주 역시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도대체 고등학생에 왜, 그 어린 게 왜.은하는 우주의 품에서 여전히 흐느꼈고, 민희는 입을 가린 채 눈물을 떨구었으며, 고개를 돌린 이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태하는 굳은 얼굴로 다시 한 번 현실을 전해주었다.“진짜래요, 진짜로 서연이가 죽었대요….”심장이 쿵 쿵 뛰었고, 숨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불현듯 서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글동글한 안경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말간 얼굴. 자신을 보고 쑥쓰럽게 인사하던 그 기어들어가던 목소리까지.“….”이제야 그는, 눈앞의 아이들이 왜 이토록 무너져 있는지 깨달았다.이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은하야, 어떻게 된 거야?”은하는 여전히 울기만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현이 은하 대신 대답했다.“오늘 강 옆에 둑에서 발견 됐대요. 사고가 아니라… 살해 당한 거라고….”괜히 물었다. 이건, 정말로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잔혹한 대답이었다.이미 아이들의 눈은 붉게 물든 걸 지나쳐 퉁퉁 부어있었다.그리고, 누구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게 분명했다.“얘들아,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오늘은 다 같이 있자. 응?”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4화

    태하는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로, 동시에 확고한 분위기를 풍기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이현과 은하 사이에 정확하게 멈춰 섰다. 시선은 은하를 먼저 스쳤다. 짧고도 묘한 무게감이 담긴 눈빛은 곧장 이현을 향해 차갑게 바뀌어갔다.“그만 좀 해.”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현은 태하를 바라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어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한쪽 입술을 비틀며 지어 올리는 미소, 아직도 벽에 기댄 채 잔뜩 긴장하고 있는 학생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이현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손을 뻗었다.‘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3화

    시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강우주.조용한 진료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업무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 하다 가도, 다시금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은하는 괜찮겠지….”정신과 의사인 우주. 사실 그가 정신 의학과라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동생, 은하 때문이었다.은하가 9살이던 그날 이후. 그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했던 사건이 지나간 후, 은하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활기라곤 온데간데 사라졌고, 과거의 기억을 잃었으며, 때때로 보이는 불안한 모습과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들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화

    이번에도 말없이 선생님을 따라 걸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몇몇 학생들의 흘깃거리는 눈초리가 느껴졌다.아무리 고개를 숙이고 걸어도, 모든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첫 날이라 그래, 이것도 내일이면 괜찮아 질거야.'2학년 3반 교실 앞에 다다르고 나서야 작은 목소리를 냈다.“저기… 선생님.”“응?”“전학생 소개는 선생님께서 이름 정도만 해주시고요… 저는 바로 자리에 앉고 싶은데요.”선생님은 은하의 표정을 살피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알겠어. 부담 느끼지 말고 편하게 있으면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1화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치는 어느 가을날, 희뿌연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은하는 옷장에 걸린 새 교복을 바라보았다. 단정하게 걸려 있는 교복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속삭이는 듯했지만, 은하에게는 그저 낯설고 무거운 천 조각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벌써 세 번째 전학. 이제는 익숙해야 할 것 같은데도, 여전히 이 순간은 낯설었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고등학교 생활은 아직도 1년도 넘게 남아있었다.학교를 옮길 때마다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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