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음 날 아침, 은하의 집으로 향한 이현과 태하가 우주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형님, 은하는요?”“좀 괜찮은가요? 밤에는 어땠어요?”그때, 은하의 방문이 열렸다.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됐다.하지만, 눈두덩이가 무너져 내린 듯한 얼굴에 입이 다물렸다. 대체 얼마나 운 건지.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하는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야 강은하….”“은, 은하야….”은하는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올려 뜨며, 이현과 태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니네 혹시 선글라스 없어?”“어…?”“…선글라스?”이게 지금 무슨 질문이지? 선글라스라니.“학교는 가야 될 거 아니야. 이러고 어떻게 가.”“다, 다들 놀랄 것 같긴 하다.”“와, 강은하. 그동안 네 얼굴에서 눈이 되게 큰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주가 활짝 웃었다.“선글라스는 오빠도 있지! 진짜 줘? 진짜 쓰고 갈 거야?”“응. 줘.”이현과 태하는 말도 안 되는 은하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교복에 선글라스라니? 그건 아니잖아.“강은하… 진짜 쓰고 가게?”“어.”“그럼 혹시… 오늘은 우리 따로 등교하는 건 어때?”은하가 씩씩거리며 좁아진 눈을 더 좁혔다.“설마 창피한 거야? 백이현?”“미안하다. 나는 패션 테러리스트는 좀 그래.”“백이현. 은하 지금 시야 좁아져서, 우리가 챙겨줘야 된다고.”“하, 골치 아프네 이거 또.”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지키고 있었고, 지금의 은하에게는 그 자체가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었다. 결국 교복에 선글라스를 낀 채 학교로 향하는 은하.문제는, 그 옆에서 걷는 이현과 태하의 눈에도 선글라스가 씌워져 있었다는 것. 특히나 이현의 선글라스는 화려한 알맹이의 레저용 선글라스였다.태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이현을 바라보았다.“너는 지금 당장 관광 버스 운전해도 되겠다.”“멋지면 그냥 멋지다고 해라.”“하….”은하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지나가며 마주친 사람들은 물론,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모든 시선이
병실로 들어선 이현과 태하가 한껏 당황했다.우주와 은하가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어?” “우리… 타이밍을 잘못 맞췄나?”최대한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 병실을 나가려던 순간, 우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딜 도망가. 들어와.”멋쩍은 웃음과 함께 은하에게 다가간 두 사람은 은하의 상태부터 살펴보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걱정했던 모습과는 달리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서연이는?”은하의 질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먹먹했지만, 대답을 해야만 했다.“새벽에… 잘 보내주고 왔어.”“보내주다니? 어딜?”은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이현이 은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서연이는 이제 납골당에 있어.”멍해졌다. 긴 꿈을 꾸는 동안 서연이가 완전히 떠나버렸구나. “…벌써?”“서운해 하지 말라고, 너랑 인사 하러 또 온다고 안심까지 시켰으니까 너도 걱정하지 마.”이현의 말은 진심 어린 위로였지만, 서연이 떠난 건 변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이었다.우주가 은하의 등을 쓰다듬었다.“은하야, 서연이한테 인사하러 가야지?”“…응.”은하의 대답을 들은 우주는 이현과 태하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들의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다.“잠도 못 자고 힘들었을 텐데, 들어가서 좀 쉬어. 은하는 나랑 같이 다녀오면 되니까.”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의 몫은 남겨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네. 형님.”“알겠습니다.”그리고 이현은, 은하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인사 잘 하고 와.”너무 많이 울지 말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납골당으로 향하는 길, 은하는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세상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가슴은 한없이 아프고 무거웠다.잠시 후, 작은 유리함 속에 있는 친구 서연이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은하의 손이 조심스레 봉안함을 쓰다듬었다.“서연아, 미안해. 이제야 왔네. 생각해 보니까 우리는 같이 찍은 사진도 한 장 없구나…. 그래
모든 수업이 끝나고 종례만을 앞두고 있던 그때, 이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현아, 은하 일어났어.”드디어 우주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이현과 태하는 종례만을 남겨둔 채 가방을 집어들었다.***병실 안, 이제야 깨어난 은하는 분노와 혼란에 휩싸인 채 우주에게 모진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왜? 왜 그동안 숨겼어?”“은하야. 숨기다니.”“왜 아무것도 안 알려줬냐고! 그냥 사고라고 했잖아!”“사고 맞아. 빗길에 차가 미끄러졌고,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신거야.”우주의 말은 거짓 하나 없이 명확했지만, 은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아니잖아. 다 나 때문이잖아!”은하가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우주는 은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럴까봐 그동안 말 못한 거야. 역시나네, 강은하.”“…뭐?”“부모님이 그날 왜 나가셨을까?”“나 때문에.”“아니? 말 똑바로 해. 사랑하는 딸이 힘들어 했기 때문이지. 지옥 속에서 살아남은 딸이 더는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뭐라도 해봐야 하니까.”“그러니까 맞잖아. 나 때문에.”이번에는 답답한 듯 한숨이 흘러 나왔다.“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너 때문이 아니라 널 위해서 가신 거야. 널 살리기 위해서. 그런데 너는 그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면서, 감히 부모님의 선택을 왜곡하고 판단하는 거야?”은하는 두 손을 꽉 말아 쥐었다.입술을 달달 떨었지만 더 이상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두 눈에는 눈물만이 차올랐다. “잘 생각 해. 부모님을 위해 네가 진짜 해야 할 일이 뭔지.”문득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려보니, 부모님의 바람과는 정반대였다.늘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트라우마에 갇혀 헐떡이던 순간들. “오빠도 이제 무조건 감싸고 위로만 하고 있진 않을거야. 너 때문이라는생각은 분명히 틀렸어. 틀린 걸맞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오늘의 우주는 달랐다. 냉정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 부정할 수 없는 말들의 연속.
하루종일 불안했던 이현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우주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은하는요? 깨어났어요?” “아니, 아직.”이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적어도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깨어났을 줄 알았는데.“혹시 문제 있는거 아니에요? 왜 아직도 못깨어나요?”“호흡도 안정적이고, 산소포화도도 정상 범위야. 지금은 의식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우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 감춰진 긴장감은 숨길 수 없었다.“아, 그럼 저희는 서연이한테 좀 들렀다가 병원으로 갈게요.”“그래.”은하도 소중했지만, 서연이도 소중한 친구였다.장례식장에서 은하가 쓰러지면서,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했고.하지만 도착한 장례식장 분위기가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뭔가가 부산스러운 느낌이랄까.소식을 듣고 온 태하가 이현과 민희를 향해 다급히 다가왔다.“얘들아. 서연이… 새벽에 발인을 한다고 하네.”“뭐? 그렇게 빨리?”최소한 삼일장은 치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고작 하루 만에 장례가 끝난다고? 아직 제대로 된 인사도 못했는데…?“벌써? 왜?”“할머니가 그렇게 하길 바라신대.”다시 한번 둘러본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아니, 너무 조용했다.얼마 후면 서연이는 이제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지는데, 왜 이렇게 허무하고 맥이 빠지는 건지. 아직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은하는 깨어나지도 못했는데.민희가 태하와 이현의 등을 떠밀었다.“너네는 얼른 은하한테 가.”“뭐? 너는?”“나는 서연이 옆에 있을게. 나까지 가면 외롭잖아.”이현과 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함 반, 고마움 반.“그럼 시간 맞춰 올게.”이현과 태하는 서연이의 영정 사진을 한 번 더 바라본 후, 조용히 장례식장을 빠져 나갔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지만, 은하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왔어?”“형님. 도대체 왜 이러는 거에요?”“이상해요.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잖아요.”호흡도, 산소포화도도, 심박수도 안정적이었다. 수치들은 모두 당장이라
이현과 태하는 우주가 이러는 이유를 도무지 몰랐다.“도대체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예요?”“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너희는 이제 고3이야. 대학도 가야 하고, 각자의 미래도 준비해야 해.”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현이 씩씩거렸다.“그래서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형님, 저는 같은 대학을 가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친듯이 노력하고 있다고요. 제 미래에는 이미 강은하가 포함이라고요.”우주는 이현의 대답에 놀라긴 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이현아. 그런 뜻이 아니야. 앞으로 너희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야.”우주의 말은 지독히도 현실적이었다. “나한테는 선택지가 없어. 나는 은하를 위해 의사가 됐고, 내 선택은 이미 끝났어. 하지만 너희는 다르잖아. 아직 어리고, 앞길이 창창하고, 남은 인생은 모조리 기회란 말이야.”태하는 우주와 이현의 대화를 한참을 듣더니,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시작했다.“형님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를 미리 걱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지금 은하에겐 저희가 필요하고, 저희에게도 은하가 필요합니다.”우주의 눈동자가 아래로 향했다. 오늘따라 이 녀석들이 자신보다 더 어른같달까.“그리고 은하요, 전보다 많이 밝아지고 강해진 거 아시잖아요. 혹시 알아요? 정말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그때 은하가 오히려 저희보다 더 강해져 있을지.”이현도 태하의 말을 듣고는 이제야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형님. 형님까지 이러시면 저희 정말 서운합니다. 우리 미리 겁먹지 말아요. 네?”이현과 태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더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그저, 고맙고 애틋했다.“쪽팔리네. 형이 걱정이 너무 과했다. 아, 내일 학교들 가야지! 어서들 들어가.”“아… 형님은 아직도 저희를 잘 모르시네요.”“진짜. 서운하네요. 그동안 같이 먹은 밥이 몇 끼인데.”우주는 그들의 말 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오늘도 은하를 두고 떠
민희는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한참을 입을 다문 우주가 이현과 태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잠깐 나가자.”“네? 은하는요?”“약 기운 때문에 한참 동안 잘 거야. 나가서 얘기 하자.”조심스레 병실을 나와 병원 한 켠에 위치한 휴게실로 향했다. “장례식장에서 은하가 어떻게 쓰러졌는지,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처음에는 그냥… 힘들어하는 것 같았어요. 서연이 영정사진을 보고 나서부터, 은하 얼굴이 점점 하얘지더라고요.”이현이 말을 이었다.“그러다 갑자기 한참을 움직이지 않더니, 손을 떨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확실히 이상했어요.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고, 그동안 은하가 힘들 때 보이던 반응이랑 비슷했어요.”우주의 표정이 더욱 더 심각해졌다.“은하가 아무래도, 기억을 떠올린 것 같네.”“네? 무슨 기억이요?”“아마도 부모님에 대한 기억 일거야… 지금은 어디까지 떠올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부모님 사고와 관련된 무언가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아.”“형님, 단순한 사고가 아니셨던 거에요?”“아니, 사고 맞아. 다만, 은하가 자책할 만한 사고인 건 분명해.”이현과 태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부모님의 사고를 왜 강은하가 자책을 해? 말이 안 되잖아.“…그게 무슨 뜻이에요?”“형님…?”한참을 고민하던 우주는 결국 모든 걸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은하가 사건 이후 많이 힘들어했어.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그때부터 부모님 사이에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어. 어머니는 하루빨리 정신과 진료라도 받기를 원하셨고, 아버지는 은하가 그것조차 싫어하니까 시간을 좀 갖자고 하셨고. 그리고 그날… 결국 동료 의사분께 상담이라도 받아보시겠다고 급하게 나가신 거야.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거든.”“그래서 비 오는날 천둥 소리를…”우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 은하가 유괴 당하던 날도 비가 많이 왔어.”비 오는 날, 천둥이 치는 날. 은하가 두려워했던 요소들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
“어제 그 말,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뭐?”“유치하다는 말, 굉장히 거슬리더라고?”순간, 주변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살짝 커졌다. 몇몇 학생들이 흘끔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현은 그런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를 즐기는 듯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은하를 지켜보았다.은하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와, 볼수록 웃기는 애네. 이거.”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현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주변 학생들 사이에서도 점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은하는
그렇게 은하의 첫 등교는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약간의 불편한 상황은 생겼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은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은색 차 한 대. 오빠, 우주였다.“끝났어?”하루 종일 바쁜 일정이었을텐데도, 우주는 은하의 첫 등교가 궁금한 탓에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은하는 생각지도 못했던 오빠의 마중에 조금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조용히 끄덕이며 조수석에 올랐다.계절과 다르게 차 안은 따뜻했다. 차창 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오늘, 학교는
태하는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로, 동시에 확고한 분위기를 풍기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이현과 은하 사이에 정확하게 멈춰 섰다. 시선은 은하를 먼저 스쳤다. 짧고도 묘한 무게감이 담긴 눈빛은 곧장 이현을 향해 차갑게 바뀌어갔다.“그만 좀 해.”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현은 태하를 바라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어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한쪽 입술을 비틀며 지어 올리는 미소, 아직도 벽에 기댄 채 잔뜩 긴장하고 있는 학생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이현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손을 뻗었다.‘
시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강우주.조용한 진료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업무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 하다 가도, 다시금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은하는 괜찮겠지….”정신과 의사인 우주. 사실 그가 정신 의학과라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동생, 은하 때문이었다.은하가 9살이던 그날 이후. 그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했던 사건이 지나간 후, 은하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활기라곤 온데간데 사라졌고, 과거의 기억을 잃었으며, 때때로 보이는 불안한 모습과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