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도쿄 출신의 '체리'와 서울 출신의 '지니'. 서로의 본명은 모르지만 SNS DM을 통해 마음속 가장 깊은 공간을 공유해온 지도 어언 2년째. 그러던 어느 날 체리가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두 사람은 마침내 현실 세계에서 조우한다. 서로가 랜선 너머의 그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지율혜'와 '차휘안'으로서 낯설고도 설레는 감정을 마주하는 이야기. 십 년 넘게 쌓아온 화려한 커리어를 뒤로하고 홀연히 연예계를 떠나버린 소녀, 지율혜. 그리고 그런 소녀의 곁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저 역시 그 한복판에 뛰어들겠다는 소년, 차휘안. 유난히 새하얗고 반짝이는 것에 진심이라는 소녀를 위해, 소년은 오늘도 다짐한다. 그녀가 꿈꾸는 단 하나뿐인 아기 토끼가 되어, 평생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겠다고.
View More[난 체리 네가 한국에 오면 좋을 것 같아. 우린 사는 곳이 달라도 이야기가 꽤나 잘 통했잖아? 만약 체리 네가 한국에 온다면 우린 같은 하늘 아래에서 더욱 더 많은 걸 공유할 수 있을 거야. 지니로서는 그래. -gni_moo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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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지율혜.
일본에서는 사카타 리츠에.
십 년이 넘게 아역배우로서 지내온 커리어.
근데 요즘은 제가 속한 화려한 삶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궁금하다는 거지.
당분간 프레임 밖을 벗어나 이 성장통을 견디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로만 알았는데.
결국 또 멍하니 카메라 주위를 맴돌고 있어.
이래서 엄마 아빠 피는 못 속인다는 거겠지.
물론 어느 상황에서든 쉽게 주눅 들 리짱은 아니지만 매너리즘이란 건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쉽게 떠나지 않는다고들 하잖아.
그래서 리짱은 결심했다는 거야.
지금 이 순간 리짱의 마음이 내키는 쪽으로.
“정말이지 리짱 주변 환경을 바꿔봐? 리짱은 여권을 두 개나 갖고 있는걸. 이건 미성년자의 혜택이랬어. 키라키라 신호등은 흔치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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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의 장점? 적당히 다정해! 그 점이 좋아. 친구끼리 크게 바라는 것 없이도 서로 아낄 수 있다는 걸 알려줬으니까. 새 학교에서도 좋은 소식 들려줄게. 지니도 알다시피 오늘은 전학 가는 날이라 바쁠 예정이거든. -cherish_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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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내용은 여느 때와 같이 무난했지만 그 무난함으로 인해 남자는 또 한 번 들끓었다.
잠시 두 눈을 감은 채 혼자만의 사색에 빠져보자면 주변 이들의 시선을 빼앗기란 일 분 일 초를 다루는 시간문제.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의 머릿속은 사월로 잠식돼버렸으니까.
꽃이 피는 4월에 뜨는 보름달을 가리키는 말.
그렇게 4월의 어느 날로 접어들자면 한없이 예민한 사춘기 무지렁이의 감수성도 정점에 다다르는 일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거였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는 커다란 달이 걸려 있었고 부디 제가 바라보고 있는 달의 이름이 핑크문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날.
평소라면 상위 피드에서 그쳤을 스크롤은 왠지 모를 반발심에 저 아래까지 파고들었고 저를 강태공이라는 운명으로 점찍어주었다.
핑크문이라는 키워드와 한 장의 사진.
정확한 형태의 달을 담아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스라이 흩어지는 달빛의 찰나와 반짝이는 물결은 기가 막히게 담아냈다.
“이거였네. 내가 그만 둘 이유.”
아무튼 누군가는 그렇게 속삭였던 거 같다.
인생은 삶과 죽은 사이 선택의 연속이라고.
뭐 있어 보이는 말로 꾸며 보인다 한들 사실은 막연한 이유가 필요했던 게 다니까.
예고 진학을 목표로 두고 입시 미술에 하루 종일 저를 끼워 맞히자면 다른 세계는 영영 들여다보지도 못할 거라는 무적의 논리.
가령 이 환상적인 사진을 찍어낸 주인공처럼 저 역시 또 다른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사춘기 무지렁이 식의 되도 않는 논리.
“어떡하냐...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미친 짓을 다 하고. 그래서 지금 삭제하면 가당키나 해? 읽고 씹히는 쪽보다 안 읽고 씹히는 쪽을 더 걱정해야 하는 이 답변을 기다리는 게?”
물론 제가 세운 그 되도 않는 논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결과를 가져다줬다.
밑져야 본전이라며 취소하지 않았던 DM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펜팔 친구를 사귀게 만들었고 저를 설렘 속으로 몰아넣었다니까.
더불어 흔하디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사춘기 무지렁이로서 제 뮤즈, 아니 체리의 정보 역시 꾸준히 수집할 수 있었고.
체리는 자신과 동갑인 여자 아이이고, 본명 역시 자기소개인 ‘체리’와 관련이 있다는 점.
또한 오래도록 해외에서 지내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올해 초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점.
그렇게 약 2년 가까이 된 시간들로 저희 사이를 가늠해봤을 때, 저와 체리는 실제로 마주해도 꽤나 잘 맞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다만 아직도 모르겠는 건 계정 옆 공인 마크.
제 아무리 SNS 피드가 화려하기는 해도 저 공인 마크를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렇다고 얼굴도 모르는 이와 약 2년이라는 들여 꾸준히 답변을 주고받는 스캠 유저라.
글쎄, 그건 수지타산에 너무 안 맞지.
그래서 저는 체리를 의심하기보다는 믿는 쪽으로 올 인해버린 순애보 지니가 됐다니까.
잔잔하게도 울린 아침 조례 때와는 달리 1교시를 알리는 종소리는 좀 더 우렁찬 느낌.율혜는 제 노선도 정했겠다,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제가 받은 새 교과서를 훑어보였다.그 결과, 설마 했지만 올해도 똑같은 운명.엄마, 아빠, 언니, 오빠, 여동생, 남동생.일본어로 가족 호칭이 적혀있는 낱말 카드 부록을 만지작거린 순간, 세 살배기로 회귀해야 하는 제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는 거다.“39페이지 펴면 돼. 일본어 선생님은 목차 순서대로 수업 진도를 나가지 않아서 조금 뒤죽박죽이거든... 1단원 이후에 5단원으로 갔다가 지난주부터는 2단원으로 돌아왔어.”살짝 멈칫하기는 했어도 제 운명을 받아들인 율혜가 일본어 교과서에서 손을 떼던 그 순간.휘안은 기다렸다는 듯 율혜의 곁으로 다가가 율혜가 펼쳐야 할 페이지를 손수 넘겨주었다.“……!”향에 예민한 율혜는 인위적인 향이라면 저도 모르게 즉각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편이다.근데 어째서인지 휘안의 체향은 남달랐다.달큰하면서 포근하니 가까이 두고 싶은 향.아무튼 향도 주인 따라 간다더니 휘안의 얼굴만큼 예쁘장한 향인 게 확실했다.“고마워, 휘안아~ 근데 향수는 어떤 거 쓰는 거야? 갑자기 궁금해졌어. 향이 너무 좋거든.”“어… 향수? 나 향수 같은 건 안 쓰는데...”저에게 향수의 출처를 물어 보인 율혜에 난감한 듯 자신의 눈가 주위를 긁어 보인 휘안.누군가의 눈에는 앙탈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휘안을 아는 사람들에 의하면 이는 멋쩍거나 부끄러울 때 나오는 행동이기도 했다.그리고 이 행동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휘안과 같은 버퍼링을 겪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었고.“어… 방금 전 내 질문의 의도는 휘안이 향이 좋아서 물어본 건데… 혹시라도 휘안이한테 실례가 됐다면 지금 바로 사과할게. 전학 온 첫날부터 짝꿍을 불편하게 만들다니. 정말이지 내가 잘못한 게 맞아. 미안해, 휘안아.”“어, 아니야! 하나도 안 미안해도 돼! 진짜 불편하다는 거 하나도 못 느꼈어! 내가… 그래! 집 가서 섬유유연제 이름
평소 월요병에 허우적이는 것과는 딴판인 모습.아니, 저희 담임이 지나치게 무뚝뚝한 쪽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이건 밝아도 너무 밝지.저건 다른 의미로서 위험하다는 신호니까.“그래~ 다들 너무 반갑지? 오늘 우리 반에 새로운 전학생이 왔다. 이름은 지··· 율··· 혜.”검은 칠판을 가로지르는 짜리몽땅한 분필의 선을 이토록 집중해서 보았던 적이 있었는가.과연 제 확신대로 우리 반 전학생은 앞태도 옆태도 그 이름마저 예뻤다는 게 증명됐다.“4월에 전학 온 거라 많이들 당황스러울 거 알아. 근데 그건 여기 있는 율혜가 더 그럴 거고. 율혜야. 율혜 짧게 자기소개 좀 해볼까?”휘안은 김미영 선생의 안내에 따라 수줍게도 고개를 끄덕인 율혜가 괜히 더 반가웠다.아까 저와 맨 처음 마주쳤을 때나 제가 나가려던 교무실 문을 잡아줬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거 같아서 말이다.“안녕? 내 이름은 지율혜야. 어쩌다보니 4월에 전학을 왔어. 그래도 앞으로 잘 부탁해.”율혜의 짧은 자기소개에도 환호 섞인 환영.그 중 온 마음 다해 우리 반 전학생 율혜를 환영한 이는 저뿐이라고 확신한 휘안이었다.물론 표정으로서는 잘도 무덤덤했지만.“차휘안?”“네.”담임선생님의 호명에 칼 같은 박자로 손을 드는 퍼포먼스에 율혜의 시선이 한데 멈췄다.보아하니 손을 든 남학생의 옆자리가 제 자리일 것만 같은 예감이 바로 들어섰다니까.“그래~ 휘안이 네가 아침부터 고생이 많았지. 그래도 교무실 온 덕분에 율혜랑 마주쳤잖아. 둘이 짝꿍 되기 전에 미리 인사했다고 생각해. 휘안이가 율혜 잘 좀 챙겨주고. 율혜야. 저기 손 든 친구 옆자리로 가면 돼. 율혜 짝꿍이야.”분명 여고에서 제 짝꿍이며 친구들과 울음 섞인 목소리로 헤어진 게 며칠 전이었는데 이렇게 남자 짝꿍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렇게 애써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창가 뒤쪽 빈자리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서 저를 알릴 수 있었다.“안녕? 우리 또 보네. 네가 내 짝꿍이야?”“응, 만나
그래도 학생은 학생이고 선생은 선생인 법.하마터면 선생으로서의 위엄을 잃어버릴 뻔 했지만 겨우내 마음을 다잡은 김미영 선생은 눈앞의 존재를 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이렇게 잠깐 대화를 나눠본 것만으로도 야물딱지고 부자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게 우리 반에 제대로 된 전학생이 온 게 확실했다니까.“그럼 우리 율혜는 어려운 말이나 사투리만 아니면 잘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거지?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께 율혜 특이사항 전달해놓을게.”“감사합니다. 저 이제 교과서 다 넣었어요.”“그래~ 우리 율혜는 손도 참 빠르네. 아 참, 아까 교무실에 들어올 때 마주쳤던 남학생 두 명 기억하니? 걔들도 우리 반 학생들이었는데.”“아, 그럼 교실에 가면 볼 수 있는 거예요?”“맞아. 우리 반 애들 다 순하지만 걔들은 특히나 더 순해. 한 명은 반장이기도 하고.”전학 첫 날이라면 정신없을 게 당연하지만 작년보다도 배로서 그 정도를 뛰어넘는 중.제 신상 정보를 다 확인했으면서도 아직도 더 할 말이 남았는지 여전히 말이 많으신 모습.그래도 율혜는 저에게 좋은 의미로서 관심을 보이는 김미영 선생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그렇구나. 그 애들이 나랑 같은 반이었구나. 둘 다 엄청 지쳐 보였는데. 특히 한 명은 더.’타인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잡아내는 건 율혜가 가진 주된 특기 중의 하나였다.타고나기를 주변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인 것도 맞았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봐와서인지 또래들보다는 비교도 못할 경험치가 더 쌓였던 거다.“자, 아무튼 이렇게 서류도 다 확인했고. 율혜 교과서도 다 받았고. 이제 교실로 이동해볼까?”“어, 근데 저 할 말이 있어요! 모든 교과서를 다 받은 거 같지는 않거든요. 교과서가 없는 수업을 들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어머, 내 정신 좀 봐! 오늘 못 받은 건 내일 중으로 받을 수 있을 거야. 시간표 보니까 오늘 있는 수업 중에 율혜가 교과서 없는 수업은 없더라고. 아주 예리한데? 첫날부터 나이스~”***도준과 함
하지만 무언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교무실 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걸 알았는지 한껏 싱그러운 미소를 자랑하던 소녀는 행동마저 천사 표였으니까.“문 잡아드릴게요. 지나가셔도 돼요.”“어… 어, 고맙습니다.”교무실 문 하나를 두고 가는 길이 다른 상황.컷 소리와 함께 현실로 돌아오라는 걸 알리듯 장면 전환이 일어나는데 교무실 문이 닫히는 틈 사이로 말간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오늘 전학 오기로 한 지율혜라 하는데요. 담임선생님은 어느 분이실까요?”제 옆을 짧게 스쳐지나간 무리는 안중에도 없는지 담임선생님부터 찾아 나서는 모습.문제는 그 무리에 저가 있었다는 거고 제 시선은 전학생만을 집요하게 따랐다는 거다.“도준아... 나 방금… 심장이 엄청 쿵쾅댔어. 내가 오늘 좀 멍하잖아. 오랜만에 낯선 사람 봐서 긴장했나봐.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돼.”“뭐 낯선 사람이라기에는 너무 전학생이었지. 우리 반 전학생이 될 확률이 아주 높은.”“전학생? 그럼 우리랑 동갑이라는 거야?”“어. 우린 2학년이고 방금 나온 저곳은 2학년 교무실. 그럼 방금 들어간 저 애 역시 2학년일 테고. 오늘 전학생 온다 했잖아. 쟤인가 보네.”이것 참 삼단논법 저리가라 명쾌한 해설에 불과 일 분 전까지 멍하던 눈빛이 바로 섰다.분명 이름도 말했던 거 같은데 정신이 하도 멍해서인지 뭐라 말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아, 이름표를 못 봤어... 쟤도 내 이름표 못 봤겠지? 도준아. 혹시 넌 쟤 이름 기억해?”“몰라. 우리 반 전학생이면 좀 이따 보겠지. 우선 유인물부터 바로 들어봐. 그거 아니었으면 전학생 쟤랑 말 한 마디 못 섞었을 테니까.”“왜? 내가 먼저 말을 걸었을 수도 있지. 아까 문 열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나 혼자 했어. 도준이 넌 입 꾹 닫고 아무 말도 안 했잖아.”“네~ 퍽이나 먼저 말을 거셨겠네요. 너 오늘 여러모로 멍하기는 한가 보다. 빨리 돌아가자. 아침 조례 전까지 자리에 엎드려있기라도 해.”***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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