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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눈굴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7-06 08:55:07

강이 갈라 놓은 눈의 틈은 사람 둘이 들 만한 굴이 되어 있었다. 운설은 그 안으로 그를 끌어들이고, 무너진 눈으로 입구를 반쯤 막아 바람을 죽였다. 밖은 이미 저물어, 협곡 어딘가에서 기수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눈벽 너머 아득하게 오갔다. 목청껏 답해 보았으나 눈은 소리를 먹었다. 구조는 아침의 일이 될 것이었다.

봇짐에서 밀랍 초가 나왔다. 약재상 노파가 눌러 담아 준 두 자루 중 하나였다. 부시를 치자 좁은 눈굴에 노란 불이 앉았다. 눈벽이 그 빛을 되쏘아, 굴 안은 뜻밖에 환했다.

"옷을 벗어야겠습니다." 운설이 말했다.

반쯤 의식이 돌아온 그가 눈을 떴다.

"등의 상처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젖은 옷은 이 추위에 수의(壽衣)입니다." 그녀는 의녀의 목소리를 꺼내 썼다. 꺼내 쓴다고 꺼내지는 목소리가, 오늘은 어딘가 삐걱거렸다. "돌아누우세요."

그는 잠깐 그녀를 보다가, 순순히 몸을 돌렸다. "……환자요." 낮게 그 한마디를 하면서였다. 언젠가 환자가 아니라고 두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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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35화 — 불어나는 것

    얼음여울이 하루 거리로 다가올수록, 강이 이상해졌다.물이 줄고 있었다.봄물이 한창 불어야 할 계절에, 여울로 이어지는 본류의 물가에는 젖은 돌들이 뼈처럼 드러나 있었다. 물이 마르는 것이 아니었다. 물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상류를 막았군."간수문이 말 위에서 마른 물가를 내려다보았다."눈 녹은 물을 어딘가에 모으고 있다. 며칠 치를. 만군이 여울 한가운데 들어서는 시각에 — 한꺼번에."운설은 눈을 감고 강의 감각을 상류로 흘려보냈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 물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갇힌 물. 눌린 물. 며칠 치의 봄물이 좁은 어딘가에 갇혀 몸부림치는 소리. 물마당의 소용돌이도, 불은 물목의 급류도 이것에 대면 실개천이었다."골짜기 하나를 통째로 막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낮아졌다. "물의 양이 — 셀 수가 없습니다. 저 물이 풀리면 여울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류의 벌판까지 한 번에 씻깁니다.""막은 것은 무엇이냐. 둑이냐.""둑이면 차라리 낫습니다." 운설은 감각의 끝에 닿는 그것의 결을 짚었다. 물이 아닌 것. 물을 막고 선 거대하고 차가운 것. "얼음입니다. 골짜기 어귀를 — 얼음으로 막았습니다. 이 계절에, 저 두께로. 사람의 손으로."얼음 궁려에서 여덟 해를 산 사람. 얼음이 어는 차례를 아는 사람. 지키던 자들이 다 죽었다는 그 풍문의 임자.얼음으로 물을 가두고, 때가 오면 제 손으로 얼음을 깨는 것이다. 심법으로 세운 둑은 심법으로만 무너지고 — 그 시각은 오직 한 사람의 손안에 있었다.해 질 녘 행렬은 여울이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능선 아래 진을 쳤다. 운설은 능선에 올라 그 여울을 처음으로 눈에 담았다.넓었다. 강이 산 사이에서 풀려나며 몸을 펴는 자리. 물 빠진 여울 바닥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섬처럼 드러나 있었다. 십팔 년 전 얼음이 얼었을 때 만군이 건넌 자리. 아버지가 물길을 연 자리. 이제 물이 빠진 채 — 다음 만군을 기다리는 자리.곁에 선 선우현이 오래 말이 없다가 물었다."두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34화 — 첫 칼

    얼음여울로 가는 행렬은 새벽에 궁을 나섰다.이백에서 추린 정예 여든. 자매와 선우현, 사백과 우르, 간수문과 한겸과 남궁완, 그리고 운백천. 궁은 흑요와 부수가 지켰고, 묵할멈은 문루까지 나와 손짓 하나를 오래 지었다. 살아서. 그 한 손짓이었다.이틀째 오후, 척후로 나갔던 우르가 말을 몰아 돌아왔다. 앞니 빠진 자리로 바람 새는 소리가 급했다."북벌군 선봉 척후요! 스물 남짓 — 능선 하나 너머요! 우리를 봤습니다!"봤다면 선택은 둘이었다. 흩어져 숨거나, 먼저 치거나. 숨기에 여든은 많았고, 놓아 보내면 만군이 이쪽의 수와 길을 안다."세운다." 혈비가 정했다. "죽이지는 않는다. 지금 흘릴 피는 나중에 열 배로 돌아온다. 세우고 — 판을 보인다."말이 쉽지, 스물의 기병을 피 없이 세우는 판이었다. 사백이 활의 배치를 그렸고, 선우현이 제 자리를 골랐고, 한겸이 관복의 매무새를 여몄다. 각자의 병기가 갈렸다. 활과 검과 — 종이.운설은 행렬 가운데서 은침 통을 쥐었다 놓았다. 이 판에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없는 것이 판대로였다. 물을 쓰는 순간 소문의 마녀가 만군의 눈에 실체가 되고, 북벌의 명분에 장작이 얹힌다. 보여 주는 순간 값이 정해진다 — 저울의 방에서만 유효한 문법이 아니었다.능선 사잇길의 좁은 목에서 양쪽이 마주쳤다. 척후장은 젊었고, 젊은 만큼 빨랐다. 활이 먼저 올라왔다.사백의 살이 그보다 먼저 시위를 떠났다.살은 척후장의 활시위를 끊고 지나갔다. 사람도 말도 건드리지 않고, 시위만. 끊긴 활이 튕겨 오르는 사이 두 번째 살이 그 곁 기수의 창대를 쪼갰다. 세 번째 살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것이 말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스무 개의 목이 스무 대의 살값이라는."북벌군 척후는 들어라!"한겸이 말을 몰아 나섰다. 흰 관복이 능선 바람에 펄럭였다. 집법당의 관복을 본 척후들의 창끝이 흔들렸다."집법당 감찰 한겸이다! 그대들이 쫓는 재앙의 씨가 여기 있다 — 한데 그 씨가 지금 그대들의 만군을 구하러 가는 길이다!"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33화 — 늦게 지키는 약조

    간수문은 문루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고, 마중 나온 얼굴들을 하나씩 보았다.혈비를 보고, 운설을 보고, 곳간에서 나온 운백천을 보고 — 마지막으로 한겸에게 눈이 멎었다. 젊은 감찰은 관복 차림 그대로였다. 실각한 당주 앞에서 그 관복이 무슨 뜻인지, 노인은 오래 보았다."아직 입고 있구나.""벗으라는 명은 — 지금의 집법당에서 온 것이라." 한겸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다가 곧아졌다. "제 관복은 법에게 받았지, 그들에게 받지 않았습니다.""법이 무엇인지 아직도 아는 놈이 집법당에 하나는 남았군."노인은 그렇게만 말했는데, 그것이 마흔 해 치 칭찬이라는 것을 마당의 모두가 알았다.대전 곁방에서 노인은 제 봇짐을 풀었다. 흰옷 한 벌뿐인 봇짐에서 나온 것은 기름 먹인 함 하나였다."맹옥이 나를 가둔 것은 사흘이다. 사흘이면 — 늙은이가 서고의 바닥돌 하나를 들어내기에 족하지."함이 열렸다. 안에 든 것은 낡은 첩(帖)이었다. 열두 장. 장마다 수결 하나씩."십팔 년 전, 토벌이 끝난 뒤 열두 가문의 수장이 공훈록에 수결을 두었다. 그 수결을 받던 자리의 원부(原簿)다. 열두 수결이 진본으로 남은 유일한 종이지. 공훈록의 마지막 장이 뚫린 지금 — 대조할 저울추는 이것뿐이다."선우현이 첩을 한 장씩 넘겼다. 획을 아는 눈이 열두 수결을 지나며 낮게 확인해 나갔다. 아니오. 아니오. 이것도 아니오. — 열두 장이 다 넘어갔다."없소. 물 위에서 본 그 획은 — 이 열둘 중에 없소.""당연하지." 간수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을 내린 손이 명을 받은 열둘 틈에 수결을 남겼겠느냐. 한데 그것이 증거다. 열두 수결이 전부 아니라면 — 마지막 장의 수결은 열셋째 손, 명부 밖의 손이라는 것이 만군 앞에서 성립한다. 반쪽 증거 열 개보다 좋은 것이 온전한 배제 하나야."남궁완이 증거의 순서를 짰다. 갈대 종이의 서신 초고, 긁힌 명부와 뒷면의 달 월, 열두 수결의 원부, 그리고 낭독자의 눈. 무대에 세울 순서와 말의 순서까지. 세가의 눈과 법의 손과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32화 — 전비(戰備)

    궁은 사흘 만에 성이 되었다.흑요가 창고를 열어 십팔 년 묵은 병장기를 꺼냈고, 바토의 대장간이 밤새 불을 밝혔다. 외눈 대장장이는 아들의 위패에 절 한 번을 올리고는, 두드리기 시작한 망치를 놓지 않았다. 서른 기는 이백이 되었다. 흩어져 살던 삭월의 유민들이 봉화를 보고 하나둘 산을 넘어온 것이다. 낫을 든 자, 도리깨를 든 자, 맨손인 자. 흑요는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싸우러 온 게 아니라 죽으러 온 낯들이다." 노파가 혈비에게 말했다. "십팔 년 전에 못 죽은 게 한이 된 낯들이야. 저 낯들한테는 — 이번에는 지킬 것이 있다고 가르쳐야 한다."남궁완과 한겸은 남쪽 일을 맡았다. 세가 연통으로 북벌군 안의 온건파를 짚어 내는 일. 만군이 다 저울을 부수러 온 것은 아니었다. 명분에 끌려온 자, 가문 눈치에 낀 자, 애초에 진실을 모르는 자가 반은 넘을 것이었다. 그 반을 물에서 건질 준비를, 종이의 사람들은 종이로 했다."수결의 임자를 만군 앞에서 세울 수만 있다면 — 절반은 칼을 내려요." 남궁완이 말했다. "증거 체인은 있어요. 공훈록, 초고, 명부, 그리고 공자의 눈. 모자란 건 단 하나 — 그걸 세울 무대죠."판의 눈은 둘로 갈렸다.만군이 얼음여울로 온다. 대월의 물이 그 여울에서 기다린다. 궁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아무것도 안 하면 됩니다."흑요의 답은 차가웠다."중원의 만군이 중원을 지운 자의 물에 삼켜지는 겁니다. 십팔 년 전 값을 물이 대신 받는 것이지요. 우리는 산등성이에서 구경만 하면 —""그 물이 만군만 지우고 얌전히 돌아갈 것 같으냐."혈비가 잘랐다."불은 강의 하류에 뭐가 있는지 세어 봐라. 북관 안팎의 마을들. 유민들의 골짜기. 물은 만군을 지우고 — 그대로 남으로 내려간다. 대월의 셈에 하류의 목숨 따위는 처음부터 없어. 그자가 지우려는 건 만군이 아니라 세상이다."그리고 그 물목의 어딘가에 어머니가 있었다. 자매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내지 않는 것으로 서로에게 말했다.저녁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31화 — 봉화 읽기

    봉화는 이틀 내내 두 사람의 오른편에서 타올랐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연기 기둥으로, 쉬지 않고.귀로는 강행이었다. 말을 아끼지 않고 달리면서, 혈비는 연기 기둥의 수와 간격을 읽었다. 삭월의 옛 봉화법은 언니의 몸에 남아 있었다."넷이 나란히 — 대군이다. 만(萬)을 넘는다는 가락이야. 남관에서 처음 올랐고, 하루 만에 중관을 지났다. 빠르다. 치중을 버리고 오는 속도다.""어느 깃발입니까.""봉화는 깃발을 못 읽는다. 한데—" 언니의 낯이 어두웠다. "이 길로 만군이 북에 온 것은 열여덟 해 만이다. 그때와 같은 길, 같은 계절이야. 눈 녹은 물이 불을 대로 분 계절."십팔 년 전의 재연. 운설은 등줄기가 식었다. 그 재연을 바라는 자가 누구인지, 이제는 물을 것도 없었다.달리는 이틀 동안 운설은 어머니의 마지막 말들을 갈래갈래 곱씹었다. 놓아주는 것도 물의 일이다. 마지막으로 눌러 드리지요, 한 번에. 그 말들이 봉화의 연기와 한 하늘에 있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만군이 북으로 오면 대월의 안의 것이 날뛸 것이고, 날뛰는 것을 누르는 자리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열여덟 해 만에 찾은 사람들이 전부 한 판 위에 얹히고 있었다.궁의 문루가 보였을 때, 마당은 이미 전비로 끓는 중이었다.남궁완이 파발 묶음을 들고 마중을 나왔다. 세가의 연통이 밤낮으로 달려온 종이들이었다."북벌이에요."여인의 목소리는 종이처럼 건조했다."맹이 아니라 — 맹을 뒤집은 자들이요. 열두 줄이 읽힌 뒤로 공신 가문들이 둘로 갈렸어요. 남궁가처럼 죄를 저울에 달자는 쪽과, 저울 자체를 부수자는 쪽. 부수자는 쪽이 이겼어요. 명분은 간단해요. 재앙의 씨가 물을 부려 강호를 해치니 — 씨를 태우고, 북쪽 소혈을 마저 지운다.""간수문은."한겸이 제 상관의 이름을 묻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남궁완은 파발 한 장을 젊은 감찰에게 건넸다."실각했어요. 집법당주 자리에서. 죄목이 — " 여인이 잠깐 말을 골랐다. "재앙의 씨와 내통한 죄. 재감정 감찰을 북으로 보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30화 — 달무리

    그 밤 탑의 이 층에는 등잔 하나만 켜졌다.어머니와 두 딸. 셋이 눕기에 방은 좁았고, 좁은 것이 좋았다. 열여덟 해 치 온기를 하룻밤에 나누기에는 좁을수록 나았다.어머니는 먼저 딸들의 머리를 땋았다."삭월 계집은 어미가 머리를 땋아 줘야 어른이 되는 법이다."서른 살 붉은 달의 주인이 어미 무릎 앞에 등을 대고 앉았다. 여리가 재잘대며 흉내 내던 그 땋음을, 임자의 손이 했다. 혈비는 땋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등이 조금씩 낮아지더니 나중에는 열두 살의 등이 되어 있었다.운설의 차례에 어머니의 손끝이 잠깐 멎었다."머릿결이 나를 닮았구나.""눈매도 닮았다고 들었습니다.""고집은 누굴 닮았는지 보자꾸나." 어머니가 웃으며 땋기 시작했다. "그 검객 말이다. 도련님이 다 일러 주더라. 강이 그 사람 곁에서 순해진다지."운설의 귀가 붉어졌다. 어머니 손에 머리를 잡힌 채라 도망갈 데도 없었다."그럼 됐다." 어머니는 그 말만 했다. "물이 저 갈 곳을 알면 — 어미가 더 바랄 게 없다."자리에 눕기 전에 어머니는 혈비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오래, 물소리를 듣는 손으로."멎은 게 아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미움 밑에 눌린 것뿐이야. 눌린 물은 — 누르는 것이 걷히면 도로 흐른다. 그날이 오면 겁내지 마라. 열여덟 해 만에 흐르는 물은 한 번은 크게 우니까."혈비는 그 손 위에 제 손을 포갰다. 온천의 접촉 사고 이후 처음으로, 언니가 제 안의 물 이야기를 피하지 않았다.밤이 깊어 딸들이 눕자, 어머니는 등잔 곁에 앉아 반짇고리를 열었다.낡은 천이 나왔다. 이지러진 달 아래 아이 둘 — 딸들이 반쪽씩 지녀 온 그 수의, 어머니 몫의 원본이 거기 있었다. 열여덟 해 동안 끝을 안 낸 수.바늘이 천을 지나는 소리를 들으며 운설은 잠들었다. 끝을 내면 정이 끝난다고 안 놓는 분이라던 언니의 말을, 잠결이라 셈에 넣지 못했다.새벽에 눈을 떴을 때, 수는 끝나 있었다.달 아래 아이 둘의 위로 어머니가 밤새 놓은 것은 — 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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