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딸랑.
문고리의 놋방울이 한 번 더 울렸다.
마루 아래로 사라진 치맛자락은 담장 모퉁이를 돌아 안채 쪽 어둠에 섞였다.
돌쇠가 곧장 문밖으로 나서려 하자 해원이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쫓지 마.”
“지금 놓치면 다시 못 봅니다.”
“셋이 함께 뛰어나가면 우리가 숨긴 것부터 알려 주는 꼴이야.”
허담은 열린 문과 마루 끝을 차례로 살폈다.
“한 사람만 움직여도 의심은 남습니다.”
해원은 문고리에 묶인 붉은 실을 집어 들었다.
실은 방울 아래에서 끝나지 않았다.
문기둥을 따라 내려가 마룻바닥 틈으로 가늘게 이어져 있었다.
돌쇠가 무릎을 굽혀 나무 틈을 살폈다.
“문을 열지 않고도 울릴 수 있게 해 놨습니다.”
그가 실을 건드리자 방울이 다시 흔들렸다.
복례의 얼굴이 굳었다.
“누군가 밖에서 당겼다는 말이니?”
“우리가 정말 방 안에 있는지 확인하려 한 겁니다.”
돌쇠는 실이 사라진 방향을 손끝으로 짚었다.
“문밖으로 끌어내려 했을 수도 있고요.”
해원은 방 안을 돌아보았다.
침상과 병풍, 약갑은 그대로였다.
누군가 그 짧은 틈에 들어왔다면 가져간 물건보다 확인한 광경이 더 중요했다.
“셋이 한 방에 있었는지 보려 한 거야.”
허담은 마루 아래 젖은 흙을 살폈다.
발자국은 담장 쪽으로 이어졌지만 모양이 일정하지 않았다.
오른발 자국은 깊었고, 왼발은 앞부분만 흐리게 찍혀 있었다.
“왼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돌쇠가 허담을 돌아보았다.
“사람은 의원 나리가 보십시오. 실은 제가 보겠습니다.”
“그럴 생각이네.”
두 사람의 말끝이 맞부딪쳤다.
해원은 먼저 마루를 내려갔다.
발자국은 우물가에서 여러 사람의 흔적과 뒤섞여 더는 구분할 수 없었다.
행랑어멈은 별당 앞에 펴 둔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방울 소리를 못 들었느냐?”
행랑어멈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잠이 깊이 들었는지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뛰어가는 소리도?”
“아무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복례가 이불 끝을 바라보았다.
한쪽 모서리에 젖은 흙이 얇게 묻어 있었다.
행랑어멈은 서둘러 이불을 끌어당겼다.
“낮에 널어 두었던 것을 걷어 와서 그렇습니다.”
그녀의 오른발이 이불 밖으로 잠시 드러났다.
발목에는 오래된 붕대가 감겨 있었다.
하지만 방금 발견한 발자국은 왼발이 불편한 사람의 것이었다.
해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물었다.
“발은 언제 다쳤지?”
“겨울에 장작을 나르다 접질렸습니다.”
“오른발을?”
“예.”
해원은 행랑어멈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돌아섰다.
“다시 자.”
“마님.”
“왜?”
“오늘 밤도 문을 열어 두실 겁니까?”
“어머님이 그렇게 명하셨잖아.”
“방 안이 훤히 보일까 염려되어서요.”
해원은 어깨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걱정하는 건 내 방이 보이는 일이니, 네가 보는 일이니?”
행랑어멈은 이불 가장자리만 매만졌다.
별당으로 돌아온 돌쇠가 붉은 실을 끊으려 했다.
해원이 그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그대로 둬.”
“다시 당기게 하시려고요?”
“다시 손대는지 보려는 거야.”
해원은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붉은 매듭 사이에 끼워 넣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실 사이에 묻혀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이게 끊기면 누군가 또 건드린 거야.”
복례가 열린 문밖을 살폈다.
“대부인께 알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어머님께 말하면 별당부터 잠길 거야.”
“그래도 위험합니다.”
“이미 내 방을 보고 간 사람이 있어.”
해원은 머리카락을 끼운 매듭을 확인했다.
“숨을 사람은 내가 아니야.”
돌쇠가 문기둥 아래 실을 따라 담장 쪽을 바라보았다.
“내일 밤 제가 밖에서 지키겠습니다.”
허담은 약갑을 들었다.
“담장 밖에서 보초를 서면 감시자보다 자네가 먼저 잡힐 걸세.”
“의원 나리는 안채를 드나들 명분이 있으니 안에서 보겠다는 겁니까?”
“다친 사람이 있다면 내가 찾을 수 있지.”
“실을 당긴 손은 제가 찾겠습니다.”
해원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내일 밤 둘 다 와.”
허담의 시선이 멈췄다.
“감시자를 유인하려는 겁니까?”
“오늘 본 광경을 다시 볼 수 있다고 믿게 해야죠.”
“마님까지 위험해집니다.”
해원은 붉은 실을 손가락에 감아 천천히 당겼다.
문고리의 방울이 울렸다.
딸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뒤 담장 너머에서 다른 방울이 두 번 울렸다.
딸랑, 딸랑.
돌쇠가 담장 쪽으로 몸을 돌렸지만 해원이 소매를 놓지 않았다.
“가지 마.”
그 순간 행랑어멈이 누운 이불 아래에서 붉은 실 한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행랑어멈이 비명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이건 제 것이 아닙니다.”
이불 아래로 이어진 실이 마루 틈새로 빠르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돌쇠가 붙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붉은 끝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담장 너머 어둠 속에서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창문 빗장이 들린 순간, 해원은 머리맡의 놋촛대를 움켜쥐었다.“거기서 손 떼.”창살 아래로 들어오던 손이 멎었다.나무진이 밴 손등과 젖은 소매가 어둠 속에 걸려 있었다.“접니다.”돌쇠가 얼굴을 드러냈다.해원은 촛대를 내려놓지 않았다.“문으로 내보냈더니 창으로 와?”“돌아가려 했습니다.”“그런데?”“의원방에 다시 불이 켜질까 봐 못 갔습니다.”해원은 창가로 다가갔다.돌쇠의 손끝은 빗장에서 떨어져 있었으나, 창턱에는 그가 묻힌 진흙이 남아 있었다.“네가 연 창으로는 못 들어와.”돌쇠의 어깨가 굳었다.“물러나.”그는 묻지 않고 손을 거두었다.창 아래에서 발소리가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졌다.해원은 그제야 빗장을 직접 들어 올리고 창을 끝까지 밀었다.“이제 와.”돌쇠가 돌아왔다.그는 창턱을 넘은 뒤 방 안에 내려섰지만 더 다가오지 않았다.젖은 소매에서 떨어진 물이 마룻바닥에 작은 자국을 만들었다.“왜 젖었어?”“창 아래 흙을 씻었습니다.”“들킨 흔적은 지우면서 내 방에는 남기네.”돌쇠가 무릎을 꿇으려 하자 해원이 발끝으로 물기를 밟았다.“놔둬.”“왜요?”“오늘 네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잊지 않으려고.”돌쇠의 시선이 해원의 맨발에 머물렀다.손이 움직였다가 무릎 위로 돌아갔다.해원은 베개 끝에 붙은 마른 약재 조각을 집어 그의 앞에 떨어뜨렸다.허담의 약갑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돌쇠의 눈이 그 조각에 박혔다.“치우고 싶어?”“예.”“그런데 왜 안 집어?”“마님이 버리라 하지 않으셨으니까요.”해원은 약재 조각을 손끝으로 밀었다.“허담이 남긴 건데도?”돌쇠의 손등에 힘줄이 돋았다.“싫어도 제 마음대로 없애지 않겠습니다.”“그럼 네가 원하는 건 뭐야?”돌쇠는 해원의 얼굴을 올려다봤다.“저 사람이 다시 이 방에 들어오지 않는 것.”“그것도 네 마음대로 정할 수 없어.”“압니다.”“알면서 창까지 왔네.”“마님이 그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지는 못했습니다.”해원은 그의 젖은
아침이 밝자 해원은 복례에게 별당 문을 활짝 열게 했다.마당 한가운데에는 허담이 두고 간 갓끈이 밤이슬에 젖은 채 놓여 있었다.복례가 그것을 집어 들자 해원이 말했다.“버리지 말고 탁자 위에 둬.”“돌려주지 않으시고요?”“오늘 쓸 데가 있어.”해원은 잠가 두었던 상자를 열어 옥비녀도 꺼냈다.비녀에는 돌쇠의 엄지가 쓸고 간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해원은 그것을 닦지 않고 머리에 꽂았다.“먼저 허 의원을 불러.”허담은 약갑을 들고 왔으나 문턱 앞에서 멈췄다.“오늘은 약을 청하지 않았어요.”“그럼 무엇 때문에 부르셨습니까?”“들어오면 알겠죠.”허담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시선이 해원의 비녀에 닿았다.곧 탁자 위 갓끈으로 옮겨 갔다가 다시 비녀로 돌아왔다.“그자가 만졌던 것을 다시 꽂으셨군요.”“내 것이니까요.”허담은 약갑을 내려놓고 해원의 뒤에 섰다.비녀 끝을 향해 올라가던 손이 머리카락 한 치 앞에서 멈췄다.“빼 드려도 됩니까?”“왜 빼고 싶은데요?”“다른 사내가 만졌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해원은 거울 속 허담을 바라봤다.“그 흔적을 지우면 나도 나리 것이 될 것 같아요?”허담의 손이 내려갔다.“그렇게 되고 싶습니다.”해원은 옥비녀를 직접 뽑아 그의 손바닥에 올렸다.허담의 손가락이 옥을 감쌌다.돌쇠가 만진 자리를 엄지로 문지르는 모습에 해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질투하는 얼굴이 보기 좋네요.”“즐거우십니까?”“나를 두고 얌전히 굴던 남자들이 흔들리는 건 재미있죠.”허담은 비녀를 쥔 채 해원에게 가까이 다가왔다.“그렇다면 저자를 다시 들이지 마십시오.”해원의 웃음이 멈췄다.“왜요?”“마님이 저를 고른 밤을 다른 사내와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내 밤이 언제부터 나리 것이 됐죠?”허담은 대답하지 못했다.해원은 그의 손에서 비녀를 빼앗았다.“갓끈도 가져가요.”“저것을 돌쇠에게 보여 주려 두신 겁니까?”“나리가 궁금해할 일은 아니에요.”허담의 손이 갓끈을 움켜쥐었다.“그자를
의원방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해원이 문을 밀자 허담은 등잔 앞에 앉은 채 약첩을 접고 있었다.불을 남겨 둔 사람답지 않게 그는 곧장 일어나지 않았다.“기다렸어요?”“기다리지 않으려 했습니다.”“그런데 불은 왜 켜 뒀죠?”허담의 시선이 해원의 맨발을 지나 풀어진 머리에서 멈췄다.“혹시 길을 잃으실까 봐서요.”해원은 문을 닫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약상 위에는 식은 탕약과 풀지 않은 갓끈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오늘은 진맥하지 마요.”“병이 아니십니까?”“내가 나리를 고른 밤까지 병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그제야 허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해원은 그의 손을 잡아 제 목덜미에 올려놓았다.“허락할 때만 닿는다고 했죠?”“기억합니다.”손바닥이 머리카락 아래를 받쳤다.약재를 다루던 손은 조심스러웠으나,손끝이 옥비녀가 빠진 자리를 더듬는 순간 움직임이 멈췄다.“돌쇠가 풀어 준 겁니까?”해원의 손이 그의 손등을 눌렀다.“지금 여기 있는 건 나예요.”“알고 있습니다.”“그런데도 그 사람부터 묻네요.”허담의 손가락이 목덜미에서 천천히 오므라들었다.“마님이 다른 사내의 손을 기억하고 계신 것이 싫습니다.”“그래서 내 머리까지 나리 것이 돼요?”“그렇게 만들고 싶습니다.”해원은 그의 갓끈을 집어 들었다.한쪽 끝을 손가락에 감았다가 약상 아래로 떨어뜨렸다.“원하는 것과 가질 수 있는 건 달라요.”허담은 떨어진 갓끈을 줍지 않았다.대신 해원의 허리를 감싸려다 멈추고, 허락을 기다렸다.해원이 한 걸음 다가서자 그의 팔이 그제야 몸을 끌어당겼다.약향이 풀어진 머리 사이로 스며들었다.허담의 입술은 이마에 닿았다가 눈가로 내려왔다.입술 가까이 멈춘 숨을 해원이 먼저 삼켰다.허담은 해원을 침상으로 밀어붙이며 옷자락을 거칠게 젖혔다.해원의 젖가슴이 드러나자 그는 혀로 둥글게 핥으며다른 손으로는 해원의 치마를 걷어 올려 다리를 벌렸다.손가락 두 개를 구멍에 밀어 넣고 빠르게 쑤셨다.해원의 안이 이미 흥건히 젖어 손가
해원은 다음 날 아침 돌쇠를 불렀고,별당 문은 열어 두었으나 그는 문턱 밖에서 더 들어오지 않았다.마당 건너편에는 허담이 약갑을 내려놓고 있었는데,전날 해원이 약만 두고 가라고 했던 탓에 계단 아래에서 발을 멈춘 채였다.거울 앞에 앉은 해원은 옥비녀를 머리에 꽂은 채 돌쇠를 바라봤다.“들어와.”돌쇠는 문턱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들어가도 됩니까?”“불렀으니까.”그제야 한 발 안으로 들어왔지만,시선은 해원의 얼굴보다 비녀에 먼저 닿았다.어제 제 품에서 떨어졌던 물건이라 눈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빼고 싶어?”“예.”“오늘은 안 돼.”돌쇠의 손가락이 옷자락 곁에서 접혔고,해원은 거울로 그의 반응을 지켜봤다. 그러나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으며,비녀를 한 번 더 본 뒤 스스로 문턱 쪽으로 물러났다.“왜 가?”“안 된다고 하셨으니까요.”“갖고 싶은데도?”돌쇠는 비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숨을 삼켰다.“더 보고 있으면 또 손이 먼저 갈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해원의 손이 옥비녀 끝에서 멈췄다.어제는 욕심이 먼저였으나 오늘은 물러날 자리를 골랐고,해원은 잠시 그를 본 뒤 손짓했다.“이제 와.”돌쇠가 고개를 들었다.“비녀만 빼.”“허락하시는 겁니까?”“이번에는.”그가 천천히 다가오자 해원은 등을 보였고,거울 속에서는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렸다.거친 손이 옥비녀 가까이 올라왔으나 곧장 닿지는 않았다.“머리카락에는 닿아도 됩니까?”“필요한 만큼만.”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돌쇠의 손가락이 매끈한 옥을 감쌌다.이윽고 비녀가 검은 머리 사이에서 빠져나오자 풀린 머리카락이 해원의 등 위로 흘러내렸고,가까워진 돌쇠의 숨도 함께 흐트러졌다.다만 그는 머리카락을 움켜쥐지 않았으며, 옥비녀만 받쳐 들었다.해원이 손바닥을 내밀자 돌쇠는 곧바로 비녀를 올려놓지 못했다.엄지가 옥 표면을 한 번 쓸었고,해원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비녀가 손바닥 위로 옮겨졌다.“아직 놓기 싫지?”“예.”“그런데 놓았
“못 봤다고 했지?”흰 옥비녀가 마루 위에서 멈췄다.돌쇠도 허담도 허리를 굽히지 못했다.해원은 비녀보다 두 남자의 손을 먼저 봤다.한쪽은 대패 자국으로 거칠었고, 다른 한쪽은 약재 물이 배었지만 반듯했다.허담의 손이 비녀를 향해 움직였다.돌쇠도 뒤늦게 손을 내밀었다.해원이 옥비녀 위에 손바닥을 덮었다.“둘 다 손대지 마.”두 손이 동시에 멎었다.해원은 직접 비녀를 집었다.차갑던 옥 표면에는 돌쇠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비녀 끝에 붙은 대팻밥 한 조각을 손톱으로 떼어 냈다.밤새 얼마나 오래 품고 있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갖고 싶다고 했지.”돌쇠의 시선이 비녀에 붙었다.“예.”“가져도 된다고는 안 했어.”“알고 있습니다.”“알면서 가져갔고, 물었을 때는 못 봤다고 했네.”돌쇠는 변명하지 못했다.허담이 약갑을 내려놓았다.“거짓말까지 한 사람을 다시 곁에 두실 겁니까?”해원이 고개를 돌렸다.“그 말을 할 자격이 생겼다고 생각해요?”허담의 입술이 닫혔다.“훔치지 않았으니 돌쇠보다 낫다고 생각했죠?”“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지금도요?”허담은 대답하지 못했다.해원은 그의 손목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대답 못 하는 걸 보니 아직도 그러네.”허담의 맥이 손끝 아래에서 빠르게 뛰었다.“다시 같은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누가요?”대답이 늦어졌다.“의원 나리가?”“마님께서 원하신다면.”“그 말을 끝까지 하면 의원 나리도 오늘은 돌아가야 해요.”해원이 손을 놓자 허담은 더 말하지 못했다.돌쇠가 마루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제가 잘못했습니다.”“무엇을?”“허락 없이 가져갔습니다.”“또.”“못 봤다고 거짓말했습니다.”“또.”돌쇠는 비녀를 바라보다 입술을 다물었다.해원이 옥비녀 끝으로 그의 손등을 가볍게 눌렀다.“내가 찾아오길 바랐어?”돌쇠의 손이 천천히 접혔다.“갖고 있고 싶었습니다.”“그게 전부야?”“그 말까지 하면 더 비겁해질 것 같습니다.”
돌쇠는 해원의 비녀를 훔칠 생각이 없었다.적어도 별당 마루의 대팻밥을 쓸어 담을 때까지는 그랬다.새벽빛이 담장 위로 번지고 있었지만 방 안에는 아직 등잔불이 남아 있었다.돌쇠는 닫힌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기다리는 것과 부름받는 것은 다르다는 말을 전날 밤 배웠다.바구니를 들고 돌아서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해원은 풀어진 머리를 한쪽 어깨로 넘긴 채 서 있었다.손목에는 허담의 갓끈이 그대로 감겨 있었다.“아직도 안 갔어?”“치울 게 남았습니다.”“나무 조각보다 네가 더 오래 남아 있네.”돌쇠는 대답하지 않았다.시선만 갓끈에서 해원의 머리로 옮겨 갔다.검은 머리 사이에 꽂힌 옥비녀가 등잔빛을 받아 희게 빛났다.해원은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왜 봐?”“아무것도 아닙니다.”“아무것도 아닌 얼굴은 아닌데.”그녀가 비녀를 뽑았다.머리카락이 어깨와 등 위로 한꺼번에 흘러내렸다.돌쇠의 손이 바구니 가장자리를 눌렀다.해원은 비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갖고 싶어?”돌쇠의 대답은 늦었다.“예.”“왜?”“마님이 늘 몸에 지니는 것이니까요.”“그걸 가지면 나도 네 쪽에 남는 것 같아?”돌쇠는 부정하지 못했다.“갖고 싶다고 다 가져도 되는 건 아니라는 말, 들었지?”“들었습니다.”“그럼 돌아가.”회랑 끝에서 복례가 해원을 불렀다.“마님, 안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해원이 고개를 돌렸다.최씨 부인이 보낸 사람이 무슨 말을 가져왔는지 묻는 짧은 사이였다.돌쇠의 손이 문턱을 넘었다가 멈췄다.해원이 돌아보면 바로 들킬 거리였다.그 순간 손목에 감긴 허담의 갓끈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돌쇠는 옥비녀를 움켜쥐어 소매 안에 숨겼다.해원이 돌아봤을 때 그는 이미 바구니를 들고 마루 아래에 서 있었다.“왜 아직 있어?”“이제 갑니다.”돌쇠는 별당을 떠나면서도 소매 안 비녀를 놓지 못했다.차갑던 옥은 손바닥의 열을 먹고 빠르게 미지근해졌다.몇 걸음 지나지 않아 비녀 끝이 손바닥을 찔렀다.해원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