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녀문 아래 색귀: Chapter 1 - Chapter 10

20 Chapters

1화

윤해원은 낮에는 죽은 남편의 위패에 절했고,밤에는 살아 있는 사내의 손을 기다렸다.그날도 세 번째 절을 올리는 동안 별당 밖에서는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해원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다는 열녀문의 나무를 다듬는 소리였다.혼례를 치른 지 스무 날 만에 남편은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다정한 말도 따뜻한 체온도 나누지 못했으니,해원에게 남은 것은 밤마다 이어지던 마른기침과 방 안에 밴 약 냄새뿐이었다.그가 죽은 지 여섯 달이 지난 지금은 얼굴보다 위패의 먹빛 글자가 더 익숙했다.“네 정성이 하늘에 닿으면 우리 집안에도 마침내 열녀문이 서겠구나.”최씨 부인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해원의 머리에서 옥비녀를 뽑았다.“과부가 이런 것을 꽂을 필요는 없지. 거울도 치우거라.이제부터는 꾸밀 일도, 제 얼굴을 들여다볼 일도 없을 테니.”해원은 소복 자락 아래에서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가 천천히 펼쳤다.“어머님 뜻대로 하겠습니다.”거짓말은 얌전한 목소리를 입히면 진실보다 단정하게 들렸다.최씨 부인이 나가자 복례가 방문을 닫았다.해원은 향로에 꽂힌 향을 뽑아 손끝으로 비벼 껐고,가느다란 연기는 위패 앞에서 잠시 흔들리다가 사라졌다.“마님, 오늘도 뒤 담을 넘으시려고요?”“오늘은 그럴 필요 없어.”해원은 창호지 너머로 길게 번진 사내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사내가 제 발로 들어올 테니까.”며칠 전부터 그녀는 돌쇠가 망치질을 멈추는 시각을 알고 있었다.우물가에서 어느 쪽 소매부터 걷는지,손에 묻은 톱밥을 털 때 고개를 어느 방향으로 기울이는지도 어느새 눈에 익었다.그러나 해원이 돌쇠를 기다린 까닭은 넓은 어깨나 단단한 팔 때문만은 아니었다.낮에 최씨 부인이 해원을 가리키며 곧 열녀가 될 사람이라 자랑했을 때,모두가 안쓰럽거나 경건한 얼굴로 그녀를 훔쳐보았다.오직 돌쇠만은 문살을 다듬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손을 가까이 두시면 다칩니다.”그는 해원을 죽은 사내의 그림자처럼 보지 않았다.손이 끼면 피가 흐르고, 다치면 아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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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돌쇠야.”해원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문밖의 침묵이 한층 짙어졌다.허담은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문고리를 천천히 돌렸다.안쪽 빗장에 걸린 쇠가 짧게 긁히며 멎었고,방 안에는 돌쇠의 거친 숨과 등잔 심지가 타는 소리만 남았다.해원은 여전히 그의 앞섶을 쥐고 있었다.“마님.”“왜?”“이제 문을 여셔야 합니다.”“열고 싶으냐?”돌쇠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시선이 문으로 향했다가 다시 해원에게 돌아왔고,그사이 적삼 아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지금 나가면 다시 못 올 것 같습니다.”“누가 못 오게 한대?”“이 집이 그렇습니다.”해원은 입가를 올렸다.“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그녀가 앞섶을 잡아당기자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단숨에 좁아졌다.젖은 나무와 땀, 송진이 뒤섞인 냄새가 소복 안쪽까지 스며들었다.돌쇠는 고개를 숙이지도, 몸을 피하지도 않았다.“손을 놓지 마라.”“명하시는 겁니까?”“허락하는 거야.”그 말이 떨어진 뒤에야 돌쇠의 손이 움직였다.해원의 허리로 곧장 향하지는 않았다.먼저 소복 자락 끝을 가볍게 건드렸고,이어 손등으로 옆선을 더듬듯 천천히 올라왔다.닿을 때마다 허락을 확인하는 듯 조심스러웠기에,해원은 오히려 숨을 더 깊이 들이켰다.문밖에서 약갑의 잠금쇠가 작게 부딪혔다.허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해원 마님.”차분한 음성이었으나 끝에 얇은 날이 숨어 있었다.해원은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돌쇠의 적삼 앞섶을 더욱 세게 쥐었다.매듭 아래 천이 팽팽히 당겨지자 돌쇠가 짧게 숨을 토했다.“의원 나리가 화가 난 모양이구나.”“저분보다 제가 여기 있는 게 더 큰일입니다.”“후회하느냐?”“아직은 아닙니다.”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해원의 등 뒤로 아직 닫히지 않은 옷고름이 살짝 벌어졌다.돌쇠의 시선은 그 틈에 머물지 않으려 애썼으나, 피할수록 더 선명하게 돌아왔다.직접 닿는 손길보다 그 절제를 지켜보는 일이 더 달았다.해원은 문밖까지 들리도록 목소리를 조금 높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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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허담은 돌쇠보다 먼저 오겠다는 말을 지켰다.해가 산등성이 아래로 완전히 내려가기 전,별당 앞에 약갑이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담장 너머에서는 아직 망치질이 이어지고 있었으므로,평소보다 이른 방문이 누구 때문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복례가 방문을 열며 해원의 눈치를 살폈다.“마님, 의원 나리께서 오셨습니다.”해원은 거울이 걸려 있던 빈 벽을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최씨 부인이 치워 버린 자리에는 작은 못 자국만 남아 있었다.“들라 해.”허담은 방에 들어오자 창문부터 닫았다.바깥의 망치 소리는 한 겹 멀어졌지만, 둔탁한 울림은 여전히 창호지를 타고 스며들었다.“오늘은 아직 열이 오르지 않았어요.”“오르기 전에 살펴야지요.”“돌쇠보다 먼저 오려고 서두른 건 아니고요?”허담은 대답하지 않은 채 약갑을 열었다.약병과 침통, 깨끗하게 접힌 흰 천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손목을 주십시오.”해원은 곧바로 팔을 내밀지 않았다.“어젯밤에 이미 보셨잖아요.”“하룻밤 사이에도 몸은 달라집니다.”“몸이 궁금한 건지, 어젯밤 일이 궁금한 건지 모르겠네요.”약병을 고르던 허담의 손끝이 조금 늦어졌다.그러나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을 펼쳤다.“어젯밤 이후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어디를 말하는 거예요?”“숨이 가쁘거나 열이 오르는 곳 말입니다.”“그런 곳은 있었죠.”해원이 웃으며 소매를 걷었다.허담은 오래 살피지 않고 천을 거두었다.“어제보다 빠릅니다.”“누구 때문인지도 보여요?”창밖에서 망치가 다시 울렸다.해원의 호흡이 순간 흐트러지자 허담의 시선이 손목에서 창문으로 옮겨갔다.“돌쇠가 아직 일하고 있군요.”“기다리는 중일지도 모르죠.”“무엇을요?”“내가 오늘 누구를 들일지.”허담은 천을 접어 약갑 위에 올려놓았다.“사람을 시험하지 마십시오.”“의원 나리는 시험받는 게 두려워요?”“다치는 사람이 생길까 염려하는 겁니다.”“누가 다치는데요?”대답은 없었다.해원은 몸을 조금 앞으로 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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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안에서 사내 목소리가 둘이나 들리는구나.”최씨 부인의 지팡이가 다시 마루를 두드렸다.해원은 허담의 도포 깃과 돌쇠의 소매를 쥔 채 문을 바라보았다.등잔불에 늘어난 세 사람의 그림자가 창호지 위에서 겹쳐 있었다.저것까지 들키면 의원의 진맥만으로는 둘러댈 수 없었다.허담이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나가겠습니다.”“문 앞에 어머님이 계신데요?”“진맥하러 왔다고 하면 됩니다.”해원의 시선이 돌쇠에게 옮겨갔다.“그럼 돌쇠는?”돌쇠는 병풍과 낮은 장롱, 반쯤 열린 창문을 빠르게 살폈다.어느 곳도 넓은 어깨를 온전히 감춰 주지는 못했다.“담을 넘겠습니다.”“창을 여는 순간 들켜.”바깥에서 최씨 부인이 재촉했다.“해원아, 문을 열거라.”복례가 문밖에서 황급히 말했다.“마님께서 진맥을 받고 계십니다.”“의원 말고 다른 사내 소리도 들렸다.”허담이 병풍을 가리켰다.“저쪽으로 가시오.”돌쇠의 턱선이 굳었다.“양반 나리 뒤에 숨으라는 겁니까?”“붙잡히고 싶다면 서 있어도 되네.”“둘 다 그만해요.”해원이 두 사람을 놓았다.허담의 도포 깃과 돌쇠의 소매에는 손가락이 지나간 구김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의원 나리는 앉아요. 돌쇠는 병풍 뒤로.”돌쇠가 병풍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지만 적삼 자락이 밖으로 비어져 나왔다.해원은 직접 다가가 천 끝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거친 옷감 아래의 열기가 손바닥에 번졌다.돌쇠가 숨을 한 번 삼킨 뒤 말했다.“이러다 정말 들킵니다.”해원은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웠다.문고리가 거칠게 흔들렸다.“내가 직접 열어야겠느냐?”해원은 흐트러진 옷고름을 여몄다.머리카락도 손으로 쓸어 올렸지만 비녀가 없으니 한 가닥이 곧 다시 뺨으로 흘러내렸다.“진맥하는 모습이어야 믿으시겠죠.”그녀가 허담 앞에 앉아 손목을 내밀었다.허담은 흰 천을 덮었으나 시선이 병풍 아래로 나온 돌쇠의 짚신 끝에 자꾸 걸렸다.“저쪽 보지 마요.”“가려지지도 않았습니다.”“나만 봐요.”허담의 시선이 돌아온 순간 문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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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딸랑.문고리의 놋방울이 한 번 더 울렸다.마루 아래로 사라진 치맛자락은 담장 모퉁이를 돌아 안채 쪽 어둠에 섞였다.돌쇠가 곧장 문밖으로 나서려 하자 해원이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쫓지 마.”“지금 놓치면 다시 못 봅니다.”“셋이 함께 뛰어나가면 우리가 숨긴 것부터 알려 주는 꼴이야.”허담은 열린 문과 마루 끝을 차례로 살폈다.“한 사람만 움직여도 의심은 남습니다.”해원은 문고리에 묶인 붉은 실을 집어 들었다.실은 방울 아래에서 끝나지 않았다.문기둥을 따라 내려가 마룻바닥 틈으로 가늘게 이어져 있었다.돌쇠가 무릎을 굽혀 나무 틈을 살폈다.“문을 열지 않고도 울릴 수 있게 해 놨습니다.”그가 실을 건드리자 방울이 다시 흔들렸다.복례의 얼굴이 굳었다.“누군가 밖에서 당겼다는 말이니?”“우리가 정말 방 안에 있는지 확인하려 한 겁니다.”돌쇠는 실이 사라진 방향을 손끝으로 짚었다.“문밖으로 끌어내려 했을 수도 있고요.”해원은 방 안을 돌아보았다.침상과 병풍, 약갑은 그대로였다.누군가 그 짧은 틈에 들어왔다면 가져간 물건보다 확인한 광경이 더 중요했다.“셋이 한 방에 있었는지 보려 한 거야.”허담은 마루 아래 젖은 흙을 살폈다.발자국은 담장 쪽으로 이어졌지만 모양이 일정하지 않았다.오른발 자국은 깊었고, 왼발은 앞부분만 흐리게 찍혀 있었다.“왼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돌쇠가 허담을 돌아보았다.“사람은 의원 나리가 보십시오. 실은 제가 보겠습니다.”“그럴 생각이네.”두 사람의 말끝이 맞부딪쳤다.해원은 먼저 마루를 내려갔다.발자국은 우물가에서 여러 사람의 흔적과 뒤섞여 더는 구분할 수 없었다.행랑어멈은 별당 앞에 펴 둔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방울 소리를 못 들었느냐?”행랑어멈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잠이 깊이 들었는지 듣지 못했습니다.”“사람이 뛰어가는 소리도?”“아무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복례가 이불 끝을 바라보았다.한쪽 모서리에 젖은 흙이 얇게 묻어 있었다.행랑어멈은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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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행랑어멈의 이불 아래로 사라진 붉은 실은 별당 쪽 마루 밑으로 이어져 있었다.돌쇠가 곧장 마루 아래로 내려가려 하자 해원이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쫓지 마.”“바로 아래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그래서 더 움직이면 안 돼.”담장 너머의 웃음은 이미 끊겼다.행랑어멈은 이불을 끌어안은 채 뒤로 물러났다.“저는 정말 모릅니다. 이불을 펼칠 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복례가 마루 틈을 들여다보았다.“누가 이 아래로 실을 넣은 걸까요?”돌쇠는 허리춤에서 가느다란 끌을 꺼냈다.“판자 하나만 들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허담이 그의 앞을 막았다.“안쪽에 사람이 남아 있다면 소리를 듣고 먼저 달아날 걸세.”“그럼 의원 나리는 여기서 발자국만 보고 계실 겁니까?”“둘 다 그만해요.”해원이 붉은 실을 손가락에 감아 천천히 당겼다.실은 조금 움직이다가 마루 안쪽에서 팽팽하게 걸렸다.누군가 반대편을 붙들고 있는 듯했다.복례의 어깨가 움찔 올라갔다.“마님, 놓으십시오.”해원은 한 번 더 힘을 주었다.잠시 뒤 손끝을 버티던 힘이 갑자기 사라졌다.붉은 실이 마루 틈 밖으로 한꺼번에 풀려 나왔다.끝에는 작은 놋고리 하나만 달려 있었다.돌쇠가 고리를 집어 살폈다.“잘라 낸 게 아닙니다.”“그럼?”“안쪽에서 고리째 빼냈습니다. 다시 끼울 수 있게 만든 겁니다.”허담은 행랑어멈의 발을 바라보았다.“걸어 보십시오.”행랑어멈이 마루 끝까지 움직였다.오른발을 내디딜 때마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하지만 우물가에 남은 발자국은 왼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는 사람의 것이었다.“이 사람의 걸음과는 다릅니다.”행랑어멈이 겨우 숨을 내보냈다.해원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네가 아니라고 해서 아무것도 못 봤다는 뜻은 아니야.”“정말 보지 못했습니다.”“그럼 오늘 밤부터 함께 봐.”행랑어멈의 눈이 커졌다.“무엇을 말입니까?”“누가 내 방을 들여다보는지.”해원은 복례에게 이불을 다시 펴게 했다.“이 사람은 그대로 여기 있게 해.”“위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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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탁. 탁. 탁.담장 밖에서 돌쇠가 약속한 신호가 울렸다.해원은 쪽지를 소매 안에 감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문밖에 앉아 있던 복례도 끌을 움켜쥐며 몸을 세웠다.“행랑어멈을 지켜.”“마님이 직접 가시려고요?”“돌쇠가 사람을 봤어.”해원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마루를 내려갔다.밤안개가 담장 아래에 엷게 깔려 있었다.젖은 흙 위로 돌쇠의 짚신 자국이 이어졌고,그 곁에는 한쪽만 깊게 찍힌 발자국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담 모퉁이를 돌자 그림자 둘이 뒤엉켜 있었다.돌쇠가 한 여자의 팔을 등 뒤로 붙잡고 있었다.여자가 몸을 비틀자 검은 두건 아래로 길게 땋은 머리카락이 쏟아졌다.부엌일을 맡은 스물두 살 점순이었다.“놓아주세요!”해원이 걸음을 멈췄다.“점순이?”점순이는 얼굴에 진흙을 묻힌 채 고개를 들었다.왼발에는 짚신이 없었으나 발바닥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돌쇠가 붙든 힘을 늦추지 않았다.“담장 밑에서 기어 나왔습니다.”“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그럼 왜 달아났지?”“겁이 나서…….”해원은 점순이의 맨발을 바라봤다.“걸어 봐.”“마님.”“똑바로.”돌쇠가 팔을 놓자 점순이는 왼발을 끌며 두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세 번째 걸음에서는 양발을 멀쩡히 디뎠다.해원의 말끝이 짧아졌다.“누가 절뚝거리라고 시켰어?”점순이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그때 담장 반대편에서 허담이 돌아왔다.“안채에는 왼발을 다친 사람이 없었습니다.”허담은 점순이의 손바닥을 확인했다.붉은 실이 눌린 자국이 선명했다.“방울을 당긴 흔적은 맞습니다.”점순이는 급히 주먹을 쥐었다.해원이 한 걸음 다가섰다.“누가 시켰지?”“모릅니다.”“모르는 사람의 돈은 받았고?”점순이의 입술이 떨렸다.“사당 뒤 돌확 밑에 돈하고 붉은 실이 있었습니다.”“무엇을 하라고 적혀 있었어?”“방울을 세 번 울린 뒤, 별당에서 나온 사람 수만 확인하라고 했습니다.”“마루 아래 실도 네가 넣었니?”점순이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저는 담장 안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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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내 곁.”해원이 손바닥으로 두드린 자리를 돌쇠는 한동안 바라봤다.그가 침상 곁에 무릎을 접자 옷자락이 문턱 가까이 겹쳤다.“여기면 됩니까?”“아직은.”해원은 문고리에 달린 놋방울을 손으로 감쌌다.붉은 실을 풀어 문기둥 아래 내려놓자 희미한 울림이 마룻바닥을 스쳤다.“이제 문이 움직여도 소리가 안 나.”돌쇠는 들린 마루판을 바라봤다.“아래에 있는 자는 듣고 있을 겁니다.”“보라고 해.”해원은 소매 안에 감춰 둔 쪽지를 꺼내 그의 앞에 펼쳤다.문 안에 남은 사내는 하나구나.“저 사람이 기다리는 게 뭔지 알아?”“제가 남는지 보는 겁니다.”“아니.”해원은 침상 끝에 앉아 옷고름 하나를 천천히 풀었다.“내가 너를 어디까지 들이는지 기다리는 거야.”돌쇠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천천히 말렸다.“마님이 정하시는 데까지만 가겠습니다.”“지난밤에도 그렇게 말했지.”“지금도 같습니다.”해원은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욕망보다 먼저 허락을 기다리는 눈이었다.“다가와.”돌쇠는 숨을 고른 뒤 몸을 옮겼다.한 걸음만 더 오면 무릎이 맞닿을 거리에서 그가 멈췄다.“지금도 괜찮습니까?”해원은 대답 대신 그의 적삼 앞섶을 잡아당겼다.입술이 맞닿았다.첫 입맞춤은 짧았다.돌쇠가 스스로 물러나려 하자 해원이 그의 뒷머리를 감싸 다시 끌어당겼다.두 번째는 더 길었다.송진과 젖은 나무 냄새가 숨 사이로 스며들었다.돌쇠가 참아 낸 숨이 입술 가까이 새었다.“마님.”“마님 말고.”그의 입술이 잠시 멈췄다.“해원.”상중 내내 지워졌던 이름이 살아 있는 사내의 입에서 다시 살아났다.누구의 며느리도, 죽은 사내의 아내도 아닌 제 이름이었다.해원은 그 소리를 한 번 더 듣고 싶어 입술을 겹쳤다.돌쇠의 손은 허리 가까이 다가왔으나 함부로 닿지 않았다.해원이 그 손을 잡아 제 옆선 위에 올려놓았다.그제야 돌쇠가 손바닥을 펼쳤다.거친 손결이 얇은 소복 위로 허리를 감싸자 해원의 등이 곧아졌다.돌쇠는 서두르지 않았다.그 느린 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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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오늘 밤은 저쪽이 아니라 나만 봐.”해원은 돌쇠의 손을 자신의 허리에 다시 올려놓았다.마루 아래에서 종이를 접는 소리가 한 번 더 났지만,이번에는 누구도 시선을 내리지 않았다.돌쇠가 그녀의 눈을 바라본 채 숨을 골랐다.“정말 계속해도 됩니까?”“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그제야 거친 손바닥이 소복 위로 움직였다.해원은 그의 적삼 앞섶을 완전히 벌렸다.손바닥이 뜨거운 가슴에 닿자 돌쇠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하…….”참아 둔 숨이 짧게 새어 나왔다.해원은 손끝으로 단단한 살결을 천천히 훑으며 그의 젖꼭지를 엄지로 문질렀다.돌쇠의 허리가 순간적으로 튕겨 올랐다.“마님이 허락한 곳이니까요.”“마님 말고.”돌쇠의 입술이 열렸다.“해원.”상중 내내 지워졌던 이름이 다시 살아났다.해원은 그의 목 뒤를 감싸 입술을 겹쳤다.처음보다 깊어진 입맞춤 사이로 혀가 서로를 더듬었다.돌쇠가 물러나려 하면 해원이 붙잡았고,그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혀를 밀어 넣었다.“흡…… 돌쇠야.”이름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숨에 섞였다.돌쇠의 움직임이 즉시 느려졌다.“아픕니까?”“아니.”해원은 그의 손을 잡아 옷고름 위에 올렸다.“이건 내가 풀게.”매듭 하나가 느슨해졌다.이어 두 번째 매듭도 풀렸다.소복 자락 사이로 밤공기가 스며들자 해원의 숨이 떨렸다.돌쇠는 눈앞에 드러난 가슴을 보고도 곧장 손을 대지 않았다.해원이 직접 그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여기까지 온 건 내가 정했어.”거친 손바닥이 천천히 닿았다.돌쇠의 손가락이 유두를 천천히 문지르자 해원의 등이 침상 위에서 크게 휘어졌다.“하아…… 더 세게.”해원이 손등을 붙잡아 그의 손가락을 자신의 가슴에 더 세게 눌렀다.돌쇠의 손가락이 유두를 꼬집듯이 비틀자 해원의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끝까지 오는 것도 내가 정해.”그 말이 떨어진 뒤에야 돌쇠가 다시 움직였다.그의 손은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며 아래로 내려가 소복 자락을 완전히 걷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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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윤해원.”닫힌 문 너머에서 허담이 다시 말했다.“그 아래에 돌쇠의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돌쇠가 침상에서 내려왔다.막 여민 적삼은 한쪽으로 틀어져 있었고,해원의 옷고름도 매듭이 고르지 않았다.그는 곧장 문으로 향했다.“어디 있습니까?”“사당 뒤 창고입니다.”“지우겠습니다.”해원이 돌쇠의 소매를 붙잡았다.“무턱대고 나가지 마.”“마님 이름이 새겨졌습니다.”“그래서 누가 새겼는지부터 들어야지.”해원이 문을 열자 밤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붉은 실을 풀어 둔 놋방울은 울리지 않았다.마루 아래에 선 허담의 시선이 해원의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비뚤어진 옷고름을 차례로 지나갔다.침상 곁에는 돌쇠의 옷자락에서 떨어진 톱밥이 남아 있었다.방 안에는 약향보다 나무진 냄새가 짙었다.허담은 곧바로 목재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오늘 밤에도 진료가 필요합니까?”해원이 문틀에 기대 섰다.“필요해 보여요?”돌쇠가 그녀의 뒤에서 답했다.“오늘 밤은 제가 있었습니다.”허담의 손이 약갑 잠금쇠 위에 머물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알았으면 목재 이야기나 해요.”해원은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담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약을 전하러 안채에 들렀다가 대부인의 말을 직접 들었습니다.”“무슨 말이었죠?”“목수들에게 두 이름을 새기게 하고, 날이 밝기 전에 돌쇠를 쫓아내라고 했습니다.”돌쇠의 손이 문틀에서 떨어졌다.“대부인이 직접 시킨 겁니까?”“그렇습니다.”범인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최씨 부인은 열녀의 이름 아래 목수의 이름을 새겨 추문으로 만들 생각이었다.해원이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직접 볼게요.”사당 뒤 창고에는 열녀문에 쓸 목재가 길게 쌓여 있었다.가장 안쪽 대들보를 돌쇠가 뒤집었다.나무결 위에 두 이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윤해원.돌쇠.돌쇠는 제 이름을 지나 해원의 이름부터 손끝으로 훑었다.홈 안에 남은 나무 가루가 손톱 아래에 끼었다.“오늘 새긴 겁니다.”“지울 수 있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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