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2 화

Author: 블루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그대로 굳어 버린 듯했다.

사실 혜니는 어젯밤에도 인우의 꿈을 꾸었다.

...

은행나무 아래, 매트, 별빛, 이혼하던 날의 마지막 작별.

혜니가 울부짖었고, 인우는 뜨거운 숨을 귓가에 뿌리며 끝을 정하는 건 자신이라고 했다.

“한인우, 이제 그만해.”

혜니가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마음까지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인우는 낮게 숨을 내쉬며 혜니를 내려다보았다.

뜨거운 기운이 가까이 닿았지만, 인우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게 소리칠 힘은 남아 있네.”

담담한 말투였다.

그 안에는 다정함도, 미련도, 위로도 없었다.

이혼을 말한 건 혜니였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붙잡을 기회를 요구한 건 인우였다.

두 사람 모두 그게 끝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둘 중 누구도 누구에게 빚진 건 없다고, 그렇게 믿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혜니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흐려졌던 정신이 단번에 맑아졌고, 혜니는 급히 인우의 어깨를 밀어냈다.

“잠깐만. 이건 아니지!”

인우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둠 속에서 마주친 인우의 깊은 눈동자는 서늘했다.

그 안에는 어떤 감정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

“언제 끝낼지는 내가 정해.”

혜니는 떨리는 숨을 삼키며 물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생기면 어떡해?”

인우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위자료에서 10만 원 더 쳐줄 테니까, 그걸로 사후피임약이나 사.”

그 한마디가 더 잔인하게 들렸다.

혜니의 눈가가 붉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치밀어 오른 감정이 끝내 목소리로 터져 나왔다.

“너 진짜 최악이야!”

인우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코끝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인우는 비틀린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최악을 못 알아보고 결혼했던 사람이 너야.”

듣는 순간, 혜니는 숨이 턱 막혔다.

그 말은 이상하게도 아팠다.

분명 상처 주려는 말인데, 끝내 놓지 못한 집착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인우는 하루 낮과 밤을 꼬박 혜니와 보내고, 혜니의 세상에서 사라졌다.

대학 시절 마음을 확인했던 은행나무는 끝내 이별의 장소가 되었다.

...

띵-

최상층에 도착했다.

소새연과 박미나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혜니의 심장이 세게 내려앉았다.

‘새 대표가 한인우라니...’

‘이혼할 때 빈손으로 나가며 모든 돈을 나에게 남기고 떠난 남자가...’

‘겨우 4년 만에 수천억 원대 태유그룹을 인수했다니...’

‘세상이 미친 걸까, 내가 미친 걸까?’

혜니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새연 곁으로 달려가 섰다.

자리를 맞추고, 허리까지 곧게 폈다.

인우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서늘한 시선이 비스듬히 비서들을 스쳐 지나갔다.

대표이사 비서실의 비서 세 명은 모두 눈에 띌 만큼 외모가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혜니는 단연 돋보였다.

인우는 담담히 말했다.

“저는 한인우입니다. 지금부터 태유그룹 대표이사직을 맡습니다. 커피에는 설탕을 넣지 않습니다. 향수 냄새를 싫어합니다. 부하 직원의 지각도 싫어합니다. 모두 잘 기억하세요.”

“네, 대표님.”

한인우의 시선이 혜니에게 닿았다.

“윤혜니 씨?”

혜니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내 이름을 모른다고? 뇌혈관이라도 막혔어?’

“네, 대표님.”

인우는 손목에 찬 고가의 시계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1분 지각했네. 이번 달 개근 수당과 성과급, 전부 삭감.”

혜니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뭐라고?’

‘본보기로 잡는 거야?’

‘내가 그 본보기야?’

‘나를 희생양 삼아서 기강 잡겠다는 거야?’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혜니는 결국 이를 악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억울해도 삼켜야 했다.

혜니는 엄마도 부양해야 했고, 나래도 챙겨야 했다.

무엇보다 이 직장을 잃을 수는 없었다.

인우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자료를 보니까, 이혼 경력이 있던데.”

‘이 망할 인간, 일부러 이러는 거지?’

혜니는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이혼 사유는?”

인우가 이어서 물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부하 직원의 사생활을 캐묻는 취미는 없지만, 내 곁에 둘 사람이라면 적어도 흠 잡힐 일은 없어야 하니까.”

‘이제 대놓고 사적인 감정으로 괴롭히겠다는 거야?’

혜니는 망설임 없이 또렷하게 대답했다.

“부부 관계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인우의 눈빛이 아주 짧게 흔들렸다.

‘맞지 않았다고?’

‘하루에 다섯 번도 부족했다는 건가?’

‘그 정도면 세상 어떤 남자도 윤혜니 마음에 들 수 없겠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지수
부부관계 ㅋㅋㅋㅋㅋ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전남편은 ‘나’바라기   116 화

    그 친구는 3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쳤고,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끝까지 곁을 지키며 이 농가 레스토랑을 열어 돈을 벌고 교통사고를 당한 남자친구를 돌보고 있었다.“제후 형, 왔어?”훤칠한 남자가 휠체어를 밀며 안에서 나왔다. 바로 민대휘였다.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제후가 웃으며 말했다.“내 친구 데리고 네 요리 맛보러 왔어. 잘하는 걸로 몇 가지 내줘.”“이쪽은 민대휘. 여기는 윤혜니 씨.”“안녕하세요, 민 사장님. 여기 정말 예쁘네요.”혜니가 인사했다.대휘는 웃고는 안쪽을 향해 불렀

  • 전남편은 ‘나’바라기   115 화

    “이 나쁜 놈아,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돌아온 거야!”인우는 잘생긴 얼굴 옆으로 팔을 들어서 막았다.진춘심은 감정이 격해져 핸드백으로 인우를 계속 때렸다. 때리면서 욕을 퍼부었다.“이 양심도 없는 놈!”“우리 딸이 네가 가난한 것도 상관없다며 6년을 너랑 살았는데, 네가 바람을 피워? 그러고는 도망가?”“이 나쁜 자식아, 우리 딸 목숨까지 잃을 뻔했어! 너희 집안은 어른이나 애나 제대로 된 인간이 하나도 없어.”진춘심은 필사적으로 때렸다.김 기사가 이 장면을 보고 큰일이다 싶어 급히 차에서 내려 인우를 막으려 했다.

  • 전남편은 ‘나’바라기   114 화

    “와!”자리가 들끓었다.30분쯤 놀고 나자 혜니는 재미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혜니가 떠나자 인우도 곧 게임 자리에서 빠져나왔다.복도 끝 모퉁이는 조명이 어두웠다.혜니가 막 코너를 돌자마자 손목이 강한 힘에 붙잡혔다. 몸이 차가운 벽으로 떠밀렸다.남자의 큰 그림자가 혜니를 덮었다. 인우가 고개를 숙이자 숨결이 귓가를 스쳤다.“실검 봤어?”목소리는 낮고, 거절을 허락하지 않는 심문처럼 들렸다.오늘 진정은 회사에서 실검 이야기로 떠들썩하다고 말했다. 혜니도 분명 봤을 거라고 했다.그래서 인우는 혜니에게 설명하려고

  • 전남편은 ‘나’바라기   113 화

    인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주변 공기까지 몇 도는 내려간 것 같았다.“강제후 때문에?”혜니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인우를 보았다. 아름다운 눈동자는 무섭도록 텅 비어 있었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과거형이라는 말 몰라?”인우는 이를 악물었다. 턱선이 단단하게 굳었고, 한 글자 한 글자에 거친 힘이 실렸다.“윤혜니, 너 후회할 거야.”“그래?”혜니는 차갑게 맞받았다.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인우를 똑바로 보았다.“어떻게 복수할지 생각한 거 있으면 마음대로 해.”“기다릴게.”말을 마친 혜니는 다

  • 전남편은 ‘나’바라기   112 화

    그 자리에 있던 여직원들의 눈이 금세 반짝였다.강사가 급히 말했다.“대표님은 이쪽에 서시면 됩니다.”비서 세 명이 동시에 인우 뒤에 섰다.새연이 맨 먼저 손을 들었다.“대표님, 저는 살아도 대표실 사람이고 죽어도 대표실 귀신인데요. 혹시... 강제후 본부장님 조로 가도 될까요?”“가던가.”인우는 눈꺼풀도 올리지 않았다.미나가 바로 이어 말했다.“저는 재무팀 본부장님 조로 신청하겠습니다.”“가라.”대표과 같은 조가 되는 건 너무 무서워서 새연과 미나는 미리 도망치는 방법으로 선택했다.혜니도 두 사람이 떠나는 걸

  • 전남편은 ‘나’바라기   111 화

    혜니는 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지 않았다.결국 혜니는 버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한밤중, 혜니는 전화 소리에 놀라 깨어났다.방은 그대로였고,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인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전화는 옆집 이웃에게서 온 것이었다. 혜니 어머니 진춘심은 넘어져 머리를 다쳤고, 지금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내용이었다.혜니는 놀라 벌떡 일어나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밤새 N시로 돌아가는 길, 혜니가 탄 차는 인우의 롤스로이스와 스쳐 지나갔다.늦은 밤, 인우가 돌아왔다.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지만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

  • 전남편은 ‘나’바라기   12 화

    ‘내가 취한 건가?’샴페인 한 잔 마셨다고 이럴 리가 없었다.혜니는 접시를 내려놓고 서둘러 인우를 찾았다.인우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하지만 또다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그때 키 큰 남자 하나가 갑자기 혜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가씨,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저랑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죄송합니다.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요.”혜니는 남자를 피해 지나가려 했다.그러나 남자는 웃으며, 휘청이는 혜니의 몸을 덥석 붙잡았다.“좀 취하신 것 같은데요. 제가 정원에 모시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해 드릴게요.

  • 전남편은 ‘나’바라기   11 화

    뜨거운 박수가 연회장 안을 가득 채웠다.얼마 지나지 않아, 각계 기업인들이 겹겹이 인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그 사이에는 화려하게 꾸민 예쁜 여자애 세 명도 섞여 있었다.손목에 찬 시계만 봐도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은 되어 보였다.딱 봐도 어느 집안의 귀한 딸들이었다.혜니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조용히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왔다....혜니가 막 문밖으로 나와 숨을 돌리려던 때였다.하이엔드 맞춤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혜니 앞을 막아섰다.“한인우 대표님 비서죠?”“안녕하세요.”혜니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여자

  • 전남편은 ‘나’바라기   10 화

    묵직하게 내려앉은 손끝은 아무렇게나 닿은 듯했지만, 닿는 곳마다 혜니의 감각을 흐트러뜨렸다.‘4년만이야...’4년 만의 키스는 거칠고 익숙했다. 김 기사는 재빨리 차 안의 파티션을 올렸다.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귀머거리이자 장님이었으면 했다.혜니는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이를 악물 듯 세게 깨물자, 비릿한 맛이 입안 가득 번졌다.그제야 인우가 혜니를 놓아주었다.“한인우, 너 진짜 뻔뻔해.”인우는 뜻을 이룬 사람처럼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너도 꽤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혜니는 말문이 막혔다.‘이 개

  • 전남편은 ‘나’바라기   9 화

    이 목걸이는 오후에 혜니가 직접 받아 온 바로 그 목걸이였다.무려 112억 원대.혜니가 감히 목에 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혹시라도 망가지기라도 하면, 혜니는 평생 인우의 노예처럼 살아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그 순간, 혜니의 머릿속에 초등학교 때 읽었던 유명한 단편 하나가 스쳤다.제목이 하필이면 ‘목걸이’였다.“대표님, 이건 너무 귀한 거예요. 저는 못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망가지면 정말 감당 못 합니다.”혜니는 명절에 어른이 억지로 쥐여 주는 세뱃돈을 끝까지 사양하는 사람처럼 두 손으로 밀어냈다.“고의로 망가뜨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