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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Author: 경옥
하나하나 이어지는 추궁에, 계연수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두지 않았더라면 거의 받아내지 못할 뻔했다.

그녀가 서둘러 부엌 일을 맡지 않겠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부엌에서 막 일이 터진 직후라 내쳐지거나 벌을 받은 사람이 가장 많았고, 그만큼 원망도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만 시간을 두어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그 뒤에는 무엇이든 정리하기 수월해질 터였다.

하지만 심씨 노부인은 강단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괜히 조목조목 따져 맞서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더구나 윗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지도 계연수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계연수는 고개를 숙인 채 순하고 얌전한 모습을 지어 보였다. 심씨 노부인이 마음껏 불만을 쏟아낸 뒤에야,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부엌 일을 맡기 싫어 핑계를 댄 것은 아닙니다. 폐하께서 직접 내리신 분부인지라 감히 소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양쪽 일을 한꺼번에 챙기다 모두 제대로 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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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homejoa
시어머니 트집은 어디나 같네. 첩첩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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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813화

    며칠 지나지 않아 계연수는 고씨 집안에서 보낸 편지 한 통을 받았다.편지는 외조모인 고씨 노부인이 직접 쓴 것이었다. 집안에 중대한 일이 생겼으니 반드시 고씨 부저로 와 함께 의논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도 올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여져 있었다.계연수는 부저를 다녀온 지도 꽤 오래된 터라, 마침 잘됐다 싶어 길을 나섰다.고가로 향하는 마차 곁에는 호위 무사 일곱, 여덟 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모두 지난 일을 겪은 뒤 심서준이 그녀를 위해 새롭게 엄선해 붙여 준 사람들이었다.부저에 도착해 대청으로 들어서자, 안에는 이미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계연수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방 안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예전 사씨 가문에 시집가 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의 계연수는 얼굴빛부터 한결 윤기가 돌았다. 고귀한 가문의 귀부인들에게서나 볼 법한 차분한 기품이 눈매에 어려 있었고, 손에는 상아 부채를 쥔 채 금실로 짠 고급 유운사를 걸치고 우아하게 걸음을 옮겼다.그 단아한 자태에 방 안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계연수는 모두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 뒤 한 사람씩 예를 갖춰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몇 마디를 속삭인 뒤, 고씨 노부인의 손짓을 받고 외조모 곁에 자리를 잡았다.주위를 둘러보니 고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모여 있었고, 고준까지 자리하고 있었다.오늘 모임이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씨 노부인은 먼저 계연수와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야 본론을 꺼냈다.며칠 전 영국공부의 백씨 큰부인이 직접 찾아와 많은 예물을 보내며 혼담을 꺼냈다는 것이었다. 상대는 지난해 진사에 급제한 영국공부의 둘째 도련님이었다.고씨 가문에서도 이미 사람을 보내 그를 알아보았다. 용모는 뛰어나고 인물도 훤칠했다. 비록 첩의 소생이기는 했지만, 영국공부 큰방 후손 가운데 유일하게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다. 빈둥거리기만 하는 백씨 가문의 장남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이

  • 주문춘귀   제812화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쓸모없는 딸을 키웠는지 모르겠구나!”백씨의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늘 강인하기만 하던 그녀였지만, 어머니 앞에서만큼은 애써 억눌러 온 피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힘껏 움켜쥔 채 한참 침묵하던 그녀가 낮게 입을 열었다.“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정말 쓸모없는 딸이지요. 그런 쓸모없는 딸을, 어머니는 무엇 하러 찾아오셨습니까?”백씨 노부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창백한 백씨의 얼굴을 바라보다 깊게 한숨을 삼킨 뒤, 목소리를 낮췄다.“내가 널 보러 온 줄 아느냐? 심씨 노부인과 정을 쌓아 네 동생 일이나 이야기해 보려고 온 것이다. 그리고 너한테 다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고 일러 주기 위함이기도 하고.”“지금은 계연수가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다. 네 아버지 성정이 어떤지는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또 일을 벌었다가 화리를 당해 친정으로 돌아오는 일만큼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가서 큰 화를 자초하면 평생 산에 들어가 비구니로 살아야 할 테고, 나 역시 널 찾아가지 않을 테다!”백씨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더니 비웃듯 웃었다.“제가 심태숙에게 시집간 뒤 다섯째 도련님께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 이상 저에게 기대를 걸지 않으셨지요. 점점 냉담해지셨고, 심태숙은 머지않아 심가에서 버림받아 돌려보내질 사람이라 여기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버려진 패가 되었어요. 총애받지 못하는 서자의 부인이었으니, 당연히 관심조차 받을 가치가 없었던 거겠죠. 친정에 처음 인사드리러 갔던 그날, 저를 마치 남이나 되는 사람처럼 차갑게 대하시던 얼굴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러고는 모든 기대를 제 여동생에게 걸었죠. 여동생은 이부상서 적장자에게 시집보내고, 혼수도 제 것보다 훨씬 넉넉하게 챙겨 주셨고요. 헌데 나중에 심태숙은 심가에서 내쳐지지 않았습니다. 대감께서는 의리를 중히 여기고 약속을 지키는 분이셨기에 심태숙을 족보에 올려주셨고, 이후에는 심씨 노부인께서 집안 살림까지 제게

  • 주문춘귀   제811화

    심서준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엄숙하면서도 냉정한 기색이 어린 얼굴로 내뱉는 말에는 조금의 농담도 섞여 있지 않았다. 계연수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서준은 원래 농담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계연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 뒤, 무심결에 말했다.“고마워요, 부군.”심서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사실 그녀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은 부부인데, 부부 사이에 무슨 감사 인사가 필요하겠는가.심서준은 말없이 계연수의 볼을 가볍게 꼬집은 뒤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가 떠난 뒤에도 계연수는 한동안 눈앞의 함을 바라보기만 했다.조심스레 뚜껑을 열자 안에는 두툼한 토지 문서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굳이 하나하나 세어 보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심서준이 얼마나 막대한 재산을 지녔는지, 그녀로서는 도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심서준의 일 처리는 빨랐다.그날 오전이 되자 각 점포의 관사들이 장부를 들고 하나둘 찾아왔다.그들은 계연수를 대하는 태도부터 매우 조심스러웠고, 눈빛에는 조금의 경시도 없었다. 애초에 그들의 몸값 문서는 모두 심서준의 손에 있었고, 각 점포의 관사 역시 그가 직접 엄선해 뽑은 사람들이었다.오늘 이들을 부른 것은 각 점포의 기본적인 수입 상황을 계연수에게 파악시키는 한편, 관사들에게도 새로운 주인을 제대로 인사시키기 위해서였다.점포가 워낙 많으니 하루 만에 모든 장부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하지만 이제 경영을 맡게 된 이상 계연수는 처음부터 기강을 바로잡고 싶었다. 주인이 바뀌었다고 해서 쉽게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은 품지 못하게 해야 했다.그녀는 점포의 종류에 따라 장부 제출 날짜를 나누어 지시했다. 어떤 점포는 매달 초하루, 어떤 곳은 초사흘, 또 어떤 곳은 초닷새에 장부를 올리도록 했다.점포를 세 부류로 나누니 자신도 여유를 가지고 하나씩 살필 수 있었고, 실수를 줄일 수도 있었다.이어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섞어 몇 마디를 덧붙였다.비록 얼굴은 아직 젊었지만,

  • 주문춘귀   제810화

    그 슬픔은 계연수가 겉으로 드러낸 감정이 아니었다.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해 보였지만, 심서준은 그 평온한 얼굴 아래 숨겨진 불안까지도 놓치지 않았다.그녀는 단 한순간도 진정으로 마음을 놓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어쩌면 그녀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는, 지금도 자신은 여전히 기댈 곳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몰랐다.심서준은 손끝으로 그녀의 눈가를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곁에 놓여 있던 작은 함 하나를 집어 계연수의 손에 쥐여 주었다.“여기에는 내 명의로 된 모든 점포의 문서가 들어 있다.”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앞으로는 이것들을 모두 네가 보관하고 관리하거라. 조만간 각 점포의 관사들을 불러 장부를 인계하게 하겠다. 앞으로 들어오는 수익도 모두 네가 맡아 관리하면 된다. 다만 장원은 당분간 그대로 두겠다. 지금도 네 손에 일이 적지 않으니 장원까지 돌보기에는 벅찰 것이다. 그쪽 사람들도 모두 믿을 만하니, 한동안은 그대로 맡겨 두었다가 나중에 너에게 넘기마.”심서준은 계연수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창고 열쇠도, 점포도 모두 네게 맡겼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내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다. 무엇을 사고 싶어 은자를 쓰더라도 따로 장부에 적어 둘 필요도 없고.”그러다 문득 그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내가 너에게 준 혼수는 잘 간직하거라. 훗날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끝까지 네 것이니까. 네가 가지고 떠날 수 있는 것들은 앞으로 남은 삶을 의지할 바탕이 될 것이고, 그것이 내가 너에게 남겨 주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계연수는 멍하니 함을 받아들었다. 한참 동안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눈을 들어 심서준을 바라보았다. 금세라도 눈물이 맺힐 듯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부군께서는… 저를 그렇게까지 믿으시는 건가요?”그녀는 함을 꼭 끌어안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부군의 사재를 모두 제게 맡기셨잖아요. 혹시 제가 점포를 제대로

  • 주문춘귀   제809화

    그 순간, 계연수는 진심으로 마음이 흔들렸다.사옥현과 화리하기로 결심한 그날 이후, 그녀는 다시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가겠다고, 오직 자신이 편안하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만을 바라보겠다고 다짐해 왔다.더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바꾸지 않을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맞추느라 스스로를 억누르거나 희생하지도 않을 것이며, 한 사람의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는 헛된 기대 역시 품지 않기로 했다.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여인이 있고, 자신은 그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었다. 누군가가 평생 한결같이 사랑할 만큼 특별한 재주도, 남다른 매력도 없었다.어린 시절 품었던 순진한 기대와 분수에 넘치는 꿈은 오래전에 닳아 없어졌다. 이제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그런데도 심서준의 말 한마디는 오래도록 잠잠했던 그녀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마치 오래전, 눈 덮인 들판에서 사옥현이 온화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말해 주던 그 순간과 너무도 닮아 있는 설렘이었다.메마른 대지에 조용히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다.계연수는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자신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고, 단 하나뿐인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 평생 누군가에게 소중히 아낌받으며 살아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그리고 다시는 배신당하거나 버림받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믿음.그런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가슴속으로 밀려들자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졌다.계연수는 심서준의 옷깃을 꼭 움켜쥔 채 그의 품속 깊이 얼굴을 묻었다.지금 이 표정만큼은, 끝내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정말이지 조금도.심서준은 품속에 파묻힌 작은 머리만 내려다보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그는 나직이 물었다.“무슨 일이냐?”한참이 지나서야 품 안에서 가늘게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주문춘귀   제808화

    계연수는 가련한 표정으로 심서준을 올려다보았다.“부군께서는 제가 요즘 살이 빠진 것도 모르셨나요?”그 애처로운 얼굴을 바라보던 심서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는 그녀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혹시라도 역모에 가까운 부탁을 하거나, 공사를 어기게 만드는 일을 청할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바라는 것은 고작 이런 일이었다.심서준은 어이없다는 듯, 그러나 다정한 기색이 서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쥐어 보더니, 다시 매끈한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아무리 봐도 살이 빠진 것 같지는 않았다.방 어멈은 날마다 틈을 내어 계연수가 혜풍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에게 전해 주곤 했다. 듣자 하니 요즘은 생선을 유난히 좋아해 점심에도 생선 반 마리를 먹었다는데, 그게 어디 입맛이 없어서 먹지 못한 사람의 식사량이란 말인가.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심서준은 절로 웃음이 났다.애교를 부리는 솜씨만큼은 제법 능숙했다. 이런 모습은 분명 친정에 있을 때도 여러 번 써먹었을 것이다.그러니 예전 계정윤이 계연수를 바라볼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끝내 웃어 넘기고 마는 얼굴을 했던 것도 이해가 갔다.그리고 지금의 그는, 비로소 꾸밈없는 계연수의 모습을 조금씩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무엇보다 그런 모습마저도 싫지 않았다.심서준은 그녀의 뜻에 맞춰 장단을 맞춰 주었다.“그러고 보니 정말 조금 야윈 것 같구나. 내일 내가 어머니께 말씀드리마. 다시는 그 약을 먹이지 않으시도록 말이다.”그러자 계연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어머님께서도 저를 생각해 주셔서 약을 챙겨 주시는 거잖아요. 부군께서 직접 말씀드리시면 괜히 어머님 마음만 상하실 거예요.”심서준은 낮게 웃으며 되물었다.“그럼 네 생각은?”계연수는 기다렸다는 듯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심서준이 직접 나서면 약을 끊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심씨 노부인은 분명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돌릴 터였다. 심서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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