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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Author: 레몬과 향수
어젯밤 송씨는 밤새 장부를 정리하고 점포를 두 개나 판 데다가, 유선주의 혼수까지 끌어모아서 은 이십만 냥이나 마련했다.

“할머니, 저는 장부를 볼 줄도 모르니 장부에 익숙한 외숙모님을 불러 확인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송씨가 망설이는 모습을 본 유지영이 말했다.

유씨 노부인은 앞으로 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을 시켜 한씨를 불러오게 했다.

반 시진 뒤, 한씨가 저택에 도착하자 집안 사람들도 모두 대청으로 모였다.

소식을 들은 셋째와 넷째 가족도 모두 모여 불만 가득한 눈으로 유지영을 노려보았다.

이내 셋째 부인 정씨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경성에 올라오면 우리 유국공부도 이제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오자마자 온 경성의 웃음거리가 되게 생겼네요.”

말을 마친 그녀는 송씨를 돌아보았다.

“형님은 그동안 그렇게 고생하고도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이런 수모를 당하시니, 정말 안타까워요.”

송씨는 억울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큰 형님이 일찍 돌아가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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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을 거슬러   제320화

    전생에 유지란은 줄곧 유선주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유지영의 기억으로, 송씨는 유지란을 위해 어느 관원 집안의 적장자와 혼사를 맺어주었다.유지란에게도 좋은 일이었고, 인심을 살 수도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지란 아가씨는 아직도 혼인 상대가 엽씨 어르신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합니다. 셋째 나으리네가 이를 감추고, 밖으로는 엽씨 집안의 열여덟 살 양자와 혼인한다고 알렸답니다."유지영은 눈빛을 반짝였다. 왜 유지란이 잠잠하다 했더니, 철저히 속고 있었던 것이다."셋째 삼촌은 이해득실을 철저히 따지시는 사람이다. 둘째 삼촌네는 이미 망했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찾아가 은자까지 쥐여준 거지?"돌아가는 상황이 어딘가 수상했다.며칠 전 배현준이 정왕부 부족한 은자를 누군가 메워주었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엽씨 집안이 나섰을 가능성이 컸다.정왕부를 돕는 자는 모두 그녀의 적이었다.방비원으로 돌아온 유지영은 운청을 불렀다."엽씨 집안과 그 양자에 대해 알아보거라. 자세할수록 좋다.""예."날이 저물어 사방이 어두워진 후에야 운청이 돌아왔다."마마, 그 양자는 엽 부인이 십오 년 전에 거둔 자입니다. 겉으로는 엽씨 집안의 공자라 하나, 실제로는 종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엽 가주는 워낙 지독한 자라, 수년간 친아들을 얻겠다며 온갖 핑계를 대고 무고한 여인들을 수도 없이 유린했다고 합니다.""보름 전 엽 가주가 지란 아가씨의 사주를 맞춰보았는데, 단번에 득남할 점괘가 나왔다고 합니다. 엽씨 가문은 대대로 모아둔 재물이 많은데, 엽 가주 대에 이르러서는 엄청난 갑부가 되었다고 합니다."유지영은 몸을 비스듬히 책상에 기댄 채, 손가락으로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며 입술을 깨물었다."엽 공자의 심복에게 사람을 붙여....""마마, 엽 공자는 거의 감금된 상태입니다. 문밖에 전담 호위 무사가 지키고 있고 혼사가 치러지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운청이 말했다.곁에 있던 동금이 거들었다."엽씨 집안은 꽤나 신중하군요.

  • 피안을 거슬러   제319화

    경왕은 예상보다 빨리 장부를 채워넣었다. 불과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그날 전하와 왕비께선 돌아가신 뒤 크게 다투셨다 합니다. 전하께선 왕비가 세자비 마마께 살림을 넘기시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났다며 책망하셨고, 부관에게도 곤장 열 대를 치셨다고 합니다."홍주가 들어와서 보고했다.유지영은 장부가 잘못된 것을 발견했을 때부터 이미 경왕의 소행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왕비가 이를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친척들이 순순히 집을 비운 것도 수상했다.경왕비가 사비로 은자를 냈을 리는 없으니, 남은 사람은 경왕뿐이었다.애초에 경왕비가 나서서 판을 깔아주지 않았다면 이 연극도 이렇게 완벽하게 끝맺지 못했을 것이다."마마, 하나 더 있습니다. 요 며칠 정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성 밖으로 적잖은 사람을 내보냈더군요."유지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명했다."사람을 붙여 감시하고 일일이 보고하거라.""예."며칠 내내 천설고를 바른 덕에 팔의 상처는 점차 아물고 있었다. 약간 가려운 것을 빼면 통증은 전혀 없었다."둘째 부인 쪽은 하루 종일 짜증을 낸다 합니다. 상처가 심하게 곪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물지 않는 모양입니다. 의원을 여럿 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하네요."홍주가 덧붙였다.유지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왕비가 지나치게 오냐오냐 키워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시집오자마자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으니 당해도 싸지."그녀는 민경주가 조금도 불쌍하지 않았다.모두 자업자득이었다.문득 입궁하여 태후를 뵌 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전갈을 넣고 다과를 챙겨 황궁으로 향했다. 서 태후는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담소를 나누었다.유지영은 팔을 다친 일은 꺼내지 않았고, 서 태후 역시 굳이 묻지 않았다."현준이가 내게 와서 임태비 일가족을 경성으로 부르게 해달라 청하더구나. 임태비의 몸이 허약하기도 하고, 경왕이 매일같이 임태비 곁으로 가 병수발을 들게 해달라 청했다면서 말이다."

  • 피안을 거슬러   제318화

    여러 사람이 한마디씩 떠들어대자 경왕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배현준을 바라보았다."사단이 난 원인이 그 십칠만 냥이니, 그 은자의 행방을 말해보거라."경왕이 덧붙였다."네가 네 고모를 때려 다치게 하고 내쫓았으니, 경왕부에서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 도리다....""아닙니다. 그 여자가 자업자득으로 그리된 것이니, 전 인정할 수 없습니다."배현준은 코웃음을 쳤다."네 이 놈! 상대는 네 고모가 아니냐!""저는 임씨 가문과 아무런 왕래도 없었습니다.""너!"경왕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영지로 보낸 은자를 가리켰다."네 할머니께서 병환에 드셔서 은자가 필요하셨다. 할머니께 효도하는 것도 잘못이냐?"배현준이 다시 비웃듯 되받아쳤다."할머니라니요? 저의 할마마마는 지금 자녕궁에 계십니다. 일개 태비가 어찌 제 할머니가 됩니까?"그 말에 경왕은 화를 참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었다."이 막돼먹은 놈, 이제 할머니조차 모른 척할 작정이냐?""전하, 태후 마마야말로 전하의 엄연한 적모이십니다. 설마 태비를 어머니로 모시면서, 적모이신 태후 마마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배현준이 반문했다.그 말에 경왕은 분통이 터져 기절할 것 같았다.선제 시절 황후는 단 한 명, 지금의 서 태후뿐이었다. 비록 서 태후의 나이가 경왕보다 어리다 해도 명백한 웃어른이었고, 선제께서 천하에 공표한 정실이었다.임태비와 숙태비는 그저 후궁일 뿐이었다.진정한 적모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 태후 한 사람뿐이었다.배현준은 비웃음을 흘리며 다시 물었다."전하께서 효도를 하실 거라면, 어찌하여 공용 장부의 은자를 훔쳐 쓰십니까?"경왕이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았지만, 배현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닷새 안에 빈 장부가 채워지지 않으면, 제가 직접 집집마다 돌며 수금을 하는 수밖에요. 저택을 팔든 영지까지 찾아가 독촉하든, 동전 한 닢이라도 모자라선 안 될 것입니다.""너 감히!"경왕은 분노를 터뜨리며 손을 치켜들었

  • 피안을 거슬러   제317화

    "도련님 말씀은 전하께서 멋대로 왕부의 공용 장부 은자를 가져다 쓰셔도, 갚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까?"유지영은 턱을 치켜들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배영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배영준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반박했다."이 왕부가 아버지의 것인데, 은자 좀 쓴 게 대수입니까!"배영준은 형수인 유지영을 향한 존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분노가 이글거리는 두 눈은 유지영을 향한 적대감으로 가득했다.유지영은 냉소를 터뜨렸다."그렇습니까? 아까 도련님께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시더니, 남의 재산을 탐하는 행위를 참 그럴싸하게 포장하시는군요."유지영은 장부를 부관에게 집어 던지며 분노를 터뜨렸다."다들 장부가 잘못된 것을 뻔히 알면서 고의로 나를 속였구나. 내가 장부를 볼 줄 몰랐다면 오늘 꼼짝없이 내 혼수로 구멍을 메웠겠지.""세자비 마마...."부관은 연신 손을 내저었다."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더 이상 입씨름할 가치도 없었다."가서 세자께 전갈을 올려라. 내가 궁지에 몰려 죽을 지경이라고."그 말에 배영준의 기세가 순식간에 꺾였다. 그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유지영을 손가락질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지영아, 현숙한 부인이 들어와야 집안이 평안한 법이거늘, 어찌 이리 분란만 일으키느냐!"경왕비는 한치도 손해 보려 하지 않는 유지영의 언행에 화가 치밀었다.유지영은 자리에 앉자, 시녀가 차를 내왔다.그녀는 묵묵히 차를 마셨다.배현준은 그녀의 예상보다 일찍 돌아왔다. 그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굳은 얼굴로 발을 들어 배영준의 허리를 걷어차 버렸다."막돼먹은 놈, 누가 네 형수에게 삿대질하며 욕해도 된다 했느냐!"배영준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통증에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영준아!"경왕비가 황급히 다가가 배영준을 부축했다. 화가 난 경왕비가 배현준을 쏘아보았지만, 배현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욕설을 퍼부었다."교양 없는 놈!"배영준은 분노로 숨을 헐떡였다.

  • 피안을 거슬러   제316화

    "부관이 십칠만 냥의 은자를 횡령했으니, 합당한 해명이 있어야 마땅하지요."유지영은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그 은자를 경왕이 가져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했다.부관은 관아에 고한다는 말을 듣자 쉴 새 없이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세자비 마마, 억울합니다. 은자는 참으로 전하께서 가져가신 게 맞습니다. 장방에도 전하께서 은표를 가져 가신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이에 유지영은 장방 선생을 바라보았다.장방 선생은 평생 이토록 혼란스러운 광경을 겪어본 적이 없어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게다가 세자비가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인물이 아님을 잘 알기에,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른 이상 모든 것을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그, 그게... 전하께서 가져가신 것이 맞습니다."장방 선생은 다른 장부 하나를 더 꺼냈다. 그곳에는 경왕이 언제 얼마를 지출했는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그중 가장 큰 지출은 양정화가 저택을 구매하는 데 쓰인 삼만 냥이었고, 병을 치료하고 보약을 사는 데 또 만 냥 넘게쓰였다.또한 방현숙의 거처를 마련하는 데도 이만 냥이 넘게 들었다.그 밖의 친척들에게도 만 냥, 오천 냥 등 제각각 은자가 돌아갔다.심지어 사람을 시켜 영지로 삼만 냥의 은자를 보내기도 했다.기록된 날짜를 보니 모두 이번 달에 벌어진 일들이었다."전하께서 가져가신 거라면 더는 할 말이 없구나."경왕비는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무마하려 손을 휘휘 내저었다.하지만 유지영이 이대로 대충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장부를 손에 든 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왕비께선 집안 살림을 맡아오신 지 꽤 오래되셨지요. 제게 장부를 넘기실 때 장부가 맞지 않다고 한마디 언질만 주셨어도, 제가 일을 이리 크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경왕비는 발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린 채 유지영을 노려보았다."속으로 화가 나고 전하께 불만을 품으셨더라도, 굳이 제 손을 빌려 이 일을 키우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자칫하면 제가 전하를 오해할 뻔하지 않았습니까."할 말은

  • 피안을 거슬러   제315화

    경왕비는 유지영이 이렇게까지 과감하게 수많은 시녀들 앞에서 자신의 출신을 꼬집으며 면박을 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일말의 체면도 봐주지 않은 처사였다.경왕비뿐만 아니라, 부관과 시녀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한미한 가문 출신이라 명문가의 예법을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유지영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한마디 더 보탰다."그만하지 못할까!"경왕비가 분노하며 호통쳤다."네가 두둑한 혼수를 챙겨오고 든든한 뒷배가 있다고 해서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내 출신이 아무리 미천하다 한들 엄연한 왕부의 주인이다. 아랫사람에게 비난받을 처지가 아니란 말이다!"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유지영 역시 더는 화목한 척 연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왕비께서 경왕부로 오시기 전까지는 집안 살림이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갔습니다. 매년 점포와 장원에서 은자가 들어왔고, 그간 세자 혼자 지출해 봐야 얼마나 썼겠습니까.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공용 장부의 은자가 바닥나고, 왕비께서는 굳이 제게 살림을 넘기셨습니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러시는 겁니까."유지영은 처음 장부를 손에 쥐었을 때부터 이미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다.하지만 애써 꾹 참고 부관이 제 발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경왕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속으로 불안감이 슬슬 치밀었지만 겉으로는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너는 왕부의 세자비이니 내 짐을 덜어주는 것이 응당한 도리다. 공용 장부에 은자가 없는 것은, 그간 현준이가 주색에 빠져 방탕하게 지낸 탓이다. 그런 짓거리들에 은자를 물 쓰듯 썼으니 남아날 리가 없지."막나가기로 작정한 듯한 경왕비의 모습에 유지영은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동금, 가서 장방 선생을 모셔 오너라!"일을 크게 벌리려 하는 유지영의 행보에 경왕비는 의구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부관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장방의 선생들이 모두 불려 왔다.유지영은 따로

  • 피안을 거슬러   제2화

    종령각 이층 누각.유지영은 부스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유난히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회랑 아래에서는 하인들이 정원을 단장하며 내일 있을 성년례가 떠들썩할 거라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눌렀다. 아픔이 몰려왔고, 곧바로 이 모든 게 꿈이 아님을 직감했다.그녀는 죽임을 당한 뒤 성년례 하루 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이때 밖에서 고씨 어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부인께서 대전으로 들라 하십니다. 경성에서 사람이 온 듯합니다.”전생의 배준형도 성년

  • 피안을 거슬러   제1화

    7월의 장안 거리는 굉장히 시끌벅적했다.마차 한 대가 성문 입구에서 멈추었다.털썩!유지영은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마대에 담겨 바닥에 내던져졌다. 온몸으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특히 하반신에서는 찢어질 듯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었다.“읍….”지나가던 백성들이 소리를 듣고 마대를 풀어주었다.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사내의 옷가지를 걸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하얗고 가는 목덜미 아래에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이 사람은 정왕 세자비 아닌가?”누군가가 유지영을 알아보고 비명을 질렀다.“옷매무새가 이 모양인 것을 보아 불결

  • 피안을 거슬러   제256화

    “오셨습니까, 형수님.”배이수는 유지영을 보자 반갑게 웃으며 인사했다."아바마마께서는 제가 경성에 처음 왔으니, 이참에 친지들 부저에 자주 들러 얼굴을 익혀 두라 하셨습니다."그는 입에 붙은 듯, 아주 자연스럽게 아바마마를 불러댔다.유지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예를 행했다."장차 양나라 전체가 전하의 것인데,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실 수 있지요. 누가 감히 막겠습니까?"얼굴에 면사포를 쓰고 참석한 방현숙은 유지영을 매섭게 흘겨보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렇지 않느냐, 조카며느리?""조정의 대사를 아녀

  • 피안을 거슬러   제254화

    유지영이 자녕궁을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소 상궁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궁문까지 배웅했다."군주께서 입궁하시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태후 마마께서는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앞으로 자주 오셔서 마마의 말벗이 되어 주십시오."유지영은 흔쾌히 응했다.궁문에 다다르자, 그녀는 손을 저어 소 상궁을 돌려보냈다.정문을 향해 길게 이어진 복도를 지나던 중, 화려한 비단 도포를 입은 배준형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재수 없긴!"유지영은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배준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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