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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조문의 가장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1 06:38:45

경찰서 자료실의 형광등은 이상할 정도로 밝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낮빛과 섞이면서 방 안의 공기가 어딘가 희미하게 떠 있는 느낌을 만들고 있었다.

서류 보관용 철제 캐비닛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오래된 종이 냄새가 조용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건우는 방금 덮었던 서류를 다시 펼쳤다.

김도현.

그 이름은 단순한 방문자 기록처럼 보였지만,

그 줄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보다 훨씬 무거웠다.

형이 죽은 다음 날.

그리고 오전 열 시.

건우는 그 시간을 한 번 더 눈으로 따라갔다.

입실 10:12

퇴실 11:03

거의 한 시간.

그 시간 동안 김도현은 형의 집 안에 있었다.

하나는 기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건우.”

그는 고개를 들었다.

“너 그날 기억나?”

그 질문은 부드러웠지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건우는 잠시 시선을 서류에서 떼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이후의 기억은 전체적으로 흐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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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의 밤   108. 기록의 틈

    해가 더 기울어지자 서재 안의 빛도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낮 동안 방 안을 채우고 있던 밝음이 부드럽게 흐려지면서 책장 사이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창문 너머로는 저녁을 준비하는 도시의 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건우는 책상 앞에 서서 형이 남겨 둔 종이를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있었다.종이 위에는 여전히 같은 문장이 남아 있었다.지분 이전 전 마지막 거래 그 문장은 짧았지만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형이 어떤 사건의 경계선을 설정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거래 이전과 이후가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하나는 책장 쪽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건우.”그는 시선을 돌렸다.“형이 이걸 숨겼다는 건.”그녀의 말이 천천히 이어졌다.“그날 집에 누가 올 거라고 예상했을 가능성도 있어.”건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이 죽기 전까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그 마지막 며칠 동안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아직 완전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형은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의심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길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건우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잠시 낯설게 느껴졌다. 형의 사건을 쫓기 시작한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지만, 이제야 조금씩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그 윤곽의 중심에는 여전히 같은 이름이 있었다.김도현.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형이 지분 정리를 준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렇게 생각했어.”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회사에서 지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보통 그 전에 돈의 흐름이 먼저 바뀌거든.”건우의 시선이 다시 종이로 향했다.형이 기록해 둔 거래가 바로 그 변화의 시작일 수도 있었다.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혹시.”그녀의 말이 이어졌다.“그 거래가 마지막 경고였을 수도 있어.”건우가 물었다.“경고?”하나는 잠시 말을 고르

  • 형수의 밤   107. 경로의 우회

    서재 안에 남아 있던 빛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창문 밖의 햇빛이 책장 사이로 길게 늘어지면서 방 안의 색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오후가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였다.건우는 서랍에서 발견한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어 노트북 옆에 내려놓았다.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위에 적힌 문장은 이제 사건의 중심을 향해 방향을 잡아 주고 있었다.지분 이전 전 마지막 거래형은 그 거래를 마지막 기준점으로 삼고 있었다.하나는 책상 옆에 기대 서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조금씩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계좌 흐름.형이 남긴 메모.그리고 형의 집에 찾아왔던 사람.김도현.하나는 조용히 말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었다.“지금 당장 그 사람을 만나겠다는 거야?”건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아까 서재에서 했던 말은 단순한 감정의 반응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모은 조각들이 가리키는 이름이 하나로 모이고 있었고, 그 이름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하나는 조금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다행이네.”건우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해가 기울면서 유리창에 희미하게 자신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지금 가면.”그의 말이 이어졌다.“우리가 뭘 알고 있는지 바로 눈치챌 거야.”그 말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에 가까웠다.김도현이 정말 이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는 이미 여러 번 상황을 정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에게 갑자기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경고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하나는 조용히 물었다.“그럼.”그녀의 말이 이어졌다.“다른 방법이 있어?”건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시선이 서서히 내려왔다.“형 회사.”그가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들었다.“응.”“지분 이전.”그의 말은 천천히 이어졌다.“그게

  • 형수의 밤   106. 남겨진 문장의 방향

    서재 안 공기는 조금 전보다 더 고요해져 있었다.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빛이 책상 위로 비스듬히 떨어지고 있었고, 그 빛 위에 방금 발견한 종이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 적혀 있는 숫자와 이름이 가진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건우는 책상 옆에 서서 그 종이를 다시 펼쳐 보았다.형의 글씨는 여전히 차분했다. 급하게 쓴 흔적은 없었고, 숫자들도 일정한 간격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숫자를 다뤄 온 사람이 가진 습관 같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하나는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형이 이걸 숨겨 둔 건.”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누가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건우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형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중요한 자료를 아무렇게나 두는 성격은 아니었고, 특히 회사와 관련된 문제라면 더더욱 그랬다.그는 천천히 말했다.“아마.”그리고 잠시 후 덧붙였다.“누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겠지.”그 말은 조용했지만 무겁게 내려앉았다.하나는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바라봤다. 어제 확인했던 계좌 흐름 파일이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해외 계좌를 거쳐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돈의 흐름, 그 중간에 끼어 있던 회사 계좌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했던 이름.김도현.형이 마지막까지 의심하고 있었던 사람.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었다.“형이 이걸 변호사한테 넘기려고 했던 거라면.”그녀의 말이 이어졌다.“단순한 의심은 아니었을 거야.”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형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법적으로 넘길 사람은 아니었다. 최소한 어느 정도의 증거와 흐름을 정리한 뒤에 움직이는 사람이었다.그렇다면. 형은 이미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건우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그 안에 적힌 숫자들은 단순한 거래 기록처럼 보였지만, 형이 남긴 문장 하나

  • 형수의 밤   105. 행방의 유예

    서재 창문으로 들어오던 낮빛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한낮의 직선적인 밝음이 서서히 부드러워지면서 방 안의 그림자도 길어지고 있었다. 책장과 책상 사이에 놓인 공기마저 조금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건우는 서랍 밑에서 꺼낸 종이를 여전히 손에 들고 있었다.종이는 평범한 복사용지였다. 오래 숨겨져 있었던 것치고는 구겨진 흔적도 거의 없었고, 접힌 자국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형이 일부러 접어 숨겨 둔 문서라는 사실이 분명해 보였다.하나는 건우 옆에서 그 종이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계좌 번호 몇 개와 숫자들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 형의 글씨가 남아 있었다.지분 이전 전 마지막 거래 그리고 그 밑에 적힌 이름.김도현.그 이름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형이 직접 남긴 문서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었고, 지금 손에 들려 있는 종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응.”“이거… 형 글씨 맞지?”건우는 잠깐 종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짧은 대답이었지만 확신이 담겨 있었다.형의 글씨는 오래 봐 온 사람에게는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숫자를 쓸 때의 방식이나, 글자 끝이 약간 기울어지는 습관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하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형이 이 종이를 일부러 숨겼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무게를 가지기 시작하고 있었다.그때까지 조용히 종이를 바라보던 건우가 입을 열었다.“지분 이전.”그가 낮게 말했다.“형이 준비하고 있었던 거겠지.”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김도현 지분을 정리하려 했을 수도 있고.”건우의 시선이 조금 움직였다.그 가능성은 충분했다. 형이 회사 지분 구조를 바꾸려 했고, 그 과정에서 김도현의 움직임을 발견했을 수도 있었다.형이 그걸 그냥 넘길 사람은 아니었다.건우는 종이를 다시 한 번 펼쳐봤다.숫자들은 단순한 거래

  • 형수의 밤   104. 서재의 두 번째 서랍

    경찰서 자료실을 나왔을 때, 밖의 공기는 이미 낮의 온도로 올라와 있었다.사람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고, 도로 위 차량 흐름도 점점 촘촘해지고 있었다. 세상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건우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확인한 이름 하나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김도현.형의 죽음 다음 날, 형의 집에 들어온 사람.단순히 조문이라고 넘기기에는 기록이 남긴 여백이 너무 많았다.차에 올라탄 뒤에도 건우는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은 채 잠시 핸들을 잡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다시 가보자.”건우가 고개를 들었다.“어디를.”“형 집.”그녀의 말은 짧았지만 망설임이 없었다.“어제도 봤지만… 서재는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어.”건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어제 형의 집을 한 번 살펴보았고, 노트북과 문서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 자료실에서 기록을 본 뒤로는 그 집이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지고 있었다.김도현이 그날 한 시간을 머물렀다.그 시간 동안 그가 어디까지 움직였는지, 무엇을 확인했는지 아무도 모른다.건우는 시동을 걸었다.차가 도로 위로 천천히 나왔다.집까지 가는 동안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의 방향은 비슷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형이 무엇을 남겼는지.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찾으려고 했는지.형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골목은 여전히 조용했다. 건우는 차에서 내려 잠시 현관 앞에 서 있었다.이 집은 여전히 익숙했다.어릴 때부터 형을 따라 몇 번이나 들렀던 집이었고, 형이 회사를 키워 가던 시절에도 종종 와서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곳이었다.그런데 형이 없는 집은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공기가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며

  • 형수의 밤   103. 조문의 가장

    경찰서 자료실의 형광등은 이상할 정도로 밝았다.창문으로 들어오는 낮빛과 섞이면서 방 안의 공기가 어딘가 희미하게 떠 있는 느낌을 만들고 있었다. 서류 보관용 철제 캐비닛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오래된 종이 냄새가 조용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건우는 방금 덮었던 서류를 다시 펼쳤다.김도현.그 이름은 단순한 방문자 기록처럼 보였지만, 그 줄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보다 훨씬 무거웠다.형이 죽은 다음 날.그리고 오전 열 시.건우는 그 시간을 한 번 더 눈으로 따라갔다.입실 10:12퇴실 11:03거의 한 시간.그 시간 동안 김도현은 형의 집 안에 있었다.하나는 기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었다.“너 그날 기억나?”그 질문은 부드러웠지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건우는 잠시 시선을 서류에서 떼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이후의 기억은 전체적으로 흐릿했다. 장례 준비가 이어졌고, 경찰이 몇 번이나 집을 오갔으며, 회사 사람들도 찾아왔다. 그 사이에서 그는 거의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었다.그날 집에 누가 왔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잘 기억 안 나.”하나는 그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것 같았어.”그녀는 다시 기록을 내려다봤다.“근데.”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조문이면 보통 장례식장으로 가지.”건우의 시선이 움직였다.하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집으로 바로 오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그 말은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들렸지만, 의미는 분명했다.특히 사건 직후라면 더 그렇다.형의 집은 그날 경찰이 조사하고 있었고, 상황 자체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 집을 굳이 찾아온다는 건 단순한 조문 이상의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건우는 기록을 다시 한 번 훑어봤다.방문자 이

  • 형수의 밤   44. 비틀린 일상

    위협은 대개 큰 소리로 오지 않는다.대신 일상의 틈을 아주 조금 비틀어 놓는 방식으로 스며든다.건우가 그 사실을 실감한 건, 다음 날 아침 주차장에 내려갔을 때였다.차량 외관에는 이상이 없었다. 유리도 멀쩡했고, 문도 잠겨 있었다. 그러나 운전석 문을 열고 앉는 순간, 그는 아주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시트 위치가 자신의 평소 위치보다 아주 약간 뒤로 밀려 있었다. 평소 같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차이였지만, 그는 기억했다. 사고 이후 허리 통증 때문에 항상 같은 간격으로 맞춰놓았기 때문이다.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

  • 형수의 밤   42. 뒤틀린 시작

    건우는 더 이상 형의 죽음만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았다.형이 사고 재조사를 언급한 시점과 보험 구조 변경, 그리고 자신의 교통사고 시점이 겹쳐지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다시 묻게 되었다. 그 질문은 단순했다. 형이 위험해진 건 언제부터였는가. 그리고 그 시작점이 혹시, 자신이 병실에 누워 있던 그날이 아니었는가.노트북 화면 위에는 사고 당시의 블랙박스 영상이 멈춰 있었다. 영상은 이미 여러 번 본 것이었지만, 그날은 다른 각도로 다시 재생하고 있었다. 도로는 비에 젖어 있었고, 반대편에

  • 형수의 밤   21. 모른 척은 여기까지

    열흘이 지나고 나서야 집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그 달라짐은 가까워진 게 아니라, 지쳐서 무뎌진 쪽에 가까웠다.건우는 여전히 거실 불을 켜둔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서류는 펼쳐져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그냥 손에 쥐고 있는 느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문이 열렸고, 노크는 없었다.발소리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일부러 들으라는 것처럼. 건우는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오늘은 그냥 자게?”대답 대신 웃음이 아주 짧게 흘렀다.“내가 오면 그렇게 긴장돼?”그 목소리는 낮의 하나와 분명히 달랐다.낮에는 말을

  • 형수의 밤   10. 의심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가득한 방, 건우는 숫자를 다시 적었다.9:129:189:37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왜.’-형은 왜 전화했는가.-위험을 알리기 위해?-아니면 누군가의 도착을 확인하기 위해?그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형이 전화한 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면.그 생각은 섬뜩했다.만약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다면.9시 18분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우는 펜을 내려놓았다.기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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