مشاركة

7. 6분

مؤلف: 데이지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05-18 14:10:10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식는 것 같았다.

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창문은 닫힌 채였다.

건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빼지 못했다.

9시 12분.

9시 18분.

6분.

그 짧은 시간이 자꾸 마음을 긁었다.

집에 들어서자, 현관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

빛이 바닥에 길게 떨어졌다.

하나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그대로 거실에 섰다.

“유림 씨 말, 어떻게 들렸어?”

그녀가 먼저 물었다.

건우는 잠시 생각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근데 전부는 아닌 것 같지.”

하나의 말이 겹쳐왔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나는 잠시 서 있다가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투자자 얘기, 처음 듣는 거였어.”

“형이 따로 말 안했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회사 일은 대부분 공유했어.”

그 문장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건우는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걸렸다.

“그날… 집에 들어가셨을 때.”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나는 시선을 들었다.

“형수가 본 건… 거실이었죠?”

“응.”

“부엌 쪽은 어땠어요?”

하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서랍이 열려 있었어.”

“칼꽂이는요.”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기억 안 나.”

짧은 대답.

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칼은 부엌에서 나온 걸로 추정된다고 했다.

칼꽂이가 비어 있었는지,

흩어져 있었는지,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충격 속에서는 많은 것이 흐릿해진다.

그런데 9시 18분의 부재중 통화는 오늘 확인했다면서,

부엌 서랍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은 선택적으로 선명해진다.

건우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저녁이 지나고 밤이 깊었다.

하나는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통화 기록 화면이 잠깐 비쳤다.

건우는 괜히 눈을 돌렸다.

“9시 18분.”

그가 낮게 말했다.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응.”

“그때… 어디쯤에 있었어요?.”

“집 앞”

“현관 앞이요?”

“응.”

건우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물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이면…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시간은 기억나요?”

하나는 잠시 멈췄다.

“왜.”

“그냥.”

그는 말을 흐렸다.

“통화 기록이 9시 18분이면…9시 12분 통화 끝나고 6분 뒤 잖아요.”

하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이에 형이… 집 밖으로 나갔다 들어온 건 아닐까요?”

그 질문이 공기를 바꿨다.

하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비는 많이 오고 있었어.”

“그래도.”

건우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집 안에서 누군가를 만났다면.”

하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한 번 두드렸다.

“건우야.”

그녀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넌 지금 뭘 말하려는 거야.”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말로 꺼내면 모양이 생긴다.

그는 아직 그 모양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에요.”

짧은 후퇴. 하나는 그를 오래 바라봤다.

“의심하는 거면… 말해도 돼.”

그녀의 눈에는 방어도, 분노도 없었다.

대신 피로가 있었다.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의심이 아니라… 확인이에요.”

“뭘.”

“시간이요.”

그는 천천히 말했다.

“9시 12분, 9시 18분, 9시 37분.”

하나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시간은 거짓말 안 해.”

그녀가 낮게 말했다.

“사람이 거짓말하지.”

그 문장이 지나갔다.

그날 밤, 건우는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하나는 방으로 들어갔고, 문은 닫혀 있었다.

9시 12분 - 유림과 통화.

9시 18분 - 하나에게 부재중 전화.

9시 37분 - 신고.

25분.

그 사이에 형은 누군가를 만났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이미 집 안에 있었을까.

건우는 형의 성격을 떠올렸다.

신우는 서두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유림은 말했다.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 단어가 자꾸 남았다.

서두른다는 건, 이미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건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게스트룸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지금은 묻지 않는다.

묻는 순간, 관계가 먼저 깨질 것 같았다.

아직은 확인이 더 필요했다.

9시 12분.

9시 18분.

그리고 그 사이의 6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기는 눅눅했다.

밤새 창문을 닫아두었는데도, 집 안에는 묘하게 젖은 냄새가 남아 있었다.

건우는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어 눈을 떴다.

잠든 기억이 거의 없었다.

거실로 나가 물을 마시다가 멈췄다.

식탁 위에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9:12

9:18

9:37

하나의 필체였다.

숫자 옆에 동그라미가 여러 번 그려져 있었다.

그는 메모지를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내려놓았다.

아침이 밝았을 때, 하나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눈 밑이 조금 어두웠다.

잠을 거의 못 잔 얼굴처럼.

“안 잤지?”

그녀가 먼저 말했다.

건우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고, 하나는 메모지를 접어 서류철 안에 넣었다.

“시간이 계속 걸려.”

“9시 18분이요?”

건우가 물었다.

“응.”

그녀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때 진동을 느꼈다고 기억하는데… 정확히 어디였는지가 흐려.”

“현관 앞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나는 잠시 멈췄다.

“그렇게 말했지.”

“기억이 달라요?”

그녀의 시선이 건우에게 향했다.

“건우야.”

그녀가 낮게 말했다.

“충격받은 기억은… 항상 선명한 부분이랑 흐릿한 부분이 같이 있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건우는 묘하게 걸렸다.

“그럼… 집 안에 들어간 뒤에 본 건 확실해요?”

하나는 잠시 말을 고르듯 숨을 골랐다.

“거실은 확실해.”

“부엌은요.”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서랍이 열려 있었어.”

“칼은?”

하나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피가… 바닥에 있었어.”

질문과 대답이 어긋났고, 건우는 그 어긋남을 느꼈다.

오후, 건우는 혼자 회사로 향했다.

하나는 검찰청에 들렀다 온다고 했다.

회사 건물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직원 몇 명이 그를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대표의 동생.

그 시선이 무겁게 느껴졌다.

유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다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건우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요.”

유림은 조용히 기다렸다.

“그날… 형이 서두르고 있었다고 했죠.”

“네.”

“어디를 가려는 사람 같았나요?”

유림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딘가로 이동하려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집 안에서요?”

“아니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화를 끊으면서… ‘나가야겠다’는 뉘앙스였습니다.”

건우의 손이 멈췄다.

“나간다고 했습니까.”

“정확히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림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분명히 자리를 뜨려는 목소리였어요.”

건우는 숫자를 다시 떠올렸다.

9:12 통화 종료.

9:18 하나에게 부재중.

그 6분 사이에.

“혹시… 약속이 있었던건 아니었나요?”

유림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외부 투자자와 만남을 조율 중이었습니다.”

“그날이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건우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형이…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습니까.”

이번에는 유림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두려움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계산이었습니다.”

그 한 단어가 남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해가 기울어 있었다.

하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회사 갔어?”

“네.”

그는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유림 씨가… 나가려는 목소리였다고 하더라고요.”

하나의 손이 멈췄다.

“나가려고?”

“네.”

“그럼… 집 안에 누군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녀의 말끝이 흐려졌다.

건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이… 문을 열어줬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하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어요?”

건우의 질문은 조용했지만, 선을 넘고 있었다.

하나는 그를 오래 바라봤다.

“건우야.”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넌 지금… 뭘 생각하고 있어.”

건우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강도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요.”

“그럼?”

“형이… 누군가를 만나려고 나갔다가, 그 사람이 따라 들어왔을 수도 있고요.”

말을 끝내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날… 현관 문은 잠겨 있었어.”

“안쪽에서요?”

“응.”

그녀의 말이 너무 빠르게 나왔다.

건우는 그 속도를 느꼈다.

“확실해요?”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그 확신이 오히려 이상했다.

밤이 깊었다.

건우는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형은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

그런데 유림은 말했다.

‘자리를 뜨려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말했다.

‘현관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어.’

두 문장이 충돌했다.

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려 있었어야 한다.

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건우는 처음으로, 그 생각을 완성했다.

형은 누군가를 집 안으로 들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비밀번호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스트룸 문 앞에서 멈췄다.

문 너머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건우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아직은 아직은 묻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그는 스스로 인정했다.

자신은 지금, 형의 죽음보다도 그날 밤 하나의 기억을 더 의심하고 있다는 걸.

استمر في قراءة هذا الكتاب مجانا
امسح الكود لتنزيل التطبيق

أحدث فصل

  • 형수의 밤   165. 내가 잘못한 건가 싶었지

    하나는 그 질문 앞에서 처음으로 눈을 피했다.건우는 그 작은 움직임에 심장이 천천히 조여드는 걸 느꼈다. 그녀는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려 창 쪽을 봤고, 손끝이 컵 손잡이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그리고 아주 오래 걸려서야 대답했다.“그땐 그걸 무섭다고 생각 안 했어.”건우는 목 안이 마르는 걸 느꼈다.하나는 다시 그를 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그냥…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싶었ㅈ;.”그 말은 조용했지만, 건우에게는 거의 정면으로 꽂혔다.사람을 직접 다치게 하지 않고도 무너뜨리는 방식이 있다.상대가 자기 감각을 의심하게 만들고, 자기가 과민한 건지, 오해한 건지, 쓸데없이 예민한 건지 계속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방식.건우는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하나는 지금도 너무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아팠다. 이건 갑자기 떠오른 상처가 아니라, 오래전에 이미 몸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감각이었다.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중간에 멈췄다.식탁 위, 하나의 손까지는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그런데 그 짧은 거리조차 쉽게 넘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를 위로하는 건 너무 쉬운 방식 같았고,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너무 잔인한 것 같았다. 그 어중간한 거리에서 건우는 자기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하지만 하나는 그걸 봤다.그녀의 시선이 잠깐 건우의 손끝에 머물렀다가, 다시 그의 얼굴로 올라왔다. 그 짧은 움직임 안에 너무 많은 말이 담겨 있어서, 건우는 순간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그 침묵은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감추기 위한 침묵이라기보다, 서로가 서로 안의 어떤 부분을 너무 선명하게 봐버린 뒤에 생기는 정적에 가까웠다.건우는 아주 늦게서야 입을 열었다.“오늘…”하나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건우는 시선을 잠깐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형 목소리 들었어.”그 말이 떨어진 순간, 하나의 표정이 처음으로 눈에 띄

  • 형수의 밤   164. 진짜 필요한 말만 골라서

    하나는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침묵했다.그녀는 시선을 컵에 두고 있었고, 손끝으로 컵 가장자리를 아주 느리게 쓸고 있었다.유리 표면에 맺혀 있던 작은 물기가 손끝에 묻었다. 그 동작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지금 그녀가 말을 고르고 있다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줬다.“사람마다 다 다르게 대하긴 했는데.”하나가 마침내 말했다.“그게… 그 사람 마음이 움직여서 다르게 대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그럼.”“필요한 방식으로.”건우는 그 말 앞에서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필요한 방식으로. 오늘 하루 동안 여러 번 비슷한 결의 문장을 들었다. 정리. 결재선. 선 넘기 전에 자른다.감정 섞이면 일이 커진다. 그리고 지금 하나의 입에서 나온 이 말까지.윤신우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 상황 안에 배치된 변수처럼 다뤘을지도 모른다.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건우는 자기 안쪽이 아주 얇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그는 조심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너한테도?”하나의 손이 멈췄다.정말로 아주 잠깐, 컵을 쥐고 있던 손끝이 그대로 굳었다. 건우는 그 짧은 멈춤을 보고 나서야 자기가 얼마나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말은 나온 뒤였다.하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건우는 괜히 후회 비슷한 걸 느꼈다. 지금 자기가 원하는 건 정답이 아니었다. 단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하나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긋남 자체가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한참 뒤에야 하나가 아주 낮게 말했다.“모르겠어.”건우는 그 대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거의 본능적으로 느꼈다.하나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덧붙였다.“처음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건우는 숨을 멈춘 듯 그녀를 바라봤다.처음엔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말은,어느 순간부터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기도 했다.하나는 여전히 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

  • 형수의 밤   163. 질문의 방식

    건우가 집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어 있었다.낮 동안 맑아졌던 하늘은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다시 흐려졌고, 창밖에는 비 대신 축축한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집 안 냄새가 먼저 밀려왔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 익숙함이 조금도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것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잘 아는 얼굴, 잘 아는 목소리, 잘 안다고 믿어왔던 관계들이 요즘 들어 자꾸만 낯선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거실은 조용했다.주방 쪽 조명만 켜져 있었고, 텔레비전 소리도 없었다. 하나는 식탁 끝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펴놓고 있었지만 화면은 한참 전부터 같은 페이지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건우가 들어오는 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왔어?”짧고 평범한 인사였다.그런데 건우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오늘 오후 카페에서 들었던 형의 음성이 아주 짧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둘은 전혀 다른데, 이상하게도 그 직후부터는 하나의 말투 하나, 호흡 하나까지 괜히 더 예민하게 들렸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모든 문장이 이전과 같은 의미로 들리지 않게 되는 순간이 있다.건우는 신발을 벗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일은?”하나가 묻자, 그는 재킷을 벗어 소파 팔걸이에 걸치며 짧게 답했다.“대충.”하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시선이 잠깐 그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정도의 짧은 확인이었지만, 지금의 건우는 그런 짧은 시선에도 괜히 의미를 읽으려는 자기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에 따랐다. 유리컵에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주방 안에 얇게 퍼졌다. 그 소리조차 괜히 길게 느껴졌다.“하나야.”건우가 물컵을 손에 쥔 채 불렀다.하나는 고개를 들었다.“응?”건우는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차라리 자료를 다시 보는 건 쉬웠다. 숫자와 흔적은 조용하

  • 형수의 밤   162. 익숙해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다른 두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겹쳤기 때문이다.형의 차갑게 정리된 목소리와, 지금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하나의 목소리. 둘은 전혀 다른데, 이상하게도 방금 전 녹음 속 문장을 들은 직후라 그런지, 하나의 숨소리까지도 평소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건우야?”하나가 다시 불렀다.건우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하나야.”자기 입에서 그 호칭이 나간 순간, 이유 없이 가슴 안쪽이 서늘해졌다. 예전에는 아무 의미 없이 부르던 말이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그 호칭이 자꾸 둘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는 말처럼 들렸다.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더 아프게 만드는 이름.“왜요. 무슨 일 있어?”건우는 창밖을 한 번 봤다. 유리창 너머로 사람 몇 명이 지나가고 있었고, 그 위로 낮의 빛이 흐릿하게 내려앉아 있었다.“아니.”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느렸던 건 본인도 느꼈다.“그냥… 좀 늦을 것 같아서.”전화기 너머에서 잠깐 침묵이 흘렀다.하나는 그 짧은 공백 뒤에 아주 낮게 물었다.“무슨 말 들었어?”건우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질문은 너무 정확했다.봤어요도 아니고, 찾았어요도 아니었다.‘무슨 말 들었어.’건우는 수화기 너머 조용한 숨소리를 들으며, 자기 손끝이 다시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하나는 지금 정말로 짐작해서 묻는 걸까.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단어를 먼저 알고 있어서 그렇게 입 밖으로 꺼낸 걸까.건우는 아주 천천히 물었다.“왜 그렇게 물어.”그때 하나가 말을 잇지 못했다.정말 짧은 정적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멈춤 안에는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건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아주 얕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 무언가를 고르다가 결국 다른 쪽 문장을 택하는 사람의 침묵.하나는 곧 평소보다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그냥… 목소리가 그래 보여서.”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 형수의 밤   161. 선 넘기 전에 자른다

    건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굳이 그 자리에서 바로 파일을 열지 않았다. 담당자와 필요한 확인만 마친 뒤 자료를 받아 나왔고, 근처에 있던 조용한 카페로 들어갔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자, 유리창 너머로 흐린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낮은 소음, 멀리서 들리는 컵 부딪히는 소리, 주문 번호를 부르는 직원의 목소리 같은 것들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너무 조용한 데서 듣기엔 형의 목소리가 감당되지 않을 것 같았다.건우는 이어폰을 꽂고 파일을 열었다.오디오 파일은 생각보다 짧았다. 대부분은 1분 안팎, 긴 것도 3분을 넘지 않았다. 회의실 녹취처럼 여러 사람 목소리가 섞인 파일도 있었지만, 건우가 손을 멈춘 건 아주 짧은 단독 음성 메모였다.파일명은 날짜뿐이었다.건우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잠깐의 잡음 뒤에 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낮고, 차분하고, 이상할 만큼 정리된 목소리였다.“이건 빨리 끊어야 돼.”건우는 숨을 멈췄다.문장은 짧았고, 누구를 향한 말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회의용 정리 메모일 수도 있었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한 말일 수도 있었고, 어떤 거래선이나 외부 인물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문장 자체가 아니었다.목소리였다.윤신우는 전혀 흥분하지 않은 상태였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다그치거나, 분노를 누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사람이, 필요한 조치만 다시 자기 입으로 확인하는 쪽에 가까웠다.건우는 그 파일을 끝까지 다 듣지 못하고 중간에 멈췄다.이어폰을 뺀 것도 아닌데, 귀가 먹먹해졌다. 카페 안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듯 노트북 화면을 잠시 내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형의 목소리는 기억 속과 똑같았다.다정하게 들을 수도 있고, 냉정하게 들을 수도 있는 톤. 듣는 사람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목소리. 예전의 건우

  • 형수의 밤   160. 남겨진 목소리

    오후로 넘어가는 동안에도 건우는 식탁을 떠나지 못했다.한 번 노트북을 덮었다가도 다시 열었고, 자료 창을 닫았다가도 같은 파일을 몇 번씩 다시 클릭했다. 같은 숫자와 같은 문장들이 반복해서 눈에 들어왔는데도, 이상하게도 볼 때마다 다른 뜻이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흔적으로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사람의 습관처럼 보였고, 습관처럼 보이던 것들은 다시 의도처럼 읽혔다.건우는 화면 속 신우 확인이라는 네 글자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가 결국 노트북을 닫았다.더 보고 있으면 뭔가가 명확해질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지금 이 자리에서 혼자 끝까지 밀어붙이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향은 분명해지고 있었다. 형은 이 구조를 몰랐던 사람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직접 자기 손으로 움직였는지를 아직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건우는 의자에 기대 앉아 두 눈을 잠시 감았다. 눈꺼풀 안쪽으로도 글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지나치게 뜨거웠고, 반대로 손끝은 계속 차가웠다. 피곤한데 쉬어지지 않는 상태가 오래 이어지자, 감정도 생각도 어느 순간부터는 묘하게 둔해졌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낯선 번호는 아니었다. 예전에 사고 조사 과정에서 몇 번 연락이 오갔던 사람, 형 회사의 보안실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건우는 화면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네.”상대는 약간 망설이는 기색으로 인사를 건넨 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본론을 꺼냈다. 예전 자료를 정리하다가 신우 전무 관련 백업 폴더 하나를 추가로 찾았는데, 폐기 전에 혹시 확인할 생각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원래라면 형 개인 자료는 가족 동의 없이 열 수 없는 것이 맞지만, 이미 수사 협조 차원에서 한 차례 분류가 끝난 폴더 안에 섞여 있었고, 그중 일부가 오디오 파일이라 내용 확인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건우는 잠깐 말이 없었다.오디오 파일.이상하게 그 말 하나에 먼저 몸이 굳었다.

  • 형수의 밤   10. 의심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가득한 방, 건우는 숫자를 다시 적었다.9:129:189:37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왜.’-형은 왜 전화했는가.-위험을 알리기 위해?-아니면 누군가의 도착을 확인하기 위해?그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형이 전화한 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면.그 생각은 섬뜩했다.만약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다면.9시 18분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우는 펜을 내려놓았다.기억은

  • 형수의 밤   9. 진동

    비는 오지 않았는데도, 저녁 공기가 눅눅했다.건우는 창문을 열어두고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걸 느꼈다.거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숫자가 적힌 메모가 놓여 있었다.9:129:189:37그 아래, 어젯밤 그가 덧붙인 한 줄.‘조용했다.’그는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짚어보았다.조용했다면, 형은 움직이지 않았다.움직이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그 생각이 목을 죄었다.하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물 흐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지는…건우는 문득 물었다.“그날… 진동 느

  • 형수의 밤   8. 잠긴 문

    밤은 쉽게 오지 않았다.건우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불을 켜지도 끄지도 못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하나의 말. 나가려는 목소리였다.유림의 말. 두 문장이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렸어야 한다.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혹시 문을 잠근 사람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그 생각은 곧바로 밀어냈다.너무 빨랐다. 너무 직접적이었다.아침, 하나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부엌에서 접시를 정리하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 형수의 밤   6. 6분의 공백

    카페는 회사 건물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점심시간이 지난 뒤라 한산했다.유리창 밖으로는 출입증을 목에 건 직원들이 드문드문 오가고 있었다.유림은 이미 와 있었다.짙은 네이비 재킷, 단정한 머리.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곧았다.하나와 건우가 들어서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와주셔서 감사합니다.”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하나는 마주 인사했다.“바쁜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건우는 따로 말을 하지 않았다.유림과 눈이 마주쳤다가,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세 사람은 마

فصول أخرى
استكشاف وقراءة روايات جيدة مجانية
الوصول المجاني إلى عدد كبير من الروايات الجيدة على تطبيق GoodNovel. تنزيل الكتب التي تحبها وقراءتها كلما وأينما أردت
اقرأ الكتب مجانا في التطبيق
امسح الكود للقراءة على التطبيق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