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밤은 쉽게 오지 않았다.
건우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불을 켜지도 끄지도 못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하나의 말. 나가려는 목소리였다.
유림의 말. 두 문장이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
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렸어야 한다.
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혹시 문을 잠근 사람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그 생각은 곧바로 밀어냈다.
너무 빨랐다. 너무 직접적이었다.
아침, 하나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부엌에서 접시를 정리하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오늘 일정 있어요?”
건우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 청사 들렀다가… 오후엔 시간 비워놨어.”
“왜요.”
“현장 다시 보고 싶어.”
건우의 손이 멈췄다.
“출입 통제 아직 안 풀렸어요.”
“형사한테 부탁했어. 잠깐만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녀의 말은 담담했지만, 속이 보이지 않았다.
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도 같이 가요.”
하나는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형의 집 앞은 여전히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비는 그쳤지만, 바닥은 아직 젖어 있었다.
현관문 앞에서 건우는 잠시 숨을 멈췄다.
여기서 모든 게 멈췄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소독약과 피 냄새가 섞인,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였다.
하나는 먼저 들어갔다.
거실은 그대로였다. 바닥은 정리됐지만, 가구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여기.”
하나가 낮게 말했다.
“내가 처음 본 자리.”
건우는 그 자리를 바라봤다.
형이 쓰러져 있었던 위치.
“그날… 현관 문은.”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겨 있었어.”
“안에서요.”
“응.”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갔어요?”
“응.”
“문 열렸고요?”
“열렸지.”
그녀의 답은 빠르지 않았다.
그런데 확신은 있었다.
건우는 현관 안쪽 잠금 장치를 바라봤다.
자동 잠금.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잠긴다.
“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려 있었어야 해요.”
그는 거의 혼잣말처럼 말했다.
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부엌 쪽으로 걸어가 서랍이 반쯤 열려 있는 걸 확인했다.
“여기.”
그녀가 손끝으로 가리켰다.
“이 서랍.”
건우는 서랍 안을 들여다봤다.
칼꽂이는 정리되어 있었고, 한 칸이 비어 있었다.
“원래… 저 칸 비어 있었어요?”
그가 물었다.
하나는 잠시 멈췄다.
“…모르겠어.”
이번에는 대답이 느렸다.
“그날은 서랍이 열려 있는 것만 봤어.”
“칼이 빠져 있었는지는.”
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 안 나.”
기억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확실했던 것들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거실로 돌아왔을 때, 건우는 창문을 바라봤다.
후면 창.
강도가 침입했다는 경로.
창틀에는 여전히 파손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형이… 문을 열어줬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하나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면.”
그는 말을 이었다.
“굳이 창문을 깨고 들어올 필요는 없잖아요.”
하나는 천천히 그를 바라봤다.
“그럼 네 생각은 뭐야.”
질문이 아니라, 직면이었다.
건우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형을 밖으로 부르려고 했고, 형이 나가려다가”
그는 말을 멈췄고, 하나는 조용히 다시 물었다.
“누군가가 누구야.”
건우는 입술을 다물었다.
유림.
투자자.
아니면
그는 그 이름을 끝내 말하지 않았다.
집을 나오는 길, 하나가 말했다.
“건우야.”
“네.”
“너 지금… 혹시 나를 의심해?”
그 질문은 날카롭지 않았다.
그냥, 평평했을 뿐.
건우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니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의심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증거가 부족했다.
“그럼.”
하나는 더 묻지 않았다.
차 안에서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늦은 밤, 건우는 혼자 형의 집 구조를 머릿속에 그렸다.
현관- 거실 - 부엌 - 후면 창.
9시 12분 통화 종료.
9시 18분 하나에게 부재중.
9시 37분 신고.
만약 형이 9시 12분 이후 집 안에 있었다면,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어야 한다.
만약 형이 9시 12분 이후 밖으로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려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문은 잠겨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안쪽에서.’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안쪽에서 잠근 사람.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간이 아니라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직 이름은 붙이지 못한 채.
그날 밤, 건우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현관문이 떠올랐다.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는 말.
문은 말을 하지 않는다.
기억하는 건 사람이다.
그는 새벽 세 시쯤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불을 켜지 않은 채, 현관 앞에 섰다.
자기 집 문이었다.
같은 모델, 같은 자동 잠금 장치.
문을 닫았다.
철컥.
자동으로 잠겼다.
그는 안쪽에서 손잡이를 눌러보았다. 열렸다.
밖에서 손잡이를 눌러보았다. 잠겨 있었다.
안쪽에서 잠근 문은, 안쪽에서는 언제든 열린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
형의 집 문은, 그날 밤,
하나가 비밀번호를 눌러 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형은 이미 안쪽에 있었고, 문은 닫혀 있었고, 자동으로 잠겼다는 뜻이다.
그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건, ‘나가려던 사람’이라는 말이다.
아침이 밝았을 때, 하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눈은 떠 있었지만, 밤을 지운 얼굴은 아니었다.
“잠 안 왔지.”
그녀가 먼저 말했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문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나의 눈이 아주 잠깐 멈췄다.
“문?”
“네.”
그는 맞은편에 앉았다.
“그날… 들어갔을 때, 문이 완전히 닫혀 있었어요?”
하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위로 올렸다.
“닫혀 있었지.”
“틈도 없이요?”
“응.”
대답은 빠르지 않았지만, 망설임도 없었다,
건우는 숨을 고르고 물었다.
“잠금 소리는요.”
“무슨 소리.”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가면… 문 열릴 때 ‘삐’ 소리 나잖아요.”
하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랬겠지.”
“기억나요?”
이번에는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런 건… 기억 안 나.”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었다는 건 또렷하게 기억한다.
잠금 소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은 선택적이다.
오전, 건우는 혼자 형의 집 근처를 다시 찾았다.
출입은 허가되지 않았지만, 바깥에서 볼 수 있는 건 있었다.
후면 창.
깨진 유리 조각은 정리됐지만,
창틀에는 여전히 금이 남아 있었다.
그는 창문을 오래 바라봤다.
강도가 침입했다면, 왜 후면 창을 택했을까.
정문 비밀번호를 모르는 사람.
혹은 모른 척한 사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이 너무 빠르게 간다.
그는 다시 회사로 향했다.
유림은 그의 방문을 예상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또 오셨네요.”
건우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날 통화… 정확히 몇 초였죠.”
유림은 바로 대답했다.
“1분 4초.”
“형의 목소리… 뒤에 다른 소리는 없었습니까.”
“소리요?”
“발자국이라든지.”
유림은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조용했습니다.”
“정말요?”
이번에는 유림이 건우를 바라봤다.
“무슨 의미입니까.”
건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형이 나가려는 사람 같았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런데 배경은 조용했다고요.”
유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말은 서로를 찌르고 있었다.
나가려는 사람의 뒤에는 보통 소리가 있다.
발자국, 문 열리는 소리, 혹은 바람.
그런데 조용했다?
그는 조용히 물었다.
“서두른다는 게… 정확히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유림은 컵을 내려놓았다.
“결정을 빨리 내리려는 사람의 말투였습니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답은 분명했다.
건우는 그 말을 기억 속에 고정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하나는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회사 갔다 왔어?”
“네.”
그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유림 씨가… 통화 배경은 조용했다고 해요.”
하나는 손을 멈췄다.
“그래?”
“네. 발자국 소리도, 문 소리도 없었다고.”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집 안에 있었겠지.”
“그렇겠죠.”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형이 나가려던 게 아니라면.”
하나는 시선을 들었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
건우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형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을 가능성요.”
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통화 배경은 조용했고.”
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럼 그 사람은… 이미 안에 있었을 수도 있어요.”
공기가 아주 느리게 식었다.
하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건우야.”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넌 지금… 나한테 묻는 거야?”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에게 묻지 않았다.
대신 계산하고 있었다.
신우의 시간을, 행동을, 그리고 상황을
밤이 깊었다.
건우는 거실에 앉아 숫자를 다시 적었다.
9:12
9:18
9:37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조용했다.’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통화는 조용했고, 하나는 부재중을 못 받았고.
어느 문장이 먼저 흔들릴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그는 깨달았다.
이 사건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기억은 때때로 가장 쉽게 바뀌는 증거라고.
보류 통보 이후, 집 안의 공기는 조용해졌지만 가벼워지지는 않았다.하나는 표면적으로 아무 변화가 없는 듯 행동했다. 평소처럼 출근했고, 평소처럼 자료를 정리했고,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그러나 건우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졌고, 움직임이 더 절제되어 있다는 것을.그건 방어가 아니라, 각오에 가까웠다.“내일 기자 브리핑 잡았어.”저녁 식사 후, 하나가 말했다.“직접?”건우의 물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질문이었다.“응. 시간 끌기 프레임을 먼저 깨야 해.”그녀는 담담했지만, 그 결정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건우는 포크를 내려놓았다.“저쪽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하나는 잠시 생각하듯 고개를 기울였다.“가만히 있지 않겠지.”그 말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그녀는 위험을 계산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다만, 그 위험을 이유로 물러서지 않을 뿐이었다.그날 밤, 건우는 잠들지 못했다.침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나는 거실에서 브리핑 원고를 수정하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결국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노트북 화면에는 정리된 문장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사고는 단순 교통사고가 아닙니다.’‘명확한 외부 개입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그 문장들은 단단했고, 흔들림이 없었다.“지금 멈추면.”건우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들었다.“뭐가 바뀌어?”그 질문에는 비난이 없었다. 단지 확인이었다.그는 대답하지 못했다.바뀌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잃는 건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다음 날 오전, 브리핑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하나는 단상 위에 서서 준비한 원고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질문은 예상보다 거칠었고, 일부는 노골적이었다. 개인 감정 개입 여부, 전 연인 관계, 이해충돌 가능성까지 언급되었다.그녀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제 개인적 관계와 사건의 진실은 별개의 문제입니다.”그
영상 파일은 공식 증거 목록에 포함되기 직전 단계까지 올라갔다.하나는 내부 검토 라인을 통과시키기 위해 관련 판례와 유사 사례를 정리했고, 고의성 입증 기준을 조목조목 맞춰가며 보고서를 수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흔들림이 없었지만, 건우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속도는 단순한 수사 진척이 아니라, 물러서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는 걸.“언론은 잠잠해졌어.”건우가 말했다.“일단은.”하나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잠잠해진 게 아니라 방향을 바꾼 거겠지.”그녀는 담담하게 덧붙였다.“개인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올 거야.”그 말은 예측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었다.건우는 창가에 기대 서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사건은 분명히 진전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진전만큼, 보이지 않는 압박도 짙어지고 있었다. 브레이크 조작, 난간 사고, 언론 공세, 그리고 마지막 영상. 모든 것이 단계적으로 조여 오고 있었다.그는 문득, 하나가 자신보다 더 침착하다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졌다. 그녀는 위험을 알고도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자신은 그걸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나야.”그가 조심스럽게 불렀다.“응?”“만약에… 여기서 더 세게 오면.”그녀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그럼 더 세게 받아치면 돼.”그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건우는 웃지 못했다.“넌 항상 그렇게 말해.”“틀렸어?”그녀의 눈이 그를 향했다.그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아주 미세한 피로가 배어 있었다. 그는 그걸 읽었다. 그리고 그 피로가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묘하게 죄어왔다.밤이 깊어졌을 무렵, 그는 혼자 거실에 남아 있었다.노트북 화면은 꺼져 있었고, 불은 켜져 있었다. 최근 들어 그는 일부러 불을 끄지 않았다. 어둠이 길어질수록, 생각이 더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오늘은 조용하네.”서하의 목소리가 소파 뒤편에서 흘러나왔다.그녀는 천천히 걸어 나
복원된 메일은 단순한 정황 증거가 아니었다.‘정리되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는 문장은 사고 이후의 대응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고를 전제로 한 문맥처럼 읽혔다. 하나는 그 부분을 확대 출력해 두고 상부 보고서에 첨부했다. 문장의 뉘앙스 하나가 수사의 방향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건우는 보고서 초안을 함께 검토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공식적으로 확대 수사에 들어가는 순간, 상대는 더 이상 간접적 경고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지금 단계에서 바로 올려도 돼?”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하나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여기서 멈추면, 우린 계속 밀려.”그녀의 판단은 논리적으로 옳았다.그러나 건우는 그 논리 바깥에 있는 위험을 더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올리는 순간, 저쪽도 올려.”그가 낮게 말했다.“이미 올라왔어.”하나는 담담했다.그녀는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움보다 결론을 우선에 두고 있었다.그날 오후, 예상보다 빠르게 반응이 왔다.계열사 감사팀 명의로 하나에게 공식 항의 공문이 도착했다. 수사 범위를 벗어난 자료 확보였다는 주장과 함께, 직권 남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언론사 한 곳에서 ‘검사 개인 감정 개입 의혹’이라는 제목의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건우는 그 기사를 보고 이가 악물렸다.“이건 너를 사건에서 떼어내려는 거야.”그가 말했다.하나는 화면을 넘기며 차분히 분석했다.“논점 흐리기지.”“아니.”건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개인 공격이야.”그녀의 과거 연인 관계, 형과의 연결, 이해충돌 가능성까지 암시하는 문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확정적 표현은 없었지만, 독자가 의심하도록 설계된 구조였다.하나는 잠시 침묵했다.“이건 네가 흔들리길 바라는 거야.”그녀는 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멈추길.”그는 대답하지 않았다.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저녁이 되자, 집 앞 골목에 낯선 차량이 한 대 더 늘
난간 사고 이후, 집 안의 공기는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긴장을 품고 있었다. 위험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서 떨어진 철제 구조물처럼 구체적인 형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형상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감정이었다.저녁 식탁 위에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 형의 사고 직전 지분 변동 내역과 계열사 간 자금 흐름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건우는 특정 날짜에 표시를 해두었다. 사고 이틀 전, 이사회 비공개 결의가 있었고 그 직후 특정 계좌로 대규모 자금이 이동했다.“이건 준비된 구조야.”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우연으로는 설명이 안 되네.”그녀의 말은 감정이 아니라 판단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판단이 의미하는 건 단순한 배임이나 횡령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한 변수’였을 가능성이다.“여기까지 가면.”건우가 말을 이었다.“더 세게 반응할 거야.”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시작됐어.”그녀는 난간이 무너졌던 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말로는 침착했지만, 그날 밤 그녀의 손끝이 차가웠다는 걸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잠시 정적이 흐르는 사이, 하나의 휴대폰이 진동했다.발신자는 표시되지 않았다.메시지 한 통.사진 한 장.하나는 화면을 보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건우는 그녀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는 걸 보았다.“이거.”그녀가 휴대폰을 그에게 건넸다.사진 속에는 건우의 거실이 찍혀 있었다. 불이 켜진 상태였고, 소파 앞에 서 있는 건우의 모습이 선명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여자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잡혀 있었다. 얼굴은 정확히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히 ‘누군가’였다.촬영 각도는 창밖이 아니었다. 집 안 어딘가에서 찍은 듯한 위치였다.건우의 심장이 천천히 조여들었다.“이게 뭐야.”하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차갑지 않았다. 대신 지나치게 침착했다.그는 사진을 다시 확대했다.“누가 우리 집 안을 찍은 거야.”그의 첫 반응은 감정이 아니
다음 날 오전, 건우는 하나가 보낸 자료를 다시 정리하고 있었다.전날 소환했던 중간 관리자에 대한 통화 기록, 자금 흐름표, 계열사 간 내부 메신저 로그 복원 요청서까지 나란히 펼쳐 놓자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사고 이전부터 자금 구조를 재편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형의 지분이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뀌어 있었다.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정교했다.건우는 펜을 내려놓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이제 이건 의심의 단계가 아니라 계산의 영역이었다.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낯선 번호였다.받자마자 들려온 목소리는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낮고 차분했지만, 어딘가 냉기가 섞여 있었다.“윤건우 씨. 계속 파고 계신 모양인데, 방향은 제대로 잡으셨습니까.”그는 대답하지 않았다.“지분 구조까지 가셨다면, 이제 멈추셔야 합니다.”“왜죠.”그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다음은 사람이 다칠 수 있습니다.”그 말은 구체적이었다.형의 사고 때와 같은 간접적인 위협이 아니었다. 직접적인 경고였다.건우는 낮게 말했다.“이미 다친 사람 있습니다.”상대는 잠시 웃었다.“이번엔 더 명확해질 겁니다.”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건우는 화면을 내려다본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이번에는 분명히 ‘다음 단계’를 예고했다.그는 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어디야.”“사무실.”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안정적이었다.“지금 당장 나와.”잠시 침묵이 흘렀다.“왜.”“위협 들어왔어.”그는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이번엔 노골적이야.”하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건우야.”그녀는 천천히 말했다.“우릴 흔드는 건 감정이 아니라 타이밍이야.”“무슨 뜻이야.”“우리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거지.”그 말은 논리적으로는 맞았다.하지만 지금 건우는 논리로만 움직일 수 없었다.“그래도 조심해.”“나 충분히 조심하고 있어.”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게 덧붙였다.“너도.”그 한 마
다음 날 아침, 건우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서하가 나타났던 밤은 이상하게도 짧게 느껴졌고, 사라진 뒤의 공기가 더 무거웠다. 하나는 아직 방 안에서 자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서하의 마지막 말이 맴돌고 있었다.‘하나를 사랑하면 그렇게 말해. 나를 찾지 말고.’그 문장은 도발이 아니라 선언에 가까웠다. 마치 자신을 시험하듯, 아니면 밀어내듯.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하나는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어젯밤 서하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른다. 모른 채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왜 그렇게 앉아 있어.”그녀가 묻자, 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잠이 좀 안 와서.”그는 평소처럼 말했지만, 하나는 그를 오래 바라봤다.“얼굴이 안 좋아.”“괜찮아.”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코트를 걸치며 말했다.“오늘 오후에 참고인 하나 부를 거야. 회사 쪽 중간 관리자.”건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에서는 다른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누군가 밤의 변화를 알고 있고, 하나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면, 오늘의 소환도 이미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끝나면 바로 연락해.”그가 말했다.하나는 짧게 웃었다.“또 걱정이야?”“당연하지.”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진심이었다.오후 네 시를 조금 넘긴 시각, 건우의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는 하나였다.그는 바로 받았다.“끝났어?”“응. 근데 이상해.”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뭐가.”“그 사람이 너무 준비돼 있었어. 질문을 던지면, 마치 미리 정리해 둔 대본을 읽는 것처럼 대답해.”건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누가 코칭한 거네.”“아마도.”하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그리고…”“그리고?”“나 나올 때, 주차장에 검은 세단이 서 있었어. 브레이크 사건 이후로 계속 보이던 차랑 비슷해.”건우의 심장이 느리게, 그러나 무겁게 뛰었다.“지금 어디야.”“차 안.”“움직이지 마.”그는 이미 차 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