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303 화

Author: 양순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6 09:18:37
다음 날 아침, 연화당의 넓은 뜰에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마당에는 끝도 없이 밀려드는 진귀한 하사품들. 그 사이에서 유독 바쁘게 나인들을 닦달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조심해서 다뤄! 귀비 마마께서 쓰실 물건에 흠집이라도 나면 네년들 목숨으로도 못 갚을 줄 알아!"

그 요란한 꼴을 회랑에 기대서서 지켜보던 미옥이 피식, 짧은 실소를 터뜨렸다.

"누군가 했더니. 한 때 태후궁에서 뒷짐 지고 다니던 분이 어쩌다 여기서 남의 짐이나 나르고 계실까."

나직하지만 뼈가 있는 조롱에, 사내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환관의 비   316 화

    어둠이 내려앉은 황궁의 으슥한 길목.하륜이 매몰차게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진 미옥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이대로 물러설 수는…….'수치심과 초조함이 동시에 밀려들며, 미옥이 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리던 찰나였다.달빛조차 두터운 먹구름에 잡아먹힌 칠흑 같은 밤.완벽한 어둠뿐이어야 할 그녀의 시야 한구석으로, 돌연 이질적인 붉은빛이 스며들었다.바닥을 향해 있던 미옥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칠흑 같은 후원의 너머, 수십 개의 붉은 청사초롱 불빛이 뱀처럼 구불거리며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황제의 행

  • 환관의 비   315 화

    '그의 사랑 따윈 이제 필요 없어.'초희의 서늘한 눈동자 속에는 오직 단 하나의 목적만이 독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귀인의 자리를 내어주며 안심하게 만들더니, 제 몸에 독을 부어 안락당으로 향하게 만든 미옥.그년의 목줄을 끊어낼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몸통이 짐승의 먹이로 던져진다 해도 상관없었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우의정의 개가 되어서라도, 내명부의 권력을 다시 틀어쥘 그 시간.초희가 피가 맺힌 입술을 천천히 달싹였다."폐하. 아이가 들어서는 데는, 그리 많은 수고가 필요치 않습니다.""……뭐?""단 한 방울이면 충분

  • 환관의 비   314 화

    농월당(弄月堂)의 내실.싸늘한 정적만이 감도는 방 안, 연호가 무심한 손길로 초희의 저고리 고름을 툭 뜯어내듯 풀었다.스윽-.앙상하게 마른 어깨와 달리, 서늘한 공기 중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초희의 젖가슴은 기형적일 만큼 풍만했다.연호가 무심한 손길로 그 거대한 가슴을 한 손에 거칠게 움켜쥐었다.손아귀에 넘치도록 묵직하게 들어차는 크기. 그러나 연호의 짙은 눈동자에는 일말의 욕정이나 동요도 일지 않았다.‘그녀가 질투할 가치조차 없는 몸뚱이야.’크기만 비대할 뿐, 손바닥에 착 감겨들던 미옥의 그 쫀득한 탄력도, 숨 막히도록

  • 환관의 비   313 화

    어둠 속에서 미옥의 뜨거운 숨결이 하륜의 입술을 탐했다.그녀는 발돋움까지 해가며 제 몸을 바짝 밀착시켜 왔다. 급하게 타액을 얽어오던 미옥이, 기어이 뒷짐을 지고 있던 하륜의 한쪽 손을 억지로 끌어당겼다.스르륵-.미옥이 입고 있던 어두운 장의(長衣)의 앞섶이 벌어지고, 그녀가 하륜의 크고 단단한 손을 제 옷자락 안으로 거침없이 밀어 넣었다."……!"하륜의 눈동자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미세하게 흔들렸다.손끝에 닿은 것은 부드러운 내의의 감촉이 아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뜨겁고 매끄러운 여인의 맨살.온전히 드러

  • 환관의 비   312 화

    깊은 밤, 연화당.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내 속에서 연호의 크고 단단한 손이 미옥의 허리를 은밀하게 감싸 안았다.그가 나른한 숨결을 내뱉으며 미옥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려던 찰나였다."오늘은 가세요, 폐하."미옥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연호의 가슴을 툭 밀어냈다."……왜. 네가 내 손을 쳐내는 날도 다 있군.""우의정이 용종까지 들먹이면서 기껏 안락당 문을 열어놨잖아요. 그 귀하신 초 귀인이 복권된 첫날인데, 오늘 밤마저 제가 폐하를 독차지하고 있으면 내일 아침 조당에서 영감들이 얼마나 들고일어나겠어요."미옥의 입에서 나온

  • 환관의 비   311 화

    "폐하께서 결국 우의정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안락당 문이 열렸습니다."텅 빈 연화당. 하륜의 건조한 보고에 찻잔을 매만지던 미옥의 손끝이 멈칫했다.'결국 밖으로 기어 나온다는 거네.'미옥의 머릿속이 차갑게 가라앉았다.황제의 애정을 뺏길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천유희로서 겪었던 뼈저린 경험들이 그녀의 본능을 날카롭게 깨우고 있었다.황궁에서 황제의 총애만으로 부족했다.진짜 무서운 것은 조정 대신들의 뒷배였다. 그들의 권력이 등에 업히는 순간, 황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판은 뒤집힌다.초희가 저 늙은 구렁이들과 결탁해

  • 환관의 비   213 화

    연호는 태생부터가 다른, 범접할 수 없는 타고난 지배자였다.하륜처럼 치밀한 계산과 지략으로 기어올라간 자가 아닌, 날 때부터 제왕의 운명을 타고나 천하를 제 발밑에 두는 것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절대자.초희의 아랫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어설픈 수작이나 얕은 배신 따위로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이 거대한 권력 앞에서 원초적인 두려움이 엄습했다.하지만 동시에, 그 두려움을 통째로 집어삼킬 만큼 지독한 탐욕이 핏줄을 타고 끓어올랐다.‘내가 진정으로 탐해야 할 정점은…….’그것은 죽음을 담보로 한 아찔한 도박이었다.초희

  • 환관의 비   211 화

    [젊고 아름다운 이를 위해 아껴두시지요.]순간, 다원에서 들었던 초희의 서늘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스쳤다.차 상시는 애써 표정을 지우며 걸음을 옮겼지만, 찻잔을 내려놓는 그의 시선은 자꾸만 태후의 앙상한 목덜미로 향했다.밤의 어둠 속에서는 교태로운 신음과 화려한 장신구에 가려져 있던 진실이었다.밝은 볕 아래 드러난 태후의 살갗은 흉하게 늘어져 있었고, 아무리 값비싼 향을 피워도 뼛속 깊이 밴 노인의 퀴퀴한 체취는 가려지지 않았다."차를 올립니다, 마마.""이리 온.“태후가 느릿하게 손을 뻗어 차 상시의 흰 손등을

  • 환관의 비   145 화

    화르르륵—!굶주린 화마(火魔)가 기름진 유액과 비단 침구를 집어삼키며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황동 향로에서 쏟아진 짐승의 기름이 바닥을 타고 흐르며, 경화전 내부는 순식간에 시뻘건 화마(火魔)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졌다.“꺄아아아악! 불, 불이야!”절정에 달했던 쾌락은 가장 끔찍한 공포로 돌변했다.유희가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지르며 연호의 아래서 빠져나가려 버둥거렸다. 살갗을 구워버릴 듯한 열기가 사방에서 덮쳐왔다.하지만, 연호는 도망치지 않았다.오히려 그는 유희의 손목을 쥔 채, 제 발끝까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번져오는 불

  • 환관의 비   7 화

    “옷을 지을 줄 아나?”“바느질은 꽤 합니다만, 천자님의 마음에 들만한 옷을 지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꿈도 야무지구나. 누가 너 같은 것이 만든 옷을 입고 싶다더냐. 버리기 아까운 이불이니 홑청으로 옷이나 한 벌 지어보아라.”“이 귀한 비단 이불을 버린다고요? 차라리 빨아서 쓰심이.”“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했거늘!”화들짝 놀란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한번은 그냥 넘어가나, 앞으로 내 말에 어떤 토도 달지 말아라.”“저…, 그러면 누구의 옷으로 할까요?”“그런 것까지 알려주랴? 그냥 네 마음대로 해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