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811 - Chapter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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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1화

“이달 말이면 내 오라버니도 경성으로 돌아온다더구나.”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맹라온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맹시은은 여전히 느긋하고 나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그때가 되면, 우리 남매가 따로 날을 잡아, 집안 어른들과 형제자매들을 모시고 한 번쯤 제대로 모임을 가져야겠지. 나와 오라버니는 그 자리에서 지난날을 하나하나 곱씹어 볼 생각이야. 사소한 일 하나까지도 전부 너에게 들려주려 하는데, 괜찮겠느냐?”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맹라온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의견을 묻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눈빛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맹라온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핏기가 가셨다가 다시 번지며 그 변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맹시은, 이건 대체 무슨 뜻이지?’이건 경고였다.그녀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곧 작위를 이을 친오라버니가 있다는 것.남매는 한 몸처럼 얽혀, 함께 나아가고 함께 물러선다. 그 어떤 의심도, 그 어떤 도발도 감히 끼어들 틈이 없다는 뜻이었다.맹라온은 자신의 뺨이 마치 세게 후려맞은 듯, 화끈거리며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언니… 언니, 오해하셨어요.”그녀의 목소리는 금세 떨리기 시작했고 눈가도 붉게 물들었다.“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억울함에 아랫입술을 깨문 채, 물기 어린 눈동자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한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마음이 약해지게 만들었다.“언니, 화내지 마세요. 다 제 잘못이에요. 이제 묻지 않을게요. 제가 괜히 궁금해했나 봅니다.”다른 사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벌써 마음이 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맹시은은 그저 차갑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불쌍한 척하며 동정을 사는 수작은 이미 지겹도록 봐왔다.그때였다. 팽팽하게 긴장되었던 공기가 끊어질 듯 조여 오던 순간, 마구간 쪽에서 맑게 울리는 징과 북소리가 터져 나왔다.“홍방 승!”“이겼다! 이겼어! 내가 이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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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2화

주종현은 눈을 내리깔고 맹라온을 가볍게 한 번 훑어보았다.그 시선은 오래된 우물처럼 깊고 고요하여, 단 한 점의 물결도 일지 않았다. 차마 마주 바라볼 수조차 없는 눈빛이었다.맹라온은 가슴이 턱 막히는 듯했다. 애써 입가에 걸어 두었던 미소는 위태롭게 흔들렸고 정성껏 꾸며낸 그 연약하고 가련한 자태는 주종현의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 앞에서 한없이 우스워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바라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반면, 주종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를 그저 공기 취급하는 것 같았다.맹라온은 말을 잇지 못한 채 허둥거리며 어떻게든 체면을 수습하려 애썼다.“저… 저는 저쪽에 계신 부인들께서 저를 찾으시는 것 같아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녀는 허둥지둥 다시 한 번 예를 올렸고 맹시은의 표정조차 살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거의 도망치듯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급히 막사를 빠져나갔다.연한 물빛의 그 뒷모습이 인파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도 어딘가 초라한 기색이 남아 있었다.막사 안에는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그제야 주종현이 몸을 돌렸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어 맹시은 앞에 놓여 있던, 이미 식어버린 찻잔을 들어 올려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방금 전,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쳤던 그 격렬한 마구가 그의 온 수분을 모조리 빼앗아 간 듯했다.한참 뒤에야 그는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맹 씨라고? 처음 보는 얼굴인데.”맹시은은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눈동자 깊은 곳에 아주 미세한 웃음기가 스쳤다.역시, 그는 알아봤다.방금의 냉담한 태도는 전부 그녀를 위해 연기한 것이었다.가슴이 살짝 따뜻해졌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유지했다.“맹 가의 방계 아가씨예요. 보름 전에야 부친을 따라 경성으로 올라왔다고 하네요.”그녀는 짧고 간결하게 맹라온의 내력을 설명했다.“방계?”주종현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기억을 더듬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는 늘 군을 이끌고 밖에 있었기에 경성의 얽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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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3화

“두 판 더 붙는게 어떤가! 지금 손이 한창 달아올랐단 말일세!”주종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모처럼 얻은 둘만의 시간이었다.“안 가.”그는 차갑게 두 글자를 내뱉으며 차윤서의 손을 떨쳐내려 했다.“아, 왜 이러시는 겐가!”차윤서가 순순히 놓아줄 리 없었다. 그는 거의 몸을 통째로 주종현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며 뻔뻔한 얼굴로 버텼다.“진 씨 그 자식이 승복을 안 하네! 판돈까지 걸었다니까! 다음 판에 우리를 완전히 박살 내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네!”차윤서는 침까지 튀겨 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이걸 내가 어찌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오늘은 기어코 울려버려야지. 누가 위인지 확실히 알게 해주지!”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는 주종현이 더는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끌어당겼다. 뒤따르던 공자들도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는 거의 들려 나가다시피 했다.주종현은 그 바람에 휘청거리며 뒤를 돌아 맹시은을 한 번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어이없다는 기색과 웃음기가 뒤섞여 있었고, 어딘가 억울한 듯한 기색까지 스며 있었다.맹시은은 그 모습을 보다가 결국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다녀오세요.”*한편. 맹라온은 고개를 숙인 채, 북적이는 인파 사이를 빠르게 가로질렀다.방금 전, 주종현 앞에서 당한 망신이 가슴 한복판에서 불덩이처럼 타올라 한순간도 머무를 수 없었다.그녀는 그대로 발걸음을 재촉해 자신들의 초라한 막사로 돌아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깥의 소란은 단숨에 끊어졌다.막사 안은 숨 막힐 듯 고요했다.오라버니, 맹금찬이 낮은 탁자 앞에 다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앞에는 정교한 자사 다구가 놓여 있었고, 작은 홍니 화로 위에서는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차 향에 은은한 숯 냄새가 섞여 공기 속에 고요히 퍼져 있었다.맹라온의 발걸음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잔걸음으로 다가가 오라버니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맹금찬은 그녀를 보지 않은 듯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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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4화

맹라온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오라버니의 그 한마디에 얼마나 깊은 불만과 원망이 담겨 있는지,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진국공부에는 후사가 없었다.막대한 가산과 넘쳐흐르는 부귀, 그리고 대대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작위까지.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허상이 되어버렸다.경성의 맹 씨 일족은 이미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공통된 생각을 품고 있었다.정말로 방계에서 양자를 들이게 된다면 그 작위를 이을 사람은 틀림없이 장방의 장손, 맹금찬일 것이라고.그는 어릴 적부터 신동이라 불렸다. 사서오경을 줄줄 외웠고, 열다섯에 이미 거인에 급제했다.그 자리를 위해 그는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몰아붙였다.진국공부는 무로 이름을 세운 가문이었다.그는 과감히 성현의 글을 내려놓고 매일 새벽 닭 울음과 함께 일어나 수련에 매달렸다.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불구하고 한겨울 삼구한에도, 한여름 삼복더위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맹라온은 직접 본 적이 있었다.혹한의 날씨 속에서 한 벌의 창법을 완성하기 위해 온몸이 멍으로 물들고 손바닥이 찢겨 피가 흘러내려도 이를 악물고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던 모습을.그의 몸에 남은 크고 작은 흉터들은 곧 그의 야망이 남긴 흔적이었다.그렇게 오랜 세월을 기다려왔건만 돌아온 결과는 이런 것이었다.어디서 튀어나온지도 모를 남매 한 쌍이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이번에 부친이 경성으로 부임해 온 것도 이미 진국공부에 여러 차례 명함을 보낸 뒤의 일이었다.그러나 그 모든 방문 요청은 돌을 던진 듯,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국공부였고 이쪽은 고작 종사품 관리에 불과했으니까.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였다.오늘 이 차 씨 마구 연회 역시, 그가 어렵사리 소문을 모아 맹시은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국자감 동문에게 부탁해 겨우 얻어낸 한 장의 초대장이었다.단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고 속내를 떠보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맹금찬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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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5화

맹라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얼른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연회가 끝날 즈음,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어 있었다.황금빛 노을이 경기장 위로 쏟아져 내려 말굽에 짓밟힌 풀밭 위에 부드러운 빛의 윤곽을 덧씌웠다.차윤서는 양옆에서 부축을 받은 채 끌려나가고 있었다.하루 종일 마구를 뛰고, 오후에는 진 씨 집안 그 녀석을 상대로 세 판이나 내리 이겼으니 이미 다리는 다리 같지 않았고, 팔도 팔 같지 않은 상태였다.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린 듯 축 늘어져 있으면서도 입만은 여전히 중얼거리듯 떠들어댔다.“내일… 내일 다시 붙자고! 기어코… 기어코 날 할아버지라 부르게 만들 걸세!”주종현과 맹시은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고 이내 함께 마차에 올랐다.수레바퀴가 굴러가며 북적이는 거리 한복판을 가로질렀다.창을 살짝 걷어 올리자 등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 경성의 밤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빛이 흐르듯 번져 마치 꿈결 같은 풍경이었다.성문을 지나자 마차의 속도는 서서히 느려졌다.풍수하 가에 이르렀을 때, 주종현이 문득 입을 열었다.“멈춰라.”마부가 고삐를 당기자, 마차는 강가의 버드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멈춰 섰다.주종현은 맹시은의 손을 잡고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조금 걷지 않겠느냐.”맹시은은 잠시 의아했지만 곧 그의 뒤를 따라 내렸다.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와 강물의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강가 양편에는 등롱이 줄지어 걸려 있었고 그 불빛이 물 위에 비쳐 부서진 별빛처럼 일렁였다.맹시은은 그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득해졌다.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막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던 그때를. 바로 이 풍수하 강가에 서서 온 도시를 수놓은 불꽃을 바라보았던 순간을. 연아와 인파에 휩쓸려 서로를 놓쳐버렸던 일부터, 몰래 성 밖으로 나갈 길목을 알아보느라 숨죽이며 헤매던 기억까지 전부 떠올랐다.다시 한 번 살아난 삶에서 그녀는 더 이상 송하윤의 손에 죽는 원혼이 되고 싶지 않았다.그 시절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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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6화

맹시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 담긴 걱정이 또렷이 마주쳐왔다.그 순간, 그녀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눈꼬리와 눈썹 끝까지 환하게 물들 만큼 밝고도 생기 넘치는 웃음이었다.그녀는 손을 내밀어 손목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목소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가볍고도 당당했다.“왜 안 좋아하겠어요? 당연히 좋죠! 껴 주세요.”주종현의 가슴 깊숙이 걸려 있던 돌덩이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방금의 그 짧은 기다림이 전장에서 칼을 맞대고 싸우던 순간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듯 했다.그는 서둘러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는 조심스럽게 그 질 좋은 옥팔찌를 그녀의 손목에 끼워주었다.옥의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자 그녀의 피부는 한층 더 눈처럼 희게 빛났다. 크기도 꼭 맞았다.그때였다. 차가운 감촉이 두 사람이 맞잡은 손등 위에 살짝 내려앉았다가 이내 사라졌다.맹시은이 순간 멈칫했다.곧이어 또 한 점이 그녀의 코끝에 내려앉았다.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에서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하얀 눈송이들이 하나둘 흩날리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조용히 내려앉는 눈이었다. 올해의 첫눈이었다.“전골집에 가서 먹자.”주종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눈빛은 별빛이 떨어진 듯 눈부시게 빛났다.그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말릴 틈도 주지 않고 강 건너편의 가장 번화한 식당가로 향했다.맹시은은 그에게 이끌려 휘청거리며 따라가다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금 가서 먹는 거예요?”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마차를 바라보았다.“연아랑 복동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기다리게 두거라.”주종현의 말투에는 거스를 수 없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집에는 하인도 많고, 외조부도 계시는데 굳이 우리가 같이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깊이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뜨겁게 타올라 마치 그녀를 녹여버릴 듯했다.“이런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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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7화

남녘과 북녘, 온갖 곳에서 모인 식재료들. 아삭하게 씹히는 생죽순이든, 부드럽게 익는 버섯이든, 이 작은 냄비 하나 안에서 모두가 어우러져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맛이 된다.이처럼 제대로 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은 경성 같은 데서 나 가능한 일이었다.희뿌연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 흐릿한 열기 너머로 바라보니 주종현의 눈에는 맹시은의 얼굴마저 어딘가 또렷하지 않게 느껴졌다.그녀는 분명 맞은편에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앉아있는데, 어쩐지 그녀가 아득한 강산 너머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이유를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며 나왔다.그는 문득 생각했다. 자신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던 것만 같다고.마치 전생에서부터 말이다.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고, 사랑하고 싶어도 닿지 못하던 그 씁쓸한 감정이 너무도 또렷해 그를 그대로 잠식해 버릴 듯했다.맹시은은 그의 멍해진 기색을 눈치챘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얼굴을 덮쳐오는 김을 비켜냈다.김에 살짝 달아오른 얼굴이 더욱 곱고 선명하게 빛났다.“왜 그러십니까?”그녀는 멍하니 있는 그를 바라보며 걱정스레 물었다.“혹시 입에 안 맞습니까?”주종현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그녀의 눈에 담긴 걱정을 보는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그 알 수 없는 감정은 순식간에 따뜻한 기운에 밀려 사라졌다.입가에 번지는 미소도 저절로 깊어졌다.“아주 입에 맞아.”그는 고개를 저으며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함께라면 뭐든 다 좋다.”맹시은은 그의 너무도 솔직한 말에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흘겨보며 갓 익힌 양고기 한 점을 집어 그의 그릇에 얹어 주었다.“빨리 드세요. 말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주종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그 고기를 집어 들었지만 속으로는 묘하게 씁쓸했다.아무래도 그녀 마음속에서는 아이들이 자신보다 조금 더 위인 모양이었다.*두 사람이 진국공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고 연아와 복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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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8화

주종현은 맹시은을 안은 채, 막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다.품 안의 온기와 부드러움이 그를 거의 집어삼킬 듯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그때, 문가에 서 있는 자그마한 아이가 말랑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주종현의 관자놀이가 미세하게 꿈틀했다.아이는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깨지 못한 듯, 몸을 살짝 비틀거리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어머니, 안아주세요. 쉬…”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맹시은이었다. 얼굴을 붉히던 열기도 순식간에 가라앉고 어이없음과 웃음이 뒤섞인 표정만 남았다.그녀는 주종현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뭐 하고 있어요. 참다 터지겠어요.”주종현은 이를 악물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앞의 이 꼬마를 번쩍 들어 엉덩이를 한 대 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눌렀다.그래도 제 자식이니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날 밤, 주종현은 좀처럼 깊이 잠들지 못했다.두 사람 사이에는 언제든 깨어날 수 있는 복동이가 누워 있었다.역시나였다. 자시가 조금 지난 즈음, 막 잠이 들려던 찰나 옆에서 사락사락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번쩍 눈을 떴다.어둠 속에서 복동이가 또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며 웅얼거렸다.“어머니… 쉬…”맹시은은 깊이 잠든 채, 가볍게 미간만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주종현은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아들을 안아 들고 뒤채로 향했다.아이를 달래 다시 재우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잠기운이 반쯤은 달아나 있었다.그는 옆으로 돌아누워 고요히 잠든 맹시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가라앉았던 감정이 다시금 불쑥 치솟았다.그는 조용히 몸을 기울여 살짝 입을 맞추려 했다.“음… 아버지…”복동이가 잠결에 입맛을 다시며 뒤척이자 주종현의 동작이 그대로 멈췄다.그는 이를 갈며 아들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이 녀석… 분명 일부러다.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되었고 날이 밝아올 무렵이 되어서야 주종현은 겨우 지쳐 잠에 빠져들었다.꿈속에서 무언가 말랑한 것이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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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9화

복동이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며 자랑했다.“저 이제 컸습니다! 아버지가 저 데리고 쉬했어요!”춘행이 순간 멈칫했다.고개를 돌리자 막 바깥에서 들어오는 주종현과 눈이 마주쳤다.그는 이미 말끔한 무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고 머리끝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어 막 아침 수련을 마친 듯 보였다.다만 그 준수한 얼굴 위에는 어쩐지 지워지지 않는 얕은 불만이 드리워져 있었다.춘행은 감히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상황을 다 짐작한 듯,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그녀는 맹시은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아, 도련님을 사위 어른께서 직접 데리고 다니셨군요. 참 자상하십니다.”그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감탄이 담겨 있었다.“이처럼 신분이 높으신 분이 밤중에 아이 뒷바라지까지 직접 하시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아가씨께서 괜히 기다리신 게 아니네요.”맹시은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달콤해졌지만 겉으로는 괜히 민망해졌다.그녀는 춘행을 흘겨보며 말했다.“말이 너무 많구나.”주종현은 한쪽에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그의 얼굴에 드리운 불만은 오히려 더 짙어졌다.자상하다고?그가 정말 마음을 쓰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그럴 기회를 누가 주기나 했던가.생각할수록 속이 답답해졌다. 가슴 한켠에 맺힌 것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채 막혀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나가서 수련 좀 하고 오겠다.”그 뒷모습에는 억울함과 답답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맹시은은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맹시은이 두 아이와 함께 아침상을 들고 있을 때였다.집안의 관사가 급히 들어왔다.“아가씨.”그녀는 공손히 예를 올렸다.“어르신께서 전갈을 보내셨습니다. 아가씨와 사위 어른, 그리고 두 아이까지 모두 모시고 화청으로 오셔서 함께 아침을 들라고 하십니다.”맹시은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화청에서 함께 아침을? 이건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진국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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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0화

맹여산은 두 사람의 얼굴에 스친 기색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탁해진 눈동자 깊은 곳에서 알아차리기 힘든 빛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그는 찻잔을 들어 김을 한 번 불어 식힌 뒤에야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이 청첩은, 이틀 전부터 와 있었다. 너희가 막 경성에 돌아와 이것저것 바쁠 터라, 내가 대신 거절해 두려 했지. 허나 저쪽은 집요하더구나. 어제 또 한 장을 보내왔어. 이렇게 몇 번이나 거절하고 나면 우리가 제 식구도 몰라본다 여길 것이다.”그는 말을 마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탁자에 닿으며 잔잔한 소리가 울렸다.맹여산은 고개를 들어 맹시은과 주종현을 바라보았다.“나도 이제 늙었다. 이렇게 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 사람 사이의 번거로운 일들은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구나. 이제 너희는 부부다. 이 집안의 안팎 일도, 슬슬 너희가 맡아야 할 때지.”그는 손을 가볍게 저었다. 말투에는 거스를 수 없는 결단이 담겨 있었다.“이 일은 너희 둘이 알아서 처리하거라.”*방계 친족이 찾아온다는 일은 가볍게 넘길 수도, 그렇다고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겉으로는 집안 식사 자리라 해도 맹시은은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그녀는 집안의 요리사를 쓰지 않고 덕흥루의 장인을 불러 직접 음식을 맡겼다.상차림의 구상부터 연회 공간의 배치, 손님을 맞이할 다과와 과일까지. 하나하나 모두 직접 챙겼다.아설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언니, 그저 방계 친척 몇 분 뵙는 자리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신경 쓰실 필요가 있나요?”맹시은은 손에 들고 있던 장부를 내려놓으며 가볍게 웃었다.“가끔은 식탁 위의 칼날이 진짜 칼보다 더 위험할 때도 있거든.”*삼 일 뒤.진국공부 대문 앞에 마차가 하나둘 줄지어 멈춰 섰다.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적막하고 한산해 보이던 진국공부 본가와 달리 방계 쪽 맹 씨 집안은 사람 수부터가 달랐다.맨 앞에 선 것은 쉰을 넘긴 듯 보이는 중년 사내였다.체격은 약간 살집이 있었고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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