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Chapter 131 - Chapter 140

176 Chapters

제131화

이연희는 구태윤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거침없이 내뱉었다.구태윤의 어두운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이내 정루아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물었다.“왜 뺏으려고 하는 거지?”“나도 갖고 싶으니까, 안 돼?”정루아는 구태윤을 쏘아보았다. 정시연을 뒤로 감싸는 그의 모습이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구태윤, 우리 아직 이혼 안 했어. 당신이 쓰는 돈, 다 부부 공동 재산이야. 내 허락도 없이 산 거니까 저 여자보고 당장 돌려달라고 해.”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태윤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사방을 압도하던 매서운 기세도 조금은 누그러졌다.어느덧 말투마저 한결 부드러워졌다.“고작 귀걸이 한 쌍이잖아. 갖고 싶으면 더 좋고 비싼 거로 사줄게.”“이게 아니면 안 돼.”정루아는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그러니까 얼른 내놔!”정시연은 상자를 꼭 끌어안았다.“싫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양보할 수 있지만, 이 귀걸이만큼은 포기 못 해.”이연희가 냉소를 흘렸다.“진짜 귀걸이가 탐나서 안 주겠다는 거 맞아? 그냥 루아 속 뒤집어놓으려고 오기 부리는 게 아니고? 루아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뺏어가고, 어릴 때부터 늘 그래왔잖아. 진짜 뻔뻔해서 눈 뜨고 못 봐주겠네!”정시연이 억울하다는 듯 받아쳤다.“난 동생 물건 뺏은 적 단 한 번도 없어. 말조심해!”“말조심하라고? 널 죽이지 못해 안달인 사람한테 그런 소리가 나와?”이연희는 그녀를 매섭게 째려보았다.정시연은 무의식적으로 구태윤의 뒤로 몸을 숨겼다.구태윤이 차가운 눈빛으로 이연희를 훑었다.“지난번에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보군.”이연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개쓰레기...”정루아가 한 걸음 나서며 이연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구태윤을 노려보며 말했다.“그거 우리 외할머니가 평생 찾으시던 물건이야.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소문하고 다녔는지 알아? 구태윤, 당신이 진짜 사람이라면 그 귀걸이 나한테 줘야지.”구태윤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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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루아야, 이 귀걸이는 내가 계속 갖고 싶었던 거야. 그런 허무맹랑한 이유로 너한테 줄 순 없어.”정시연이 통증을 참아가며 정루아를 똑바로 응시했다.정루아는 기가 막힌 나머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꼼짝도 못 하게 만든 뒤, 품에 안고 있던 상자를 낚아챘다.“돌려줘!”정시연이 비명을 지르며 매달리려 하자, 이연희가 앞을 막아서더니 그녀를 밀쳐냈다.“돌려주긴 뭘 돌려줘? 이거 구태윤이 돈 주고 산 거 아냐? 이혼 전이면 엄연히 부부 공동 재산인데, 네가 무슨 염치로 이걸 달래?”이연희는 정시연을 밀쳐내는 와중에도 뺨을 한 대 더 후려쳤다.머리칼이 산발이 된 채 뺨이 벌겋게 부어오른 정시연의 몰골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만약 지나가던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당연히 그녀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을 터였다.정시연은 서러움이 폭발한 듯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루아야, 제발 부탁할게. 그냥 나 주면 안 돼? 이 귀걸이 나한테 정말 중요하단 말이야... 우리 외할아버지 유품인데, 예전에 잃어버렸다가 이제야 겨우 찾은 거야. 난 그냥 할아버지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을 뿐이야.”정루아는 상자를 열어 안을 확인했다. 영롱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쌍이 담겨 있었다.곧이어 탁 소리가 나게 뚜껑을 닫고는, 두 사람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쌩하니 돌아섰다.이연희도 즉시 뒤를 따랐다.“정루아!”정시연은 너무 속상해서 당장이라도 쫓아가고 싶었지만, 지금 이 몰골로 나갔다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내 무력한 눈빛으로 구태윤을 바라보았다.“태윤 씨, 어떡해요? 우리 외할아버지 유품 겨우 찾아낸 건데...”구태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방금 일어난 소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깊은 눈동자 속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미안해요.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꼭 보상해 줄게요.”정시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내리깐 속눈썹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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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정루아는 잔뜩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일부러 나 기다린 건가? 설마 귀걸이 다시 빼앗아서 정시연 갖다주려고?’그녀는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운 채 걸음을 옮겼다. 아예 유령 취급하며 그대로 지나쳐 버릴 작정이었다.하지만 안 그래도 좁은 복도에, 키 큰 남자가 긴 다리까지 뻗고 가로막고 있으니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정루아의 맑은 눈동자에 비아냥이 가득했다.“얼른 가서 애인 시중이나 들지, 여긴 왜 왔어?”구태윤의 잘생긴 눈썹이 찌푸려졌다. 수려하면서도 날카로운 얼굴에 냉소적인 기색이 한층 더 짙어졌다.“그런 말 해봤자 너만 속상할 텐데, 굳이 왜 사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엄연한 사실이잖아.”정루아가 한껏 비꼬았다.“나한테 볼일이라도 있어?”구태윤은 칠흑 같은 눈동자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정루아는 쳐다보기만 할 뿐, 가만히 서서 싸늘하게 물었다.“이게 뭔데?”구태윤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상자를 억지로 쥐여주며 말했다.“루아야, 난 그저 형수님이랑 확실히 선 긋고 싶을 뿐이야. 어쨌든 내 목숨 구해준 은인이잖아.”“당신 구한 사람은 나야!”정루아는 상자를 바닥에 거칠게 내던졌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구태윤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나도 확실하게 조사해 보고 하는 말이야. 네가 그때 누군가를 구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 사람은 내가 아니었어.”“개소리하지 마!”이런 얼토당토않은 사실 따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구해낸 사람은 분명 눈앞의 이 남자였다.그런데 이제 와서 정시연을 은인으로 착각하다니.심지어 가짜 은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기까지 했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인가.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요동치는 감정을 억눌렀다.“내가 찜한 건 차라리 버렸으면 버렸지, 정시연한테는 절대 안 줘. 그러니까 당신도 나한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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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정루아를 발견한 정석주의 눈빛이 음침하게 가라앉았다.하지만 그녀는 차에서 내리기는커녕, 액셀을 밟아 단지 안으로 유유히 들어가 버렸다.곧바로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시비 걸려고 온 게 뻔한데, 미쳤다고 차에서 내려 욕을 자처하겠는가.정루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이 늦은 시간에 정석주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정시연 그년이 또 쪼르르 가서 고자질했나 보네. 진짜 지긋지긋하다.’정루아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막 눈을 감으려던 찰나,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걸어가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자, 그곳에는 정석주와 아파트 관리소장의 모습이 비쳤다.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갔다.‘입주민 동의도 없이 아무나 막 들여보내? 이딴 게 무슨 고급 아파트라고. 당장 이사부터 가든가 해야지.’초인종은 끊임없이 울려댔고, 시간이 흐를수록 정석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관리소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저... 따님분이 벌써 주무시는 모양인데, 전화를 먼저 해보시거나 내일 다시 오시는 게 어떨까요?”그러자 정석주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명령했다.“문 열어요.”관리소장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그건 좀 곤란합니다. 입주민 동의는 필수라, 저희가 함부로 문을 열어드릴 권한은 없어서요.”“내가 걔 아버지요!”정석주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자기 자식 얼굴 좀 보겠다는데, 내 딸 집에도 못 들어간다는 소립니까?”관리소장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송골송골 배어 나왔다.‘이 양반, 딱 봐도 깽판 치러 왔는데... 왜 애꿎은 관리사무소에 화풀이야.’정석주가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며 소리쳤다.“정루아! 당장 문 열어!”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는지, 그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가라앉았다.결국 다시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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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이...!”정석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듯, 극도로 실망한 눈빛으로 정루아를 바라보았다.정말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마치 자신이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몰아세우는 저 눈빛.단지 억울하게 당하기 싫어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 것뿐인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정시연이 달라는 대로 다 퍼주고, 억울하게 빼앗기고 괴롭힘을 당해도 꿋꿋이 참아내야 ‘철이 든 것’이란 말인가?미안하지만, 죽어도 그럴 생각은 없다.거실에 숨 막힐 듯 무거운 침묵이 길게 내려앉았다.정석주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루아야, 지분과 귀걸이 중 넌 하나만 택해야 한다.”정루아는 기가 차서 헛웃음이 터졌다.“내가 왜요? 난 정씨 가문의 친딸이고, 정원 그룹은 원래 제 소유예요. 귀걸이도 내 남편이 돈 주고 산 선물인데, 왜 나더러 고르라는 거죠?”“지금 너랑 논쟁하자고 이러는 게 아니다.”정석주가 서늘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의 눈빛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난 그저 선택지를 주는 거야. 지분 양도 절차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백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스스로 잘 생각해서 결정해라.”말을 마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정루아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그 귀걸이는 외할머니가 평생 찾아 헤매시던 물건이에요. 절대 소시연한테 못 줘요. 그리고 지분도 양보 안 할 거예요!”정석주가 뒤를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네 외할머니가 사파이어 귀걸이를 찾으신다고?”“네.”정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외할머니 말씀이, 그거 외할아버지랑 주고받으신 프러포즈 선물이었대요. 당시에 실수로 잃어버리신 후로 평생을 그리워하셨거든요. 내가 겨우 찾아낸 건데, 당연히 사서 돌려드려야죠.”정석주의 미간이 더욱 깊게 팼다.“네 엄마한테는 그런 이야기 한 번도 못 들었다만.”정말 장모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물건이라면, 아내가 자신에게 귀띔조차 안 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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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정루아도 굳이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당장 지금 가야만 하는 급한 일은 아니었으니까.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 그럼 이 프로젝트 끝나는 대로 다시 휴가 쓸게요.”그제야 정호의 표정도 조금 풀렸다.이내 고개를 돌려 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정시연 씨는요? 아직 안 왔습니까?”팀장도 몹시 난처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아침에 몸이 안 좋아서 연차 쓰겠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정호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정말 골치 아픈 친구군.”정루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설마 구태윤이 뒤를 봐준다고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구는 걸까?이럴 거면 대체 일은 왜 하겠다고 기어 나왔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정루아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때마침 휴대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꺼내 보니 정석주에게서 온 전화였다.그녀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로 정석주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쏟아졌다.“네 엄마한테 다 물어봤다. 전혀 그런 일 없다더군. 이제는 목적을 이루려고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까지 지어내? 지금 당장 귀걸이 가지고 와. 안 그러면 지분 양도 계약은 그 즉시 파기야.”정루아의 미간이 단박에 찌푸려졌다.그럴 리가 없었다.“외할머니가 저한테 직접 하신 말씀인데, 어떻게 가짜일 수가 있어요? 엄마가 잘못 기억하시는 거겠죠.”정루아가 딱 잘라 반박했다.그러자 정석주는 콧방귀를 뀌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네 엄마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냐? 됐다, 긴말 필요 없고, 귀걸이를 가지고 오든 지분을 포기하든 알아서 선택해.”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가 뚝 끊겼다.정루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휴대폰을 부서져라 꽉 쥐었다.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야외 테라스로 걸어가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세 번쯤 울렸을까, 수화기 너머로 나이 지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할머니, 저 루아예요.”봄바람처럼 나긋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아이고, 우리 루아구나!”노인의 목소리가 금세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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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임혜숙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다.“뭐? 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니?”정루아는 앞으로 다가가 맑은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엄마, 외할머니가 그 사파이어 귀걸이를 얼마나 찾고 싶어 하는지 잘 알잖아요. 그런데 왜 아빠한테는 아니라고 거짓말했어요? 엄마는 외할머니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서슬 퍼런 눈빛에 임혜숙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들고 있던 가위를 탁자 위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넌 신경 꺼.”임혜숙의 말투가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왜요?”정루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한테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 아시잖아요. 외할머니가 평생을 애타게 찾으셨는데, 엄마는 친딸이 돼서 왜 도와주지도 않는 건데요?”“내가 신경 끄라고 했지?”임혜숙의 감정이 한층 격해졌다.“소중하기는 무슨, 기가 막혀서 원!”정루아는 영문을 몰라 벙찐 표정을 지었다.“엄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임혜숙은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야 감정이 다소 진정된 듯 말을 이었다.“루아야, 그 사파이어 귀걸이는 네 외할머니 물건이 아니야. 물론 가질 자격도 없거니와. 그러니까 얼른 시연이한테 돌려줘.”정루아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친딸의 입에서 어떻게 저런 모진 말이 나올 수가 있을까.가질 자격이 없다니?외할머니 물건이 아니라고?정루아는 순간 머리가 띵해져 목소리마저 힘이 쭉 빠졌다.“엄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알아듣게 좀 얘기해줘요.”“더는 묻지 마.”임혜숙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무튼 내 말대로 해. 귀걸이 가져오긴 했어?”“소시연한테 절대 안 줘요.”정루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엄연히 우리 외할머니 물건이거든요?”“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임혜숙이 빽 소리를 질렀다.“네 외할머니가 훔친 거야!”수치심과 후회가 뒤섞인 눈동자에 이내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잡한 과거라도 기억해 낸 듯.정루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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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정루아는 임혜숙의 손을 뿌리치며 미간을 찌푸렸다.“엄마가 무슨 증거가 있다고 우리 외할머니를 불륜녀로 몰아요? 자신을 낳아준 친어머니한테 어떻게 그런 막말을 하죠?”임혜숙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니? 그때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단다. 네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대판 싸우면서 젊었을 적 일을 다 들춰냈거든. 그래서 알게 된 거야. 네 외할머니가 중간에서 이간질해서 외할아버지랑 첫사랑 사이를 억지로 갈라놓았다는 걸.”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그 사파이어 귀걸이는 원래 두 분의 물건이었어. 그런데 네 외할머니가 끝까지 안 내놓은 거야. 네 외할아버지는 그것 때문에 평생 속앓이만 하다가 결국 화병으로 돌아가신 거고.”정루아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겨우 부부싸움 하면서 오간 말 몇 마디 가지고 외할머니를 그런 사람으로 단정 짓는 거예요? 나 지금 엄마가 너무 낯설어요. 이럴 땐 당연히 자기 친어머니 편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온화한 성품의 외할머니는 다정함이 몸에 배었고, 일거수일투족에 뼈대 있는 집안 규수다운 기품이 묻어나는 분이었다.그런데 어떻게 불륜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게다가 젊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단지 증거도 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할 뿐.고작 이런 말 몇 마디에 흔들릴 정루아가 아니었다. 외할머니는 언제나 자신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으니까.그녀는 임혜숙보다 외할머니를 더 믿었다.임혜숙은 미간을 찌푸린 채 정루아를 쏘아보았다.“진짜 소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네. 내가 친어머니 편을 들지 않는다고 타박하는데, 그럼 너는 왜 곧 죽어도 내 말은 안 믿는 거니?”정루아는 도리어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엄마로서 자격 미달이니까. 양딸만 편애하고, 친딸은 안중에도 없잖아요.”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임혜숙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하지만 정루아는 한 걸음 물러서며 매를 피했다.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사파이어 귀걸이는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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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어둠이 짙게 깔린 밤, 가을바람이 쓸쓸하게 불어왔다.빛바랜 낙엽들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처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길을 걷는 정루아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그녀는 생각에 잠겼다.사파이어 귀걸이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유품인데, 정시연이 왜 그토록 집착하는 걸까.심지어 자기한테 엄청 중요한 물건이라고 하면서까지.그리고 임혜숙의 태도 또한 수상했다.무조건 그 귀걸이를 정시연에게 넘겨주라고 하지 않았던가.대체 이유가 뭘까?설마 이 귀걸이가 정시연의 조부모님과도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집에 돌아온 정루아는 상자에서 사파이어 귀걸이를 꺼냈다.그리고 불빛 아래에서 한참 동안 가만히 들여다보았다.일단 지금 붙잡고 있는 일부터 끝내놓고 외할머니를 찾아가 귀걸이를 전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외할머니의 염원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루어 드려야 했다....찻집 안.은은한 차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병풍에 그려진 산수화는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정석주는 맞은편에 앉은 구태윤을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시연이가 갑자기 주식을 안 받겠다고 하던데, 혹시 자네가 무슨 말이라도 한 건가?”구태윤은 그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수려하면서도 날카로운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이내 고개를 들어 정석주를 바라보며 대답했다.“형수님은 어쨌든 아버님, 어머님의 친딸은 아니잖아요.”정석주가 미간을 찌푸렸다.“남의 집안일에 좀 과하게 참견하는 것 같군.”구태윤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아버님, 전 정씨 가문의 사위입니다. 집안일에 개입할 자격 정도는 제게도 있는 법이죠.”젊은 나이임에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지금은 그 서슬 퍼런 기운을 꾹 눌러 감추고 있어, 오히려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정석주는 도저히 그의 속내를 몰랐다.결국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자네, 혹시 시연이한테 마음이 있는 거야?”구태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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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구태윤이 고개를 들어 정석주를 바라보았다.“이런 결정 내리실 때, 루아 생각은 해보셨습니까?”정석주가 곧바로 맞받아쳤다.“루아한테는 이미 주식을 줬잖아. 대체 뭐가 불만이라는 거야!”이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게다가, 그때 시연이가 자네 목숨 살려준 거 벌써 잊었어? 태윤아, 사람은 모름지기 은혜를 알아야 하는 법이야.”찻집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다.은은한 차향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싸늘하게 얼어붙었다.한참이 지난 후에야 구태윤이 입을 열었다.“정원 그룹 주식, 주셔도 됩니다. 하지만 형수님이 안 받겠다고 하면 억지로 강요하진 마세요. 주식이 중요할지, 구하준이 중요할지 본인이 제일 잘 알 테니까. 물론, 아버님께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정석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그제야 구태윤이 대체 무엇을 빌미로 정시연을 쥐고 흔들었는지 알아차렸다.구하준은 정시연에게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태윤아, 양심이 있으면 시연이한테 이러면 안 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자네 목숨 살려준 은인이잖아.”정석주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그건 제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입니다.”구태윤의 어조는 지독하리만치 덤덤했다.“아버님이 하도 안달복달하시니, 전 또 형수님이 아버님 목숨이라도 살려드린 줄 알았네요.”“이...!”정석주는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곧이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찻집을 나가버렸다.생명의 은인이라는 명분이 있으니 어떻게든 정시연을 도울 줄 알았건만, 큰 오산이었다.구태윤은 철저히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대체 무슨 속셈일까?정시연에게 잘해주는 것 같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저렇게 모질게 대하니 도무지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구태윤은 태연하게 차를 마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문밖에는 한민혁이 대기하고 있었다.“대표님, 바로 회사로 복귀하십니까?”구태윤은 걸음을 옮기며 무심하게 지시했다.“정원 그룹에서 왜 정시연을 입양했는지 뒷조사 좀 해봐.”“알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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