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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101 - Chapt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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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그 말에 유정남은 고개를 저었다.“어머님, 그 일은 서두를 것 없습니다. 저는 일 년 내내 변방을 떠도는 몸인데, 섣불리 혼인했다가 엄한 처자의 앞길만 망치면 어쩌겠습니까.”“또 떠난단 말이냐?”유씨 노부인이 깜짝 놀라 물었다.유정남이 답했다.“폐하께서 명확히 명을 내리진 않으셨으나, 정세가 이리 돌아가니 확답을 드리긴 어렵군요.”그 말을 들은 송씨가 얼른 앞으로 나섰다.“아주버님께서는 폐하의 중용을 받고 계시니, 폐하의 눈 밖에 난 저희 나으리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이번에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셨으니, 저희 나으리를 위해 좋은 말씀 좀 상소해 주십시오. 어쩌면 나으리께서 관직에 복귀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이는 유씨 노부인 역시 은근히 바라고 있던 바였다.“어제 슬쩍 운을 띄워 보았으나, 폐하께서는 소주 사건 조사가 끝난 뒤에 다시 논하자고 하셨습니다.”유정남의 단호한 한마디에 송씨는 할 말을 잃었다.사실 송씨는 지금 뼈저리게 후회하는 중이었다.애초에 부광 비단으로 유지영을 함정에 빠뜨리려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유지영은커녕 되레 둘째네 전체가 진흙탕에 구르는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어머니, 걱정 마십시오. 이 일의 진실이 밝혀진다면 제가 반드시 폐하께 처분을 거두어 달라 청하겠습니다.”유정남은 유씨 노부인에게 다짐하듯 말했다.유씨 노부인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으로서는 소주의 조사가 하루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송씨를 바라보는 유씨 노부인의 눈빛이 차게 식었다.‘어리석은 것 같으니라고!’“그래, 소주 쪽은 진전이 좀 있느냐?”유씨 노부인이 다시 물었다.유정남은 고개를 젓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다만 어제 호부 상서가 슬쩍 말을 얹더군요. 소주의 송씨 가문을 경성으로 이주시키겠다고 말입니다.”그 말에 송씨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그, 그게 무슨…. 폐하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허락하신 건 아니지만, 달리 불허한다는 말씀도 없으셨소.”유정남은 송씨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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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한편, 마차 안.이동하는 동안 유정남은 어여쁘게 자란 자신의 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가슴속에서 만감이 교차하며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왔다.“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유지영은 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채고는 얼른 그를 위로했다.유정남은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비가 조금만 더 일찍, 네 성년례 전에만 돌아왔어도 네가 가문의 등쌀에 떠밀려 수구를 던져 정혼자를 간택하는 무리한 행사를 추진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랬으면 그런 한량 같은 녀석과 정혼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그의 말투에서 지독한 불쾌감과 혐오가 묻어났다.유지영은 멋쩍은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잠시 후, 그녀는 모기만 한 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사실 경왕 세자께서 소문이 좀 안 좋아서 그렇지, 아버지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파렴치한 사람은 아니랍니다.”유정남은 그저 딸이 자신을 달래려고 지어낸 소리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폐하께서 녀석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셨는데, 듣자 하니 소주로 향했다더구나.”그는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만약 부광 비단 사건에 배현준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빈손으로 복귀한다면, 장차 장인이 될 사람으로서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경왕 세자께서 소주로 가셨다고요?”유지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유정남은 아차 싶었지만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던 것 같았다. 원래는 황제가 배현준을 황궁에 붙들어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토록 감쪽같이 움직였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마차가 멈춰 섰다.유정남은 휘장을 걷고 마차 밖으로 나온 뒤, 담씨 가문 정문 앞에 서서 간판을 올려다보았다.만감이 교차하는 듯, 그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문을 열고 들어가 복성당으로 향하는 동안, 부관이나 시종들만 보일 뿐 상전들은 단 한 명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과거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외삼촌인 담성국은 아버지에게 깊은 앙금을 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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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분위기가 어색하게 변해 버렸다.담씨 노부인은 담성국에게 눈치를 주며 어르고 달래 주었다.“국공이 효심이 깊어 이 늙은이를 보러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오지 않았느냐. 게다가 상등 인삼과 온갖 보약까지 챙겨왔거늘, 너는 이 집안의 가주로서 손님 대접을 이리 소홀히 하면 안 되지.”담성국은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굳은 안색을 풀고 유정남과 시선을 마주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두 사람이 나가자 담씨 노부인은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벌써 수년이 흘렀건만 네 아비는 여전히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했구나. 네 외삼촌 역시 진심으로 네 아비를 미워하는 건 아니다. 그저 가슴속에 맺힌 한을 다 풀지 못해 저러는 게지.”가장 아끼던 누이를 유씨 가문에 시집보냈다가 허망하게 잃었으니, 어떻게 울화가 치밀지 않겠는가.유지영은 그 깊은 속내를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혹여 누군가 또 간계를 부려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힐까 봐, 서옥혜가 그간 저지른 행각들을 외할머니에게 낱낱이 고했다.이야기를 들은 담씨 노부인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그런 거였구나. 지영아, 그런 되먹지 못한 사람은 네 아비의 곁에 둘 가치도 없다. 넌 아주 잘 대처했어.”어느덧 땅거미가 짙게 깔린 저녁이 찾아왔다.담씨 저택을 나선 유지영은 유정남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술 냄새를 맡았다.다행히 얼굴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 모습을 본 유정남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네 외삼촌이 명색이 문관인데 내게 손찌검이라도 할까 걱정했느냐? 이 아비는 전쟁터를 누비던 장군이다. 어디 가서 절대 매 맞고 다닐 위인이 아니야.”수년 만의 재회였음에도 부녀간의 정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은 듯했다.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집 안으로 들어서던 찰나, 부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히 마중을 나왔다.부관은 목소리를 낮추어 작은 소리로 고했다.“동이가 뒤뜰 연못에 빠져 물을 잔뜩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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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정연이라는 두 글자가 튀어나온 순간, 유지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터무니없는 소리! 지영이는 오늘 아침 일찍 나와 함께 담씨 가문에 다녀왔소. 그런데 언제 시녀를 시켜 동이를 해하려 했다는 말이오?”유정남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호통쳤다.정씨가 말했다.“일이 터지자마자 현장에서 그 계집애를 붙잡아 심문했으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어찌 아주버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정연이 붙잡혀 모진 심문을 당했다는 말에 유지영의 안색이 싸늘하게 식었다.그녀는 정씨를 똑바로 응시하며 차갑게 물었다.“그럼 셋째 숙모님의 말씀은 정연이 스스로 죄를 자백했다는 뜻인가요?”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에 정씨는 순간 흠칫했다.그 틈을 타 침상에 엎드려 있던 서옥혜가 핏발 선 눈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하소연했다.“군주님, 저희가 그리도 싫으셨습니까? 저와 동이는 아무것도 탐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려 했을 뿐입니다. 저를 눈엣가시로 여기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어찌 아무 죄도 없는 어린아이에게까지 이토록 모진 짓을 할 수가 있습니까!”유지영은 기가 막히다는 듯 차갑게 비웃었다.“서 낭자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군요. 입으로는 아이가 소중하다 울부짖으면서 왜 의원의 진맥은 한사코 막고 있었습니까? 물에 빠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축축하게 젖은 옷을 그대로 입혀두다니, 멀쩡한 사람이라도 병세가 악화되겠습니다.”정곡을 찔린 서옥혜의 얼굴에 잠깐 당혹감이 스쳤지만, 그녀는 이내 입술을 깨물며 독하게 우겼다.“이 험한 곳에서 누가 또 내 아이를 해할 줄 알고 의원을 들인단 말입니까! 저는 국공부 사람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유지영은 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유정남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저와 서 낭자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서 낭자를 해하는 것도 모자라, 가련한 어린아이를 사지로 몰겠습니까.”“그래, 지영아. 이 아비는 너를 믿는다.”유정남은 당연히 딸의 편이었다.그는 근엄한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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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군주님?”임씨 어멈이 놀라며 물었다.쨍그랑!바닥에 떨어진 옥패는 산산이 부서졌다.유지영은 턱을 치켜들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태후께서 하사하신 옥패를 계화가 깨뜨렸다!”현장에 있던 어멈들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분명 옥패는 방금 군주가 직접 깨뜨린 것인데, 어째서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무엇들 하느냐! 당장 옥패 조각을 주워 할머니께 가져가거라!”유지영은 차가운 얼굴로 호통쳤다.그녀는 어멈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도 쓰지 않았고, 오늘 일을 계기로 본때를 보여주어, 셋째 부인과 그 일가족들의 기를 꺾어놓을 생각 뿐이었다.어멈들은 유지영의 기세에 눌려 얼른 조각들을 챙겨 유씨 노부인의 처소로 가져갔다.그 시각, 유씨 노부인은 서책을 읽고 있었고, 그 곁에는 유선주와 유지란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산산조각이 난 양지옥을 보자 노부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군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오늘 계화가 태후께서 하사하신 이 옥패를… 깨뜨렸다고 합니다.”어멈이 더듬거리며 말을 전했다.계화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유지란이 펄쩍 뛰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 계화가 왜 옥패를 깨뜨린단 말이야? 할머니, 이건 분명한 모함입니다!”유씨 노부인이 어멈을 가만히 쏘아보자, 어멈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아꼈다.“지란이 넌 현장에 없었으면서 어찌 계화의 짓이 아니라고 단정 짓지? 오늘 셋째 숙모께서 내가 없는 틈을 타 멋대로 사람들을 거느리고 유수각에 들이닥쳤다 하더구나. 이 옥패는 내 침소에서 깨졌으니 계화의 짓이 아니면 숙모님이 하신 거겠구나?”유지영이 느긋하게 걸어 들어오며 손에 쥔 염주를 흔들어 보였다.유씨 노부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다급히 물었다.“염주도 깨졌느냐?”“그건 아니고, 염주가 한 알 사라졌습니다.”둘 다 태후께서 하사한 귀한 물건들이었다.하필 오늘 정씨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유수각에 다녀갔으니, 유지영은 그들에게 적반하장과 모함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어찌 제대로 보관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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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조급해진 계화가 정씨를 바라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사… 살려주십시오, 부인….”정씨는 심복인 계화가 유지영의 기세에 눌려 말까지 더듬는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못난 것.’그녀는 속으로 욕을 삼키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지영아, 고작 시녀 한 명 때문에 우리가 얼굴을 붉힐 이유는 없지 않느냐. 어찌 이리 깐깐하게 굴어?”그녀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한, 유지영이 감히 강제로 계화를 심문할 수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유지영은 유씨 노부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셋째 숙모께선 평소 집안 살림을 관리하시던 분도 아닌데 왜 갑자기 저희 큰댁 일에 간섭하시려는지 모르겠군요. 이 일을 명백히 밝히지 않는다면 필히 제가 정연이를 사주해 동이를 물에 빠뜨렸다고 오해를 살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무고한 어린아이의 목숨을 해하려 했다고 떠들겠지요. 할머니, 저는 그저 증인에게 몇 가지 확인하려는 것뿐인데, 제가 잘못하고 있는 겁니까?”“할머니께 그게 무슨 불손한 말버릇이냐?”당황한 정씨는 짐짓 정색하며 유지영을 나무랐다.유씨 노부인은 정씨의 표정을 보고 구린 구석이 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사실 유지영은 노부인의 태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어쨌거나 이 일을 이대로 호락호락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산산조각 난 옥패가 눈앞에 떡하니 있고 염주도 한 알 사라진 상황.이 사태를 조용히 수습할지, 아니면 일을 키울지는 노부인이 알아서 결단을 내릴 거라 믿었다.아니나 다를까.유씨 노부인은 탁자를 내리치며 엄하게 호통쳤다.“계화 저 계집을 당장 끌어내서 곤장을 쳐라!”그 말에 정씨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어머님?”“오늘 정연을 심문한 자들이 뉘더냐? 한 놈도 빠짐없이 모조리 잡아 오너라!”유씨 노부인은 눈치 없이 구는 정씨를 매섭게 쏘아보았다.부광 비단 사건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마당에, 장남이 돌아오자마자 정씨가 서둘러 유지영을 해코지하려 드니, 장남의 심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정씨는 노부인의 음침한 눈빛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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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유씨 노부인도 경악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큰애야, 처벌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어머니, 지난 세월 제가 집을 비운 사이 지영이가 어찌 지냈는지를 두고 바깥에 흉흉한 소문이 무성합니다. 제가 돌아온 지 고작 사흘째인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 사단이 났다니, 참으로 화가 나고 억울하네요!”유정남은 오늘 작정하고 판을 벌려 유지영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로 했다.유국공부에서 가장 귀한 적장녀인데도 늘 의심받고 모욕당하는 것에 부아가 치밀었다.유정남은 정씨를 매섭게 돌아보며 말했다.“태후마마께서 하사하신 옥패와 염주는 가문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요. 제수가 명백히 해명하지 못하겠다면 관아에 고발하는 수밖에.”장살에 이어 관아까지 거론되자, 정씨는 완전히 당황한 듯 갑자기 털썩 무릎을 꿇으며 유씨 노부인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어, 어머니, 다 이 며느리의 불찰입니다. 시녀의 미련한 말만 믿고 지영이를 오해했습니다.”관아라니, 당치도 않았다.일이 커지면 셋째네 일가족 전체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그제야 정씨는 송씨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유지영을 해하려 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계화 저년은 손버릇이 나빠 상전의 물건을 훔치고 훼손하기까지 했으니, 당장 장살에 처하라! 아울러 무고한 정연을 살인범으로 몰아간 왕씨 어멈 역시 함께 장살하라!”유씨 노부인은 장남의 분노를 가라앉히려면 오늘 반드시 확실한 처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리하여 두 시종은 목숨을 구걸할 기회조차 없이 마당으로 끌려나갔다.유지영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버지가 굳건히 자신의 편에 서주셔서 천만다행이었다.살아남은 세 어멈은 혼비백산하여 사시나무 떨 듯 부들부들 떨며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정씨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었다.“그리고 전후 사정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유수각에 들이닥쳐 사람을 잡아간 셋째 너 역시 참으로 어리석구나!”유씨 노부인은 화를 참지 못하고 정씨에게 삿대질했다.그러고는 유지영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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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정당 안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유씨 노부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씨를 매섭게 쏘아보았다.그녀가 누군가의 장단에 놀아나 앞잡이 노릇을 했음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서옥혜 하나 때문에 집안이 한바탕 난리를 겪은 데다, 유정남이 친히 그녀를 내보내라 못 박았으니, 노부인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노부인은 곧장 연월을 불렀다.“가서 서옥혜의 짐을 싸서 서류 골목에 있는 가옥으로 보내고, 땅문서와 집문서도 함께 내어주거라. 그리고 유국공은 그저 사망한 부하를 생각해 갈 곳 없는 그 유족을 받아준 것뿐이니, 제 분수를 알고 더는 소란을 피우지 말라 똑똑히 전하거라!”유씨 노부인의 매서운 시선은 시종일관 셋째 부인 정씨를 향해 있었다.정씨의 안색은 순식간에 흙빛이 되었다.마당의 혈흔은 이미 말끔히 지워졌고, 피 냄새를 없애기 위해 쑥물과 유자수가 뿌려져 있었다.노부인의 차가운 시선은 남은 세 어멈에게로 돌아갔다.“저것들은 근교의 장원으로 쫓아내거라!”왕씨 어멈이 참혹하게 장살당한 것에 비하면 감지덕지한 처분이었기에, 세 어멈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러갔다.사태를 수습한 유씨 노부인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할머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옥패는 제가 직접 태후마마께 사정을 설명드리고 국공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염주 역시 제가 돌아가서 잘 찾아보겠습니다.”확답을 들은 유씨 노부인은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하지만 고개를 돌려 정씨를 본 순간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당장 물러가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단단히 망신을 당한 정씨는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여 얼굴을 감싼 채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유선주도 그 뒤를 따르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지영을 힐끗 보았다.유지영이 전과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비단 이번뿐이 아니었다.하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날을 세우며 셋째 부인을 몰아세운 적은 없었다.게다가 유정남이 당도하기 전에도 노부인은 이미 유지영을 두둔하고 있었다.이 사단을 기점으로 국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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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송씨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으나, 유지영이 장미원으로 갔다는 말을 듣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그녀는 더는 지체할 겨를도 없이 급히 몸을 일으켜 그곳으로 향했다.그 시각, 장미원.유지영은 마당에 서서 서옥혜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동이가 물에서 건져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한창 허약할 때인데, 어찌 이리 잔인하게 저희 모자를 내쫓으려 하십니까? 동이가 익사할 뻔한 일에 대해 국공부에서는 마땅히 저희에게 합당한 해명을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유지영은 서두르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기다렸다.이윽고 시녀 홍주가 나직하게 일러주었다.“군주님, 둘째 부인께서 오고 계십니다.”“지영아, 동이는 아직 회복도 되지 않았는데 어찌 이리도 인정머리 없이 사람을 내쫓으려 하느냐?”송씨는 도착하자마자 유지영을 원망하듯 한마디 던졌다.유지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숙모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저 할머니의 명을 받고 서 낭자가 떠나는 것을 감독하러 온 것입니다. 할머니께선 절대 아버님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고 조용히 보내라 하셨지요. 숙모님께서 정 부당하다고 생각되신다면 할머니를 찾아가 따지면 될 일입니다.”송씨는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서 낭자가 굳이 해명을 요구하니 제가 직접 설명하러 온 것입니다. 정연이는 결코 동이를 밀어 물에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동이가 철없이 호숫가에서 놀다가 발을 헛디딘 것이고,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정연이가 아이를 구해낸 것이지요.”유지영은 싸늘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셋째 숙모께선 이 일에 연루되어 가훈을 천 벌 필사하게 되셨고, 계화와 왕씨 어멈은 장살형에 처해져 지금 막 저택 밖으로 실려 나갔습니다. 할머니께선 서 낭자의 심보가 바르지 못하다고 실망하셨지요. 유국공부는 그저 전사한 부장을 봐서 유족을 보살피려 했거늘, 전장에서 전사한 부장이 서 낭자의 해괴한 행태를 알게 된다면 하늘에서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유지영은 곁에 놓인 비단 상자를 가리켰다.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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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송씨는 끝내 유지영과 대놓고 맞서지 못하고, 그저 이를 악문 채 처소로 발길을 돌릴 뿐이었다.마침 처소 대문 앞에는 유선주가 기다리고 있었다.“어머니,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유선주가 걱정스레 물었다.송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유지영 그 계집이 갈수록 영악해지는구나. 서옥혜를 도둑놈 대하듯 빈틈없이 감시하며 아예 접근을 막으니, 나도 손쓸 방도가 전혀 없더구나.”하필 이 시국에 차남댁은 큰댁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그저 억울함을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송씨는 이 시국에 서옥혜를 부추겨 소란을 피우게 한 것을 후회했다.그러지만 않았어도 쫓겨나진 않았을 텐데,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격이 되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어머니, 부광 비단 사건이 온전히 해결된 후에 하나씩 청산해도 늦지 않습니다.”유선주가 위로하듯 말했다.송씨도 이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유지영의 경고가 떠올랐다.만약 정씨가 모진 추궁에 이성을 잃고 헛소리라도 내뱉는 날에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결국 송씨는 무거운 마음으로 부군 유정혁을 찾아갔다.홀로 방에서 요양 중이던 유정혁은 중재를 청하는 송씨의 사정을 듣자마자 안색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어리석은 여편네 같으니라고!”큰형인 유정남은 경성에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나도록 형제간에 얼굴 한 번 보지 않았다.평소 유정남의 성격대로라면 진즉에 병문안을 오고도 남았을 터인데, 이토록 감감무소식인 것은 단단히 노했다는 의미였다.노여움의 원인이 무엇이겠는가.결국 부광 비단 사건과 유선주가 정왕 세자와의 혼사를 가로챈 일 때문일 것이다.유정혁의 불호령에 송씨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잘못을 빌 수밖에 없었다.유정혁은 한 바탕 욕을 퍼부은 후, 역시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큰형님은 정 많고 마음이 약하신 분이오. 그러니 우선 사람을 보내 노기를 달래준 후에 지영이가 시집을 가고 나면 그때 다시 서옥혜를 데려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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