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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은빛 눈의 아이를 낳았다: Kabanata 121 - Kabanata 130

146 Kabanata

121화. 만인의 황제, 나의 아들

“마리안 님, 상단으로부터 연락입니다.”보고가 이어졌다.“제국의 금괴 70%를 우리가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제 제국 국고는 마리안 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이렇게 우리는….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대륙의 패권을 가져왔다.해가 저무는 평원.루미엘은 기운이 다했는지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신의 아들 얼굴은 평온했다.하지만 알고 있었다.방금 루미엘이 행한 자비가 얼마나 무서운 무기였는지를.적을 죽이지 않고도 전쟁을 끝낼 힘.그것은 어떤 검보다 강력했다.“카일, 루미엘이 적을 무너뜨렸어요.”아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루미엘이 훌륭한 왕이 되길 원해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는 기꺼이 대륙에서 가장 사악한 섭정 여왕이 될 거예요.”카일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내 뒤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그림자.비올렛 것보다 훨씬 더 장엄하고 서늘하다는 것을 깨달은 눈빛이었다.“마리안, 우리만의 계획은 기억하지요?”“카일, 벌써 나약해진 거예요?”차갑게 바라보았다.“우리만의 계획이라니요? 지금 저들이 왕좌를 차지하려는 수작을 보고도 하는 소리입니까?”“마리안…. 당신의 염려는 충분히 압니다.”“그럼, 다행입니다.”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다시는 그따위 나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내 뜻을 굽힐 수 없습니다.”“마리안…. 당신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나는 끝까지 당신을 보호하겠습니다.”“보호요?”웃음이 나왔다.“당신이 나를요? 하하하! 내겐 붉은 돌과 대사제의 지팡이가 있어요.”카일은 놀란 눈으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아…. 또 있지요.”루미엘을 바라보며 말했다.“결정적인 한 가지. 나의 아들 루미엘이 늘 내 곁에 있는 걸 아시잖아요.”제국 황제가 보낸 전령을 맞이하러 이동했다.내 손에는 이제 앙리 왕의 인장이 아닌.대륙의 운명을 결정지을 새로운 황제 인장을 쥘 준비가 되어 있었다.국경 지대의 하얀 천막.그곳은 전쟁의 마침표를 찍는 장소이자, 대륙 서열이 뒤바뀌는 역사적 현장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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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나의 연인, 카일

외부의 적을 치니 내부의 낡은 세력이 고개를 든 것이다.역사는 항상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어떤 적은 검을 들고 찾아오지만.어떤 적은 신의 이름을 빌려 권력을 탐한다.원로 사제들은 루미엘 힘을 이용해 종교적 권위를 회복하려 애썼다.그들은 루미엘을 왕이 아닌.살아있는 신물 정도로 규정해 감금하려는 속셈이었다.“아직도 정신 못 차린 노인네들이 있군요. 내가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 억지 주장을 한다면, 사제 옷을 입었더라도 가차 없이 베어도 좋습니다.”루미엘을 위한 결정이었다.더 이상 누구도 내 아이를 이용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수도로 돌아가는 마차 안.루미엘이 창밖을 보며 물었다.“어머니, 황제는 왜 울 것 같은 표정이었나요? 제가 빛을 나누어 줬을 때, 다들 행복해 보였는데….”아들을 안았다.아이는 자신이 행한 기적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었지만.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권력을 잃는 파멸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루미엘. 세상에는 빛이 너무 밝으면 눈이 멀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단다.”창밖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그들은 네 빛을 시기해서 너를 어두운 방에 가두려 해. 하지만 걱정하지 마렴. 어미가 너를 위해 가장 높은 성벽을 쌓고, 그 위에 네 자리를 만들 거니까.”이때 난 결심했다.루미엘을 왕이 아닌, 종교와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황제의 자리에 앉히기로.왕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부족했다.신성을 가진 존재를 지키기에는 너무 많은 세력이 그 이름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누구도 감히 신성을 빌미로 아들을 이용하려 들지 못하게 할 것이다.수도에 도착한 직후.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대신전으로 향했다.원로 사제들이 결계를 치고 버티고 있었다.“섭정 왕후!”대사제 외침이었다.“이 아이는 신의 아들이다. 속세의 왕좌에 앉아 더러운 정치를 수행할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그들 말은 신을 위한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것은 신앙이 아니라 욕망이었다.루미엘 손을 잡고 결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놀랍게도 성스러운 결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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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비올렛의 사후 저주

왕국 수도 전체가 은빛 깃발과 꽃잎으로 뒤덮였다.오늘은 루미엘이 대륙을 아우르는 황제로 추대되는 대관식 날이었다.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왕국의 역사.수많은 왕이 올랐던 왕좌.그러나 오늘의 의미는 달랐다.한 왕국의 새로운 군주가 탄생하는 날이 아니라.대륙의 질서가 완전히 바뀌는 날이었다.북방 제국 황제부터 동부 상단 연합 행수들까지.대륙의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 모두 모여 어린 황제 탄생을 지켜보기 위해 숨을 죽였다.누군가는 경의를 표하기 위해.누군가는 새로운 권력의 중심을 확인하기 위해.그리고 누군가는 이 아이가 정말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인지 보기 위해.모두의 시선이 루미엘에게 향했다.검은 드레스 위에 붉은 비단 망토를 걸치고 루미엘 곁을 지켰다.황제의 어미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하지만 내 마음은 기쁨보다 경계심으로 가득했다.모든 게 완벽할 때.가장 치명적인 틈이 생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비올렛이 남긴 것은 죽음만이 아니었다.“어머니,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불러요. 그런데…. 마음이 조금 슬퍼요.”순수한 신성이 무언가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것이었다.다른 사람들은 축제의 환호로 들었지만.루미엘은 어둠의 흔적을 느끼고 있었다.“걱정하지 마렴, 루미엘. 어미가 네 곁에 있으니까. 넌 그저 빛나는 황제의 관을 쓰기만 하면 돼.”대관식의 하이라이트인 대관의 순서였다.대사제를 대신해 섭정 왕후인 내가 루미엘 머리에 황금 황제 관을 씌우려던 순간.갑자기 신전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시선이 위로 향했다.아름답게 빛나던 성화(聖畵)들.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녹아내리며 검은 액체가 바닥으로 쏟아졌다.축제 음악이 멈추고.사람들 비명이 차오르기 시작했다.“이 향기는…!”“마리안, 당신 안색이 창백합니다.”성검을 쥔 카일이 곁으로 다가왔다.잊을 수 없는 썩은 장미 향기.15년 전.비올렛이 처음 내 앞에 나타났던 날.수많은 생명을 짓밟으며 남겼던 그 악취.소멸했던 비올렛 흑마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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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평화라는 이름의 전쟁

모든 저주를 받아내고 쓰러진 순간.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닿기 전.루미엘이 뒤에서 안으며 추락을 가로막았다.신보다 강한 의지가 담긴 루미엘.은빛 눈동자에서 떨어진 눈물이 내 피 묻은 뺨에 닿았다.“어머니가 괴물이면. 저도 괴물이 될래요. 하지만 신이시여! 제 기도를 듣고 계신다면…. 모든 어둠을 물리쳐 주세요.”루미엘 눈물이 닿은 곳부터 은빛 광휘가 폭발했다.내 몸속에서 소용돌이치던 흑마력.절대 신성과 만나 하얀 연기로 승화하기 시작했다.타들어 가던 내 영혼을 어루만지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치유였다.신전에 가득 차 있던 비올렛 썩은 향기가 사라지고.새벽 숲의 싱그러운 향기가 감돌았다.그 순간.내 가슴에 박혔던 흑수정이 바스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모든 시선이 내게로 향하며 정적이 찾아온 대관식장.호흡마저 얼어붙은 고요 속.나는 루미엘 품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머리카락 끝은 저주의 여파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대가였다.하지만.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맑았다.지옥의 굴레에서 벗어난 영혼의 빛이었다.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진 황금 황제의 관을 주워 들었다.묵직한 황금의 무게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그리고.무릎 꿇고 있는 루미엘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얹었다.“대륙의 황제 루미엘 1세의 즉위를 선포합니다.”공포에 떨던 하객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바닥을 울리는 그들의 복종 소리.그들은 목격했다.아들을 위해 영혼까지 불태웠던 어미.그리고.그 어미를 구원한 어린 황제의 기적을.신전은 경외감과 안도로 가득 찼다.루미엘 손을 잡고 발코니로 나갔다.밖에서 기다리던 백성들의 함성이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하늘을 뒤덮은 환호성 속에 비로소 실감이 났다.아들과 서 있는 지금.이제 마지막 어둠도 사라졌다.대관식 날의 기적은 대륙 전체에 전설로 퍼져 나갔다.비올렛의 저주를 몸소 받아내고 하얗게 변해버린 내 머리카락은 이제 백성들 사이에서 황제를 지켜낸 여신의 증표로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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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일기

이튿날 아침.황궁은 더 이상 피 비린내나 흑마법 화약 냄새가 나지 않았다.루미엘 신성이 깃든 정원에는 계절을 잊은 꽃들이 만개했다.루미엘은 이제 어린 황제로서 위엄을 갖춰가고 있었다.매일 아침 전 대륙에서 몰려온 아픈 이들을 정원에서 맞이했다.그들 손을 잡거나 머리에 손을 얹으면.오랜 병마가 씻은 듯이 나았다.“어머니, 보셨어요?”환하게 웃으며 루미엘이 달려왔다.“저 아이 눈이 이제 보인대요.”내 시선은 루미엘 뒤, 사제들과 귀족들에게 향했다.그들 눈빛에는 감동도 있었다.하지만.여전히 그 힘을 이용하고 싶은 탐욕도 있었다.그때 다시 되새겼다.루미엘 가장 큰 적은 검을 든 적군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루미엘 힘이 기적으로 남으려면.통제할 현실의 칼이 필요하다는 것을.카일을 불러 은밀한 명령을 내렸다.“카일, 이제 공개적인 전쟁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암투는 더 치열해질 거예요.루미엘을 신격화하여 황권을 약화하려는 교단 세력과 황제의 권위를 빌려 세금을 면하려는 지방 영주들을 감시할 조직이 필요합니다.”비올렛이 남겼던 첩보망을 재편했다.하지만 목적은 달랐다.공포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평화를 지키기 위한 정책.오직 루미엘과 내게만 충성하는 비밀 결사 조직을 창설했다.“이 조직의 수장은 당신입니다, 카일. 나는 루미엘 앞길에 꽃을 키울 테니. 당신은 그 밑에 숨겨진 가시들을 쳐내세요. 필요하다면 내 이름에 피를 묻혀도 좋습니다.”카일은 무릎을 꿇고 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당신의 의지가 곧 내 검입니다. 황제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죽음조차 기꺼이 맞이하겠습니다.”“안 돼요, 카일.”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흔들렸다.“죽음은 절대 안 돼요. 그 무엇보다 당신 목숨이 내게 소중합니다.”“마리안…?”카일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그 순간 깨달았다.나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냉정했지만.단 한 사람의 죽음은 두려워하고 있었다.북방 제국에서는 매일 막대한 양의 배상금과 공물이 도착했다.북방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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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인간과 신의 경계

비올렛 죽음과 루미엘 즉위로부터 어느덧 십 년이 흘렀다.십 년이라는 시간은 대륙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과거 수많은 왕국이 서로의 영토를 탐하며 칼끝을 겨누던 시대는 사라지고, 하나의 거대한 질서 아래 대륙은 새로운 주인을 추앙하고 있었다.루미엘 황국.대륙 모든 신앙과 경제가 모여드는 최고의 제국으로 거듭난 곳.전쟁으로 폐허 되었던 도시들은 루미엘 가호 아래 다시 세워졌고, 굶주림에 쓰러졌던 백성들은 비로소 풍요로운 삶을 되찾았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빛이 강해질수록, 그 빛을 탐하는 어둠 또한 더욱 짙고 깊게 드리워진다는 것을.나는 여전히 섭정의 자리에 있었다.눈가에는 세월의 흔적이 옅은 주름으로 남았으나, 눈빛은 예전보다 더욱 깊고 서늘했다.나는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는 섭정이자, 성제(聖帝) 루미엘을 지키는 유일한 방패였다.“전하, 루미엘 황제께서 방금 침묵의 기도를 마치셨습니다.”어느덧 중년의 중후함이 짙게 밴 카일의 보고였다.십 년이라는 세월은 그의 얼굴에도 굵직한 흔적을 남겼으나, 검을 쥔 손만큼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서류를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제국 중앙에 우뚝 솟은 은빛 탑 꼭대기.눈부신 오로라가 파동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대륙 곳곳에 퍼진 악한 기운을 정화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달래는 루미엘의 힘.황제를 넘어, 새로운 시대 자체이자 신성한 상징이 되었음을 의미했다.“오늘도 백성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았군요.”내 말에 카일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예. 하지만….”잠시 망설이는 그의 표정에서 좋은 소식이 아님을 직감했다.“말하세요.”“최근 일부 성직자들과 귀족들이 루미엘 폐하를 인간이 아닌, 오직 경배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눈에는 폐하를 향한 맹목적인 신앙과 그보다 더 위험한 욕망이 뒤섞여 있습니다.”창밖으로 쏟아지는 찬란한 빛을 응시했다.예상했던 일이었다.루미엘 신성은 이미 인간 영역을 넘어섰으니까.음식을 먹지 않아도 빛만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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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반신반인(半神半人) 루미엘의 빛

내 손짓 한 번에 그림자들이 반역자들 숨통을 끊었다.지하 감옥 안에는 다시 깊은 정적만이 남았다.축축한 벽면을 타고 죄책감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이렇게 살생해도 되는가….하지만.모든 게 내 아들과 인간계를 위한 길이었다.루미엘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면.나는 그 빛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어둠 속에서 심판을 뒤집어쓰는 존재였다.고귀한 성제의 앞길을 닦기 위해.나는 언제나 가장 더러운 길을 자처해 걸어야 했다.누군가는 악녀라 부를 것이다.또 누군가는 성제의 어머니라 찬양할 것이다.하지만 상관없다.내가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것은 단 하나.루미엘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남기는 것.그것뿐이었다.이것이 불쑥 피어오르는 자책에서 삶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이정표였으니까.숙청을 끝낸 지친 몸을 이끌고 루미엘 처소로 향했다.알고 있었다.화려한 황실 침실 안에서도 루미엘은 여전히 어미를 기다리는 아이였다는 것을.높은 곳에 앉아 있으나, 내면은 여전히 따스한 온기를 갈구하고 있었다.허공에 뜬 채 명상에 잠겨 있던 루미엘.내 발소리를 듣고 천천히 내려왔다.아들 발은 바닥에 닿지 않은 채 떠 있었다.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 신에 가까웠다.주변을 감싸는 숭고한 기운이 곁에 있는 내게도 스며들어 면죄부를 주는 듯했다.“어머니, 또 피 냄새가 나요.”루미엘 목소리는 맑았지만, 그 안에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반신반인이었기에 내가 방금 저지른 살생의 고통까지도 느끼는 듯했다.내 몸에 밴 피 냄새가 순결한 영혼을 더럽히는 것 같았다.눈을 피하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미안하구나, 루미엘. 네가 깨끗한 세상에서만 살게 해주고 싶었는데.”다가와 내 손을 잡는 루미엘.순간.따뜻한 은빛이 손끝에서 퍼져 나갔다.몸을 감싸고 있던 피로와 어둠의 기운이 천천히 사라졌다.“어머니. 저는 인간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어요.”가슴이 내려앉았다.“매일 수만 명의 기도를 듣다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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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차원의 화랑, 기억의 전장

북방 국경.제국의 하늘은 본래의 푸른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찢겨 나간 차원의 균열 사이로 쏟아지는 흑우(黑雨)는 모든 생명을 썩게 했다.대지 위.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바스러진 병사들 갑옷만이 주인 없이 홀로 흩어져 있었다.“기다리고 있었다, 마리안. 그리고 나의 마지막 제물, 루미엘.”수천의 유령.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듯 갈라진 목소리가 고막을 찢듯 파고들었다.비올렛이었다.인간의 나약한 육신을 미련 없이 버리고 차원의 틈으로 숨어들었던 그녀.인간 영혼과 육체 힘을 먹고 자라난 절대악.그놈의 그릇이 되어 돌아왔다.그녀가 휘두르는 그림자 군단.이미 카일 손에 소멸했던 원혼들이었으나, 죽음마저 거부하는 절대악 권능으로 더욱 흉측하고 기괴하게 변해 있었다.절망으로 물든 하늘에 은빛 섬광이 번적이며 전장을 물들였다.“어둠의 잔재여, 이 땅은 더 이상 너의 유린을 허락하지 않는다.”일곱 날개를 펼친 루미엘이 태양보다 밝은 신성을 뿜어내며 강림했다.휘두르는 빛의 궤적은 그림자 군단을 정화하며 잿더미로 만들었고, 지상의 기사들 역시 루미엘이 내린 은빛 축복을 방패 삼아 그림자 괴물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비올렛의 본체는 현실에 없다.”루미엘의 선포였다.겉모습일 뿐.그녀는 차원의 문 너머, 증오와 원한이 썩은 늪처럼 응집된 차원의 화랑 속에 숨어 있었다.심장부를 파괴하지 않는 한.비올렛은 세상 죄악을 자양분 삼아 영원히 되살아날 것이 분명했다.“카일, 이곳과 루미엘을 부탁해요. 나는 비올렛 뿌리를 뽑으러 가겠습니다.”루미엘에게 잠시 눈을 맞췄다.아들은 어미의 단호한 결심을 읽었는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적들을 향해 더 거센 빛을 쏟아냈다.나는 붉은 돌을 움켜쥐고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했다.차원의 균열 속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시야가 흐려지며 기이한 광경과 함께 공간이 벌어졌다.인간이 천계에 닿기 전.영혼과 육체가 분리되기 직전.잠시 머무는 곳.차원의 회랑.소금쟁이 부족들이 신의 보호 아래 머무는 공간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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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천사장 사명과 지옥 불길

차원의 회랑 전체가 비명을 내며 미친 듯이 진동했다.카일 손에서 피어오른 성광.회랑을 뒤덮고 있던 어둠을 순식간에 밀어냈다.천사장 위엄이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그를 가두고 있던 인간 육체가 겪어온 시련과 흔적들이 빛의 잔상으로 흩어지며 고귀한 본질만이 남았다.“카일, 당신….”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오랜 시간 곁을 지키며 인간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던 내 연인.카일 진짜 모습은 신의 뜻을 집행하는 차가운 천계 사자였다.그 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자.벅찬 감정과 함께 이질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마리안,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카일 목소리.평소보다 훨씬 차분하고 깊었다.마치 얼음처럼 서늘한 권위가 배어 있는 것처럼.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절대악 중심에 서 있는 비올렛 영혼을 똑바로 응시했다.이미 카일 정체를 감지한 절대악.흑장미 넝쿨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천계의 사슬에 묶인 개가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카일 천사장, 너 또한 신의 도구에 불과하다. 회랑 안에서 너의 힘은 지상의 것과 다를 바 없다.”조롱과 함께 회랑 벽면이 끓어오르며 화산처럼 분출됐다.수많은 흑염이 굶주린 짐승처럼 쏟아져 덮친 순간에도.카일은 피하지 않았다.뼛속까지 시린 회랑 바닥.성검 아라의 새벽을 깊숙이 꽂아 넣었다.고대 언어로 된 기도문을 웅장하게 읊는 모습.“신의 법칙에 따라, 심판의 문을 개방한다.”카일 발밑.칠흑 같은 연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죄의 무게를 태우고 영겁의 고통을 가두는 지옥 가장 끝.불못.차원의 회랑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흉물스러운 실체.드디어 드러내며 입을 벌렸다.비올렛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곧 그녀 끝을 알리는 긴박한 메시지였다.“내 힘이…. 내 증오가 사라지고 있어!”“신의 질서를 어지럽힌 대가, 그 끝은 오직 영원한 추락뿐이다.”카일이 검을 휘두르자, 회랑을 가득 메웠던 절대악 잔영들이 불못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마치 칠흑 바다를 단번에 가르는 빛의 파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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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붕괴하는 세계와 마지막 조각

끔찍한 차원 회랑의 종말은 참혹하고도 장엄했다.하늘을 뒤덮었던 흑운(黑雲)이 소용돌이치며 찢겨나갔다.그 틈새로 쏟아져 내리는 것은 구원의 빛이 아닌 파멸의 잔해들이었다.천계와 인간계 질서를 유지하던 축이 흔들리며, 차원의 회랑 또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악의 찌꺼기.모든 생명을 앗아갈 듯 매섭게 몰아쳤다.붕괴하는 파편들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내 몸을 파고들었다.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가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오직 나만이 감당해야 할 형벌.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짊어져야 했던 절대악을 봉인한 대가였다.태초의 어둠을 심연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기 위해.내 영혼 밑바닥까지 모두 긁어 태워야만 했다.나의 존재를 묶어두던 생명의 사슬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차원의 회랑은 더 이상 내 육체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나를 토해 버렸다.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묘한 이질감.곧 내 몸이 인간계를 벗어나고 있음을 잔인하게 증명하고 있었다.“마리안, 제발…!”피투성이가 된 전장 한가운데.절박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망설임도 없이 카일이 나를 안아 들었다.그의 등 뒤로 펼쳐진 눈부신 날개가 거칠게 펄럭였다.평소라면 신성한 기운을 뿜어내던 아름다운 날개.지금은 곳곳이 그을리고 깃털이 뽑혀 참혹한 몰골이었다.그는 날개로 찢겨나가는 회랑의 잔해를 막아내며 나를 보호했다.쏟아지는 시공간의 파편들이 그의 등을 무자비하게 강타할 때마다.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지만.나를 감싼 팔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언제나 따스했던 그의 품.내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그 익숙하고 따스한 온기.오늘은 왜 이토록 떨고 있는지….이유를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의 눈동자에는 내가 알던 카일이 없었다.무자비할 정도로 적을 심판하던 천사장의 냉철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그.그곳엔 오직 세상 전부와도 같은 연인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한 남자의 얼굴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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