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형수의 밤: Bab 31 - Bab 40

68 Bab

31. 기다리지 않는 척

그날 이후, 건우는 밤이 오기를 의식하게 됐다.낮에는 바빴다.경찰서에 들렀고, 회사 관련 자료를 다시 정리했고,형의 마지막 통화 기록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지금은 안 돼.”그 짧은 문장이 여전히 귓가에 남았다.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사건보다 다른 생각이 더 자주 떠올랐다.같은 얼굴인데 다른 눈빛.가까이 다가왔다가, 일부러 물러서던 몸짓.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잠깐 스친 그 만족스러운 표정.“서하.”그 이름을 부른 순간 이후로, 건우의 밤은 이전과 달라졌다.그는 스스로에게 변명했다.사건 때문이라고. 형의 죽음 때문이라고.그녀의 말 속에 혹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놓치지 않으려는 거라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기다리고 있었다.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었다.그날 밤, 그는 일부러 거실 불을 끄지 않았다.완전히 어두워지면, 무언가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소파에 앉아 사고 기록을 펼쳐놓았지만 눈은 글자를 읽고 있지 않았다.시계 초침 소리만 또렷했다.열한 시.열한 시 반.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건우는 무의식적으로 현관 쪽을 한 번 바라봤다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미쳤지.”혼잣말처럼 흘러나왔다.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지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그때 부엌 쪽에서 컵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건우는 고개를 들었다.하나였다.편한 차림에, 화장은 거의 지운 상태였다.낮의 얼굴. 조금 피곤해 보이는 눈.“안 자?”그녀가 물었다.“응.”“요즘 계속 늦게 자네.”그 말에 건우는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생각이 많아서.”하나는 그를 잠시 바라봤다.“사건?”“응.”거짓말은 아니었다.하지만 전부도 아니었다.하나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며 말했다.“너 요즘… 좀 이상해.”건우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내가?”“눈빛이.”그녀는 컵에 물을 따르며 고개를 기울였다.“계속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 같아.”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건우는 순간 숨이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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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심장의 반응

그녀가 “네가 부르면 나온다”고 말한 이후로, 그 문장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건우는 그게 허세인지, 농담인지,아니면 정말로 가능한 일인지 구분하지 못했다.다만 그 말이 이상하게 남아 있었다.사건 기록보다 오래.다음 날 낮, 그는 일부러 집에 일찍 들어왔다.하나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집은 조용했고, 그 고요가 오히려 더 신경을 건드렸다.건우는 소파에 앉았다가 일어났고, 창가에 섰다가 다시 돌아왔다.휴대폰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다.누굴 부른다는 건, 무언가를 인정하는 일과 비슷했다.자신이 원하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그 원하는 게 누구인지 묻는 것.그는 고개를 저었다.“미쳤어.”입 밖으로 내뱉었지만, 부정이 되지는 않았다.저녁이 깊어졌다.하나는 평소보다 늦게 돌아왔다.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건우는 본능처럼 고개를 들었다.“왔어.”그녀의 목소리는 피곤해 보였다.“응.”짧은 대화.일상적인 동선.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향하는 뒷모습.하나였다.건우는 한동안 그 등을 바라봤다.가끔은 헷갈렸다.어디까지가 하나고, 어디서부터가 서하인지.하지만 그 질문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같은 몸이었다.같은 기억을 공유하지 않을 뿐.저녁을 먹는 동안, 둘 사이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하나는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다 멈췄고, 건우는 그걸 알면서도 먼저 묻지 않았다.그 공기가 점점 눅눅해졌다.결국 하나가 입을 열었다.“너, 요즘 나한테 할 말 없지.”그 말이 뜻밖이어서 건우는 잠시 멈췄다.“왜 그렇게 생각해?”“눈이 그래.”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뭔가 말하려다 말고, 묻고 싶다가도 안 묻는 눈.”건우는 시선을 피했다.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대신 아주 낮게 덧붙였다.“혹시… 나한테 화난 거 있어?”그 질문이, 이상하게 가슴을 찔렀다.“아니.”“그럼.”그녀는 말을 고르다 멈췄다.“나를… 피하는 이유가 뭐야.”건우는 대답하지 못했다.이유는 하나가 아니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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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잠겨 있던 것

그날 밤은 이상하게 조용했다.불은 켜져 있었지만, 집 안은 텅 빈 느낌이었다.하나는 일찍 잠들었다.적어도 그렇게 보였다.건우는 거실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었다.신우의 금융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다.보험금 지급 내역.사고 이후 정리된 주식 이동.그리고 대표 취임 직후 만들어진 신규 법인 하나.이상한 건, 그 법인이 사고 한 달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왜 하필 그때지…”건우는 화면을 확대했다.신규 계좌 개설일.비공개 투자 계약.해외 송금.그중 하나가 눈에 걸렸다.해외 계좌로 빠져나간 거액의 송금.수취인은 코드로만 표시되어 있었다.계좌는 아직 살아 있었다.그 순간, 거실 공기가 묘하게 식었다.발소리는 없었다.문이 열리는 소리도 없었다.그냥, 분위기가 달라졌다.건우는 고개를 들었다.소파 옆에 기대 서 있는 그녀를 봤다.같은 얼굴. 하지만 눈이 또렷했다.“찾았네.”그녀가 먼저 말했다.건우는 숨을 천천히 고르며 노트북 화면을 닫지 않았다.“너도 알고 있었어?”그녀는 고개를 기울였다.“몰랐으면 여기 안 나왔지.”건우의 눈이 가늘어졌다.“뭘.”“그 계좌.”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마우스를 집어 들었다.자연스럽게 화면을 다시 열었다.“암호가 걸려 있지.”건우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넌 어떻게 알아.”그녀는 웃지 않았다.“기억은 공유 안 해도, 느낌은 남아.”그 말은 애매했지만, 거짓처럼 들리지 않았다.“그날.”그녀가 낮게 말했다.“그 사람 전화받았을 때, 걔는 옆에 있었어.”건우의 손이 멈췄다.“그날 밤?”“응.”“하나는 회사에 있었잖아.”“그래서 더 빨리 왔지.”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떨어졌다.건우의 숨이 얕아졌다.“그날 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전화 한 통 더 받았어.”그녀의 시선이 화면 위 숫자를 스쳤다.“그 계좌랑 연결된 사람.”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걔는 못 들은 척했어.”그녀가 덧붙였다.“근데 난 들었어.”정적이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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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건우는 USB를 손에 쥐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경비실 모니터 앞에서 복사한 CCTV 원본이었다.회사 복도, 대표실 앞, 엘리베이터 홀.날짜는 신우가 죽던 날.영상은 정지 화면처럼 느리게 흘렀다.시간 표시가 상단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19시 12분.복도 끝에서 누군가 걸어왔다.검은 정장 차림.걸음이 빠르지 않았고, 머리를 묶은 실루엣이 익숙했다.얼굴이 화면에 잡히는 순간, 건우의 숨이 멎었다.하나였다.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분명했다.영상 속 그녀는 대표실 앞에 멈췄다.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카드키였다.문이 열렸다.시간 표시가 19시 13분으로 넘어갔다.그 다음 장면은 19시 47분. 문이 다시 열렸다.같은 여자.같은 옷차림.하지만 걸음이 달랐다.들어갈 때보다 느렸고, 어깨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영상은 거기서 끝났다.건우는 한참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하나는 그 시간에 회사에 없다고 말했다.퇴근해서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고. 그렇다면 이건 무엇인가.거짓말?아니면기억의 공백?집으로 돌아오는 길,건우의 손은 운전대를 지나치게 세게 잡고 있었다.머릿속이 복잡했다.서하의 말.-그날 밤, 문 열어줬어.그리고 영상 속 모습.같은 얼굴이지만, 걸음이 달랐다.그는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하나는 어깨를 곧게 세운다.하지만, 서하는 중심이 조금 더 낮다.영상 속 19시 13분의 걸음은 낮의 것이 아니었다.집 문을 열었을 때, 하나는 거실에 서 있었다.불도 켜지지 않은 채, 창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왔어?”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다.건우는 대답 대신 USB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이게 뭐야?”“영상.”하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무슨 영상.”건우는 노트북을 켰다.파일을 실행했다.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복도.시간.그리고, 그녀.하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이게… 뭐야.”“그날.”건우의 목소리는 낮았다.“대표실 앞.”하나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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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감당할 기억

건우는 회사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USB 안에 담긴 영상은 이미 여러 번 확인했다.대표실 앞 복도. 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그 사이의 공백.유림은 대표가 직접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영상 속에서는 하나가 카드키를 사용했다.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아니면 둘 다.건우는 노트북을 닫았다.결론을 먼저 내릴 수는 없었다.지금 필요한 건 추측이 아니라 기록이었다.그는 건물 관리팀으로 향했다.“대표실 카드키 사용 로그, 그날 밤 전체 내역 볼 수 있을까요.”관리팀 직원은 잠시 망설였지만, 건 우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서버를 열어주었다.19시 13분.카드키 ID - 강하나.19시 46분.카드키 ID - 강하나.그 사이, 다른 출입 기록은 없었다.건우는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대표님 개인 카드키는요.”“그날 이후로 사용 기록 없습니다.”그 말이 묵직하게 떨어졌다.대표가 직접 열어줬다면, 자기 카드키를 썼어야 한다.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건우는 곧장 은행으로 향했다.트럭 기사 가족 계좌를 직접 조회할 수는 없었지만,형이 개설한 법인 계좌의 송금 기록은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문제는 ‘이 돈이 실제로 연결됐는가’였다.은행 담당자는 난색을 표했다.“타인 계좌는 확인이 어렵습니다.”“형사 입회 요청은 넣어놨습니다.”건우는 차분하게 말했다.“내일 오전까지 회신 올 겁니다.”거짓말은 아니었다.하지만 아직 확정도 아니었다.은행을 나서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서유림이었다.“오늘 관리팀 다녀가셨다면서요.”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속은 알 수 없었다.“네.”“대표님 일은 경찰이 수사 중입니다.”“그렇죠.”건우는 길을 건너며 말했다.“그래도 확인할 건 해야죠.”짧은 정적.“대표님이 그날 밤 혼자 계셨던 건 확실합니다.”그녀가 덧붙였다.건우는 멈췄다.“확실합니까.”“CCTV에 다른 출입 기록 없으니까요.”그 말은 절반만 진실이었다.출입 기록은 하나뿐이었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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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연결되는 선

아침은 맑았지만, 건우의 머릿속은 흐렸다.밤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서하가 남기고 간 말이 계속 맴돌았다.보험.자금.죽지 않았다는 게 문제.그는 일부러 집 안을 조용히 빠져나왔다.하나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지금은 확인이 먼저였기 때문이다.은행에서 전화가 온 건 오전 열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요청하신 계좌 관련 회신입니다.”건우는 숨을 죽였다.“사고 당일 이후, 법인 계좌에서 이체된 금액 일부가 트럭 기사 배우자 계좌로 들어간 사실 확인됐습니다.”잠시 정적.“날짜는요?”“대표 사망 하루 전입니다.”건우의 손끝이 차가워졌다.“이체 명의는요?”“법인 공용 결재 라인입니다. 승인자는 대표, 그리고”담당자가 말을 멈췄다.“그리고요.”“전략기획팀 차장, 서유림.”통화가 끝난 뒤에도 건우는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대표의 결재.차장의 승인.사망 하루 전.트럭 기사 가족 계좌.사고는 우연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짙어졌다.그는 곧장 회사로 향했다.전략기획팀 사무실은 예상보다 조용했다.유림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오실 줄 알았습니다.”건우는 맞은편에 섰다.“대표 사망 하루 전, 트럭 기사 가족에게 송금된 돈.”서유림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확인하셨군요.”“왜 보냈습니까.”“합의금이었습니다.”담담한 대답이었다.“사고가 커지면 회사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요.”건우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그 사고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면요.”유림은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무슨 의미죠.”“형이 그 돈을 알고 있었습니까.”이번엔 대답이 조금 느렸다.“대표님은 마지막까지 회사 자금 상황을 걱정하셨습니다.”돌려 말하는 방식.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밤, 대표실에서 무슨 얘기했습니까.”서유림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그건 경찰 조사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저한테는 아직 안 했죠.”짧은 정적.“대표님은 사고 관련 서류를 정리하겠다고 하셨습니다.”“누가 정리하자고 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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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서류가 움직이는 밤

서류를 넣은 우편함 뚜껑이 닫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건조했다.금속이 맞부딪히는 짧은 소리.그 안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실감나지 않았다.건우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돌아서면 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끝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대전화가 진동했다.낯선 번호였다.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다.“윤건우 씨죠.”낮은 남자 목소리.“누구십니까.”“회사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습니다. 전략기획 쪽.”건우는 발걸음을 멈췄다.전략기획.형이 죽기 직전까지 붙잡고 있던 팀.“무슨 일이죠.”“잠깐 뵐 수 있을까요.”직설적인 요청이었다.“지금은 어렵습니다.”“대표님 사고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대표님.그 단어가 여전히 낯설게 들렸다.형은 늘 형이었지, 대표가 아니었다.“어디입니까.”건우는 결국 물었다.약속 장소는 회사 근처가 아니었다.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카페.조명이 어두웠고, 사람은 많지 않았다.건우가 들어서자 창가 쪽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서른 후반쯤, 말수가 적어 보이는 얼굴.“늦어서 죄송합니다.”형식적인 인사.건우는 앉았다.“말씀하시죠.”남자는 주변을 한번 훑었다.“대표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회의가 있었습니다.”“무슨 회의죠.”“사고 건.”건우의 심장이 아주 천천히 조여왔다.“사고를 다시 보자고 하셨습니다.”“왜요.”“보험.”그 단어가 또 나왔다.건우는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대표님이 보험 구조를 이상하게 보셨습니다.”“어떻게.”“사고 직전, 보장 항목이 일부 변경됐습니다.”건우의 숨이 묵직해졌다.“누가 변경했습니까.”남자는 시선을 피했다.“서류상으로는… 본인 동의입니다.”건우는 웃지 않았다.“형이 직접 했다고요.”“네.”짧은 정적.“하지만 그날 회의에서…”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대표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뭐라고.”“본인은 그런 동의를 한 적이 없다고.”공기가 멈췄다.집으로 돌아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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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틀어진 계산

아침 공기가 이상하게 맑았다.밤새 머릿속을 휘젓던 생각들이 한 번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창밖 하늘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파랬다. 그 대비가 오히려 더 불쾌했다.건우는 휴대전화를 한 번 더 확인했다.어젯밤 통화 기록. 전략기획팀 남자. 그리고 ‘차민석’이라는 이름.형의 메모에 남아 있던 자신의 이름.보험 변경.서버 초기화.하나의 사건처럼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선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 선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방향은 보이기 시작했다.식탁 위에는 이미 커피가 내려져 있었다.하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 뒷모습만 보였지만, 어깨가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일찍 일어났네.”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평온이 애써 만든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잠이 좀 얕았어.”건우는 의자에 앉으며 답했다. 시선은 컵 안에 고여 있는 검은 액체에 머물렀다.“어제 어디 갔다 왔어.”질문은 가볍게 던졌지만,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회사 쪽 사람 만났어.”하나는 고개를 아주 천천히 돌렸다. 눈동자가 잠깐 멈췄다.“왜.”“형이 사고 재조사하려고 했다는 얘기 들었어.”공기가 묘하게 멈췄다.하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짧은 정적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그걸 왜 이제야.”“형이 말 안 했겠지.”건우는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보험 구조를 다시 보려고 했대.”그 단어가 떨어지자, 하나의 손가락이 컵 가장자리를 더 세게 눌렀다.“보험?”“사고 일주일 전에 보장 항목이 바뀌었어.”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낯설었다. 평소라면 반박하거나, 논리적으로 짚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저 조용했다.“본인이 동의한 걸로 되어 있었대.”건우의 말이 이어졌다.“형은 아니라 했고.”하나는 눈을 깜박였다.“그래서.”“그다음 날 죽었어.”그 말이 식탁 위에 떨어졌다. 누구도 주워 담지 못하는 말.하나는 고개를 숙였다.“건우.”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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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계산의 방향

형의 음성 파일을 몇 번이고 다시 들은 뒤에도, 건우의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녹음 속 형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긴장이 섞여 있었고, 무엇보다 ‘건우가 살아남았어’라는 문장은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어떤 계산의 전환점처럼 들렸다. 마치 누군가의 계획에서 어긋난 변수 하나를 지적하는 듯한 어조였다.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하 역시 다그치지 않았다. 오늘의 서하는 유혹하지도, 자극하지도 않았다. 대신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이상하게도 차갑기보다 또렷했다.“형이 그 말을 한 건,”건우가 낮게 입을 열었다.“누군가한테 들려주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있어.”서하는 고개를 기울였다. “일부러 녹음했다는 뜻이야?”“모르겠어. 하지만 형은 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문제’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사고 이후 1년, 그리고 형의 죽음 이후 몇 달. 그 사이에 그는 너무 많은 것을 건너뛰었고, 너무 많은 것을 뒤늦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보험 구조가 바뀌고, 내가 사망했을 경우 지급액이 높았고, 살아남으면 줄어들고.”건우는 차분하게 정리했다.“그 구조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지.”“지분이 한쪽으로 모이는 사람.”서하가 바로 받았다.“맞아. 내가 죽으면, 형은 회사 지분을 더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어. 그런데 내가 살아남았지.”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럼 누군가는 손해를 본 거야. 형이 아니라, 형을 중심으로 계산하던 누군가가.”서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늘의 그녀는 불필요한 농담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덧붙였다.“그래서 형은 보험 변경을 문제 삼았고, 사고를 재조사하려 했고… 그 다음 날 죽었어.”문장은 길지 않았지만, 흐름은 분명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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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시작된 감시

부사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형의 음성 파일 속에 섞여 있던 그 짧은 조각은 단순한 배경 소음이 아니었다. 잡음 사이에서 또렷하게 걸려 나온 한 단어는, 지금까지 흩어져 있던 선들을 하나의 중심으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차민석이 실무를 담당했다면, 구조를 승인한 사람은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건우는 노트북을 닫지 않은 채 한참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서가 깜박이는 빈 문서 위에 아무 글자도 적히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형은 보험 구조를 문제 삼았고, 외부 투자 건을 막으려 했으며, 사고 재조사를 언급했다. 그 직후 서버 일부가 초기화되었고, 그 다음 날 죽었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연결점이었다.아침이 밝았을 때도 그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문 밖의 빛이 조금씩 방 안을 채웠고, 새벽과 아침의 경계가 흐려질 즈음에야 몸을 일으켰다. 거실로 나가자 하나는 이미 깨어 있었다. 평소처럼 정리된 식탁과 정갈한 컵, 그러나 그 위에 놓인 손은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새 안 잤어?”그녀의 물음은 잔잔했지만, 단순한 안부는 아니었다. 건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형 음성 파일에서 단서가 더 나왔어.”하나는 손을 멈췄다.“어떤 단서.”“부사장.”그 한 단어에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반응은 크지 않았지만, 건우의 눈에는 분명하게 들어왔다.“회사 부사장?”“응. 형이 사고 재조사 얘기를 꺼낼 때, 그 사람이 같이 있었던 것 같아.”하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잠시 후, 낮게 말했다.“건우, 이건… 네가 혼자 감당할 문제가 아니야.”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건우는 이미 혼자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동행이 누구냐는 것이었다.“혼자 감당하겠다는 게 아니야.”그는 차분하게 답했다.“공식적으로 들어갈 거야.”“공식적으로?”“검사 재응시 신청서, 이미 넣었어.”하나는 그 말을 듣고도 바로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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