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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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첫사랑의 침입

“…네. 우린 이미 서로의 사람이었죠.”둘 사이의 대화는 더 이상 확인하거나 약속하거나 맹세하지 않았다.그저 있는 그대로 서로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으로 충분했다.그날 밤. 이현은 유리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댔다. 그녀의 체온, 그녀의 숨결. 그게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서약이었다.며칠 후. 유리는 자신의 주방에서 새로운 메뉴 개발에 몰두하다가 문득 이현이 내민 작은 반지를 받았다.“…이현 씨. 저… 이런 거 필요 없어요.”유리는 머리를 흔들었지만 이현은 부드럽게 그녀의 손가락에 그 반지를 끼워주었다.“필요 없어요. 근데 그래도 주고 싶어요. 유리 씨 손가락에 제 마음을 하나쯤 걸고 싶었거든요.”그녀는 작게 웃었다.“…오늘 요리는 이현 씨가 하셔야겠네요.”그 말에 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엌에 들어섰다. 그의 칼질은 여전히 서툴렀고 간은 늘 유리에게 혼났지만그날 따라 두 사람의 부엌 안 공기는 세상 어느 레스토랑보다 따뜻하고 편안했다.유리는 그 순간 알았다.이현이라는 사람은 그녀에게 요리보다 더 따뜻한 집이었다는 걸.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관계를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묶고 싶어 했지만둘은 서로의 세계 안에서 결혼식 없이도 이미 누구보다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였다.그 밤. 둘은 작은 아파트 거실 바닥에 앉아 따뜻한 술을 나눴다.말 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조용히 술잔을 부딪혔다.그 조용한 소리만으로도 둘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서약보다 더 확실했다.그들은 더 이상세상에 증명할 것도 싸워 이길 것도 없었다.그냥 서로의 세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같은 온도로 같은 호흡으로 살아가고 있었다.그녀의 등장은, 생각보다 더 빠르고 강렬하게 두 사람의 세계를 부쉈다제주도의 겨울은 서울과는 다른 속도로 차갑고 느릿하게 사람을 삼켰다.이현과 유리의 여행은 오랜만에 숨을 돌리는 듯 평온했다.누구도 둘의 세계에 침입하지 않았고, 누구도 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그날까지만 해도 유리는 그렇게 믿었다.컨퍼런스 첫날. 유리와 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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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명백한 선언

다음 날. 유리는 호텔 커피숍에서 윤서를 우연처럼 마주쳤다.아니, 그녀가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누가 봐도 명확했다.“유리 씨. 오빠 오늘 나랑 점심 약속했는데 혹시 모르셨나 봐요?”윤서의 말은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태연했다. 유리는 숨이 막혔다.“이현 씨가 오늘 저랑 약속 있으시다고요?”윤서는 유리를 가볍게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응. 그래도 유리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빠가 갈등하시려나?”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그 미소 속엔 명백한 선언이 담겨 있었다.‘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나는 당신을 밀어낼 준비가 되어 있어.’유리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시선과 미소가 잔인하게 명확했다.그녀는 유리의 경계가 아니라 이현의 과거를 부수려는 사람이었다.그걸 유리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그녀의 등장은 유리와 이현의 세계를 생각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하게 부수고 있었다.서울의 겨울은 예상보다 더 빨리 유리의 온도를 앗아갔다.제주도에서 돌아온 이후,유리는 이현의 표정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어색함과 공백을 읽어냈다.그가 자신과 마주앉아 있어도 그의 시선은 어딘가 비어 있었고,그의 웃음은 어딘가 늦고, 건조했다.그 빈 틈 사이로 윤서는 아주 빠르게 그들의 틈을 파고들었다.그날. 유리는 이현과 함께 회사 근처 레스토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조용했던 식탁. 둘만의 시간이었어야 했다.그러나 윤서는 예고도 없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오빠. 여기 있었네.”그녀의 목소리는 자연스러웠고 그녀의 발걸음은 너무도 당당했다.유리는 이현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정확히 보았다.윤서는 아무렇지 않게 유리 옆 빈자리에 앉았고그녀의 손끝은 자연스럽게 이현의 넥타이를 매만졌다.“넥타이 삐뚤었네요, 오빠. 유리 씨는 이런 거 잘 안 챙기나 봐요?”그녀의 손끝은 이현의 목덜미를의도적으로 오래 스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유리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그녀의 손이 이현의 넥타이를 풀고 그의 넥라인을 슬쩍 훑을 때, 유리는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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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스스로의 확인서

그리고, 그날 오후.유리는 이현과 함께 본사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그녀가 다시 나타난 걸 봤다.하윤서.오늘은 더 정제된 셋업 수트에 짧은 머리를 반쯤 묶은 채당당히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왔다.“오빠. 회의 끝났어요?”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유리의 앞을 가로질러 이현 앞에 섰다.“우리… 약속 있었잖아요. 점심은 유리 씨가랑 하고 커피는 나랑이었죠?”그녀는 이현의 팔을 자연스럽게 잡았다.유리는 그 순간 숨이 목에 걸리는 걸 느꼈다.“윤서 씨.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유리는 조용히 물었지만 그 안엔 예의가 아니라 분노가 서려 있었다.윤서는 그제야 유리를 돌아보며 가볍게 웃었다.“아. 유리 씨 몰랐어요? 오빠가 아침에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고 해서이따가 우리 둘이… 좀 긴 얘기할 일 있어서요.”그녀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현의 넥타이 끝을 가볍게 쥐고 매무새를 정리했다.그 동작이 그렇게도 익숙하게 보이는 이유가 유리는 차라리 모르고 싶었다.이현은 그 순간에도 윤서의 손을 치우지 않았다.그의 침묵. 그의 무반응. 그의 무표정이 유리의 가슴을 서서히 부쉈다.“이현 씨.”유리는 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지금 이 상황,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세요?”그는 뭔가 말하려다 끝내 입을 다물었다.그 침묵이 유리에겐 모든 대답보다 더 잔인했다.윤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유리 씨. 너무 민감하게 굴지 마요. 이현 오빠는 예전부터 이런 거 크게 신경 안 썼어요.”그녀는 조용히 이현의 손목을 가볍게 스치며 덧붙였다.“그치, 오빠?”그 말에 이현은 그녀를 말리지도 유리를 붙잡지도 않았다.그날 밤. 유리는 호텔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그녀는 혼자 택시를 탔고 익숙하지 않은 강북의 어느 오래된 골목에 내렸다.그곳엔 아무도 그녀를 모르는 익명의 공간과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공기가 있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 이현의 번호를 눌렀다가끄기를 다섯 번쯤 반복했다.“…서이현 씨. 나는… 당신의 침묵이 당신의 마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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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결정적 단호함

그녀의 마지막 미소는 아름답고도 비극적이었다.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발로 그 사람의 세계에서 걸어나왔다.그 이후, 유리는 가게로 돌아가지 않았다.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낯선 바닷가 마을로 혼자 향했다.그곳에서 그녀는 다시 요리를 했다.사람 없는 식탁. 아무 대답 없는 공기.그녀는 그 모든 것과 함께 조용히 자신의 감정을 덮어버리고 있었다.그녀의 손끝에서 나오는 요리는 예전과 같았지만 그 속의 온도는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그녀는 이현이 남긴 상처만을 남긴 채 그 사람 없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완전히 사라졌다.바람은 차갑고 무심했다.서울의 겨울은 어느새 유리의 온도보다 더 빠르게 그녀의 가슴 속 모든 온기를 앗아가고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이현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그가 보낸 문자에도 그녀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유리 씨, 나 잠깐 볼 수 있을까요?’그 메시지는 그녀의 핸드폰 안에서 읽음 표시조차 되지 않은 채 묻혀 있었다.이현은 그녀가 어디 있는지 찾아낼 수 있었다.그러나 유리는 더 이상 그가 찾아올 이유를 남겨두지 않았다.며칠 후, 이현은 그녀가 혼자 있다는 곳을 찾았다.바닷가 근처, 작고 오래된 목조 게스트하우스.그곳엔 어느 누구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고 그녀 역시 누구도 필요하지 않았다.그녀는 손수 만든 작은 식탁 위에 자신만의 요리를 올려놓고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 슬픔도, 분노도 없었다.단지 비어 있었다.그녀의 세계는 더 이상 이현이 알던 조유리의 것이 아니었다.그는 그녀 앞에 서서 무겁게 숨을 삼켰다.“…유리 씨.”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동안 연락 안 해서 미안해요.”그의 목소리는 낮고 흔들렸다.그러나 유리는 그 말에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서이현 씨. 여기까지 뭐하러 오셨어요?”그녀의 말투는 낮고 담담했다.그것이 이현의 가슴을 더 깊게 찔렀다.“그냥… 얘기 좀…”그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저… 이현 씨랑 얘기하고 싶은 마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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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뒤늦은 체념

그 시각. 서울. 이현은 한동안 윤서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기계처럼 그녀가 건네는 술잔을 받았고,그녀가 내민 약속을 무의식적으로 수락했다.그러나 그 모든 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에 윤서는 없었다.윤서의 웃음. 윤서의 손끝. 윤서의 향기조차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감정도 남기지 않았다.그는 뒤늦게 깨달았다.유리가 사라진 이 세상이 이토록 공허하고 숨막히는 공간이었음을.그는 윤서의 말 한 마디에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고개를 돌렸다.윤서는 그의 이런 변화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오빠. 유리 씨 없는 세상이 그렇게 싫어요?”그녀의 질문에 이현은 작게 웃었다.“…몰랐는데 알아버렸어요.”그의 목소리는 너무 늦게 깨달은 사람의 체념으로 가득했다.“유리 씨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그의 고백에 윤서는 처음으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현의 곁을 그렇게 오래 원했지만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그가 바라보는 곳은 언제나 자신이 아니라 그 여자였다는 걸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밤이 깊어지고. 이현은 유리의 번호를 백 번도 넘게 눌렀다.그러나 한 번도 걸 수 없었다.그녀가 자신에게 남긴 침묵과 거리.그것이 이현의 발끝에 무겁고 차갑게 감겨 있었다.그는 이제야 스스로를 깨달았다.조유리 없는 자신이 얼마나 무의미한 사람인지.그의 모든 하루가 모래처럼 흩어지고 있었다.그리고 그것은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서울의 겨울은 더 깊고 무거웠다.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바쁘게 반짝였지만, 그 속에서 이현의 그림자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그의 세상에는 더 이상 조유리도, 그녀가 남긴 온기도 없었다.그 자리를 대신해 윤서는 여전히 그의 곁에 남아 있었다.그녀는 버티고 있었다. 그녀답지 않게 초라하고, 그녀답지 않게 비굴하게 그의 옆에 남아 있었다.그녀는 여전히 웃었다.그녀는 여전히 그의 술잔을 채웠다.그녀는 여전히 그의 곁에서 그의 숨소리조차 놓치지 않으려 했다.그러나 이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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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공허한 독백

윤서조차 사라진 그의 곁.그때서야 이현은 스스로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음을 알아버렸다.이현은 혼자가 되었다.조유리도, 하윤서도 이젠 그의 세계에 아무도 없었다.그의 손끝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그의 세계엔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그날 밤, 이현은 처음으로 조용한 자신의 집 식탁에 앉아하염없이 식지 않은 커피를 바라보았다.식지 않아도 맛도 향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커피.그것이 그의 지금이었다.서울의 겨울은 이현의 폐부를 찌를 만큼 차갑고 무심하게 그를 혼자 두었다.그는 그 차가움을 더 이상 밀어내지도 못하고 그저 견뎌내는 척 버티고만 있었다.유리 없는 세상에서 그는 아무 의미도 없는 텅 빈 사람으로 남았다.겨울의 바닷가 마을은 유리가 바랐던 것처럼 조용했고,누구도 그녀를 찾지 않았고,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그녀는 그 침묵 속에서 마치 자신이 모든 걸 지워냈다고 믿으려 애썼다.작은 부엌. 작은 식탁. 작은 창문.그 모든 것이 유리의 세계였다.아무런 소음도, 아무런 방해도 없이 그녀는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요리했고,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스스로를 지워내려 했다.그러나 그 고요가 그녀에게 평온을 주지는 않았다.처음에는 이현의 부재가 숨을 쉬게 해줄 것 같았다.그러나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자 그 부재는 그녀의 폐부까지 갉아먹는 독이 되었다.유리는 자신의 손끝에서 자꾸만 흘러나오는 그 사람의 흔적을 지우려 더 세게, 더 빠르게 칼질을 했다.그가 좋아하던 소스는 더 이상 그녀의 입안에서도 아무런 맛도 향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녀의 부엌은 냉정하고 차가운 공간으로 변해갔다.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유리야, 오랜만이다. 호텔 페어에서 셰프 초청 강연 리스트 아직 네 이름 올라가 있어. 네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더라.]유리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서울. 그 이름만으로도 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다.“…취소해달라고 해. 내가 거기 얼굴 비출 일 없어.”그러나 상대는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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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서늘한 안도

그녀는 행사의 초청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담담하게 절차를 마쳤다.그것만으로 충분했다.그녀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또 말했다.그러나 서울의 거리는 그녀가 스스로를 속이는 걸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그날 저녁. 우연히. 정말 우연히. 유리는 그 사람과 마주쳤다.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 거리.그녀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는 그녀가 원하지 않아도 멀리서도 너무도 선명했다.서이현.그는 여전히 깔끔하고, 여전히 냉정해 보였지만 그의 눈동자는 어디에도 닿지 않는 공허한 빛으로 바래 있었다.유리는 숨을 삼켰다.그는 유리를 알아봤다. 그녀도 그를 봤다.서로 피할 수 없는 낮고 차가운 시선.둘 사이엔 말 한 마디 없어도 모든 것이 숨소리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이현이 먼저 움직였다.“…유리 씨.”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럽고,그러나 여전히 그녀를 붙잡고 싶어 하는 미련이 묻어 있었다.유리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지나가세요, 서이현 씨.”그녀의 목소리는 놀랄 만큼 담담했지만그 속엔 여전히 애써 눌러 담은 감정이 억눌려 있었다.이현은 그녀의 앞에 서려 했지만 유리는 한 걸음 더 물러났다.“그날과 지금. 달라진 거 없어요.”그녀의 눈동자는 확고했고, 냉정했고, 그 어떤 틈도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당신이 아직도 날 그렇게 쉽게 보고 있다는 거, 그게 더 웃겨요.”그녀의 말은 조용했지만 이현의 심장을 쾅 하고 두들겼다.그녀는 더 이상 그를 기다리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이현은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붙잡을 자격조차 없었다.그녀는 그렇게 그를 뒤로하고 걸어갔다.그녀의 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적어도 겉으로는 그러나 그녀의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그날 밤, 이현은 그녀의 뒷모습을 처음으로 붙잡지 못했다.그는 그녀가 자신 앞을 그렇게 차갑게 스쳐 지나가는 걸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그것이 지금의 서이현이었다.둘 사이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상처들이 붉은 피처럼 응고되어 있었다.그리고 그 상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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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일방적 통보

그것이 사랑인지 미련인지 죄책감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그저 그녀가 없는 자신이 숨이 막힐 만큼 무의미하다는 것만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들은 같은 도시 안에서 서로를 부정하려 했고, 그러나 서로를 더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서로의 부재가 서로의 일상을 조용히 잠식하고 있었다.그들의 세계는 다시 서서히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조용한 골목 안 작은 식당을 열었다.간판도 없는, 소개도 없는, 찾는 사람도 없는 가게.그녀는 누구도 자신을 찾지 않는 공간을 원했고 그 공간 속에서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그러나 그녀의 손끝은 여전히 서이현이라는 남자의 흔적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녀는 부인했다. 나는 괜찮다고.나는 그 사람 없어도 요리할 수 있다고.그러나 칼끝에서 자꾸만 올라오는 그의 그림자 같은 기억들은 그녀가 만든 소스마저 먹먹하고 텁텁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다시 무미건조한 요리를 하며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그날도 그녀는 혼자 빈 식탁 위에 자신이 만든 음식을 올려두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맛이 없었다. 온도가 없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녀의 일상은 조용하고 평온해 보였지만 내면은 점점 서이현이라는 사람 없는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밤마다 핸드폰 속 읽지 않은 메시지.그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짧고 낮은 문장.[유리 씨, 나 잠깐 볼 수 있을까요?]그녀는 그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그러나 읽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지운 게 아니란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수십 번도 넘게 그 메시지를 눌렀다가 끄기를 반복했다.그러나 끝내 읽음 표시조차 남기지 않았다.그녀는 그렇게 자신이 강해졌다고 믿고 싶었다.그러나 그 믿음조차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이었다.그녀의 바람과 달리 서울의 거리는 자꾸만 그녀와 이현의 세계를 겹치게 했다.이현 역시 그녀의 가게가 있다는 소식을익명처럼 듣게 되었고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가게 앞까지 수십 번을 찾아갔다.그러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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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냉정한 경계선

그 남자의 이름이 이 도시 어디에서나 그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그녀는 가게 문을 닫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그러나 이현은 그녀의 가게 앞에서 그녀보다 먼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그녀가 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녀의 가게 앞을 기다렸다.그는 이번만큼은 도망치지 않으려 했다.유리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서이현 씨.”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낮았고, 경계심으로 가득했다.“왜 여기 있어요?”이현은 유리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보고 싶었어요.”그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 안엔 이전과 다른 솔직함이 묻어 있었다.유리는 숨을 삼켰다.“…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그녀의 말투는 차갑게 내려앉았지만그 속에서도 작고 미세한 흔들림이 섞여 있었다.이현은 그 흔들림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그녀 앞에서 서 있었다.“…유리 씨. 그때처럼… 그냥 보내지 않을 거예요.”그의 말은 조용했지만 확고했다.유리는 고개를 돌렸다.“…내가 원하지 않아요, 서이현 씨.”그녀의 발끝은 그를 향해 서 있었지만 그녀의 몸은 도망치고 싶어 했다.그녀는 그의 존재가 다시 자신을 흔들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현은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그래도 기다릴 거예요.”그의 말은 과거의 그 어떤 미련보다더 진하고, 더 절박하게 들렸다.그녀는 그 말에 숨이 막혔다.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피하지 못한 채 정면으로 첫 번째 충돌을 맞이하고 있었다.그 밤, 이현과 유리는 서로를 부정하려 했지만그 어떤 부정도 더 이상 둘 사이의 상처를 덮어줄 수 없었다.그들의 공백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았다.서울의 겨울밤은 무심했다.거리의 불빛은 여전히 바쁘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속을 지나갔다.그러나 그 틈에서 서이현과 조유리는 누구보다 낯설고 투명하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유리는 이현의 변화가 느껴졌다.그가 과거처럼 피하지 않고 거짓된 웃음으로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다.그는 그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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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억지스러운 냉정

그 밤, 그들의 거리는 단 한 걸음도 좁혀지지 않았다.그러나 두 사람의 부정 아래 피할 수 없는 감정들이 이미 터질 듯 부풀어오르고 있었다.유리는 그날 이후 더 세게 더 완고하게 자신의 공간을 닫았다.그녀의 작은 식당은 낯선 사람들의 발길을 단호히 거절했고,그녀의 부엌 안엔 어떤 온기도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았다.그녀는 스스로를 지키려 했다. 아니,스스로를 지키는 척 애쓰고 있었다.그러나 서이현의 존재는 그녀가 아무리 부정해도 그녀의 세계에 균열을 내고 있었다.이현은 그녀의 식당을 계속 찾아갔다.입구에서 멀리 바라보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그녀는 그 사실을 모른 척했지만 모를 수 없었다.그의 그림자는 가게 문틈 사이로 슬며시 스며들었고,그의 존재는 그녀의 무심한 요리 속에도 조용히 녹아들었다.그러던 어느 날. 작은 골목에서 유리의 가게 앞 이현과 그녀가 뜻밖의 자리에서 마주쳤다.그녀는 피하려 했다.그런데 그날만큼은 이현도 피하지 않았다.그의 손끝이 처음으로 그녀의 팔목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그녀는 그 손길에 전율하듯 몸을 떨었다.“…유리 씨. 이렇게까지… 나를 밀어내야 해요?”그의 목소리는 무너져 있었고, 그러나 그 속엔 과거의 이현답지 않게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그래요. 밀어낼 거예요.”유리는 그의 손을 거칠게 떨쳐냈다.“그때… 서이현 씨가 내게 한 것처럼.”그녀의 말은 날카롭게 그의 심장에 박혔다.그녀의 눈은 울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그러나 그때였다.가게 앞에서 그녀의 고객이 이현과 유리 사이의 기묘한 긴장을 보고 있었다.고객은 익숙한 목소리로 이현을 불렀다.“S그룹 서회장님 아니세요?”순식간에 주변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유리는 그 상황에 숨이 막혔다.그녀가 피하려 했던 것들, 잊으려 했던 세계가다시 그녀의 목 앞에 칼처럼 드리워졌다.이현은 그 시선 앞에서도 피하지 않았다.“…유리 씨. 이런 식으로 내가 당신 세계에 불쑥 끼어든 거, 미안해요.”그의 말은 낮고, 담담했지만 확고했다.“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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