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틈으로 스며든 새벽빛이 눈꺼풀 위로 드리웠다.엘라엔은 뻐근한 목을 매만지며 상체를 일으켰다. 책상 위에는 어젯밤 검토하다 잠든 자재 장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니, 그대로가 아니었다.“……!”엘라엔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적어 내려갔던 잉크 자국 옆으로 정갈하고 서늘한 필체가 덧붙여져 있었다.장부의 오차를 수정하고 다음 공정의 우선순위를 번호까지 매겨 정리해 둔 흔적.제국에서 이런 완벽한 질서의 필체를 가진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르세인.엘라엔은 소름이 돋는 팔을 감싸안았다. 그는 어젯밤 이곳에 왔다. 그리고 잠든 자신을 깨우지 않고 어둠 속에서 이 장부 위를 훑었을 것이다. 아니, 장부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무방비한 모습까지도 이 장부의 숫자처럼 건조하게 재단했겠지.‘질서 운운하더니 이렇게 무례할 수가 없어.’엘라엔은 장부를 탁, 소리가 나도록 덮어버렸다.‘왜 깨우지 않았지?’단순히 업무의 효율을 위해서라면 비효율적으로 직접 펜을 들 이유가 없었다. 바델을 시켜 자신을 깨워 집무실로 압송하는 것이 르세인다운 방식이었다.엘라엔은 르세인이 이곳에 머물며 자신을 내려다보았을 그 침묵의 시간을 상상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 계산이 뒤엉켜 나뒹굴었다. ***그날 오전, 요새 현장 지휘소.르세인은 평소보다 더욱 짙은 위압감을 뿜어내며 기사들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어젯밤의 동요를 완벽하게 지워버리려는 듯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고 지시는 자비가 없었다.“공정 3구역의 지반 보강이 미흡합니다. 재시공하도록.”“전하, 그 정도는 설계상 허용 범위 내….”“내 질서에 허용 범위란 없습니다.”기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러났다.르세인은 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어젯밤, 서재의 희미한 촛불 아래에서 보았던 그 평온한 숨소리가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하얀 목덜미와 잔향까지도….자신의 원칙을 깨고 직접 별관으로 향했던 그 비합리적인 행위는 스스로를 모욕하고 있었다.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Last Updated : 2026-07-0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