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끊어진 실은 다시 얽힌다: Capítulo 21 - Capítulo 30

30 Capítulos

제21화

며칠 뒤, 아림이 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가 노크하고 들어왔다.“원장님, 밖에 권 선생님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어요. 진료 예약은 하지 않았고, 사적인 방문이라고 하시는데요.”일정표를 넘기던 아림이 고개를 들었다.“권 선생님?”“네. 지난번 옥상 일로 원장님 도와주셨던 분 같아요. 권하균 회장님 손자라고 하셨어요.”‘권창현? 무슨 일로 왔지?’“들어오시라고 해 주세요.”문이 열리고, 회색 캐주얼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살짝 웨이브를 넣은 머리, 얼굴엔 심드렁한 웃음기까지.틀림없는 창현이었다.“최아림 씨.”창현은 들어오자마자 웃었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여차하면 수를 쓸 것 같은 여우상이었다.“할아버지가 직접 찾아가 고맙다는 말씀 꼭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최아림 씨가 치료해 준 뒤로 잠도 훨씬 잘 주무시고, 낮에도 괜한 걱정이 줄었다고요.”아림은 예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회장님이 협조를 잘해 주셔서 그래요. 회복이 빠른 건 회장님 스스로 하신 노력 덕분입니다.”“겸손은 접어 두시죠. 할아버지가 집에서 매일 최아림 씨 이야기만 하십니다. 실력도 좋고 사람도 괜찮다고, 꼭 대신 인사드리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창현은 핸드폰을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근처 양궁장 하나 예약해 뒀습니다. 여기 바로 옆 골목이라 멀지도 않아요. 최아림 씨, 잠깐 시간 내 주시겠습니까?”아림은 잠시 망설였다.창현이 바로 덧붙였다.“그냥 기분 전환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들은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라던데, 적당히 쉬어 가는 것도 일의 연장이잖아요.”그래도 아림이 바로 대답하지 않자, 창현은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저희 할아버지의 말씀 그대로 전해 드리자면, ‘모셔 오지 못하면 집에 들어올 생각 하지 마라’였습니다.”아림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회장님이 정말 그러셨어요?”“제가 거짓말해서 뭐 하게요?”창현은 한 손을 펼쳐 세워 보이며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어 자기 말이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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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아림의 목소리는 서늘하고 담담했다. 그런데 창현은 그 목소리마저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창현의 시선이 잠시 아림에게 머물렀다. 눈빛이 갈수록 뜨거워졌다.아림은 이목구비가 정교했다. 특히 무언가에 몰두할 때면, 살짝 좁혀진 미간과 꾹 다문 입매에서 서늘하고도 진지한, 남다른 매력이 배어났다.창현은 지금껏 제멋대로 살아왔고, 수없이 많은 사람을 겪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림에게서 느껴지는 침착함은 지금까지 알던 사람들에게서는 전혀 발견한 적이 없었다.창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그리고 우리 이제 지인이잖아요. 계속 ‘최아림 씨’는 너무 남 같지 않아요? 앞으론 제가...”창현이 살짝 몸을 기울였다. 유리창을 비껴든 햇살이 웨이브 진 머리끝과 잘생긴 얼굴, 깊어진 눈매 위로 비스듬히 내려앉았다.그리고 평소 장난기 많던 여우 같은 눈이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더 깊어 보였다.“권 대표님.”아림은 잠깐 뜸을 들였다가, 짐짓 못 알아들은 척 활을 걸이에 되걸며 말을 잘랐다. “지난번 일은 감사했어요. 다만, 저는 이혼했고, 네 살짜리 딸도 있어요.”아림은 로아와 조용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복잡한 감정 문제에 다시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창현이 자신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든, 아림은 두 사람 사이가 달라지는 일을 바라지 않았다.창현이 눈을 깜빡이더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래서요?”아림은 그 반응을 예상하지 못해 미간을 좁혔다.창현은 일부러 놀리는 건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웃었다.“그럼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저야 완전 횡재죠. 예쁜 마누라에 복덩이 딸이 공짜로 생기는 건데요?”아림은 창현에 대한 소문들을 떠올렸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활을 정리했다.창현은 머쓱해하기는커녕 씩 웃고 나서 화제를 돌려 권하균의 근황을 꺼냈다.아림은 속으로 안도하며 몇 마디 답했다. 분위기는 서서히 가벼워졌다....그 뒤 한 달 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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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뒤따르며 지켜보던 아림은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양부모든 친부모든, 아림에게 가족의 정을 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부모의 살가운 사랑이 아이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아림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아림은 줄 수 있는 건 다 로아에게 주었지만, 끝내 줄 수 없는 게 하나 있었다. ‘아빠’라는 자리였다.로아에겐 그 자리가 너무도 허전한 빈자리였다.비슷한 일은 많았다. 떠올릴 때마다 아림의 가슴 한쪽이 막히는 듯했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오래 남았다....주말, 가족 식사 자리.아림은 로아를 데리고 본가로 갔다. 도착했을 때 거실에는 이미 대부분의 가족이 와서 앉아 있었다.민혜정이 다가와 로아를 받아 들며 자애로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지희네는 아침 일찍 왔어. 너랑 로아만 기다리고 있었다.”민혜정은 원망하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늦게 온 것이 마음에 쓰인다는 뉘앙스는 티가 났다.아림은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가, 이내 서먹한 옅은 웃음을 걸쳤다. “차가 막혀서요.”거실에서는 지희가 소파에 앉아 최태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빈은 얌전히 그 곁에 붙어 있었고, 이헌은 반대편에 앉아 눈을 내리깐 채 핸드폰 화면을 넘기는 중이었다.화목하고 따뜻한, 그림 같은 광경이었다.“아림이랑 로아 왔다.”민혜정의 말이 떨어지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이헌마저 눈을 들어 아림과 로아를 한번 훑었다.로아는 민혜정의 손에서 조심스레 자기 손을 빼냈다. 그러고는 아림의 손을 잡은 채 어른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다행히 식사 분위기는 그럭저럭 부드러웠고, 민혜정도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밥을 먹던 중 유빈이 로아에게 같이 놀자며 옆으로 왔다. 도우미가 곧바로 유빈의 아동용 의자를 로아 곁으로 옮겼다.나이가 비슷한 두 아이는 금세 마주 앉아 재잘거리기 시작했다.“누나, 우리 아빠가 나한테 엄청 센 변신 로봇 사 줬어! 완전 멋져!”유빈이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선물로 받은 장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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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네 아버지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게다가 로아한테도 온전한 가정이 필요하잖니.”민혜정은 아림의 손을 잡고 덧붙였다.“이렇게 하자. 시간 내서 그 친구를 집에 한번 데려와. 우리가 사람 됨됨이 봐 줄게.”‘됨됨이를 봐 준다고?’아림은 문득 웃음이 나올 뻔했다.‘아직도 박이헌한테 미련이 남았을까 봐...’‘‘창현 아저씨’라는 사람이 실존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겠지.’“엄마, 로아가 아직 어려서 그래요. 그 사람과 저는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예요.”그 한마디로 아림은 창현과의 관계를 설명했다.하지만 민혜정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목소리를 더 부드럽게 낮추고 설득했다.“괜한 생각 말고. 엄만 그저 네가 언제까지고 혼자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다 싶은 거야.”“그 친구와 정말 평범한 친구라면, 엄마가 다시 지인들에게 부탁해 몇 자리 더 알아봐 줄게.”“자꾸 만나 보고, 맞으면 사귀고 아니면 마는 거지. 사람은 어차피 결혼해서 살아야 하는 법이야.”아림은 말없이 있었다.그때 밖에서 로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또렷했다.어쨌든 민혜정의 말 중 맞는 부분도 있었다. 로아에게는 온전한 가정이 필요했다. 또 창현은 로아를 대하는 일에서만큼은 꽤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알았어요, 엄마. 생각해 볼게요.”민혜정과 최태성은 아무렇지 않은 척 서로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의 표정에는 동시에 안도감이 번졌다....한편, 마당 모퉁이 그림자 속에서 이헌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이헌은 벽에 비스듬히 기대 있었고,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머릿속에는 로아가 유빈에게 했던 말만 맴돌았다.“앞으로는 창현 아저씨만 좋아할 거야. 다른 아저씨는 이제 안 좋아할래.”이헌은 그 말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오랜 세월 가라앉아 있던 심장이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둔하게 아팠다....지희의 두 번째 치료는 목요일 오후로 잡혀 있었다.백요한의 출장 일정이 하루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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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이제 괜찮아.]“정말?”[응.]이헌의 말투는 대수롭지 않았다. 마치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을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하지만 대답을 마친 뒤, 시선은 무심코 오른팔에 내려앉았다. 그곳에는 아림이 직접 감아 준 붕대가 그대로 있었다.이헌은 무슨 마음이었는지 그날 이후로 병원에 가서 드레싱을 갈지 않았다.아림은 노트를 덮고 뻐근한 콧등을 눌렀다. 잠시 뒤 다시 입을 열었다.“당신은 귀한 몸이니, 웬만하면 병원에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 봐. 괜히 미루지 말고.”아림은 남에게 빚지는 일을 싫어했다. 상대가 이헌이라면, 더더욱.[됐어.]아림의 거리감 있는 태도에 이헌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그 차가운에 아림은 짜증이 치밀었다. 더는 권하지 않았다.“마음대로 해. 그럼 이만.”아림은 먼저 전화를 끊었다.그 뒤 핸드폰을 책상 위에 엎어 두고 일어나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랐다.반 잔쯤 마시고 창가에서 한동안 숨을 고른 뒤에야, 자리로 돌아가 보고서 정리를 이어 갔다....금요일.지희는 제시간에 병원에 도착했다.첫 치료 때의 긴장과 달리, 이번에는 베이지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화장은 정돈되어 있었고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온화하고 예쁜 인상이었다.“교수님, 아림 언니.”지희가 먼저 인사했다. 목소리도 가벼웠다.백요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아림은 지희의 혈압을 재고, 지난 며칠 동안 수면과 식사 상태를 물었다. 항목별로 기록을 남겼다.지희의 협조도는 높았다. 답변은 명확했고, 가끔은 먼저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백요한은 지난 치료 기록을 넘겨 보고 안경테를 코 위로 밀어 올렸다.“지희 씨, 오늘 치료 절차는 지난번과 같습니다. 시간은 대략 40분 정도 걸릴 겁니다. 중간에 불편한 점이 생기면 바로 말하세요.”“네.”치료가 시작되자 아림은 곁에서 기록을 맡았다.지희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고, 호흡도 고르게 유지됐다.첫 치료 때 중간중간 울먹이고 떨며 감정이 격해졌던 것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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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하얗게 질린 얼굴, 잘게 떨리는 입술, 흐려진 눈. 아림의 이런 모습에 지희의 눈에 쾌감 한 줄기가 스쳤다.‘몹쓸 것!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잘 살아?’‘내 것을 전부 빼앗아 갔으면서. 사라졌어야 하는 사람은 너잖아!’바로 그때 문이 열렸다.이헌이 문가에 서 있었다. 한 손은 문고리에 얹은 채였다.시선이 먼저 상태가 이상한 아림을 훑으며 미간이 좁혀졌다가, 이어 지희에게 닿았다.지희가 눈물에 젖은 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본 그는 곧장 몇 걸음 다가가 지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무슨 일이야?”지희는 말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한가득 억울한데도 아림을 탓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참고 있는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곁눈질로 아림의 반응을 살피며 일부러 이헌의 품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팔을 뻗어 이헌의 허리를 감았다.이헌의 몸이 살짝 굳었다. 미간이 더 깊게 구겨졌지만, 끝내 지희를 밀어내지는 않았다.따뜻하고 묵직한 손이 지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다독이듯, 힘이 실리지 않은 손길이었다.그는 조금 전부터 밖에 있었다. 지희가 억울하고도 고집스럽게 묻던 말들을 들었다.지금 지희의 병세는 불안정했다. 그는 자신 때문에 지희의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이헌은 아림을 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그 사실을 깨닫자 아림의 손 떨림은 더 심해졌다. 죽을 것 같은 질식감이 밀려와 숨을 조여 왔다.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신체화 발작이었다.아림은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발걸음이 비틀렸고, 급히 문 쪽으로 향했다.아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여기에 더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이헌의 고요한 눈 안쪽에 억눌린 감정이 스쳤다.‘아림이 상태가 이상했는데... 왜 저러지?’오래지 않아 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 이헌은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들어온 사람은 아림이 아니었다. 아림에게 아멜디 초콜릿을 선물했던 남자, 엄준이었다.“오늘 치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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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점심때가 되자 최태성 부부가 도착했다.민혜정은 보온통을 들고 있었다. 평소의 단정한 여유는 온데간데없고, 긴장과 걱정이 얼굴 가득했다.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눈시울을 붉히고 지희의 뺨을 어루만졌다.“살이 많이 빠졌네.”최태성은 뒤따라 들어왔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표정은 엄했지만, 눈에 담긴 걱정은 숨기지 못했다.이어 지희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가 아림이 병원이니 마음 놓고 지내라. 필요한 게 있으면 아림이에게 말하고.”그 한마디로 최태성은 지희를 아림에게 맡겼다.지희는 병상에 기대어 앉아 가족들에게 둘러싸였다. 눈가를 붉힌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괜찮아요. 그동안 오빠가 잘 돌봐 줬어요.”말투에는 진한 어리광이 묻어났다.민혜정은 마음이 아파 어쩔 줄 몰랐다. 침대 옆에 앉아 지희의 손을 꼭 잡고, ‘우리 보물 같은 딸이 고생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최태성은 곁에 서 있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지희를 보는 눈에는 아낌없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병실 문은 닫혀 있지 않았다. 아림은 흰 가운을 입은 채 문가에 서 있었다. 발이 바닥에 붙어버리기라도 한 듯 움직이지 못했다.손에는 입원 서류가 들려 있었다. 지희의 서명을 받으려던 참이었다.하지만 병실 안에 가득한 온기를 보자, 차마 끼어들기가 어려웠다.문가에 선 아림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민혜정은 오래 끓인 전복죽을 지희에게 떠 주며 말했다.“엄마가 아침 내내 끓였어.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지희의 시선이 무심코 문가를 스쳤다. 입꼬리에 도발적인 미소가 어렸다. 곧 두 손으로 그릇을 받아 한입 먹고 감탄했다.“엄마가 끓여 준 건 역시 최고예요!”‘흥, 몹쓸 것. 내 엄마를 빼앗아 가면 뭐 해?’‘지금 네 엄마가 제일 아끼는 건 결국 나잖아?!’“맛있으면 엄마가 내일도 해줄게.”민혜정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목소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정했다.“왜 안 들어와?”이헌이 먼저 문가에 선 아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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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아림은 잠깐 멈췄다. 눈빛은 맑았지만 철저히 거리감을 유지했다.“걱정 고마워. 나 괜찮아.”그 말을 남기고 바로 나갔다.이헌은 거의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곧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서류를 펼쳤다.겨우 두 줄을 읽었지만, 단어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생각이 자꾸 흩어졌다.지난 이틀 동안 진료 구역에서 아림과 마주칠 때마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나 병실에서 필요한 말만 주고받을 때나, 그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동시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뚝딱거리는 감각도 함께 찾아왔다.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하면, 서로를 방해하지 않아도 평소보다 숨이 편했다.그런 느낌은 평생 냉정하고 절제된 규칙 속에서 살아온 이헌을 처음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이틀 뒤 오전.간호사실에서 서명을 마친 아림은 진료실로 돌아가 흰 가운을 벗어 걸고 퇴근 준비를 했다.어제 야간 당직이었던 터라, 인수인계만 마치면 바로 퇴근할 수 있었다.건물 정문을 나서자마자, 멀리 익숙한 마이바흐가 보였다. 차 앞에는 짙은 네이비색 캐주얼 차림의 창현이 서 있었다. 한 손에는 흰색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였다.오늘의 차림은 사업장에서 보이던 날카로운 분위기가 덜했다. 대신 느긋함과 여유, 또 지나치게 눈에 띄는 분위기가 있었다.아림은 피식 웃음이 샜다. 왠지 지금 창현의 모습은 꽁지깃을 활짝 편 공작새 같았다.아림이 나오자마자 창현은 바로 그녀를 알아봤다. 입가에 웃음이 번졌고, 긴 다리로 몇 걸음 만에 다가와 꽃다발을 내밀었다.“퇴근이에요?”아림이 꽃다발을 받아 향기를 맡으며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오늘 야간 당직이라는 소식을 입수해서, 퇴근길 마중 나왔죠.” 창현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눈빛은 그윽했다.“아림 씨 아직 식사 전일 것 같아서 식당에 자리도 잡아 놨어요. 전망 좋은 자리로... 시간 좀 내 주시죠?”“권 대표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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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방금 민혜정이 아림을 부른 말에도 반가움보다는 의아함에 가까웠다.왜 이 시간에 아림이 여기 있느냐고 묻는 듯한 소리였다.창현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곧 시선을 거두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올린 채 아림을 바라보았다. 말투는 아까보다 더 가벼워졌다.“아림 씨, 아까 저랑 같이 식사하기로 했잖아요. 더 늦으면 음식 다 식어요.”그는 자연스럽게 아림의 숄더백을 받아 자기 어깨에 걸쳤다.민혜정이 몇 마디 더 캐물으려 했지만, 창현은 벌써 차 문을 열고 아림에게 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창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씨 집안 사람들을 대하는 차갑고 거리감 있는 태도와 아림을 대하는 부드럽고 세심한 태도는 누가 보아도 알 정도로 선명하게 대비됐다.이헌의 검은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늘 감정이 없던 듯한 준수한 얼굴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긴 것 같았다.지희는 이헌 곁에 오래 있었기에 그의 성향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 지금 이헌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었다.지희의 눈이 어두워졌다. 곧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숨이 가쁜 듯 말했다.“오빠, 나... 나 너무 힘들어... 숨이 잘 안 쉬어져...”‘최아림 그 몹쓸 것에게 이헌 오빠를 또 빼앗길 순 없어!’‘오빠도, TG그룹 안주인 자리도, 다 내 거여야 해!!’지희의 ‘숨이 안 쉬어진다’라는 말은 모두의 시선을 단번에 돌렸다.민혜정이 가장 먼저 당황했다.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연달아 물었다. 목소리에는 진한 걱정이 묻어났다.“지희야! 왜 그래? 아까 너무 빨리 걸었니?”이헌은 고개를 돌려 지희의 허리를 받쳤다. 눈빛 하나에 기사가 곧바로 차를 가지러 뛰었다.같은 시간에, 뒤쪽의 마이바흐 문은 이미 닫혔다.아림과 창현은 떠났다.이헌은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며칠 뒤.요 며칠 이헌은 자꾸 이유 없이 딴생각에 빠졌다. 서류를 볼 때도, 회의 중에도 그랬다.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잔뜩 구겨진 미간을 짚고 있는데, 비서 기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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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로아는 소파에서 뛰어내렸다. 상자 주위를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았다. 신이 난 로아의 작은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로봇 친구야!”주방에서 과일을 씻던 아림이 기척에 나와 보니, 거실의 포장 상자와 그 곁에 심상한 얼굴로 선 이헌이 한눈에 들어왔다.미간이 좁혀지며, 걸음이 잠깐 멎었다.“지금 이게...?”“오해하지 마. 마침 회사 신제품이 나와서, 이건 로아 주는 거야. 아... 아저씨의 성의라고 해 두지.”‘아빠’라는 두 글자를, 이헌은 억지로 삼키고 ‘아저씨’로 바꿨다. 그는 가끔 자신과 아림의 결혼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잊곤 했다.이헌의 목소리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로아가 몹시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 깊은 곳 어딘가가 먹먹해졌다.로아가 촉촉한 큰 눈을 깜빡이며 두 손으로 입을 채, 놀람과 기쁨 가득한 얼굴로 아림을 올려다보았다.“엄마, 진짜 로아한테 주는 거랬어. 뜯어봐도 돼?”아림이 대답하기도 전에 계단 쪽에서 지희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빠.”지희는 연노란색 홈웨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느슨하게 올려 묶었고, 안색은 괜찮아 보였다.그리고 시선은 얼어붙은 듯 서 있는 아림과 들뜬 로아를 스치고, 이내 고급 포장 상자에 닿았다.“이거 신제품이야?”지희는 상자에 찍힌 로고를 손끝으로 쓸며 웃었다.“오빠도 참 아이를 너무 예뻐한다니까. 우리 유빈이 새 로봇 갖고 싶다고 한마디한 것뿐인데 바로 사람 시켜 보냈네.”로아는 큰 눈을 깜빡였다. 얼굴에 피었던 웃음이 그대로 굳었다.아림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유빈은 이헌의 ‘첫사랑’이 낳은 아이였다.다만 로아가 마음 쓰였다. 딸이 속상해할까 봐, 그게 겁났다.이헌의 미간이 알아채기 힘들 만큼 좁아졌다. “유빈이는 이미 많잖아. 집에만 적어도 네다섯 대는 있고. 이건 로아 거야.”“로아한테... 준다고?”지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목소리가 높아졌고, 말투에는 억울함이 묻어났다.“유빈이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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