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이 떠난 뒤, 아림은 차에 올라탔다. 팔이 가늘게 떨리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아림은 차 안에서 바로 잔잔한 음악을 틀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 눈을 감았다. 흔들리는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아림이 겪었던 심리적 문제가 몸으로 나타난 신체화 증상이었다.아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헌과 지희를 다시 마주한 순간, 오래도록 외면당하고 버려졌던 시간이 한꺼번에 아림의 의식 속으로 밀려들었다.아림은 어려서부터 소광섭 부부의 손에서 자랐다.소광섭 부부는 장사로 갑자기 대단한 부를 거머쥐었지만, 사고방식만큼은 케케묵은 남아 선호 사상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다.어른들 눈 밖에 난 아림은 어릴 때부터 사람을 몇이나 부릴 수 있는 집에서 자라면서도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다.집안 사람들은 모두 아림을 군식구로, 돈만 축내는 쓸데없는 딸처럼 취급했다.아림이 5살이 되던 해, 남동생 소우진이 태어났다. 소씨 집안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고, 우진은 넘치도록 사랑받았다. 아림을 향한 냉대와 구박은 더 심해졌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린 우진이 한결같이 아림을 잘 따랐다는 사실이었다.식구들이 누나를 괴롭히고 깎아내릴 때면, 우진은 늘 허리에 손을 얹고 앞을 가로막고 서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우리 누나는 밥 축내는 애 아니야!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누난데, 나중엔 다들 감히 우리 누나 쳐다보지도 못할걸!”고되고 메마른 세월 속에서 남동생은 아림의 삶에 남은 유일한 빛이었다. 열 여덟 살이 되던 해, 집안 사업이 흔들리자 양부모는 모질게도 아림을 다락방에 가두고 학교까지 자퇴 처리해 수능 원서 접수조차 하지 못하게 막았다.대신 빚을 갚는 조건으로 느물거리는 중년의 졸부에게 시집보내려 했고, 아림이 아무리 빌어도 꿈쩍하지 않았다.수능 당일, 절망 끝에 아림은 삶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그때 흙먼지를 뒤집어쓴 우진이 헐레벌떡 찾아왔다. 우진은 아림의 손을 잡고 그 집에서 도망쳤다.아림은 바라던 대로 시험을 치렀고, 단번에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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