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설산에 꽃이 피기까지 삼백년: Kabanata 41 - Kabanata 50

53 Kabanata

40화 「설산의 집」

그해 가을, 감꽃 마을에 이상한 일행이 내려왔다.눈처럼 흰 옷의 남자와, 웃음 많은 처녀와, 마을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몸종과, 검은 옷의 — 본인 주장으로는 '지나가던 상인'이 감나무 밭에 나타난 것이다. 남자는 감 따는 법을 몰라 나무 아래서 반나절을 서 있었고, 처녀가 장대 쓰는 법을 가르쳐 주자 한 시진 만에 마을에서 제일 감을 잘 따는 사람이 되었고, 씨 뱉는 법은 끝내 배우지 못해 세 알을 그냥 삼켰다."사부님, 그거 삼키면 배 속에서 감나무 나요.""…거짓말이다.""거짓말이에요. 근데 표정 왜 그러셨어요, 방금."설봉의 겨울은 그렇게 왔다.전각은 셋이 되었다. 본채와, 앵두가 "주방이 아니라 제 성(城)이에요"라고 선언한 부엌채와, 위지란이 "임시 거처"라고 우기며 사 년째 안 나가는 객채. 백리유음은 근신이 풀린 뒤 계절마다 올라왔다. 올 때마다 차와 이야기가 늘었다. 사매와 사저가 마루에 앉아 삼백 년 전의 시시콜콜한 것들 — 그 시절 주방의 국수 맛, 젊은 사부의 더 지독했던 말수 — 을 꺼내며 웃는 소리가, 마당의 매화나무에는 제일 좋은 거름이었을 것이다.그을렸던 나무는 이듬해 봄에 다시 피었다. 그다음 봄에도.수련은 계속되었다. 도력의 태반을 반납한 두 사람이었지만, 유설십이식은 도력의 검법이 아니라 혼의 검법이었으니까. 다만 이제 수련 끝의 문답이 조금 달라졌다."사부라고 부르지 마라. 서약한 사이다.""그럼 뭐라고 불러요?""…이름이 있다.""단목현 씨?""….""현 님? 목현아?""…사부라고 불러라."이름은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호칭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삼백 년이 걸린 것도 있는데, 몇 년쯤이야.위지란의 몸속 마겁은 고요했다. 가끔 — 아주 가끔, 그가 국수를 먹다 말고 창밖 먼 곳을 보는 날이 있었다. "왜요?" 하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았지만, 아무도 캐묻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계절에 하면 되는 것이다.어느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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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먼 곳을 보는 날」

여섯 번째 봄이 오기 전, 겨울부터 이상했다.위지란이 국수를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저 인간이 국수를 남겨요, 아가씨." 앵두가 심각한 얼굴로 보고했다. 앵두의 세계에서 그것은 하늘이 갈라진 것과 동급의 이변이었다. "그것도 사흘째. 제 간이 변한 게 아니에요. 국물까지 다 맛봤어요."연소하도 알고 있었다. 국수만이 아니었다. 겨울 들어 그가 창밖 먼 곳을 보는 날이 잦아졌다.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았지만 캐묻지 않는 것이 설봉의 예의였는데 — 그 예의가 이제는 틀린 것 같았다.먼저 움직인 것은 단목현이었다."손을 내라."저녁상에서 사부가 불쑥 말했다. 위지란이 젓가락을 든 채 웃었다."고백인가? 늦었는데. 유부남이.""손."웃음으로 버티던 위지란이 결국 손목을 내밀었다. 단목현의 손가락이 맥에 닿았다. 일각. 이각. 사부의 낯빛이 낮게 가라앉는 것을 연소하는 보았다. 뇌겁 때도 흔들리지 않던 낯빛이었다."…언제부터냐.""동지 무렵.""왜 말하지 않았지.""말하면," 위지란은 손목을 거두며 여전히 웃었다. "이 집 국수 맛이 떨어지거든. 다들 그런 얼굴을 하니까."마겁이었다. 그의 몸속 삼분지 일이 — 오 년을 고요하던 것이 — 깨어나고 있었다. 이유는 셋 다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릇은 마기로 다져진 그릇. 마겁에게는 세 그릇 중 가장 살기 편한 집이었다. 편한 집에서 마겁은 뿌리를 내린다."방법을 찾는다." 단목현이 말했다. "봉인을 다시 셋으로 재분배하면—""안 되는 거 알잖나. 한 번 자리 잡은 몫은 못 옮긴다. 이혼전정은 같은 혼에 두 번 안 통해.""그럼 마교의 금서고를—""거긴 지금 못 들어간다."위지란의 웃음이 그제야 걷혔다."마교에서 급보가 왔다. 부교주가 움직였어. 교주가 오 년째 설봉에서 국수나 먹고 있으니 — 자리가 비었다 여긴 게지. 놈이 노리는 건 교주 자리가 아니다. 내 몸속의 이것이다. 마겁 삼분지 일. 마교의 비원(悲願)이 뭔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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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남서쪽」

출발은 반나절 만에 결정됐다."찾지 말라잖아요. 그러니까 찾아야죠."연소하가 짐을 싸며 말했고, 단목현은 말리는 대신 지도를 폈다. 이 사람의 좋은 점이었다. 오 년을 같이 살며 알게 된 것 — 그는 한 번 버려본 사람이라서, 붙잡으러 가는 일에는 절대 토를 달지 않는다."마교 본단은 남서쪽 만 리. 흑요산(黑曜山)이다. 문제는 우리 발이지."문제는 발이었다. 승선첩을 태운 대가로 두 사람의 도력은 태반이 하늘로 돌아갔다. 어검비행으로 만 리를 주파하던 시절은 끝났다. 지금은 — 잘 쳐줘야 준마보다 조금 빠른 정도."보름 길이다. 놈이 앞선 것이 하루. 따라잡으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줄이죠. 뭐."앵두는 설봉에 남았다. 데려가지 않겠다는 말에 앵두는 의외로 떼를 쓰지 않았다. 대신 밤새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더니, 새벽에 기름먹인 종이로 싼 꾸러미 두 개를 내밀었다."주먹밥이에요. 사흘 치. 그다음부터는 사 드세요." 그리고 앵두는 처음 보는 어른의 얼굴로 덧붙였다. "약조해요, 아가씨. 셋이서 돌아온다고. 국수는 셋이 먹어야 간이 맞아요. 오 년을 그렇게 먹었잖아요.""…약조할게.""그 인간한테도 전해요. 국수 남긴 벌로, 돌아오면 제 국수 백 그릇이에요."백리유음에게는 전서를 남겼다. 답신은 산문을 나서기도 전에 도착했다. 『연합에는 내가 말을 만들어 두겠습니다. 마교 국경 통행첩 두 장을 동봉합니다 — 소사존 시절의 연줄이 아직 몇 남았군요. 사매, 사백 년 산 사람의 부탁 하나만: 셋 다 돌아오세요.』 통행첩과 함께, 말린 매화 꽃잎 한 줌이 들어 있었다. 부적 대신이라는 뜻일 것이다.길은 남서로 뻗었다. 선계의 구름다리가 끊기는 곳부터 인간의 관도가 시작됐고, 관도가 끊기는 곳부터 마교의 그늘이 시작됐다. 낮에는 걷고 밤에는 달렸다. 도력이 준 몸은 정직해서, 사흘째부터는 발바닥이 불이었다. 이상하게 그게 싫지 않았다. 아픈 발로 누군가를 찾아가는 일 — 삼백 년 전에는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은 둘이서 하고 있었다.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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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흑요산」

흑요산은 산이 아니라 상처였다.대지가 데인 자리에 검은 유리 절벽이 솟았고, 그 위에 마교 본단이 성처럼 얹혀 있었다. 분화구를 둘러싼 아홉 층의 검은 전각. 공기에서 유황과 오래된 피 냄새가 났다. 호송 아닌 호송 — 창끝 하나 겨누지 않으면서 도망칠 틈도 주지 않는 기마 수백 기에 둘러싸여, 두 사람은 엿새를 꼬박 달려 그 상처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본단으로 오르는 아홉 굽이 길마다 마교도들이 도열해 두 사람을 구경했다. 적의라기보다 호기심이었다. 선문의 전설과 그 도려 — 오 년 전 뇌겁을 함께 버틴 한 쌍의 도를, 마교의 아이들까지 까치발을 들고 보았다. 연소하는 문득 태허문 입문시험 날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어딜 가나 구경거리 신세다.부교주 혁련탈(赫連奪)은 옥좌 아닌 옥좌에 앉아 있었다.교주의 자리는 비워 둔 채, 그 한 단 아래. 형식은 갖추고 실속은 다 챙긴 자리였다. 사십 대로 보이는 사내는 잘생겼고, 예의 발랐고, 눈이 죽어 있었다."먼 길 오셨습니다. 태허문의 전 대사존 — 아니, 지금은 그냥 단목현 공이시던가. 그리고 그 부인.""교주는 어디 있소.""교주라니." 혁련탈이 부드럽게 웃었다. "마교에 교주는 없습니다. 오 년간 자리를 비우고 선문의 산봉우리에서 국수를 드시던 분이 계셨을 뿐. 교칙 제일조 — 교주가 백 일 이상 본단을 비우면 그 자리는 몰수된다. 위지란은 그 죄로 참수됩니다. 닷새 뒤에.""교칙 좋아하시네." 연소하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자리가 탐나면 자리를 뺏지, 왜 목을 뺏어요?""부인께서는 솔직하시군. 좋습니다. 저도 솔직하지요."혁련탈이 손짓하자 대전의 벽이 열렸다. 그 너머 — 분화구 바닥에 거대한 진법이 새겨져 있었다. 아홉 겹의 원, 수만 개의 마문(魔文), 그리고 중심의 빈 대(臺). 연소하는 그 진법이 어딘가 낯익어서 소름이 돋았다. 이혼전정. 위지란이 그렸던 진의 — 수백 배로 뒤틀린 확대판이었다."위지란의 몸속에는 마겁 삼분지 일이 있습니다. 마교가 삼백 년을 갈망한 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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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뇌옥에서」

"…왔군."위지란은 놀라지도 않았다. 반백이 된 머리로, 창살 너머에서, 세상에서 제일 한심하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찾지 말라고 두 줄이나 적어놨는데.""두 줄이니까 왔죠. 열 줄이었으면 안 왔어요.""…그게 무슨 계산법이냐.""당신 계산법이에요. 말이 짧아질수록 진심인 거."위지란이 웃으려다 기침을 했다. 소매로 가렸지만 늦었다 — 검은 피였다. 연소하는 창살을 움켜쥐었다. 유리 창살이 손바닥을 베었지만 놓지 않았다."머리는 왜 이래요. 마겁이 벌써—""먹히는 중이지. 보다시피." 그는 제 백발을 아무렇게나 넘겼다. "머리부터 세더군. 다 세면 끝이라던데, 반 남았으니 열흘쯤인가. 놈들 처형식이 닷새 뒤니 — 시간은 맞네.""농담이 나와요, 지금?""농담이라도 해야지. 우는 건 네 몫이 아니잖나."단목현이 창살 앞에 앉았다. 그리고 오 년간 국수 상에서 마주 앉던 그대로, 담담하게 물었다."왜 혼자 왔나.""….""마겁 조각은 서로를 부른다. 네가 설봉에 있으면 우리 봉인도 흔들린다 — 그래서 떠났겠지. 거기까진 안다. 묻는 건 그다음이다. 왜 혼자 죽으러 왔느냐는 거다."위지란은 오래 침묵했다. 뇌옥의 어둠 속에서 그의 반백 머리만 희게 떠 있었다. 이 사람이 말을 고르는 것을 연소하는 처음 보았다. 늘 준비된 말만 던지던 사람이었다."…삼백 년 전에,"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균열 앞에서 그 사람이 나를 던졌을 때. 살아라, 한마디 하고. 나는 평생 그게 빚인 줄 알았다. 갚아야 할 빚. 그런데 설봉에서 오 년 살아보니 알겠더군. 그건 빚이 아니었어.""그럼 뭔데요.""…선물이었지. 그냥, 살라고 준. 갚으라고 준 게 아니라."그가 고개를 들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셈이 끝난 사람의 눈이었다."그래서 나도 한 번 줘보고 싶었다. 갚으라는 말 없이. 내가 여기서 끝나면 마겁 삼분지 일은 나와 함께 흩어진다. 놈들 적출 의식은 실패하고, 너희 몸의 조각은 부를 짝을 잃어 도로 잠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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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처형식 (상)」

처형식 날의 흑요산은 검은 유리가 울 만큼 북소리로 가득했다.분화구를 둘러싼 아홉 층 전각마다 마교도 수만이 들어찼다. 진법의 아홉 겹 원에 불이 들어오고, 중심의 대 위에 혁련탈이 섰다. 그 맞은편 — 쇠사슬에 묶인 위지란이 끌려 나왔다. 반백이던 머리는 이제 칠 할이 세어 있었다.연소하와 단목현은 진법 바깥 단상에 '귀빈'으로 앉혀졌다. 결박은 없었다. 대신 열두 명의 마인이 반원으로 둘러섰고, 두 사람의 몸속 마겁 조각이 진법의 인력에 이미 웅웅 울고 있었다. 도망은 애초에 계산에 없었다. 계획이 있었으니까. 어젯밤 창살 너머로 위지란이 속삭인, 세 줄짜리 계획이.첫째, 놈들이 적출을 시작하게 둔다.둘째, 겁이 제 집을 기억해 낼 때까지 기다린다.셋째 — 그다음은 즉흥이다."셋째가 즉흥인 게 계획이에요?" "마교식 계획이다. 원래 삼 할은 비워두는 거야."단상의 연소하는 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매화 다섯 잎이 진법의 고동에 맞춰 명멸하고 있었다. 곁의 단목현도 같을 것이다. 몸속의 조각들이 형제를 부르고 있었다.북소리가 멎었다."마교의 아들딸들이여!" 혁련탈의 목소리가 분화구를 울렸다. "삼백 년 전 우리는 하늘의 겁화를 눈앞에서 놓쳤다! 선문의 계집이 훔쳐 갔고, 선문의 위선자들이 나눠 가졌다! 오늘 — 그 힘이 집으로 돌아온다!"수만의 함성. 연소하는 그 함성 속에서 위지란과 눈을 맞췄다. 그는 사슬에 묶인 채로 — 웃고 있었다. 늘 그렇듯 눈은 웃지 않는 웃음이 아니라, 이번에는 눈만 웃는 웃음이었다.적출이 시작됐다.아홉 겹의 원이 차례로 점화되며 진법 전체가 굉음을 냈다. 마문 수만 개가 핏빛으로 타올랐고, 위지란의 몸에서 검은 것이 — 실오라기부터 밧줄, 밧줄에서 강줄기로 —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이를 악물지도 않았다. 다만 뽑혀 나가는 검은 강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 위의 혁련탈을 향해 크게 외쳤다."혁련탈!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유언인가. 말해보게.""금서를 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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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처형식 (하)」

마겁이 실체를 얻는 것을, 수만 명이 보았다.허공의 검은 강줄기가 소용돌이치며 뭉치더니 — 사람의 형상 비슷한 것이 되었다. 얼굴 없는 검은 화신(化身). 하늘의 사자와 닮았는데 정반대인 것. 그것이 처음 한 일은 제일 가까운 것을 삼키는 일이었다.혁련탈은 비명도 다 지르지 못했다.삼백 년을 갈망하던 힘이 그를 한 모금에 삼켰다. 그릇이 아닌 것은 담지 못하고 — 먹힐 뿐이었다. 대 위에는 옷자락 하나 남지 않았다. 수만의 함성이 수만의 비명으로 뒤집히고, 아홉 층 전각에서 마교도들이 쏟아져 도망치기 시작했다."셋째다! 즉흥이라던 그 셋째!"위지란이 사슬을 끊으며 외쳤다. 적출로 텅 빈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그는 두 사람 쪽으로 달렸다. 열두 마인은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단목현이 부러진 매화검을 뽑았고, 연소하가 소매를 뽑았다. 화신이 — 그 얼굴 없는 얼굴이 — 천천히 이쪽을 향했다.정확히는, 연소하를 향했다."소하, 물러—"물러날 수 없었다. 몸속의 삼분지 일이 진법의 인력에 끓고 있었고, 화신은 그 끓음을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유설십이식의 검진을 펼쳤다. 낙매, 유설 — 검광이 화신의 몸을 몇 번이나 갈랐지만, 강물을 베는 것과 같았다. 갈라진 자리가 그대로 아물었다.그때 화신이, 말했다.목소리가 아니었다. 삼백 년 전 봉인의 밤처럼 — 몸 안쪽에서 직접 울리는 것이었다.『기억한다.』연소하의 검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 목소리를 그녀는 알았다. 삼백 년 전 균열 앞에서, 제 가슴을 열며 들어오라고 했을 때 — 쏟아져 들어오던 것이 마지막으로 냈던 소리. 꿈에서도 몇 번인가 들었던, 벽 너머에서 웅웅대던 그 울림이었다.『어둡고, 좁고, 따뜻했다. 삼백 년. 네 안에서. 심장 소리가 들렸다. 네가 우는 날에는 벽이 흔들렸고, 네가 검무를 추는 날에는 벽이 노래했다.』"…뭐라는 거야, 너."『밖은 넓고 차다. 삼키는 것은 배고픔이고, 배고픔에는 끝이 없다. 끝이 없는 것은 — 지겹다.』화신의 얼굴 없는 얼굴이, 그녀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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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들어가도 되느냐」

들어가도 되느냐.세상을 삼키는 겁화가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무너진 분화구 한가운데서, 수만 명이 도망친 폐허 위에서, 얼굴 없는 화신은 정말로 — 기다리고 있었다. 대답을."…이상하네요."연소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검을 든 채로, 그러나 검끝은 어느새 반쯤 내려가 있었다."삼백 년 전에 너를 삼킬 때, 나는 허락 같은 거 안 구했어. 그냥 삼켰지. 뇌옥이라고 불렀고. 가뒀다고 생각했고. 근데 너는 — 그 안이 집이었다고 하네."『따뜻했다. 삼백 년 내내. 나가고 나서야 알았다 — 그것이 따뜻함이라는 것을.』"지금 너를 다시 삼키면, 나는 또 뇌옥이 되는 거야. 너는 또 갇히는 거고. 삼백 년이 지나면 또 이 짓을 반복하겠지. 내 딸이나, 내 딸의 딸이, 또 제 몸을 뇌옥으로 내놓으면서."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는 집이 아니야. 그냥 대물림이지."『…그러면.』화신의 형상이 흔들렸다. 목소리에 처음으로, 아주 오래된 피로 같은 것이 배어 나왔다.『나는 어디로 가나. 하늘은 나를 지우려 하고, 인간은 나를 삼키려 하고, 그릇 아닌 것들은 나를 탐하다 먹힌다. 갈 곳이 — 장부 어디에도, 나는 없다.』장부 어디에도 없다.연소하는 그 말에 숨을 멈췄다. 어디서 들어본 말이었다. 아니 — 들은 게 아니라, 들었던 선고였다. 장부에 없는 혼. 기록되지 않은 환생. 회수 대상."…사부님.""그래."단목현도 같은 곳에 도착해 있었다. 부부는 서로를 마주 보았고, 위지란만 영문을 몰라 반백의 머리를 긁었다."뭐냐. 둘이서만 아는 얼굴 하지 말고.""위지란. 하늘의 장부에 없는 존재가 살아남는 법이 하나 있어요. 우리가 해봤거든요. 육 년 전에, 벼락 아홉 대 맞으면서.""…설마.""존재 증명이요." 연소하가 화신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장부에 없는 존재를 지우려 들지만 — 규칙도 있어요.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면, 새로 적어준다는 규칙."『나를… 적는다고. 하늘이.』"겁화 말고 다른 것으로. 너 방금 스스로 증명했잖아. 배고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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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청원」

"빨리도 오시네요. 부를까 말까 하던 참인데."『장부에 없는 것이 실체를 얻으면 하늘이 안다. 본래는 즉시 소거 대상이다.』사자의 얼굴 없는 얼굴이 화신을 향하자, 화신이 — 세상을 삼키는 겁화가 — 반 발짝 물러나 연소하의 뒤로 비켰다. 그 광경에 위지란이 헛웃음을 흘렸다. "재앙이 사람 뒤에 숨는 건 개벽 이래 처음 보는군.""소거 말고 다른 안건이 있어요."연소하가 앞으로 나섰다. 육 년 전 설봉 마당에서 하늘에 대고 "그 법이 틀렸네요"라고 말한 그 자세 그대로."청원할게요. 이 아이 — 마겁의 윤회 편입이요."『겁화는 혼이 아니다. 윤회는 혼의 것이다.』"혼이 뭔데요? 기억하고, 원하고, 지겨워하고, 허락을 구하는 게 혼 아니에요? 얘 방금 다 했어요. 사자님도 봤잖아요."『…계속하라.』"얘가 가진 힘 — 세상을 태울 겁화의 힘은 전부 하늘에 반납할게요. 우리가 승선첩 태우고 도력 반납한 것처럼. 힘을 뺀 나머지, 기억하고 원하는 그 알맹이만 — 혼으로 쳐서 윤회의 강에 넣어줘요. 다시 태어나게. 벌레로 태어나든 들꽃으로 태어나든, 장부에 적히는 무언가로."사자는 오래 침묵했다. 장부 넘기는 소리만 폐허에 울렸다. 한 장. 두 장. 백 장.『겁화의 힘을 반납한다 — 그 힘이 얼마인지 아는가. 삼백 년 전 하늘이 통째로 태워 없애려던 양이다.』"그러니까 하늘도 남는 장사죠. 태우려다 실패한 걸 자진 반납받는 건데."『….』『선례가 없다.』"우리가 선례잖아요. 장부에 없던 혼, 뇌겁으로 존재 증명하고 새로 적혔어요. 육 년 전에. 사자님이 직접 적었으면서."『그것은 혼이었고 이것은 겁이다.』"그럼 시험을 내요. 뇌겁이든 뭐든. 통과하면 적어주고."『겁에게 겁을 내리라?』 사자의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 흔들렸다. 웃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늘의 장부 만 년 역사에 이런 청원은 없었다.』"만 년이나 됐으면 새 장 하나쯤 만들 때 됐네요."침묵이 길었다. 위지란이 나중에 증언하기를, 그 침묵 동안 하늘의 구름이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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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강가에서」

망자의 강은 소리 없이 흐른다.수억의 혼불이 물길을 따라 바다처럼 밀려가고, 저승의 시간은 고여 있어 강가의 모래밭에는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 — 는 것이 이 강가의 삼천 년 묵은 상식이었는데."…발자국이 찍히는데."산 자가 걸어왔기 때문이다. 검은 옷의 반백 사내가, 가슴에 세상의 마지막 겁화를 담고, 모래밭에 또박또박 발자국을 찍으며 강가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승의 관리들이 총출동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 맨 앞에 선 것은 — 이제는 고참이 된, 삼백여 년 전 어느 흰 옷의 사내에게 겁도 없이 말을 붙였던 바로 그 관리였다."사, 산 자는 이곳에 올 수 없습니다!""하늘의 허가증이 있다." 위지란이 금빛 문서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특별 운송이야. 비켜라, 무거우니까."무겁다는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강가에 닿았을 때 그의 무릎은 반쯤 꺾여 있었고, 세었던 머리는 뿌리까지 하얗게 바래 있었다. 그는 물가에 무릎을 꿇고 —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자, 도착이다. 내리시지."『….』"왜. 이제 와서 무섭나."『…처음이다. 갇히는 것도, 삼키는 것도 아니고 — 그냥 가는 것은.』"다들 그렇게 가. 처음인 채로." 위지란은 강물을 바라보았다. 수억의 혼불이 반짝이며 흘러가고 있었다. "부럽군. 나는 표가 없어서 못 타는 배인데."『위지란.』겁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따뜻했다. 너의 삼분지 일도.』"…그래. 잘 가라. 다음에는 — 뭐가 되든, 배고프지 않은 걸로 태어나라."그가 가슴을 열었다.검은 것이 흘러나왔다. 강줄기도 화신도 아닌, 이제는 그저 작고 검은 불꽃 하나가. 그것은 잠시 그의 손바닥 위에 앉아 있다가 — 하늘로 힘을 다 반납한, 겨우 혼불 하나 크기의 그것이 — 강물 위로 떠내려갔다. 수억의 혼불 사이로. 구분도 되지 않게. 그냥, 수억 분의 일로.관리들이 장부에 적는 소리가 들렸다. 신규 등재. 이름 없음. 출신 — 폐허. 행선지 — 미정. 고참 관리가 붓을 멈추고 물었다.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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