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장 탐정에게 입덕했다.(나, 오직 너만을): Chapter 21 - Chapter 26

26 Chapters

21화. 눈 오는 밤, 두드리는 소리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게 보였다.소리도 없이, 조용히.왜 이렇게 서럽지.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아버지의 빚은 다 갚을 수 있을는지.언제쯤 나도 평범한 여자로서 살아갈 수 있을는지.그러다 나도 모르게 우석의 너른 가슴이 떠올랐다.모텔 이불 속에서 나를 꽉 끌어안고 있던 그 팔의 온기가 다시 느껴졌다.단단하고 따뜻하던 그 가슴.그 품에 안겨 울고 싶어졌다.아, 나 또 차우석 생각하고 있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보니— 차우석이었다.받아야 하나.나는 한참 화면을 들여다봤다.받으려고 손을 뻗는데 벨 소리가 뚝 끊겼다.그리고 다시 울렸다.나는 손을 거뒀다.지금 이 울다만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서 어떻게 할 건데.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눈을 질끈 감았다.쾅쾅, 쾅쾅—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어느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주인집 아주머니인가.겨우 몸을 일으켜 현관문을 열었다.그런데.눈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코와 귀가 빨갛게 얼어 있는 차우석이 서 있었다."야… 너… 왜 내 전화를 안 받는…"헉헉 숨을 고르며 그가 말했다."또 그 나쁜 놈들한테 쫓기는 줄 알고…"그 말에 나는 굳어버렸다.뛰어왔구나.이 눈 속을."그래서 눈 오는데 여기까지 온 거예요?""그래, 임마!"들어오란 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성큼 안으로 들어왔다."야! 너 불도 안 켜고 있었어?"딸깍— 불이 켜졌다.환해진 방 안.그의 눈이 가늘어졌다.내 눈가에 남아 있는 눈물의 흔적 때문이었다."너, 울었어?"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놀람과 걱정이 뒤섞인.나는 고개를 돌렸다."아니에요."그가 방 안을 둘러봤다.보일러 조절기로 다가가 확인하더니 인상을 썼다."야! 너 보일러 고장났으면 나한테라도 전화를 해야지.""괜찮아요. 옷 많이 입고 있어요. 잠깐만요. 따뜻한 차 줄게요. 그거 마시고 가세요."나는 싱크대로 가 컵을 꺼내 들었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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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라면과 압박붕대

나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탁자 한쪽에 쌓인 대본집들을 봤다."이거 다 작품 들어온 거예요?""응.""이렇게 많은 제의가 들어오는데 지금 백수예요?""그러게. 나도 미치겠다. 우리 대표가 날 영 못 믿어 해서.""형 소속사 대표님이요?""응. 내 연기를 별로라고 생각해.""설마요. 형 연기 좋던데.""그래? 너 내가 나온 거 봤어?"봤다 뿐일까. 틈만 나면 찾아봤다."네.""야, 영광인걸. 정말 연기 좋았어?""네.""특히 어떤 부분이?"나는 잠깐 생각했다."살아 있다고 해야 하나요. 눈빛도 그렇고 감정도 그렇고,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았어요.""햐— 너 연기 좀 아는데."우석이 갑자기 젓가락을 탁 내려놓더니 대본집 하나를 집어 들었다."그럼 나 이 대사 해볼 테니까 이 역할 맞을지 판단 좀 해줘."그리고 나를 바라봤다.눈빛이 달라졌다.아까까지의 우석이 아니었다.가볍고 능청스러운 그 얼굴이 순식간에 무거워지며, 깊고 서늘한 눈이 나를 향했다."저 당신의 남편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습니까? 닮은 사람일 뿐이라고요. 다시는 내게 그 사람 이름 올리지 말아요."나는 젓가락을 놓칠 뻔했다.미쳤다.너무 멋있다.저 눈빛에 저 목소리에, 당장이라도 빠져들 것 같아서.흠흠—나는 헛기침을 하며 라면을 집어 올렸다."눈에 힘을 조금만 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아, 그래? 그럼 다시 해볼 테니까—""아이, 제가 뭘 안다고요. 괜찮아요. 그냥 해본 소리예요.""야! 놀리지 마! 나 상처받을 뻔했다고. 내 연기가 별로인가 해서."풉—웃음이 새어 나왔다."왜 웃어?""그냥요. 라면 먹다 말고 그렇게 빨리 감정 잡고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데, 왜 대표님이 형 연기를 못 미더워하겠어요. 제 눈엔 다 좋던데."그 말에 우석이 갑자기 손을 뻗었다.덥석—내 손을 잡았다."그치? 혁아! 너 정말이지? 내 연기 괜찮은 거지?"그의 눈이 간절했다.저 단단하고 능청스러운 남자가, 이렇게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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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정말 헤어나지 못하면 어떡할 건데.

안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나도 오랫동안 돈에 허덕여봤다.그때 누군가 동정하듯 돈 이야기를 꺼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나왔을 거다.자존심도 없이 살 수는 없으니까.혁도 그럴 거다.그리고 무엇보다 돈과 얽히면 그 관계가 오래 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아버지를 통해서 뼈져리게 알게 되었다.그러면 어떻게 이 녀석을 도와줄 수 있을까.나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고민했다.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그러면서도 머릿속은 계속 작은 방에 가 있었다.잠은 잘 자고 있을까. 춥지는 않을까.나는 천장을 향해 길게 숨을 내쉬었다.그러다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켰다.'남자한테 자꾸 심장이 뛰는 이유'검색창에 쳐놓은 걸 보고 화들짝 놀라 지워버렸다.내가 지금 뭘 검색하고 있는 거야.나는 스마트폰을 저 멀리 내던지듯 내려놓았다.#뽀송한 이불이었다.나는 눈을 감은 채로 이불의 감촉을 느꼈다.부드럽고 따뜻했다.차우석의 집 작은 방의 침대였다.여자들이 환장하는 대스타 차우석의 집에, 그의 옷을 입고, 그의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나.이러면 안 되는데.자꾸 그의 앞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보일러 고장 난 옥탑방에서 울다가 잠든 모습을, 눈 속을 달려온 그가 봐버렸다.우석은 얼마든지 잘난 여자들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이다.내가 남장을 하지 않은 일반 여자였다면, 그리고 채령을 닮지 않았다면— 우석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을까?그 생각에 미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나는 잠이 오지 않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클럽에서 찍어온 장부 사진들을 열었다.숫자들을 유심히 들여다봤다.변사장은 김실장이 돈을 빼돌린다고 했다.도대체 어떻게.사진을 확대하며 한 줄씩 살폈다.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그때 눈에 들어오는 항목.VIP 파티 재료 비용. 양주, 케이크… 특별 선물 제작비.구체적인 항목 표시가 없었다.특별 선물이라니, 도대체 어떤 선물이길래 항목란이 비어 있을까.그때 거실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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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라면이요

늦잠이었다.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전 9시였다.나는 서둘러 방문을 열고 나갔다.그런데 집에 우석이 없었다.탁자 위에 메모가 놓여 있었다.식탁에 아침 차려 놓았어. 먹고 가.정갈한 글씨였다.나는 그 메모를 한참 들여다봤다.식탁으로 가보니 여러 가지 건강식이 차려져 있었다.따뜻하게 데워진 국, 반찬들, 그리고 잡곡밥.알면 알수록 너무 탐나는 남자다.눈시울이 뜨거워졌다.그런데 손이 가지 않았다.젓가락을 들려다가 내려놓았다.그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남자인 척. 탐정인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나는 옷을 단정하게 개어두고 집 밖으로 나왔다.눈이 그쳐 있었다.하지만 세상은 온통 하얀색이었다.그러고 보니 내일모레가 크리스마스이브였다.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나는 옥탑방으로 가는 하얀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했다.차우석.당신은 아직 모른다.내가 여자라는 것도.내가 다시 당신에게 한없이 빠져들고 있다는 것도.발자국이 눈 위에 하나씩 찍혔다.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처럼, 이 감정도 이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기석이 잡아준 소개팅 장소는 청담동 조용한 레스토랑이었다.판사라고 했다.나이는 스물여섯.이렇게나 젊은데 판사를 할 수 있나?하는 생각을 하며 앞에 서 있는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단정하고 똑 부러진 인상이었다.그녀에게 짧게 인사를 한 후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선 혁이 아침은 먹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차우석 씨, 커피는 어떤 걸로 드세요?"맞은편에서 여자가 물었다.단정한 머리, 또렷한 눈매.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나은 사람이었다."아, 네. 아무거나 괜찮습니다.""아무거나요?"그녀가 살짝 웃었다."바닐라 라떼 좋아하세요?""네, 좋습니다."메모를 봤을까.밥은 먹고 나갔을까.아니면 그냥 나갔을까."차우석 씨?""네?""요즘 어떤 작품 준비하고 계세요?"나는 정신을 차리고 웃어 보였다."아, 아직 결정된 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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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혁의 누나

혁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나는 잠깐 그 빈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시동을 걸었다.아침은 먹고 나간 건지.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크리스마스이브 아침. 하얗게 눈이 내렸다.나는 사무실 한쪽에 작은 난로를 끼고 앉아 손을 호호 불어가며 클럽에서 찍어온 장부 사진을 들여다봤다.밖에서는 캐럴이 울리고 있었다.세상은 온통 들뜬 분위기인데, 나는 숫자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아무리 들여다봐도 수상한 건 딱 하나뿐이었다.VIP를 위한 특별 선물 제작비.항목 미기재.도대체 어떤 선물이길래 항목란이 비어 있을까.이건 직접 탐문을 해봐야 했다.김실장의 눈을 피해 클럽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려면— 다시 여장을 해야 한다.나는 옷장에서 원피스를 꺼냈다.스타킹을 신고, 가발을 쓰고,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시작했다.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장을 하고 클럽에 잠입하는 탐정.어딘지 웃기면서도 서글픈 상황이었다.마지막으로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바르고 있는데—벌컥.문이 열렸다."혁아! 넌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일을—"우석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나는 립스틱을 바르던 손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봤다.우석이 문가에 굳어 서 있었다.눈이 동그랗게 커진 채로.이런, 문을 잠갔어야 했는데.심장이 쿵 내려앉았다.하지만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리에서 일어섰다."누구시죠?"우석이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아… 유 탐정과 아는 사람입니다. 유 탐정은 어디 갔습니까?""급한 일이 있다면서 나갔어요. 오늘은 사무실에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그런데 당신은 왜 여기에…""아, 혁이 누나예요."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갈수록 태산이다.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우석이 나를 찬찬히 바라봤다.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눈빛이었다.그러고 보니 우석에게 남동생 하나 있다고 했는데..."많이 닮으셨군요. 혁이랑. 그런데 우리 어디서 본 적 없습니까?"뜨끔했다.하지만 시치미를 뗐다."글쎄요. 전 기억이 잘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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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크리스마스 이브의 잠입

나는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았다.그런데 도로에서 택시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아까 유성희가 탄 택시였다.나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었다.왜?스스로도 답을 몰랐다.그냥 핸들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택시가 멈춘 곳은— 얼마 전 솔비를 찾으러 갔던 그 클럽 앞이었다.유성희가 내렸다.클럽 입구에 서 있던 직원이 그녀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길을 열어줬다.그리고 그녀가 들어가고 나서도, 그 직원의 시선은 한참 동안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나는 마스크를 쓰고 차에서 내렸다.나의 출입을 막는 직원에게 5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자 바로 통과였다.클럽 안은 요란했다.음악 소리, 조명,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나는 주위를 훑으며 유성희를 찾았다.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 위로 사라지는 원피스 자락이 보였다.따라가려는데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오빠! 여기 왜 온 거야?"돌아보니 이솔이었다."아, 이솔아. 넌 여기 왜—""솔비가 또 학원 땡땡이쳤어. 여기 온 것 같아서 잡으러 온 거야."이솔이 허리에 손을 얹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오빠는?""나도 잠깐 볼일이 있어서.""무슨 볼일?""그냥 볼일."이솔이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날카로운 눈이었다."오빠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없다니까.""오빠"이솔이 목소리를 낮췄다."이런 곳 조심해. 얼마 전에 여기서 사람 사고가 있었어. 여자인데, 아직 정확한 경위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나는 굳었다."사고가 있었다고?""그래서 솔비 더 단속하는 거야. 이런 위험한 곳에 드나들면 안 되잖아."이솔이 어깨를 떨었다.나는 2층 계단 쪽을 바라봤다.유성희가 사라진 방향.이 클럽에서 사고가 있었다.그리고 혁의 누나라는 여자가 혼자 저 안으로 들어갔다.볼일이 있다고 했지.탐정 사무소에서 혁의 누나라고 소개한 여자가 왜 하필 이 클럽에.뭔가 이상했다.이상한 게 하나둘이 아니었다.혁에게 조폭들이 달라붙던 것, 밀린 월세, 갈비뼈 압박붕대. 그리고 누나라는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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