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해일이 몰고 온 바닷물이 서서히 빠져나가며, 연실군 해안가는 처참한 민낯을 드러냈다.비바람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고,먹구름 사이로 푸르스름한 새벽의 첫새벽 빛이 해안선을 비추기 시작했다.고지대에서 대기하던 도훈과 수아는 물이 빠지자마자소방차를 몰고 해안가 붕괴 현장으로 폭풍 질주했다."강태풍-! 서나래-! 살아있으면 대답해, 이 독종들아-!"도훈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흙탕을 구르며 소리쳤다.수아 역시 손전등을 사방으로 비추며 잔해더미를 파헤쳤다.하지만 사방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부서진 강철 기둥과 콘크리트 잔해들만 널려있을 뿐이었다."차 반장님…… 저기…… 저기 좀 보세요!"수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거대한 선박용 계류 윈치 기둥에 사슬로 묶여 있는 거대한 실루엣이 있었다.진흙과 피로 범벅이 된 채, 등을 둥글게 말아 무언가를 꼭 껴안고 있는 남자.강태풍이었다.도훈과 수아가 미친 듯이 달려가 강태풍의 어깨를 붙잡는 순간,강태풍이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그의 온몸은 부러지고 찢겨 만신창이였지만,그의 거대한 품 안에서는 서나래가 미약하지만 규칙적인 숨을 내쉬며 살아있었다."정말,, 진짜 살아있었습니다……."도훈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강태풍은 피기 없는 입술을 움직여 겨우 묵직하게 미소를 지었다.서나래를 품에 안고 민수아와 차도훈에게 발견되었을 때,강태풍은 이미 반쯤 유령 같은 몰골이었다.서나래와 무사히 임시 진료소 텐트로 이송된 후에야강태풍은 어깨와 등, 온 몸에 가득한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링거를 꽂은 채 옆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완벽한 암흑과 거대한 수압이 강태풍과 강서나래의 온몸을 짓눌렀다.20미터 높이의 해일이 들이친 바다 속은 말 그대로 거대한 세탁기 내부 같았다.부서진 콘크리트 조각과 자동차, 간판들이무서운 속도로 수중을 날아다니며 강태풍의 등을 때렸다.둔탁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강태풍은 기둥을 잡은 팔에 힘을 빼지 않았다.그의 몸은 서나래를 향해 날아오는 모든 흉기들을 막아내는 거대한 인간 방패였다.물속에서 서나래는 수압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지만,자신을 감싸 안은 태풍의 단단한 팔뚝과 그의 체온 덕분에 공포를 이겨내고 있었다.하지만 인간의 폐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1분이 지나고 2분이 가까워지자, 나래의 입술 사이로 기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산소가 고갈되며 의식이 흐려지는 위급 상황이었다.강태풍은 물속에서 서나래의 몸이 늘어지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그는 감겼던 눈을 번쩍 떴다.흙탕물 속이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서나래의 하얀 얼굴만큼은 선명하게 보였다.강태풍은 주저 없이 자기 호흡기에 남은 마지막 공기를 머금은 뒤,서나래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겹쳐 가볍게 밀착시켰다.수중에서 이루어진, 생과 사를 가르는 처절하고도 간절한 인공호흡이자그들의 첫 입맞춤이었다.강태풍의 공기가 나래의 폐부로 흘러들어가자, 서나래의 감겼던 눈이 번쩍 떠졌다.흐려지던 시야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강태풍의 피비린내 나는 단단한 눈빛이 보였다.'아직 안 끝났어.' 강태풍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서나래는 물속에서 태강풍의 목을 더 꽉 끌어안았다.대자연의 무자비한 침공 속에서도, 두 청춘의 집념과 사랑은심연의 바다보다 더 깊고 단단하게 엉켜 있었다.지독한 와류 속에서 거인의 반격은 멈추지 않았다.
해일이 상륙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3분.연실군 저지대에 남아있던 모든 소방차와 경찰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고지대를 향해 역주행하기 시작했다.도훈은 수아와 함께 노인을 소방차 뒷좌석에 안전하게 눕힌 뒤,백미러를 통해 해안가 붕괴 현장을 바라보았다.거대한 해일의 그림자가 겅태풍과 강서나래가 있는 구역을 덮치기 직전이었다."제길! 해경 형씨랑 서나래가 아직 저기 있다고! 차 돌려요, 민 순경!"도훈이 악을 쓰며 문을 열려 하자, 수아가 눈물을 흘리며 도훈의 팔을 꽉 붙잡았다."안 돼요, 차 반장님! 지금 들어가면 우리 다 같이 쓸려가요! 강 팀장님을 믿어야 해요! 그 사람은 태풍 속에서 태어난 사람이잖아요!"수아의 외침에 도훈은 주먹으로 대시보드를 쾅 내리쳤다.분노와 무력감의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렀다."바보 같은 해경새끼…… 꼭 살아서 돌아와라. 내 첫사랑 잘 지키라고 했잖아……."그 시각, 해안가 잔해더미 속에서 강태풍은 주변에서 가장 단단하고 깊게 박혀 있는대형 선박용 계류 윈치(Winch)의 강철 기둥을 발견했다.강태풍은 자기 몸을 기둥에 쇠사슬로 감아 고정하고, 서나래를 자기 가슴과 기둥 사이에 밀착시켰다."숨 크게 쉬십시오, 서나래 씨! 파도가 덮치면 절대로 손 놓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최대한 숨을 참아야 합니다..익사하면 안됩니다. 알아들었죠?"강태풍의 외침에 서나래는 이 악물고 강태풍의 찢어진 제복 상의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었다.그의 가슴속에서 터질 듯이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이 손끝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그것은 32년 전 자기 어머니가 살려낸,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살려내야 할 완벽한 운명의 심장이었다."강태풍! 나 당신 믿어요! 그러니까 절대 죽지 말아요! 우리, 꼭 살아요!!"서나래의 비명이 끝남과 동시에,시커먼 해일의 거대한 장벽이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완전히 덮쳐버렸다.콰과과과광-! 도시의 마지막 비명이 암흑 속으로 매몰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파도가 아니었다.제우스의 후면 폭풍우와 천문조가 겹치며 발생한,높이만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장벽 형태의 해일(Tsunami)이었다.시커먼 바닷물이 하늘과 경계를 없앤 채,무시무시한 속도로 연실군 해안선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다.해일이 다가올 때 발생하는 특유의 기괴한 바람 소리와 대지의 울림이영웅들의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말도 안 돼…… 저런 걸 인간이 어떻게 막아……."현장형 불도저 의사로 산전수전 다 겪은 서나래조차,눈앞에 나타난 대자연의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인간의 집념이니 사명이니 하는 단어들이 한낱 모래성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손을 단단하게 맞잡아오는 거칠고 뜨거운 손길이 있었다.강태풍이었다.강태풍은 서나래를 자기 등 뒤로 숨기듯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거대한 해일의 장벽을 정면으로 매섭게 노려보았다.그의 목에 걸린 은빛 구조 목걸이가 번뜩였다."강 선생, 내 눈 똑바로 보십시오."강태풍의 낮은 목소리가 폭풍의 괴성을 뚫고 서나래의 귓가에 꽂혔다.서나래가 떨리는 눈으로 강태풍을 바라보자,강태풍은 평소 서나래 앞에서만 보여주던 그 깊고 순정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32년 전, 서나래 씨 어머니가 폭풍 속에서 날 살려주셨을 때 이미 대자연과의 싸움은 이겼던 겁니다. 내 심장이 뛰고 있는 한, 저 바다는 절대로 당신을 데려가지 못합니다."강태풍은 허리춤의 구명줄을 뽑아 서나래의 허리와 자신의 몸을 단단하게 결속했다.카라비너가 체결되는 철컥 소리가 사선에서 울리는 유일한 구원의 신호음 같았다."꽉 잡으십시오. 이번엔 내가 당신의 방벽입니다."강태풍의 거구가 해일을 향해 단단하게 굳어졌다.과거 동료를 잃었던 트라우마의 바다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오직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내겠다는 해경 구조대의 독종 본능만이그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지구대 열혈 순경 수아와 소방관 도훈이 극적으로 고립을 탈출해 소방차로 복귀할 무렵,연실군 해안가의 진짜 비극은 다른 곳에서 터지고 있었다.수년 동안 바닷물에 침식되어 왔던 해안 상업 지구의 거대한 축대와 콘크리트 방벽이,제우스 본진이 몰고 온 15미터가 넘는 살인적인 삼각파도의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쿠구구구구-" 하는 비명과 함께 통째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강 팀장! 축대 무너진다! 당장 대피해!"본부의 비상 무전이 간신히 터진 순간,강태풍과 서나래는 이미 해안가 직격 범역에 있는 간이 응급실에서마지막 중상자를 이송하던 중이었다.콰아아앙-! 하는 대폭발 같은 소리와 함께 지반이 내려앉으며상가 건물 두 채가 도미노처럼 쓰러졌다.엄청난 양의 토사와 콘크리트 파편이 구급차와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폭사하듯 들이쳤다.강태풍은 본능적으로 서나래의 허리를 낚아채며자신의 거구의 몸으로 그녀를 완벽하게 감싸 안고 바닥을 굴렀다.두꺼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강태풍의 해경 헬멧을 스쳐 지나가며 둔탁한 타격음이 일어났다.강태풍은 엄청난 충격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졌지만,서나래를 품은 팔에는 단 1밀리미터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토사와 비바람이 두 사람의 온몸을 덮쳤고,사방은 순식간에 부서진 건물 잔해로 가득 찬 사선으로 변해버렸다."강태풍! 정신 차려봐요! 눈 떠봐!"서나래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강태풍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강태풍이 핏발 선 눈을 번쩍 뜨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평소 냉철하던 테토남 강태풍은서나래의 얼굴에 상처가 난 것을 보자마자 눈빛이 야수처럼 돌변했다."서나래 씨…얼굴이... 어디 다친 데 없습니까? 내 말 들립니까?""나는 괜찮아요! 당신 등에서 또 피 나잖아요!"서나래가 소리쳤지만, 강태풍은 자기 상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서나래를 일으켜 세웠다.하지만 그들이 발을 디딘 해안가 대지는 이미 바다를 향해 기괴하게 기울어져 있었다.방벽이 사라진 해안가는 성난 바다의 침공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민 순경-, 민수아-! 어디 있어! 대답해요, 이 바보야-!"전복 위기를 넘기며 골목길 앞까지 소방차를 몰고 온 차도훈이운전대를 내팽개치고 바다처럼 변한 골목길로 뛰어들었다.무너진 전신주와 철골 잔해들이 엉켜 있어 소방차도 더는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도훈은 아직 통증이 남아있는 오른쪽 어깨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왼팔로 거친 와류를 밀어내며 수아가 있을 법한 주택을 향해 헤엄치듯 전진했다."차…… 반장님……?"귀를 찢는 비바람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수아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수아의 손전등 빛이 어둠 속을 헤치던 도훈의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도훈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거기 가만히 있어요! 내가 갑니다!"도훈이 무너진 철골 잔해를 맨손으로 붙잡고 들어 올렸다.날카로운 철판에 손바닥이 찢어져 붉은 피가 진흙탕 물에 섞여 나갔지만,도훈은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제우스의 바람이 그를 밀어내려 할 때마다,도훈은 수아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대자연의 주먹질을 온몸으로 받아냈다.마침내 주택 마당으로 진입한 도훈은물속으로 가라앉기 직전이던 수아와 노인을 양팔로 낚아채듯 끌어당겼다.수아는 도훈의 단단한 방화복 가슴팍에 안기자마자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왜 이제 와요…… 진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미안합니다, 늦어서. 내가 말했잖아요? 당신 두고 평생 소방서에서 혼자 안 산다고."도훈이 수아의 젖은 얼굴을 제 손으로 감싸 쥐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대형견 스타일의 쾌활함 속에 감춰진 진짜 프로페셔널한 소방관의 순정이 빛나는 순간이었다.도훈은 노인을 자기 등에 업고, 한 손으로는 수아의 손을 터질 것처럼 꽉 맞잡았다.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에 의지해 차오르는 바닷물을 헤치며 고립 지역을 탈출하기 시작했다.폭풍의 한가운데서, 소방과 경찰의 유쾌하면서도 처절한 로맨스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