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비가 너무 와서 앞이 안 보여요! 차 소방관님, 조금만 천천히...!"수아가 흙탕물에 발이 미끄러져 중심을 잃었다.도훈이 재빨리 수아의 팔을 붙잡아 끌어 당겼다.할머니를 이미 이송 차량에 태운 세 사람은마지막 남은 주택의 상태를 확인하던 중이었다.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땅을 울리는 기분 나쁜 진동이 발밑에서부터 전해졌다."위험해! 피해!"도훈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주택가 뒤편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콘크리트 축대에 균열이 가더니,순식간에 토사와 함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그 거대한 장벽이 무너지는 바로 아래에 민수아 순경이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민수아!!"도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날렸다.흙더미와 깨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찰나,도훈이 민수아를 거칠게 안아 품에 넣고 굴렀다.쾅-! 쿠르릉--!자욱한 먼지와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커다란 비명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차도훈! 민 순경님! 도훈아! 수아 씨!"뒤늦게 골목으로 진입하던 서나래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축대의 절반이 무너져 내려 골목을 완전히 막아버린 상태였다.서나래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어떡해, 어떡해.... 도훈아!! 수아 씨!""비켜 봐여, 강 선생!"그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난 강태풍이 서나래의 어깨를 밀치고 잔해 앞으로 나섰다.강태풍의 얼굴은 빗물과 땀, 그리고 극도의 긴장감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그는 즉시 무너진 틈새를 살피며 소리쳤다." 차 대원! 내 목소리 들립니까? 들리면 대답해!!"잠시 후, 잔해 너머에서 쿨럭거리는 거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콜록콜록! 어.... 강 대원님.........? 나 여기.... 살아 있어요.""민 순경은? 민 순경 상태는 어떤가?""제 품안에... 감싸 안아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다리 위로 큰 돌이 떨어져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곧이어 민수아의 울먹이는 목소리도 들려왔다."차 소방관님, 어깨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요..
하천에서 역류한 물은 이미 도로를 삼키고 있었다.연실군 저지대 마을의 골목길은 이미 무릎까지 차오른 흙탕물로 인해거대한 수로처럼 변해 벼렸다.물 표면 위로는 쓰레기통과 스티로품 상자들이 둥둥 떠다녔고,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수가 부러질 듯 비틀거렸다."어르신! 계세요?! 당장 나오셔야 합니다! 물이 더 차오르면 문이 안 열려요!"민수아 순경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며 연신 빌라 단지의 문을 두드렸다.하지만 노후된 주택가의 주민들은 평생 살아온 집을 떠나기 싫다며문을 걸어 잠그거나, 짐을 챙기느라 지체하고 있었다."민 순경, 저기 2층 창문에 사람 있다!"도훈이 소리치며 서나래와 함께 달려갔다.창문 너머로 한 할머니가 안절부절 못하며 울먹이고 있었다.도훈이 신속하게 문을 부수고 들어가 할머니를 들쳐 업었다.서나래는 즉시 할머니의 안색을 살폈다."할머니, 숨 가쁘거나 가슴 아픈 데 없으세요? 괜찮으니까 제 손 꼭 잡으세요!"그 시각, 강태풍은 가장 위험한 하천 제방 근처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물살이 무서운 속도로 소용돌이치며 제방을 갉아먹고 있었다."모두 앞사람 로프 꽉 잡으세요! 서두르셔야 합니다! 한 줄로 움직이세요, 한줄로!"강태풍의 굵고 정돈된 목소리가 폭우 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그의 냉철한 지휘 아래 혼비백산했던 주민들이 차례로 안전한 고지대로 유도되었다.하지만 자연의 공습은 인간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콰과과광-! 하는 굉음과 함께 저 멀리서 지반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강 대원님! 저쩍 골목길 안쪽에 아직 대피 못한 가구가 있어요!"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민 순경의 다급한 목소리에 강태풍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 골목은 서나래와 차도훈이 들어간 방향이었다."강서나래! 차 소방관! 당장 그 골목에서 빠져나와! 거긴 축대 붕괴 위험 지역이다!"강태풍이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직거림과 폭우 소리뿐이었다.물은 이제 허리춤까지 차오르고 있었다.시야는 고작 코앞 1
하늘은 이미 검은색을 넘어 핏빛이 감도는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연실군 전역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는 단순한 경고음이 아니었다.그것은 거대한 괴물, 처강력 태풍 가 마침내 이 작은 해안 마을의 턱밑까지 당도했음을 알리는 비명이었다.지익-, 지이익--.정전이 반복되던 합동 구조 본부 (TF) 통제실의 모니터가 거칠게 흔들렸다.기상청에서 보내온 위성 이미지는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태풍의 눈이 뚜렷하게 잡히다 못해, 마치 지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다."현재 시각 17시 40분을 기해 연실군 전역에 최고 단계 주민 대피령을 발령합니다! 반복합니다. 상습 침수 구역 및 해안가 저지대 주민들은 지금 즉시 지정된 대피소인 연실 군청과 정합체육관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통제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방송망을 타고 군청 스피커와 순찰차의 확성기로 퍼져나났다.통제실 한구석에서 밤새 대기하며 앙숙처럼 으르렁거리던 강태풍과 강서나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조금 전까지의 투덜거림은 온데간데없고, 두 사람의 눈빛은 무섭게 가라앉아 있었다."강 선생."강태풍 장비를 챙기며 서나래를 불렀다.무뚝뚝한 음성이었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지금부터는 진짜 실전입니다. 훈련이나 시뮬레이션 따위랑은 비교도 안 될 겁니다. 내 지시 없이 멋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서나래는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TF 전용 방수 재킷을 걸쳐 입으며 코방귀를 뀌었다."강 구조대원님, 걱정 마시죠. 나 불도저 의사 강서나래예요.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들어갈 준비 되어 있으니까,그쪽이야말로 내 뒤나 잘 지켜요."두 강 씨의 시선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겼다.밤새 좁은 통제실에서 은근한 기류를 나누었던 분위기는 폭풍 전야의 긴장감 속으로 완전히 증발한 듯 했다.그때 통제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소방관 차도훈과 지구대 민수아 순경이 들이다쳤다.두 사람 모두 이미 온몸이 빗물에 젖어 있었다."강 대원님! 해안가 저지대 하천이
새벽 4시. 태풍 의 전면 강풍대가 연실군을 완전히 장악하면서컨테이너가 통째로 들썩였다.하지만 지독한 피로감 앞에서는 그 공포마저 잠의 장막을 뚫지 못했다,종일 현장을 뛰어다니며 환자들을 돌보던 서나래는,결국 간이 의자 위에서 앉은 채로 벽에 머리를 기대고 까무러치듯 잠이 들어 버렸다.스스스...............고요한 컨테이너 안, 강태풍이 자리에서 일어나 잠든 서나래의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무릎을 굽혀 서나래의 얼굴과 시선을 맞추었다.늘 당당하고 팩폭을 날리던 입술은 조금 열려 있었고,뺨에는 현장에서 묻은 옅은 진흙 자국이 남아 있었디.앳된 얼굴 어디에 그런 불도저 같은 깡다구가 숨겨져 있는지,태풍은 보면 볼수록 이 여자가 불가사의했다.강태풍은 손을 뻗어 서나래의 뺨에 묻은 진흙을 조심스럽게 닦아내려 했다.거친 잠수 장갑을 벗은 그의 맨 손가락이 서나래의 부드러운 살결에 닿았다.아주 살짝, 스치듯 만진 손길이었지만 강태풍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쿵- 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3년 전 사고 이후, 그의 심장은 차가운 심해의 얼음덩어리와 같았다.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고, 스스로를 징벌하듯 위험한 현장만을 찾아다녔다.하지만 이 겁 없는 여자 의사가 그의 삶에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온 순간부터,그의 차가운 심장이 미세하게 , 그리고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미련한 여자.."강태풍은 서나래의 어깨 위로 자신의 두꺼운 방화복 외투를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자신의 체온이 배어 있는 옷이 닿자, 서나래는 기분이 좋은지 태풍의 외투를 꼭 쥐며 품으로 파고들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강태풍의 눈빛에, 평소의 냉혈한 같은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깊고 애틋한 다정함만이 가득 차올랐다.창밖의 번개가 번쩍이며 컨테이너 안을 순간적으로 환하게 비추었다.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도,강태풍의 시선은 오롯이 잠든 서나래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자신이 이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아니,어
쿵-.제1대피소 건물 옆 임시 통제실로 쓰이는 좁은 컨테이너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비에 완전히 젖은 강태풍이 들이닥쳤다.그의 몸에서 떨어진 빗물이 컨테이너 바닥에 순식간에 흥건한 웅덩이를 만들었다.강태풍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컵라면을 들고 선 서나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강서나래!""앗, 깜짝이야! 문 부서지겠어요. 왜 그렇게 무섭게 봐요?'서나래가 새침하게 받아치자,강태풍은 뚜벅뚜벅 다가와 서나래의 손에 들린 컵라면을 빼앗아탁자에 탁! 내려놓았다.두 사람의 거리가 좁은 컨테이너 안에서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워졌다."내 말이 말 같지 않습니까? 내가 분명히 본관 밖은 지옥이라고, 나가지 말라고 내 손까지 떨면서 말했을 텐데요."강태풍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와 안도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서나래는 그의 젖은 얼굴과 붉어진 눈시울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졌다.하지만 불도저답게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저도 바보가 아니니 지옥인 거 알아요. 근데 의사 면허증 딸 때 나도 선서라는 걸 했단 말이에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고려하겠다고. 강 대원님 눈에는 내가 어려보이고 보호 받아야 할 철없는 여자로 보일지 몰라도, 나 서울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피 떡칠 한 중증 환자들 하루에 수십 명씩 보던 의사예요. 나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누가 약하다고 했어요? 미련하다고 하는 거지!"강태풍은 컨테이너 벽에 기대어 앉으며 헬멧을 벗어 던졌다.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빗물이 그의 날카로운 콧날을 타고 흘러내렸다."거기 잠깐 앉아봐요. 젖은 옷 그대로 있으면 저체온증 와요. 구조대원이 환자 되면 답도 없으니까."서나래가 수건을 던져주며 핀잔을 주자, 강태풍은 수건을 받아 쥐고도 쓰지 않은 채,서나래를 빤히 바라보았다."강 선생님은 평소에도 그렇게 브레이크가 없습니까?""네. 면허증에 브레이크 달면 환자만 놓쳐요. 괜히 불도저겠어요? 강 대원님이야말로 평소에도 그렇게 인상만 쓰고 소리
치이이익-. 치익-.폭풍우가 거세지면서 무전기 너머의 소리도 심한 잡음과 혼선으로 가득 찼다.제1대피소 임시 의료 텐트 안에서 정신없이 환자의 둔부(머리)를 봉합하던 서나래는,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 "강 구조대! 강 구조대, 응답하라! 현재 하천 하류 차단벽 붕괴 조짐이다, 현장 대원들은 즉시 철수............ 치이익.......... 철수하라!" -"강 구조대? 나를 부르는 건가?"서나래는 간이 의무실에 혼자 남아 있던 터라,무전 속 라는 호출이 의료지원단장인 자신을 부르는 줄 착각했다.그녀는 피 묻은 장갑을 벗지도 못한 채 다급하게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여기는 강 구조대! 서나래 의사입니다. 지금 대피소에 거동 불편한 중상자가 3명이나 있어서 철수가 불가능합니다! 차량 지원이 가능할까요? 아니면............"-"뭐야? 강서나래? 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무전기 너머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는 찢어지는 잡음을 뚫고 들어올 만큼 거칠고 사나웠다.강태풍이었다.강태풍은 소방 구조차를 몰고 제1대피소로 향하던 중 ,해경 특수구조대를 뜻하는 호출 무전에웬 여자 의사의 목소리가 채 가듯 들어오자 이성을 잃고 버럭 고함을 지른 것이었다."강 대원님?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아까 강 구조대 찾아서 대답한 것 뿐인데."-"그 무전은 해경 특조대 강 구조대원을 찾는 무전이었어. 당신이 왜 내 무전을 채 가! 그리고 내가 분명히 본관에서 대기하라고 명령했을 텐데.. 기어코 거길 기어 나갔어? 지금 거기가 어떤 상태인 줄 알고 그래!!""환자가 있으니까 왔죠! 그럼 의사가 환자를 나 몰라라 하고 숨어 있어요? 강 대원님이야말로 왜 나한테 명령질이에요? 내가 당신 부하인가요?"서나래도 지지 않고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빽 질러댔다. 옆에서 치료를 받던 주민들이 눈치를 볼 만큼 서슬 퍼런 앙숙들의 무전 티키타카였다.- "시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