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도윤이 정훈의 입에 물려있던 재갈을 거칠게 풀어냈다.
"...설마."
이정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너."
도윤은 웃었다.
"기억은 하시네요."
그러나 금새 웃음기를 지우고 조용히 물었다.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누구 지시였습니까."
"..."
"김성철 사건."
"..."
"누가 덮으라고 했습니까."
이정훈은 이를 악물었다.
"난 모른다."
도윤이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모른다."
"그래."
"그럼 당신이 출세한 이유도 모르겠네요."
순간.
이정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윤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경장에서 경감까지."
"참 빠르더군요."
"..."
"사람 하나 죽이고 받은 대가치고는."
“...”
도윤은 정훈의 앞에 사진 하나를 내려놓았다.
활짝 웃고 있는 아이와 그 옆의 아이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는 여자.
이정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가 입술까지 새파래졌다. 그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 떨리기 시작했다.
"제발..."
"그 애들은 건드리지 마."
도윤은 잠시 사진을 바라보다가 낮게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난 당신이랑 다릅니다."
그리고 사진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린다.
"다만."
"당신 가족들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정훈의 눈이 흔들린다.
"무, 무슨..."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당신 아들."
"경찰 준비한다면서요."
순간 이정훈이 굳는다.
"..."
"아버지처럼 훌륭한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다던데."
“그만..그만해. 난 정말 몰라.”
도윤은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정훈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우리가 결정한 게 아니었어."
"...위에서 내려온 일이었다."
도윤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누구."
이정훈이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다 천천히 열렸다.
다음 날 아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조직범죄수사팀.
서하는 전날 정리한 자료를 다시 펼쳐보고 있었다.
15년 전 회계사 김성철 사망 사건.
그리고 최준혁.
그리고 이정훈.
분명 뭔가 있다. 둘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제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았다.
그때.
쾅, 하고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경위님!"
김민석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얼굴.
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정훈 경감..."
민석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겨우 말을 이었다.
"죽었습니다."
순간.
사무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뭐?"
"오늘 새벽."
"한강공원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답니다."
서하의 손에서 펜이 떨어졌다.
툭.
팀장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었다.
서하는 믿을 수 없어 망연히 혼잣말을 읊조렸다.
“이게 대체...”
“정신 차려. 현장으로 가자.”
팀장은 멍하니 서있는 서하의 어깨를 툭치며 먼저 옷을 챙겨 나갔다.
서하도 팀장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뒤를 따랐다.
한강공원 인근.
폴리스 라인이 길게 둘러쳐져 있었다.
주변에는 이미 과학수사대와 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서하는 곧장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 있습니까."
감식반 직원이 말없이 강변 쪽을 가리켰다.
파란 천이 덮여 있었다.
서하는 천천히 다가갔다.
천이 들춰졌다.
"..."
이정훈이었다.
불과 어제.
본청에서 커피를 마시며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
그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서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인은?"
옆에 있던 감식반 직원이 대답했다.
"현재로선 타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상은?"
"크게 눈에 띄는 건 없습니다."
"..."
"다만."
감식반 직원이 이정훈의 손목을 가리켰다.
"양손과 발목에서 결박 흔적이 확인됐습니다."
"..."
"사망 전에 누군가에게 묶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감금.
협박.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빠르게 이어졌다.
서하는 직감했다.
누군가가 이정훈의 입을 막으려 했다.
혹은, 무언가를 알아내려 했거나.
그렇다면.
그 사람이 알아낸 건 무엇일까.
서하는 천천히 시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과 어제.
이 남자는 자신 앞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죽었다.
너무 빠르다.
마치 누군가가 수사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현장 정리를 마치고 서로 돌아온 뒤에도 서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다.
15년 전 회계사 김성철 사망 사건.
최준혁.
이정훈.
연결고리가 하나씩 드러나는가 싶더니.
그때마다 누군가가 흔적을 지워버린다.
하지만 이제 와서 왜?
15년이나 지난 사건이다.
이미 자살로 종결된 사건.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때.
옆자리에서 김민석이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왜."
"아니..."
민석이 파일을 몇 장 뒤적였다.
"이상해서요."
"뭐가."
"15년 전 사건 말입니다."
민석이 서류를 내밀었다.
"이 부분."
"당시 담당 수사팀에서 DNA 감식을 요청했습니다."
"...DNA?"
"예."
서하는 곧바로 서류를 받아들었다.
현장 증거물 감식 요청서.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데 그 아래 적힌 문구를 보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다.
[감식 불필요]
"..."
민석도 미간을 찌푸렸다.
"거절됐네요."
"누가?"
"검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하는 서류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당시 결론은 자살.
하지만 그 결론이 나오기 전에 이미 경찰은 DNA 감식을 요청했었다.
즉, 수사팀도 처음부터 자살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감식은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건은 그대로 종결됐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민석이 낮게 말했다.
"당시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실하지도 않았는데."
"..."
"왜 DNA 감식을 막았을까요."
서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민석의 말은 계속됐다.
"더 이상한 건 따로 있습니다."
그가 다른 서류를 꺼냈다.
"시신 화장."
"..."
"사망 직후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서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유족 요청?"
"기록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민석이 고개를 저었다.
"근데 보통 이렇게 논란이 있는 사건이면 추가 확인 끝날 때까지 미루는 경우도 많잖아요."
"..."
"DNA도 안 하고."
"추가 감식도 안 하고."
"시신도 빨리 화장됐고."
민석이 조용히 말했다.
"이거 누가 너무 서둘러 덮은 것 같은데요."
"...맞아."
서하가 천천히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순간 그녀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뿐이지."
민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럼 지금 하면 되잖습니까."
"..."
"그때는 신입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서하는 고개를 들었다.
민석이 씩 웃었다.
"이제 경위님이 해결 못 하는 사건이 어딨다고요."
"아직 안 늦었습니다."
서하는 한동안 말없이 사건철을 바라보았다.
15년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신입 경찰.
그리고 지금.
광역수사단 조직범죄수사팀 형사.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최준혁.
이정훈.
회계사 김성철 사망 사건.
이제 더 이상 우연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서하는 천천히 사건철을 덮었다.
"...끝까지 간다."
민석이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 날 새벽,
도윤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든 줄 알았던 서하가 뒤척였다.
"...어디 가?"
도윤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깼어?"
낮게 웃으며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주었다.
"잠이 안 와서."
"금방 들어올게."
다시 누우려던 서하는 잠시 멈춰서 나가려던 그를 바라보았다.
희미한 어둠 속,
평소와 다른 검은 셔츠.
평소엔 차지 않는 손목 시계.
깔끔하게 쓸어넘긴 머리.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했다.
왜인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불편했다.
"...어제도 나갔어?"
도윤의 손이 멈췄다.
아주 잠깐.
정말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갑자기 그건 왜?"
서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대답해."
"..."
"어제도 나갔냐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도윤의 표정이 천천히 굳었다.
"...설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나 의심하는 거야?"
작은 카페 안, 창가 구석 자리에 앉은 남자가 몇 번이고 출입문을 바라봤다. 남자는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손에 쥔 컵은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남자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세 번째로 창밖을 확인했다. 길 건너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시선이 멈춘 채로 굳어버렸다.몇 초 뒤, 그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그제야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카페 밖.서하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오후 2시 57분.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3분이 남아있었다. 서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카페 문을 밀었다.딸랑-서하가 카페로 들어서자 남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남자의 표정은 누군가에게 쫓기듯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서하와 눈을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였다."...괜찮아."남자는 자신에게 말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입술 끝이 떨리고 있었다.서하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둘 사이에 짧지 않은 침묵이 흐른 뒤에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서하는 말없이 그의 떨리는 손끝을 유심히 살펴봤다."그때.""그냥 돌아가시라고 했는데."남자가 가방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냈다. 손을 떨며 한참이나 서하에게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천천히 말씀하세요.""괜찮습니다."서하는 재촉하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남자가 꼭 쥐고 있던 녹음기를 천천히, 아주 느리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손을 거두지 못한 채 한참 동안 녹음기만 바라봤다."...죄송합니다."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남자는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였다. 하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전.""아버지 같은 경찰이 되고 싶었습니다."고개를 떨군 남자는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근데.""아버지는.""제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남자가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서하는 아무것도 묻지
아침 일찍부터 조직범죄 수사팀 사무실은 분주했다.서하는 어젯밤 민석과 찾아낸 자료들을 팀원들 앞에서 브리핑하며 팀원들의 의견을 받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사건 파일들이 차례대로 펼쳐져 있었다. 화이트보드에는 흑룡파 관련 사건들이 연도순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모든 사건 끝에는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임태성.그 이름 위에는 붉은 동그라미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잠시 쉬는 시간.민석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경위님.""오늘은 뭐부터 파볼까요."서하는 화이트보드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임태성.""…역시 그래야겠죠.""이번엔 사람을 본다."민석은 금세 의미를 이해했다."...임 검사, 저희가 가능할까요..""응.""안 되면, 되게 만들어야지.""…겁나냐?"민석이 피식 웃었다."조금은요.""근데, 경위님도 같이 깨질 거잖습니까."서하는 마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당연하지."“깨져도 너보다 내가 먼저 깨진다. 걱정마.”서하가 민석의 등을 두어번 툭툭 두드리고는 말했다."우리한테 남은 시간은 한 달이야.""시간 없다.""그럼 시작하자."그렇게 두 사람은 오전 내내 검찰 기록과 사건 배당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임태성이 맡았던 사건들, 그중에서도 흑룡파와 연관된 사건들을 따로 분류해 정리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임태성이 맡았던 사건은 흑룡파뿐만이 아니었다. 정치권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들 역시 그의 손을 거쳐 간 경우가 유난히 많았다.사건 번호.담당 부서.기소 여부.불기소 사유.증인 명단.참고인 진술.압수수색 영장.하나하나 비교하기 시작했다.민석이 화면을 보며 서하에게 손짓했다."...경위님.""이거 이상합니다.""흑룡파 사건만 맡은 게 아니네요.""정치인.""재벌.""선거 자금.""재개발 비리...""전부 임 검사 손을 거쳤습니다."서하가 다가와 모니터를 바라봤다."...우연일까."민석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니요.""이 정도
며칠 전.서울지방검찰청.검사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비서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손님 오셨습니다."책상 위 서류를 넘기던 임태성이 고개를 들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예의를 차리고 있었지만 어딘가 위압감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낯선 얼굴, 하지만 이름은 익숙했다.새로운 흑룡파 보스. 강도윤."...도윤 대표."도윤은 가볍게 목례만 했다."처음 뵙겠습니다."임태성이 의자를 가리켰다."앉으시죠."도윤은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임태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약간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도윤을 바라보았다."무슨 일로 검찰청까지 오셨습니까."도윤은 잠시 검사실을 둘러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거래를 하나 제안드리려고 왔습니다."임태성의 눈이 가늘어졌다."...거래?""예.""검사님도 손해 볼 일은 아닙니다."임태성은 팔짱을 꼈다."들어보죠."도윤은 미리 준비해 온 서류철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하지만 서류를 열지는 않았다.대신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요즘.""경찰이 꽤 시끄럽더군요."임태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정훈 경위."그 이름이 나오자 검사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도윤은 마치 신문 기사를 읽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 사건 때문인지.""15년 전 사건까지 다시 들여다본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순간, 임태성의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김성철.그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도윤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모른 척 말을 이어갔다."...괜한 소문이었으면 좋겠습니다."짧은 침묵이 흐르고, 도윤이 이번에는 서류철을 앞으로 밀었다."본론으로 들어가죠."임태성이 천천히 서류를 펼쳤다.첫 장.도심 재개발 사업 투자 계획.두 번째 장.예상 수익.수십억 원.세 번째 장.참여 기업 명단.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사업이었다.임태성이 천천히 서류를 덮었다."...그래서, 이걸 왜 보여주시죠.""
기록보관실은 오래된 종이 냄새로 가득했다. 천장 끝까지 빼곡하게 기록들이 서가에 들어차 있었다. 민석은 양손 가득 사건 기록철을 들고 와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쿵.쿵.두꺼운 파일들이 연달아 쌓였다. 표지만 봐도 수십 건이었다.민석이 한숨을 내쉬었다."...경위님."서하는 대답 대신 파일 하나를 집어 들었다.민석이 쌓여 있는 기록철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이거... 전부 보시게요?"서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응.""...""이거 15년 치예요."민석이 헛웃음을 흘렸다."며칠은 걸리겠는데요."서하는 첫 번째 파일을 펼쳤다.낡은 종이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다 봐."민석이 그녀를 바라봤다.서하는 시선을 기록에서 떼지 않은 채 말했다."...김성철 사건이."잠시 말을 멈춘 뒤 조용히 덧붙였다."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어."민석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무슨 말씀이십니까."서하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민석을 바라봤다."흑룡파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 보면, 김성철 회계사 한 명으로 끝났을 리 없어.""분명.""비슷한 사건이 더 있었을 거야."민석도 더 이상 농담을 하지 않았다.말없이 옆 의자에 앉아 다른 파일을 펼쳤다.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기록만 넘겼다.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이어졌다.파일이 한 장 넘어갔다.또 다른 사건.또 다른 종결.또 다른 무혐의.민석이 고개를 갸웃했다."...경위님.""응.""딱히 눈에 띄는 특징이 없습니다."파일을 넘기던 손을 멈추며 말했다.“분명 사건들이 다 찝찝하게 끝난 건 맞는데…”서하도 손을 멈췄다.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아.""하나씩 보면, 안보이지."그녀는 다시 다음 파일을 펼쳤다."...하지만."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파일이 하나둘 책상 위에 펼쳐졌다.민석은 사건번호를 정리했고, 서하는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갔다.드르륵.검은 마커 뚜껑을 열었다.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가장 위에 날짜를 적었다
“윤 경위.”“...”“내가 전에도 분명 말했지.”“끝난 일을 뒤돌아보는 버릇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고.”“...죄송합니다.”서하는 시선을 떨궜다.“사건은 종결됐다.”“...공식적으로는.”박 팀장의 덧붙인 말에 서하가 놀란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앞으로 한 달."팀장이 책상 위 달력을 한번 훑어봤다."본청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일이 많다.""당분간은 정신없을 예정이라는 뜻이다."“그동안 네가 어디를 뛰어다니는지, 누굴 만나 뭘 캐고 다니는지, 일일이 신경 쓸 여유도 없겠지.”박 팀장이 고개를 들어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서하와 눈을 맞췄다.“그 안에,”"흑룡파랑 연결돼 있다는 증거를 찾아와.""하지만 한 달 뒤에도 빈손이면.""그땐 정말 사건에서 손 떼야 할거다.“"알겠나."서하가 멍하니 팀장을 바라보았다.“...팀장님.”박 팀장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이번엔 느낌 말고 증거를 가져와."“대답.”“....예, 알겠습니다.”서하의 눈이 의지로 다시 한번 불타올랐다.팀장이 다시 서류에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그럼 나가봐. 팀원들도 퇴근하라고 하고.”팀장실 문이 닫혔다.서하는 문 앞에 잠시 기대 선 채 깊게 숨을 내쉬었다."...경위님?"민석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많이 깨지셨습니까...?"서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민석이 괜히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팀장님 하루 이틀 그러신 것도 아니잖아요."서하가 민석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우리.""반드시 잡아야겠다.""...예?"민석이 눈을 깜빡였다."아...그쵸.""당연히 잡아야죠."민석이 당황한 듯 서둘러 대답했다. 서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한 달.""우리한테 한 달 주셨어.""...네?"민석의 눈이 동그래졌다."설마...""팀장님이..."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공식적으로 허락하신건 아냐.""하지만, 우리가 증거를 가져오면.""다시 사건을
“이 번호...전부 겹쳐.”서하는 통화 내역을 보며 중얼거렸다.시점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가족들을 만난 사람이 있었어...”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분명해.""이 번호 주인이 가족들을 만났어."서하는 다시 통화 내역을 확인했다.이정훈의 아내, 그리고 아들.전부 한 번씩 통화했을 뿐이지만 분명 겹치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이상했다. 통화 시점도, 통화 상대도."...통화 이후에 장례를 서둘렀고.""...그래서 이사까지 갔다."서하는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이정훈 가족들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아니, 정확히는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들었다.그 이후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민석아.”김민석이 서하의 부름에 곧장 몸을 일으켰다."예, 경위님?““이 번호, 좀 알아봐봐.”서하가 민석에게 통화 목록 자료를 내밀었다.“이 번호요? 뭔가 찾으셨어요?”“아직은. 근데, 뭔가 있는건 맞는 것 같아.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민석은 통화 목록을 내려다보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네요. 이정훈 가족들이랑 다 한 번씩 통화한 기록이 있어요.""사건 이후라 그냥 넘어갔는데..."민석이 자료를 다시 훑었다."응."서하가 통화 내역을 손가락으로 짚었다.“거기다 통화 시점이 장례 전날이랑 이사 전날이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만약, 이정훈 가족들이 누군가를 만났고 그 사람이 가족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면..."민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이 사람부터 찾아야겠네요."서하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응.""이 번호. 이번 사건의 시작일 수도 있어."잠시 후,민석이 복잡한 표정으로 서하에게 다가왔다.“알아봤어?”"네. 번호 조회는 해봤는데 등록 정보가 안 나옵니다.""명의도 확인 안 되고요.""대포폰 같습니다."서하는 민석의 말에 예상했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역시.”민석은 의아한 듯 서하를 바라보았다."예상하셨습니까?""응.""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