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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Author: 슈퍼라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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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03 11:01:51

* 무너진 탑, 그리고 다시 쌓아 올리는 기초

쿠르르릉-!

세상이 뒤집히는 소리였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내 인생의 역작이라 불렸던 ‘센트럴 팰리스’의 B동이 먼지 구름 속으로 주저앉았다. 콘크리트가 비명을 지르고,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강진호 소장님! 이걸 어쩌면 좋습니까!”

현장 관리자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 팔을 붙잡았다. 잿빛 먼지를 뒤집어쓴 내 눈앞에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3년. 내 영혼을 갈아 넣어 설계한 건물이, 완공을 코앞에 두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피 섞인 침이 뱉어졌다.

“...자재.”

“예?”

“자재를 바꿨어. 태영건설 본사 놈들이.”

설계도면 상의 고강도 철근이 아니었다. 하중을 견뎌야 할 기둥에는 규격 미달의 재생 철근이 박혀 있었고, 콘크리트 배합 비율은 물을 탄 듯 묽었다.

원가 절감. 그 빌어먹을 단어 하나가 내 꿈을,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속보] 태영건설 센트럴 팰리스 붕괴... 설계 책임자 강진호 소장, 잠적설 돌아

현장의 대형 전광판에 뉴스가 뜨고 있었다. 아직 현장에 서 있는 나를 두고 ‘잠적’이라니. 이미 각본은 짜여 있었다.

지잉- 지잉-.

주머니 속 핸드폰이 발작하듯 울렸다. 발신자는 ‘최전무’. 이번 부실 공사를 주도하고 뒷돈을 챙긴, 나를 친형제처럼 아껴준다던 그 인간이었다.

“...여보세요.”

* 진호야, 뉴스 봤지? 일단 넌 해외로 좀 나가 있어라.

“형... 아니, 전무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시방서랑 다르게 시공한 건 시공사 쪽이잖아요! 감리단도 매수하고!”

* 아이고, 이 친구야. 지금 그게 중요해? 언론이랑 국민들은 씹을 거리가 필요해. 네가 설계도면에서 하중 계산을 실수했다고 입 맞췄으니까, 조용히 있어. 옥바라지는 내가 책임질 테니...

뚝.

통화를 끊었다. 더 들을 가치도 없었다.

나는 폐허가 된 현장을 등지고 걸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비가 콘크리트 가루와 섞여 진흙처럼 흘러내렸다. 40대 중반.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재벌가의 개처럼 일했던 20년이었다.

‘결국, 남은 건 무너진 건물과 누명뿐이구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도로 한복판에 섰다. 눈앞에서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달려들었다. 덤프트럭이었다. 피할 생각도, 힘도 없었다.

끼이이익- 쾅!

충격과 함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히는 순간,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기이한 파란색 창이 떠올랐다.

[시스템: 건축가의 한(恨)을 감지했습니다.]

[조건 충족. ‘설계자’의 권한으로 프로세스를 재시작합니다.]

[동기화 진행 중... 1%...]

‘...지랄하고 있네. 건축가가 무슨 설계자야...’

그것이 마지막 생각이었다.

---

“...강진호? 야, 강진호!”

등짝을 후려치는 매서운 손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다. 매캐한 먼지 냄새와 비린 피 냄새 대신, 코를 찌르는 건 락카 스프레이와 본드 냄새였다.

“어...?”

나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봤다.

어수선한 작업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우드락 조각과 제도판, 그리고 밤을 새운 듯 퀭한 눈으로 모형을 깎고 있는 학생들.

익숙했다. 아니, 지긋지긋하게 그리운 풍경이었다.

한국대학교 건축학과 설계 스튜디오.

“너 뭐 하냐? 졸다가 침까지 흘리고. 오늘 졸업작품 최종 크리틱(비평) 있는 날인 거 잊었어?”

내 등짝을 때린 건 동기인 박민수였다. 녀석은 30대 중반에 과로사로 죽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서 펄펄 살아서, 촌스러운 뿔테 안경을 추어올리고 있었다.

“민수...?”

“왜 그렇게 쳐다봐? 꿈꿨냐? 얼른 세수하고 와. 교수님들 오실 시간 다 됐어. 그리고 오늘 태영건설에서도 스카우트 온다며.”

태영건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가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이폰 4. 작고 묵직한 구형 모델.

화면을 켰다.

2013년 11월 15일.

20년 전이다.

내가 태영건설에 입사하기 직전, 그리고 내 인생의 첫 번째 실패작을 내놓았던 바로 그 졸업 전시회 날.

나는 급히 옆에 있는 거울을 봤다. 찌들었던 주름도, 희끗했던 머리칼도 없었다. 밤샘으로 조금 푸석하지만, 생기 넘치는 20대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돌아왔어.’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신이든 악마든 내게 기회를 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죽기 직전 보았던 그 파란색 창이 다시 떠올랐다.

[시스템: ‘마에스트로의 눈(Lv.1)’이 활성화됩니다.]

[구조적 결함과 잠재력을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가, 내 책상 위에 놓인 졸업 작품 모형을 내려다보았다.

<도심 속의 쉼터: 어반 포레스트>.

이게 내 졸업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나름대로 트렌드를 반영했다고 생각했지만, 20년 뒤의 내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쓰레기였다.

[대상: 졸업작품 모형]

[등급: E]

[분석: 독창성 결여. 구조적 안정성 부족. 겉멋만 든 파사드(Facade). 시공 시 예산 초과 예상.]

시스템 창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이건 흉물이다.

교수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적당히 타협한 디자인. 안전하고 평범한, 그래서 아무런 감동도 없는 건물.

“...이딴 걸 건물이라고.”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과거의 나는 이 작품으로 간신히 B학점을 받고, 태영건설 공채에 지원해 바닥부터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최 전무의 눈에 띄어 그의 사냥개가 되었다.

똑같은 길을 갈 수는 없었다.

오늘 오는 태영건설 스카우터. 그가 바로 젊은 시절의 ‘최무진’, 훗날의 최 전무였다.

드르륵-.

스튜디오 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무리가 들어왔다. 학과장인 김 교수와 외부 심사위원들,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30대 초반의 남자. 최무진이었다.

“자, 자. 다들 자리에 서게. 1번부터 발표 시작한다.”

김 교수의 목소리에 스튜디오가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나는 내 모형 앞에 섰다. 하얗게 칠해진 우드락 모형이 처량해 보였다.

‘이걸로는 안 돼.’

이대로 발표하면 나는 또다시 ‘쓸만한 신입 1’로 태영에 입사하게 된다.

판을 엎어야 한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그 누구도 나를 부품으로 쓸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커터 칼, 굴러다니는 검은색 폼보드, 그리고 제도용 펜.

시간은 10분 정도 남았다. 앞 순서인 민수가 발표하는 동안,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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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5.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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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4

    나는 국물을 들이키며 눈을 번뜩였다.당장 큰돈을 만질 방법이 필요했다.주식? 비트코인?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아직 대중화되기도 전이고, 주식으로 큰돈을 불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나는 지금 당장 현금이, 그것도 억 단위의 현금이 필요했다. 그래야 곧 발표될 강남 개발 계획에 숟가락이라도 얹을 수 있었다.내 전공을 살리면서 단기간에 목돈을 챙길 방법.기억을 더듬었다. 2013년 겨울. 대한민국 건축 업계와 부동산 시장에 돌았던 흉흉한 소문들. 그리고 내가 실무에서 들었던 수많은 비사(秘史)들.뇌리에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3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전생에서는 내가 굽신거리며 받았던 그 명함. 이번에는 내가 그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그림만 잘 그리는 환쟁이는 우리 회사에 필요 없지만, 돈을 벌 줄 아는 건축가는 환영이지. 우리 회사 공채, 지원했나?”그의 질문에 나는 피식 웃었다.지원? 이미 서류는 냈다. 하지만 면접장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태영건설에 입사해서 노예처럼 구르는 건 사양이다.나는 그의 명함을 받아 들고는, 뚫어져라 그를 응시했다.[대상: 최무진 (태영건설 기획팀장)][성향: 야망, 기회주의, 소시오패스 성향 다분

  • 도면 위의 마에스트로   2

    나는 손을 뻗어, 내가 한 달 동안 밤새워 만든 모형의 지붕을 잡았다.우지끈-!“야! 강진호! 너 뭐 해?!”옆에 서 있던 동기가 비명을 질렀다. 스튜디오 안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최무진의 시선도, 김 교수의 당황한 눈빛도 느껴졌다.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형을 짓이겨버렸다.바사삭, 툭.정성스럽게 붙인 창문이 떨어져 나가고, 기둥이 꺾였다.“미쳤어? 지금 뭐 하는 짓이야!”달려온 조교가 내 팔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가볍게 뿌리쳤다.“쓰레기를 치우는 중입니다.”내 목소리는 차분했다. 스튜디오가 찬물을 끼얹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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