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머나먼 그대여
머나먼 그대여
Author: 유룡장홍

제1화

Author: 유룡장홍
정사가 끝난 뒤, 소원영은 본채로 향했다.

“아버지께 말씀드리거라. 내 소정연 대신 이성진과 혼인하겠다고.”

“아씨, 아니되옵니다! 그분께서는 권세가 대단하나…”

소원영의 말을 들은 하녀가 놀라서 목청을 높였다가 그녀에게 다가가서 귓속말을 했다.

“허나 그분은 온전치 못한 사내의 몸이지 않습니까! 그리 되고 나서는 성정이 완전히 바뀌어서 남 괴롭히는 걸 낙으로 여긴다고 들었습니다. 그분과 혼인한 여인 중에 살아남은 이는 없습니다. 헌데 혼인이라뇨?”

그 말을 들은 소원영은 차갑게 웃었다.

“누구와 혼인하든 상관없다. 지금 소씨 집안이 피해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한편 본채 안.

소원영의 아버지는 미소를 머금은 채 화려한 차림새를 한 환관에게 차를 따르며 말했다.

“대감께서 제 여식을 마음에 들어하신다니 그보다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허나… 제 여식이 아직 어리고 몸도 약해서 대감의 시중을 잘 들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소원영의 아버지가 초조하게 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소원영의 아버지는 당연히 소원영을 시집보내고 싶었지만 누구도 감히 그녀를 강요할 수 없었다.

“혼인하겠습니다!”

그때, 붉은색 치마를 걸친 소원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상석에 앉아 있던 사내가 멈칫했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절반짜리 원앙 옥패를 내려놓았다.

머지않아 환관들을 돌려보낸 소원영이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방금 들으신 대로 혼인하겠습니다. 허나 조건이 있습니다. 제 어머니를 정실로 세워주시고 제가 그분과 혼인하면 제 남첩 엄종호를 소정연에게 보내주세요.”

그 말을 들은 소원영 아버지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가 거절하려던 찰나, 소원영이 비수를 자신의 얼굴로 가져다 대더니 웃었다.

“잘 생각해 보시고 대답하십시오. 제가 손을 잘못 놀렸다가 그분께서 죄를 묻는다면 감당 못 하실 겁니다.”

“저 미친 계집이!”

소원영의 아버지는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소원영의 얼굴과 맞닿아있는 비수를 보곤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결국 그녀의 말을 들어줬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정말 네 남첩 엄종호를 버리겠다는 게냐?”

소원영이 등을 돌리자 그녀의 아버지가 물었다.

그 이름을 들은 소원영은 멈칫했다. 하지만 방금 전, 엄종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생각하니 심장이 욱신거렸다.

곧 소원영은 뒤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당연하지. 두 사람이 모두 소정연을 편애하니까.’

소원영은 웃고 있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공주의 연회에서 처음 만났고 소원영은 엄종호에게 첫눈에 반했다.

수려한 외모에 깊은 눈을 가진 엄종호는 냉랭했다.

경성의 제일 미녀라는 칭호를 가진 소원영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결국, 소원영은 염치를 불구하고 공주에게 엄종호를 달라고 청했다.

어쩌면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답답하기만 한 집에서 소원영은 자신의 곁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소원영이 열 살이 되던 해, 진사 시험에 급제한 아버지는 한 여인과 아홉 살이 된 여식을 데려왔다.

아버지는 상인 집안 여식인 소원영의 어머니를 업신여겨 첩실과 손을 잡고 그녀를 죽였다. 소원영은 그제서야 애처가를 자처하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혼인한 지 일 년 만에 첩실을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뒤로 소원영은 아버지를 죽도록 미워했다. 그 두 모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집을 나와서 처음으로 들인 이가 바로 엄종호였다.

소원영은 엄종호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양도 떨어보고 교태도 부려봤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원영이 엄종호를 속여 약이 든 술을 먹였고 두 사람은 서로를 품었다.

그 뒤로 삼 년 동안, 엄종호는 소원영을 품을 때마다 뒤에서 안는 것을 고집했다.

그동안 소원영은 그저 엄종호가 그 자세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모든 것을 알게 됐다.

엄종호는 그저 소원영의 얼굴이 싫었던 것이다.

소원영이 허탈해하고 있던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언제 왕부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경성 사람들이 전하께서 남첩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수군거리겠습니까. 그리고 소씨 집안 둘째 아씨가 마음에 들면 혼사를 청하면 그만 아닙니까. 그 집안에서 어찌 감히 거절하겠습니까?”

“뭘 안다고 떠드는 게냐? 정연이는 어릴 때부터 밖을 나돌면서 소원영에게 괴롭힘을 받았으니 내가 갑자기 혼사를 청하면 놀랄 것이 분명하다. 천천히 다가가야 하느니라.”

엄종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전하, 정말 일편단심이시네요. 소인은 전하께서 경성의 제일 미녀인 소원영을 마음에 품은 줄 알았습니다. 두 분께서는 이미 정을 나누셨으니…”

호위무사가 웃으며 말하자 엄종호가 입을 닫았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말에 소원영의 심장은 차갑게 식었다.

“그게 어떻다는 게냐? 정욕을 풀 도구일 뿐이다. 정연이와 비길 자격이 없다.”

‘정욕을 풀 도구?’

그 말을 들은 소원영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곧이어 눈을 감았다 뜬 소원영의 눈동자에 차가움이 서렸다.

‘엄종호, 내 드디어 너에게서 마음을 접을 수 있겠구나.”

소원영은 더 이상 안에서 들려오던 두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문을 열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머나먼 그대여   제20화

    마지막 날 아침, 엄종호는 소원영을 데리고 월로(月老) 를 모시고 있는 사찰로 향했다.“월로 앞에서 혼약을 맺은 남녀는 평생 함께할 수 있다고 들었다.”엄종호가 기대를 가득 담아서 소원영을 보며 말했다.하지만 소원영은 엄종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엄종호, 사흘 뒤에 날 보내주기로 하지 않았냐.”“그랬었지. 허나 오늘 여기서 마지막 선택을 해다오. 나와 이성진…”소원영의 말을 들은 엄종호가 어두운 눈빛으로 소원영을 보며 말했다.“이성진을 택할 것이다.”소원영은 망설임 없이 엄종호의 말을 끊었다.엄종호가 몇 번이고 소정연을 위해 자신에게 상처를 줄 때부터 소원영은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원영의 대답을 들은 엄종호는 흠칫 떨었다. 순간, 심장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곧 숨을 깊게 들이켠 그는 빠르게 절벽으로 다가갔다.발 아래에 바로 낭떠러지가 있었지만 임종호의 표정은 무척 담담했다.“원영아, 네가 이성진을 선택하면 나는 없다.”엄종호의 뜻은 명확했다. 소원영은 그를 선택해야만 했다. 소원영이 떠난다면 그의 발밑에는 바로 천 길 낭떠러지였다.그런 엄종호를 본 소원영은 놀랐다.“엄종호, 지금 목숨으로 날 협박하는 거야?”“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엄종호가 그렇게 말하며 허망하게 웃었다.“이게 내가 널 곁에 남겨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엄종호, 이 비열한 놈!”소원영이 주먹을 쥔 채 소리쳤다.“날 미워할 거라는 걸 안다. 네가 날 미워하게 할지언정 떠나보내고 싶지는 않다.”엄종호가 집요한 눈으로 말했다.“너!”소원영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고 있을 때, 엄종호가 절벽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그러자 절벽 옆에 있던 돌과 흙이 떨어졌다.하지만 엄종호는 보지 못한 사람처럼 계속 밖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원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집요하고 다정했다.“떠날 것이냐, 남을 것이냐?”소정연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손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나는…”“원영아,

  • 머나먼 그대여   제19화

    엄종호는 꿈을 꿨다.삼 년 전, 자신이 말에서 굴러떨어져서 중상을 입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갔다.그때, 소박한 차림새에 비녀를 꽂은 여인이 엄종호를 보곤 놀라서 물었다.“다친 겁니까?”여인은 그렇게 묻더니 마차에서 내려와 엄종호의 상처를 치료해 줬다.미간을 찌푸린 채 조심스럽게 약도 발라주고 후하고 바람도 불어줬다.“어찌 이리 다친 겁니까? 그래도 운이 좋네. 제 약이 효과가 엄청나거든요.”꿈속에서 엄종호는 소원영의 얼굴을 봤다.무척 아름답고 밝은 얼굴이었다.엄종호는 힘을 다해 소원영을 잡았다.“낭자, 내 낭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나와 혼인해 주겠느냐?”그 말을 들은 소원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귀를 붉혔다. 하지만 일부러 고고한 척 말했다.“나, 나와 혼인하고 싶어 하는 자는 많다. 이리 성의 없이 청혼을 하는데 내가 허락할 것 같으냐?”그 말을 들은 엄종호의 눈빛이 뜨거워졌다. 그 눈빛에는 진심이 서려 있었다.“널 좋아하는 이가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진심인 사람이다.”“정말요?”“하늘과 땅, 해와 달이 증명할 수 있다.”다정한 눈빛을 한 엄종호는 소원영을 향한 애정을 남김없이 드러냈다.“그래요. 그럼 제가 기회를 한 번 드리겠습니다.”소원영이 고고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그 모습도 무척 사랑스러웠다.엄종호가 웃으며 소원영을 향해 손을 내밀자 그녀가 안겨들려고 했다.......“전하, 정신 차리십시오!”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가 엄종호의 달콤한 꿈을 깨웠다.엄종호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주위의 모든 곳이 흐릿해졌고 그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원영아!”다음 순간, 심장과 온몸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고 식은땀이 엄종호의 옷을 적셨다.극심한 고통이 모든 것을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원영이는 어디 있느냐?”엄종호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그는 태의를 뿌리치고 휘청거리며 소원영을 찾으러 갔다.한편, 소원영은 살구나무 아래에 앉아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미소를

  • 머나먼 그대여   제18화

    엄종호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는 소원영을 꼭 끌어안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아니, 우리는 분명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하지만 소원영은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예전으로 돌아간다고?’몇 번이고 반복되는 상처에 소원영은 이미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소원영은 엄종호의 품에서 벗어나 방으로 돌아갔다.하지만 머지않아 엄종호가 문을 두드리더니 소원영이 있던 처소로 들어왔다.엄종호의 손에는 깨끗한 비단이 들려있었다. 그가 소매를 조금 걷자 보기 좋게 자리잡힌 근육이 드러났다.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는 비단은 무척 값비싸 보였다.“날 위해 준비한 거냐?”“응,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엄종호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하지만 그 대답을 들은 소원영이 콧방귀를 뀌었다.“틀렸다. 이런 색을 좋아하는 건 소정연이다.”순간, 엄종호의 몸이 굳었다.“원영아, 제발 그 이름은 꺼내지 말아다오. 내 마음속에는 너 하나밖에 없다.”하지만 소원영은 일부러 엄종호의 상처를 건드렸다.“어찌 소정연 얘기를 꺼내지 말라는 거야? 너는 소정연을 위해서 목숨도 걸지 않았느냐? 뱀도 막아주고 연못에도 들어가고 늑대 우두머리까지 죽이지 않았느냐. 그렇게 했는데도 소정연의 마음을 얻지 못한 거야?”소원영의 말은 칼날처럼 엄종호의 심장을 후벼팠다.엄종호는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가 주는 상처는 너무나도 쓰라렸다.‘그동안 원영이도 이리 아팠을까?’소원영은 힘들어하는 엄종호를 보니 속이 시원했다.“원영아…”소원영이 뒤돌아서려던 그때, 엄종호가 그녀를 잡았다.그리고 그가 손짓하자 누군가 찻잔 백 개를 들고 왔다.“지금 뭘 하자는 거야?”소원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이건 내가 너에게 빚진 것이다. 지금 갚아주마. 네 화만 풀리게 할 수 있다면.”엄종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갚아준다고?’엄종호의 말을 들은 소원영이 웃음을 터뜨렸다.“이리 한다고 내가 받

  • 머나먼 그대여   제17화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엄종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수군거렸다.엄종호는 전하였기에 그의 말은 그 무엇보다도 무겁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소원영도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녀도 엄종호의 말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성진은 전하의 약속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소원영은 이성진도 다른 이처럼 자신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때, 이성진이 콧방귀를 뀌었다.“진왕 전하, 절 너무 얕잡아보는 거 아닙니까.”이성진이 그렇게 말하더니 소원영의 옆으로 가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원영이는 제 부인이지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니 진왕께서도 자중하시지요.”그 말을 들은 엄종호는 화가 났지만 이성진의 신분도 만만치 않았다.이성진은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조정을 주름잡고 있었다.엄종호가 출정한 삼 년 동안 이성진은 대부분의 신하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지금의 그는 조정의 최고 실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특히 그가 장관하고 있는 철기군(鐵騎軍) 은 포악하기 짝이 없어 호위금군도 덤벼들 수 없는 정도였다.엄종호는 전하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병권이 없었기에 분노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원영아, 그래도 우리가 삼 년 동안 함께 지내지 않았느냐. 너도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거 안다. 그러니 다시 한번만 더 기회를 다오. 내 남은 여생동안 너에게 잘해주마.”“이제 와서 이럴 거면 애초에 그러지 말았어야지. 엄종호, 늦었어.”소원영은 그렇게 말하곤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성진에게 대답하려던 순간, 엄종호의 눈에 광기가 스쳐 지나갔다.“원영아, 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왜?”“네 어머니의 시신이 아직 내 손에 있다. 원영아, 너도 어머니께서 구천을 떠돌길 바라진 않겠지?”엄종호는 미친 사람처럼 새빨개진 눈으로 말했다.“엄종호, 너 미쳤어?”“네가 다른 이와 혼인한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나는 미쳤다.”엄종호가 이를 악물고 소원영에게 말했다.“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거야?!”소원영은 화가 났지만

  • 머나먼 그대여   제16화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그리고 엄종호를 보곤 놀랐다."진왕 전하? 전하께서 왜 여길 오신 거지? ""그러니까. 그리고 방금 뭐라고 하셨지? 원영아, 안 된다. 설마…”세 사람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에 궁금함이 들어찼다. 소원영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몸이 굳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엄종호,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이미 네 뜻대로 해줬잖아.'엄종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쥔 채 무언가를 참고 있는 듯했다. "원영아, 그 자와 혼인하지 말거라."엄종호의 목소리는 잔뜩 쉬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소원영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자신을 품어주고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눈앞의 사내를 보고 있으니 손끝이 떨렸다. "왜 온 것이냐? 내 네 뜻대로 해주지 않았냐? "소원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순간, 엄종호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니다, 내가 원한 건 소정연이 아니었다. 삼 년 전, 내가 말 위에서 굴러떨어졌을 때, 위급했던 날 구해준 건 너였다. 그런데 내가 멍청하게 소정연이 날 구해준 거라고 생각했어."삼 년 전, 소원영은 자신이 말에서 굴러떨어진 사내를 구한 적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그때, 사내는 온몸에 피범벅이어서 소원영은 상처를 싸매느라 사내의 얼굴을 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사내가 바로 엄종호였다니.삼 년 전 일과 그동안 자신과 소정연을 대하던 엄종호의 태도를 생각하니 소원영은 운명도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소원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엄종호는 다급해졌다. "원영아, 내 모든 것을 알아냈다. 소정연의 진짜 모습도 알게 됐다. 그동안 소씨 집안에서 온갖 고통을 견뎌내던 건 너였다는 것도 이젠 알았다. 소정연이 순진한 척 네 어머니를 돌아가게 한 것도, 네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것도 다 알아냈다. 내가 사람을 잘못 알아봤다."엄종호의 말을 듣던 소원영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말은 칼날처럼 소원영의 가슴에 상처

  • 머나먼 그대여   제15화

    이성진 저택 안, 소원영은 붉은 혼례복을 입고 방 안에 앉아있었다.그녀는 이성진과 혼인하면 온갖 괴롭힘을 견뎌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소문에 의하면 이성진은 사람을 괴롭히기 좋아하고 그와 혼인한 여인 중에 살아남은 이는 없다고 했다.그런데 소원영은 시집온 첫날, 목욕을 마친 이성진을 마주했다.이성진은 하얀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근육이 잘 잡힌 몸에 드리워진 긴 머리카락까지, 미남을 수없이 봐왔던 소원영마저 이성진을 보곤 얼어버렸다.하지만 곧 소원영은 속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런 절세미남을 환관으로 만들다니.’다음 순간, 이성진이 물속에서 나왔고 두 사람은 그렇게 눈이 마주쳤다.소원영의 눈은 저도 모르게 아래로 향했다.“아악!”그리고 사내의 아래에 자리한 그것과 마주했다.비명을 지른 소원영이 도망가려던 순간, 젖어있는 큰 손이 소원영의 입을 막았다.“아씨, 내 비밀을 알았으니 도망가긴 어려울 거야.”사내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소원영은 바로 뒤에 서 있는 사내 때문에 심장이 쿵쾅거렸다.그리고 다음 순간, 이성진을 힘껏 밀어냈다.“그럼, 어찌하겠다는게야? 다른 여인을 죽였듯이 날 죽일 작정이야? 이성진, 경고하는데 내가 이미 들어오기 전에 다 준비했어. 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다간 내 심복이 관청에 알릴 것이야!”이성진은 소원영의 말을 듣더니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는 빨간 소원영의 입술을 보며 재밌다고 생각했다.‘역시, 전이랑 똑같네. 입만 살았어.’“지금 날 협박하는 게냐?”이성진이 묻자 소원영이 이를 악물더니 가슴을 펴고 대답했다.“오늘 일은 내 못 본 걸로 해줄 수 있다. 날 죽이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그 뒤가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손해 보지 않는 걸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혼인하고 죽이고를 반복하는 것도 힘들 것이니 내 네 부인으로 평생 살겠다. 이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니겠냐.”말을 마친 소원영이 눈을 감았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