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엄종호, 언제 나와 혼인할 거야?”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소원영이 침상 위에서 한 사내의 그늘 아래 깊이 잠겨 있었다. 흐트러진 공간에 두 남녀의 숨결이 얽혀들었다. 곧 사내가 이를 악물었고 뜨거운 땀방울이 소원영의 등 위로 떨어졌다. “너만 원한다면, 정연아…” 정연…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소원영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곧이어 그녀는 허탈하게 웃었다. 또 소정연이었다. 일을 치르고 난 뒤, 소원영은 본채로 향했다. “아버지께 말씀드리거라. 내 소정연 그 년 대신 이성진과 혼인하겠다고.”
View More마지막 날 아침, 엄종호는 소원영을 데리고 월로(月老) 를 모시고 있는 사찰로 향했다.“월로 앞에서 혼약을 맺은 남녀는 평생 함께할 수 있다고 들었다.”엄종호가 기대를 가득 담아서 소원영을 보며 말했다.하지만 소원영은 엄종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엄종호, 사흘 뒤에 날 보내주기로 하지 않았냐.”“그랬었지. 허나 오늘 여기서 마지막 선택을 해다오. 나와 이성진…”소원영의 말을 들은 엄종호가 어두운 눈빛으로 소원영을 보며 말했다.“이성진을 택할 것이다.”소원영은 망설임 없이 엄종호의 말을 끊었다.엄종호가 몇 번이고 소정연을 위해 자신에게 상처를 줄 때부터 소원영은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원영의 대답을 들은 엄종호는 흠칫 떨었다. 순간, 심장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곧 숨을 깊게 들이켠 그는 빠르게 절벽으로 다가갔다.발 아래에 바로 낭떠러지가 있었지만 임종호의 표정은 무척 담담했다.“원영아, 네가 이성진을 선택하면 나는 없다.”엄종호의 뜻은 명확했다. 소원영은 그를 선택해야만 했다. 소원영이 떠난다면 그의 발밑에는 바로 천 길 낭떠러지였다.그런 엄종호를 본 소원영은 놀랐다.“엄종호, 지금 목숨으로 날 협박하는 거야?”“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엄종호가 그렇게 말하며 허망하게 웃었다.“이게 내가 널 곁에 남겨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엄종호, 이 비열한 놈!”소원영이 주먹을 쥔 채 소리쳤다.“날 미워할 거라는 걸 안다. 네가 날 미워하게 할지언정 떠나보내고 싶지는 않다.”엄종호가 집요한 눈으로 말했다.“너!”소원영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고 있을 때, 엄종호가 절벽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그러자 절벽 옆에 있던 돌과 흙이 떨어졌다.하지만 엄종호는 보지 못한 사람처럼 계속 밖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원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집요하고 다정했다.“떠날 것이냐, 남을 것이냐?”소정연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손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나는…”“원영아,
엄종호는 꿈을 꿨다.삼 년 전, 자신이 말에서 굴러떨어져서 중상을 입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갔다.그때, 소박한 차림새에 비녀를 꽂은 여인이 엄종호를 보곤 놀라서 물었다.“다친 겁니까?”여인은 그렇게 묻더니 마차에서 내려와 엄종호의 상처를 치료해 줬다.미간을 찌푸린 채 조심스럽게 약도 발라주고 후하고 바람도 불어줬다.“어찌 이리 다친 겁니까? 그래도 운이 좋네. 제 약이 효과가 엄청나거든요.”꿈속에서 엄종호는 소원영의 얼굴을 봤다.무척 아름답고 밝은 얼굴이었다.엄종호는 힘을 다해 소원영을 잡았다.“낭자, 내 낭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나와 혼인해 주겠느냐?”그 말을 들은 소원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귀를 붉혔다. 하지만 일부러 고고한 척 말했다.“나, 나와 혼인하고 싶어 하는 자는 많다. 이리 성의 없이 청혼을 하는데 내가 허락할 것 같으냐?”그 말을 들은 엄종호의 눈빛이 뜨거워졌다. 그 눈빛에는 진심이 서려 있었다.“널 좋아하는 이가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진심인 사람이다.”“정말요?”“하늘과 땅, 해와 달이 증명할 수 있다.”다정한 눈빛을 한 엄종호는 소원영을 향한 애정을 남김없이 드러냈다.“그래요. 그럼 제가 기회를 한 번 드리겠습니다.”소원영이 고고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그 모습도 무척 사랑스러웠다.엄종호가 웃으며 소원영을 향해 손을 내밀자 그녀가 안겨들려고 했다.......“전하, 정신 차리십시오!”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가 엄종호의 달콤한 꿈을 깨웠다.엄종호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주위의 모든 곳이 흐릿해졌고 그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원영아!”다음 순간, 심장과 온몸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고 식은땀이 엄종호의 옷을 적셨다.극심한 고통이 모든 것을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원영이는 어디 있느냐?”엄종호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그는 태의를 뿌리치고 휘청거리며 소원영을 찾으러 갔다.한편, 소원영은 살구나무 아래에 앉아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미소를
엄종호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는 소원영을 꼭 끌어안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아니, 우리는 분명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하지만 소원영은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예전으로 돌아간다고?’몇 번이고 반복되는 상처에 소원영은 이미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소원영은 엄종호의 품에서 벗어나 방으로 돌아갔다.하지만 머지않아 엄종호가 문을 두드리더니 소원영이 있던 처소로 들어왔다.엄종호의 손에는 깨끗한 비단이 들려있었다. 그가 소매를 조금 걷자 보기 좋게 자리잡힌 근육이 드러났다.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는 비단은 무척 값비싸 보였다.“날 위해 준비한 거냐?”“응,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엄종호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하지만 그 대답을 들은 소원영이 콧방귀를 뀌었다.“틀렸다. 이런 색을 좋아하는 건 소정연이다.”순간, 엄종호의 몸이 굳었다.“원영아, 제발 그 이름은 꺼내지 말아다오. 내 마음속에는 너 하나밖에 없다.”하지만 소원영은 일부러 엄종호의 상처를 건드렸다.“어찌 소정연 얘기를 꺼내지 말라는 거야? 너는 소정연을 위해서 목숨도 걸지 않았느냐? 뱀도 막아주고 연못에도 들어가고 늑대 우두머리까지 죽이지 않았느냐. 그렇게 했는데도 소정연의 마음을 얻지 못한 거야?”소원영의 말은 칼날처럼 엄종호의 심장을 후벼팠다.엄종호는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가 주는 상처는 너무나도 쓰라렸다.‘그동안 원영이도 이리 아팠을까?’소원영은 힘들어하는 엄종호를 보니 속이 시원했다.“원영아…”소원영이 뒤돌아서려던 그때, 엄종호가 그녀를 잡았다.그리고 그가 손짓하자 누군가 찻잔 백 개를 들고 왔다.“지금 뭘 하자는 거야?”소원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이건 내가 너에게 빚진 것이다. 지금 갚아주마. 네 화만 풀리게 할 수 있다면.”엄종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갚아준다고?’엄종호의 말을 들은 소원영이 웃음을 터뜨렸다.“이리 한다고 내가 받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엄종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수군거렸다.엄종호는 전하였기에 그의 말은 그 무엇보다도 무겁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소원영도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녀도 엄종호의 말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성진은 전하의 약속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소원영은 이성진도 다른 이처럼 자신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때, 이성진이 콧방귀를 뀌었다.“진왕 전하, 절 너무 얕잡아보는 거 아닙니까.”이성진이 그렇게 말하더니 소원영의 옆으로 가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원영이는 제 부인이지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니 진왕께서도 자중하시지요.”그 말을 들은 엄종호는 화가 났지만 이성진의 신분도 만만치 않았다.이성진은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조정을 주름잡고 있었다.엄종호가 출정한 삼 년 동안 이성진은 대부분의 신하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지금의 그는 조정의 최고 실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특히 그가 장관하고 있는 철기군(鐵騎軍) 은 포악하기 짝이 없어 호위금군도 덤벼들 수 없는 정도였다.엄종호는 전하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병권이 없었기에 분노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원영아, 그래도 우리가 삼 년 동안 함께 지내지 않았느냐. 너도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거 안다. 그러니 다시 한번만 더 기회를 다오. 내 남은 여생동안 너에게 잘해주마.”“이제 와서 이럴 거면 애초에 그러지 말았어야지. 엄종호, 늦었어.”소원영은 그렇게 말하곤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성진에게 대답하려던 순간, 엄종호의 눈에 광기가 스쳐 지나갔다.“원영아, 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왜?”“네 어머니의 시신이 아직 내 손에 있다. 원영아, 너도 어머니께서 구천을 떠돌길 바라진 않겠지?”엄종호는 미친 사람처럼 새빨개진 눈으로 말했다.“엄종호, 너 미쳤어?”“네가 다른 이와 혼인한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나는 미쳤다.”엄종호가 이를 악물고 소원영에게 말했다.“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거야?!”소원영은 화가 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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