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정확히는 차도영만 그 자리에 세워둔 채 시간만 앞으로 흘러가고 있었다.“이혼...?”입 밖으로 나온 단어가 낯설었다.도영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이혼.계약 파기.두 단어가 머릿속을 천천히 맴돌았다.현실감이 없었다.눈앞에는 분명 채은이 서 있었다.평소와 다르지 않은 표정.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그런데 그녀가 건넨 한마디가, 너무도 당연했던 일상을 산산이 깨뜨리고 있었다.손끝이 봉투 모서리에 닿았다.길고 곧은 손가락이 종이를 집어 들었지만, 미세한 떨림은 감춰지
다음 날 아침.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비서가 조용히 따라 들어왔다.“대표님, 요청하신 자료 정리됐습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짓으로 책상을 가리켰다. 두고 가보라는 뜻이었다.“필요하신 일 있으시면 불러주세요.”비서가 나가고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책상 위에 놓인 파일은 두 개였다.하나는 얇았고, 하나는 두꺼웠다.먼저 얇은 파일을 열었다.사진 몇 장이 겹쳐져 있었다.늦은 밤 나란히 호텔 입구로 들어가는 차도영과 연지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팔이 스칠 듯 가까운 거리,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미 여러 번 본 장면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도영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후, 나 역시 천천히 방문을 닫았다.철컥.작은 소리였는데, 오늘은 유난히 크게 들렸다.등을 문에 기댄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어려웠다.연락도 없이 지방 출장을 다녀와 꼬박 나흘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걸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그와 눈을 맞춘 채 인사하고, 본가 이야기에 짧게 대답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등을 돌리는 일.그것만으로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모르는 척.’‘믿는 척.’‘괜찮은 척
도영은 습관처럼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했다.그 순간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향했다.채은의 구두도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먼저 집에 온 모양이었다.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집은 늘 그렇듯 깔끔했다.아니, 깔끔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지나치게 정돈되어 있었다.거실 테이블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예전에는 읽다 만 잡지 한 권이 놓여 있기도 했고, 퇴근길에 사 온 디저트 상자가 그대로 남아 있기도 했다.소파 한쪽에는 얇은 담요가 걸쳐져 있었고, 식탁 위에는 물잔 하나와 짧은 메모가 놓여 있을 때
본가 일까지 겹쳤으니 피곤했겠지.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웠다.게다가 자신 역시 긴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당장은 일이 먼저였다.회의와 결재가 쌓였다.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왔고, 결정을 요구했다.피곤했지만 오히려 익숙한 안정감이 느껴졌다.일은 늘 명확했다.계산하면 답이 나왔고, 결정하면 결과가 따라왔다.그에게 힘든 건 복잡한 업무나 긴 회의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감정을 나누는 것이었다.그런 면에서 채은은 도영에게 최적의 짝이라고 할 수 있었다.“본부장님.”한참을 업무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도영은 거의 쉬지 못했다.피곤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머릿속이 지나치게 또렷했기 때문이었다.회의 결과, 계약 수정안, 본사 복귀 후 바로 처리해야 할 결재 목록.정리해야 할 일들이 차례대로 줄을 서 있었다.그는 늘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방식으로.착륙 안내 방송이 흐르자 그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켰다.수십 통의 업무 메시지와 해외 지사 보고, 본사 결재 요청 그리고... 없었다.마지막 메시지는 사흘 전이었다.퇴근이 늦을 거라는 짧은 문장.그 이후로는 아무 것도.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