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anda / 로판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 2화. 발테리움 제국의 주인

Share

2화. 발테리움 제국의 주인

Penulis: 그림자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3-23 11:06:07

얼었던 땅이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한 계절이었다. 봄이 가까워지자 작은 마을 베르나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사람들도 이전보다 분주해지고 있었다.

“성문 근처에서 검문이 시작됐다더라.”

“진작부터 불안했지. 국경지대에 병사 늘린 것도 그렇고…”

"제러드, 당신도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아요. 저번에 필리도 가게에서 불시검문 당해서 그 다음날에야 겨우 집에 왔다고 했잖아요."

"아니, 내가 또 뭘 언제 늦게 돌아다녔다고 그래!?"

"우리 동네는 조용해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참…"

사람들 틈을 지나며 물건을 사던 세레인은 귀를 쫑긋 세웠다. 두 손에 든 바구니가 묵직했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건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감이었다.

ㅡ칼데론 왕국ㅡ

그녀가 태어난 나라이자 모든 것을 잃은 곳. 한때는 백작의 영애로 자랐지만 지금은 성 한 글자조차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군사들이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예전보다 병력 숫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금속 갑옷이 반사하는 햇빛이 눈에 따가웠다.

세레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었다. 바구니 속 허브 뿌리와 약초가 바스락 거렸지만 손잡이를 쥔 손은 얼어붙은 듯이 굳어있었다.

그때였다. 말발굽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은빛 갑옷을 입은 군사 넷이 말을 몰며 행진해왔다. 사람들이 일제히 양 옆으로 비켰고 세레인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틀었다. 검문병 하나가 스치듯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피가 식는 듯한 감각이 찾아왔다.

언뜻언뜻 보이는 상징. 병사의 어깨엔 왕가의 상징, 두 개의 검 위에 사자 문양이 있었다. 칼데론 왕가의 문양. 그녀는 그 표장을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봐! 거기 멈춰!”

뒤에서 외침이 들렸다. 군사 하나가 누군가를 붙잡았다. 보따리를 들고 허겁지겁 걷던 행인이 팔을 붙잡혔다.

"신분증을 보여!”

세레인은 몸을 더 움츠렸다. 심장이 벌컥벌컥 뛰었고 귓가에 맴도는 과거의 잔상이 다시 떠올랐다. 그날 밤 하늘을 뒤덮던 연기와 쏟아지는 불꽃. 금속의 마찰음과 함성 속 울부짖던 사람들의 목소리. 애써 덮고 있던 기억이 밀려왔다.

그녀는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입김은 이미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지만 불안은 여전히 강하게 자리에 남아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왕국 내에서 반역을 일으킨 백작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 붙잡히거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처형 당하게 될 것이다.

“세레인 절대 뒤돌아보지 마. 알겠지?”

어머니의 차가운 손이 떨리던 그 순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머니는 딸을 도망치게 했다. 아버지는 칼에 맞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저택에 칼데론 왕국의 군사들이 들이닥친 뒤 며칠 후 광장 한복판에는 거대한 처형대가 세워졌다. 군중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었고 그곳에서 귀족 부인이 참수형 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피로 물든 그녀의 얼굴. 비명 소리 대신 처형대에 감돌던 무거운 침묵만이 사람들 사이에 전해졌다. 그 귀족 부인이 아르빌 백작부인이라는것 조차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할 정도로 공포감이 모두의 마음을 짓눌렀다.

아르빌 가문은 완전히 말살당했다. 귀족 사회의 그 누구도 함부로 그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가문의 위엄과 영광은 냉혹한 왕국의 칼날 아래 영원히 사라졌다.

아… 나 이제… 더는 못 버티겠어…이제는 칼데론을 벗어나야 해. 여기 더 있다가는 나도 끌려가서 죽을거야.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구니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길 마델렌 아주머니의 가게에 잠시 들렀다.

“리나, 너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픈거 아니야?”

마델렌은 세레인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어, 그냥 요즘 분위기가 좀 그래서요. 혹시… 동쪽으로 넘어가는 길 아세요? 국경 쪽 말이에요.”

“동쪽?”

마델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긴 발테리움 제국 땅이야. 너 설마 거길 가려는 건 아니겠지?”

세레인은 말없이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결심은 이미 굳어졌다.

“그래도 정착하면 여기보다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하하…”

"발테리움 귀족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도 들었을텐데, 그 사람들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야. 명령 없이도 사람을 죽이는 살벌한 곳!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살기가 쉽지 않아."

마델렌 아주머니의 말이 맞았다. 치밀한 정보조직과 막강한 군사력. 발테리움 제국은 철저한 절대 권력국가였다. 공개적인 처형과 고문도 있어서 주민들이 끊임없이 두려움에 떤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려면 더 기회가 많은 곳에 가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칼데론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걸요. 기술을 배우는 것도 비싸서, 뭘 배우는 것도 엄두 못 내구요."

사실 칼데론에서 군사들에게 잡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끔찍한 제 미래가 그려져서 도망치는 것에 가깝지만.

"에휴… 토비도 한참 찾을텐데 너 혼자서 제국까지 가도 괜찮겠니?" "그렇죠. 저도 정이 많이 들었는데… 토비에겐 사정이 생겨서 이사 갔다고 전해주세요…" "가는 건 그렇다고 해도 거기서 또 일 구하고 하려면, 고생을 많이 할거야. 너가 이미 마음 먹은 것 같아서 더 말리지는 못하겠만."

마델렌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빵, 고기와 치즈를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이거 가져가. 어디 가든 몸 조심해. 그리고… 아휴 무슨 일이 생기면 안되는데 리나 도착하면 꼭 편지 보내 알겠지?”

"네 아주머니, 그동안 너무 감사했어요. 제가 도착하면 꼭 편지 보낼게요!"

세레인은 마델렌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마델렌 아주머니처럼 자신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은 흔치 않았다. 문을 열기 전 그녀는 가만히 가게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냄새와 따뜻한 햇살이 섞인 이 공간. 여기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국경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뻣뻣한 시선이 세레인을 훑고 지나갔다. 몇 번의 질문과 짧은 검사, 그리고 돈 몇 닢. 병사는 잠시 뜸을 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가 툭하고 끊어지는 소리를 들은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붙잡고 있던 족쇄가 풀린 것 같은 감각이었다.

“됐습니다. 지나가세요.”

짧은 한 마디와 함께 국경의 장벽이 옆으로 열렸다.

ㅡ 발테리움 제국 ㅡ

이질적인 공기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길은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이국의 땅답게 세레인의 눈에는 모든 풍경이 낯설고 선명했다. 작은 시골 마을의 정취와는 달리 제국은 훨씬 더 차가운 질서를 두르고 있었다.

“와… 씨 미쳤다. 정말 진짜 와 버렸네.”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살면서 국경을 넘은 건 처음이었다.

"……후우."

바구니 안에는 마델렌이 챙겨준 음식들과 이곳에 도착하면 팔아보려고 말려온 약초들이 들어 있었다.

“괜찮아! 리나 여기서 잘 시작하면 되는거야.”

그녀는 자신의 가짜 이름을 되뇌었다. 어차피 발테리움에선 날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거잖아? 하지만 그녀의 머리 속에는 온갖 나쁜 상황이 떠오르고 있었다.

걸어가다가 혹시 야생동물이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제국엔 몬스터도 많다고 들었는데? 

[발테리움 제국 수도 브리스의 중앙감옥]

감옥 내부. 좁은 창으로 들어온 빛이 바닥타일을 비췄지만 그 너머의 공간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창살 너머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발소리가 울리고, 발테리움의 황제 카르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옥의 퀘퀘한 공기와 달리 들어온 남자의 모습은 이곳과는 다른 세계에서 온듯한 완벽한 형상이었다.

“폐하, 셀바리스카 5구역 보관실에서 적발된 자입니다. 아레시아 소속 정보원으로 하급 관리직 공석을 노리고 치밀하게 조작된 신분으로 잠입했습니다.”

비서관 에릭 노드란이 절제된 동작으로 서류를 내밀며 보고했다. 그의 앞에는 온몸이 포박된 채 떨고 있는 사내가 처참히 널브러져 있었다.

카르안은 보관함에서 꺼낸 작은 유리 병 하나를 빛에 비추어 보았다. 병 안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액체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걸 꺼내려 했나?”

“사, 살려주십시오, 폐하!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려달라.”

카르안이 작게 실소를 흘렸다. 그는 유리병을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고는 바닥에 엎드린 사내의 머리를 구둣발로 지그시 눌렀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감에 사내의 비명소리가 천장까지 울려퍼졌다.

"허가 없이 여길 넘은 순간, 네가 인간이길 포기한거지."

카르안이 에릭 노드란을 향해 다시 질문했다.

“이 자가 훔치려 했던 게 마비제였나?”

“예, 폐하. 소량으로도 전신을 마비시키는 약물입니다.”

“그래. 그럼 본인이 직접 그 효능을 시험해 보게 해줘라. 배후가 누구인지 제 입으로 불 때까지. 혀가 굳어서 말을 못하면 어쩔 수 없는거고."

“지시대로 이행하겠습니다, 폐하.”

카르안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으며 출입문으로 돌아섰다. 비명을 지르며 끌려나가는 사내의 처절한 몸부림에도 그의 눈동자에는 티끌만큼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74화. 내 여자

    다비안의 시야에서 황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즈음, 그는 세레인을 내려다보았다."팔……!"세레인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팔을 응시했다. 당장이라도 치료실로 달려가야 할 듯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걸음을 채 옮기지 못한 채, 카르안이 사라진 복도 저편을 불안한 눈빛으로 힐끔거렸다.통로 멀리에는 아직 자리를 뜨지 않고 있던 아쉔 대공과 시릴 베르탄이 서 있었다. 아쉔은 시릴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말했다."공작, 따라와라."아쉔이 발걸음을 옮기고, 시릴은 그 뒤를 따랐다.세레인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고 겨우 정신을 차린 듯, 다비안을 부축하듯 이끌기 시작했다. 기사단 치료실로 향하는 길, 다비안은 여전히 제 팔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세레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너…… 아무리 그래도 폐하께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다음부터는 그러지마.""……제가 좀 심했으려나요?"세레인은 그제야 이곳이 황궁 안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것도 황제의 친위대와 아쉔 대공, 시릴 베르탄 공작까지 지켜보는 앞에서 황제의 명령을 거부했으니."공자님이야말로…….""응."오늘 자신이 없었다면 다비안 공자님이 어떤 끔찍한 꼴을 당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내가 그분 성정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난 회복되는 대로 다시 북부로 갈 거고, 넌 또다시 혼자 남는 걸. 네가 제일 걱정 돼.""저는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리고 아마도 저를 해하시진 않을 거예요. 공자님, 이리로."다비안의 겉옷을 벗기기 위해 세레인은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아픈 팔에 자극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였다.그리고 그녀는 두터운 붕대를 풀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대었다."공자님, 아프면 바로 말해주세요."세레인은 다비안의 팔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며 감겨 있던 붕대를 한 겹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원래 며칠 전 입었던 화살 상처가 아물어 가던 중이었으나, 아까 카르안이 뿜어낸 마력 압박 때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73화. 완벽한 패배

    카르안이 다가올수록, 길게 뻗은 복도에는 누구 하나 입을 열기 힘든 압박감이 서리기 시작했다.그는 그들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모욕적인 언사에 세레인은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폐하아...! 잠시 얘기를 나눈 것 뿐인데 벌레라니요. 말이 너무 지나치십니다......"제 생각보다 대담하게 맞서는 세레인의 모습에 다비안이 그녀를 숨기려는 듯 자신의 몸을 틀어 그녀를 가렸다.그리고 그 행동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 명백히 보호 행위로 느껴졌다.카르안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다비안을 내려다봤다."다비안 경, 세레인과 무슨 관계지?"다비안은 잠시 침묵했다. 황제가 세레인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별다른 명분 없이 남작가의 하녀를 갑작스럽게 이관시켰을테고. 머릿속에 여러 계산이 스쳐 지나갔지만, 작고 여린 여자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생각을 잠재워버렸다."저희 가문에 있던 아이입니다."그 한마디는 카르안의 인내심을 조용히 바닥냈다. 과거형임에도 다비안이 여전히 그녀를 놓지 못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마치 카르안 자신과 리베르츠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것처럼."그 이상으로 보고 있는게 아닌가?"다비안은 다시 한번 침묵했다. 그리고 그는 세레인에게 시선을 던졌다.자신을 위해 울먹이는 맑은 눈동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리나.접경지에서도, 훈련장에서도 몇 번이고 떠올랐던 해사한 얼굴.그래, 나는 어쩌면 너를 처음부터 가문의 아이로 보고 있던게 아닐거다. 그리고 그걸 이 이상 숨기는 게 의미가 있을까?"제가 좋아했습니다."그 한마디에 세레인의 눈이 벙찐 듯이 커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비안의 연한 푸른색 눈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다비안은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그리고, 지금도 그 마음은 같습니다.”“......네?”세레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공자님.”예상했던 상대의 마음이었지만, 그로 인해 둘 사이에서 애틋한 연인의 기류가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72화. 주인을 잊은 꽃

    겉으로 보면 고요해보이는 호숫가. 다비안은 청력에 집중했다.긴 수풀이 옷에 스치는 소리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발자국 소리는 점점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다비안은 바위 뒤에 몸을 밀착한 채, 거친 숨을 억지로 삼켰다.대략 열명 안팍.통신도 끊긴 채 고립된 곳에서 그의 결정은 명확했다. 살아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 묻힌 것의 정체를 제국에 전달하는 것.다비안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틀었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든 검이 그의 뺨을 스쳤다. 카앙!마찰음이 울리자마자 다비안은 상대의 팔을 세게 가격했다. 중심이 무너진 적의 급소에 단검을 박아넣었다.시체가 바닥에 닿기도 전, 등 뒤에서 창이 찔러 들어왔다. 다비안은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리고 장검을 뽑아 등을 베었다.두 번째."놈이다!"숨어있던 나머지 적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화살 두 발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다비안은 바닥을 구르며 피했지만, 한 발이 그의 오른쪽 팔뚝에 깊게 꽂혔다.푹!선명한 핏줄기가 옷을 적셨다. 다비안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냈다.나무가 많은 숲에서는 숫자가 오히려 독이었다. 그는 아군과 뒤엉키게 만들어 적들의 시야를 가리는 전략을 택했다.하지만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팔이 저릿해지며 시야가 조금씩 흔들렸다.아직 둘 남았다.다비안은 비틀거리며 검을 쳐내고, 몸을 회전시키며 적의 옆구리를 베었다. 콱!거대한 대검이 적의 상체를 동강 냈다. 부단장 칼릭스였다. 그를 뒤이어 기사단이 몰려왔다.칼릭스는 피투성이가 된 다비안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흘렸다."다비안! 괜찮냐?"다비안은 이미 자신의 옷을 찢어 팔을 단단히 묶고 있었다. 지혈을 마친 그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착했다."괜찮습니다. 부단장님, 땅 속을 보십시오."다비안은 땅 속을 가리켰다. "넌 아프지도 않냐? 일단 한 명 와서 부축해라."칼릭스는 흙을 파헤치고 파편을 집어 들었다."스읍...... 이건 에레브노스의 흔적인데."젊은 축에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71화. 나의 시녀, 나의 황후

    커튼 사이로 새벽빛이 스며들어 침실 안은 희뿌연 빛이 감돌고 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세레인은 카르안의 몸에 기댄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카르안은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채, 세레인의 허리를 감싸 쥐고, 제 안쪽으로 더 바짝 끌어당겼다. "폐하아...! 너무 버겁다니까요......!" 부피감 때문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세레인이 그의 아랫배를 꾹 밀어냈지만, 카르안은 오히려 엉덩이를 더 단단하게 붙잡았다. "하아, 이제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어?" 세레인은 그의 탄탄한 배를 찰싹찰싹 때리며 투정을 부렸다. "도무지 적응이 안되는데 뭘 어떻게 적응해요?! 폐하, 이러다 우리 밤 새겠어요. 이제 그만 쉬어요......!" 카르안은 그 대답이 귀엽다는 듯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자신의 품에 가두었다. 세레인은 어깨에 이마를 가볍게 기댄 채, 카르안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제국의 고귀한 공녀도 아닌 타국 출신인 자신을 향한 이상할 정도로 과한 집착. 그의 의중을 읽어보려 눈을 맞추던 세레인이 잠시 고민하다 카르안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카르안은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돌려 그녀의 동그란 뺨을 혀로 훑어내렸다. 세레인이 간지러워서 '꺄악'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카르안의 입가도 호선을 그렸지만, 이내 레이나가 그녀의 뺨을 때렸던 일이 떠오르며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별난 귀족 영애들 틈에서 얕보이지 않으려면 무엇부터 가르쳐 줘야 할까? 카르안은 품 안에 얌전히 안긴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햇살이 좀 더 길게 드리워지고, 먼저 눈을 뜬 카르안은 한동안 말없이 세레인을 내려다보았다. 금빛 속눈썹 아래 고른 숨결과 베개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 함께 잠든 어젯밤 내내 이상하리만치 불안했다. 그녀를 안고 있고, 온기를 느끼고 있어도 그랬다. 더 가까이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은 이미 자신이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정말 이것뿐인가? 사람 하나에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70화. 욕실의 온도

    "다비안 경이, 다비안 경이 아직 복귀하지 않았습니다!"히아트가 땀에 젖은 채 내달려 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부단장 칼릭스는 지휘봉을 책상에 툭툭 치며, 시계를 확인했다. 해가 저물어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지 오래였다."시간이 몇 신데 아직 복귀를 안 해?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던 곳이 어디야?"히아트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었다. "북쪽 자레니 호숫가입니다. 다비안 포함 여섯 명이서 인근을 순찰하고 저희는 돌아왔는데, 그는 지형을 더 살피겠다며 자리를 옮겼습니다. 분명 해 지기 전에는 돌아오겠다고 했는데……."칼릭스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호숫가는 고요했다. 다비안은 짧은 단검을 꽉 쥐고 숨을 죽였다.며칠 전부터 새벽에 간혹 보이던 작은 인영. 지난 번의 선제 도발은 물론이고, 접경지의 분위기로는 호의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호수 근처, 흙이 뒤집힌 자리에 다가서자 주머니 안에 늘 넣고 다니던, 전령구가 지직 소리를 내며 연결이 끊겼다."함정인가?"다비안의 연한 푸른 눈이 어렴풋한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는 아카데미 시절 익혔던 마력 반응을 떠올리며 지면 쪽에 코를 가까이 댔다. 흙냄새. 폭발물 특유의 화학적인 향이 아주 희미하게 감돌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단검으로 땅을 파헤쳤다. 한참을 파내니 깊은 구덩이에서 그을린 금속 파편이 드러났다. 다비안이 반듯한 미간을 구기며, 천천히 파편을 살펴봤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형체. 그 찰나였다. 슉-!등 뒤에서 날아든 화살이 그의 옆을 스쳤다. 다비안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큰 바위 뒤로 숨었다. 긍지 높은 기사로서, 적의 기습에 굴할 수는 없었다. 그는 적의 동태를 살폈다. 설령 기습으로 제 몸이 이번에 죽는다 해도, 어떻게 해서든 이 침략의 증거는 제국에 알려야만 했다.*** 세레인의 숙소.세레인은 카르안의 눈치를 보며 빨래감 속에 제 속옷과 옷가지들을 재빨리 숨겨버렸다."폐하, 왜 자꾸 이곳으로……. 폐하의 궁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69화. 황궁 출입 금지

    스스로가 보기에도 허술한 핑계라는 건 알고 있었다. 세레인은 고개를 숙인 채 필사적으로 표정을 갈무리했다. "……정말입니다. 분수대 아래가 미끄러워서 그만." 카르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연회장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어느 분수대?" 세레인은 당황하여 침을 삼켰다. "어…… 그, 중앙 입구 앞에 있는…….분수대에서요." "중앙 입구 앞." 카르안은 세레인의 말을 곱씹듯 되뇌더니, 근처에 서 있던 시종장을 향해 고갯짓했다. "중앙 입구 쪽 분수대부터, 지금 가서 찾아와. 내 시녀가 잃어버린 구두다." "예, 알겠습니다." 시종장은 인원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카르안은 시종장이 사라진 복도를 응시하다가, 다시 세레인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저들이 이 늦은 시간에 헛고생을 하는건 모두 제 거짓말 탓이었다. 아니야, 제발…… 아 차라리 계단 위에서 떨어뜨렸는데 어두워서 신발을 못 찾았다고 할 걸 그랬나....? 한참 후,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온 시종장은 카르안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 죄송합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분수대 근처에는 신발이……." 카르안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세레인의 젖은 드레스를 털어주며, 주변을 둘러싼 귀족들을 향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정원에 있는 모든 분수대를 다 뒤집어볼까?" 세레인은 사색이 되어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폐하, 제 잘못이에요! 제가 아까 많이 취해서…… 어디에 벗어둔 지 기억이 안 나는데, 괜히 사람들을 더 고생시키지 마세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근위병들이 보고한 건 다르던데." 카르안의 시선이 연회장의 고위 귀족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했다. 그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귀족들은 숨을 죽이고 저마다 눈치를 보기 바빴다. "감히 내 시녀의 물건에 손을 댄 자가 있다." 카르안의 걸음이 멈춘 곳은 레이나 오브리엔의 앞이었다. "레이나 오브리엔." 레이나는 얼굴이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6화. 붉은 눈동자

    바람이 옅게 감돌던 루메데스의 밤.은은하게 깔린 조명 아래에서 값비싼 가면을 쓴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세레인은 손에 트레이를 든 채 구석에서 몸을 반 쯤 숨기듯 서 있었다.정원 구석 나무 그림자 사이. 시선은 아래로, 숨소리는 얇게, 이제는 익숙해진 하녀의 자세였다.그 순간.귀족 몇몇이 허리를 숙이며 한 인물을 향해 길을 비켰고 그 틈으로 한 남자의 모습이 언뜻 스쳤다. 검은 천 위에 금빛 자수가 반짝이는 제국의 문장이 선명했다.황제였다. 아무도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그를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5화. 연회의 밤

    “우와... 너무 예쁘다.”세레인은 연회장의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벽의 눈부신 장식들은 베르나의 조용한 돌담과는 너무도 다른 결이었다.천장이 어찌나 높고 반짝이는지 마법 조명도 너무 신기해 한참이나 바라봤다.여러 계절이 뒤섞인 듯한 공기와 자연의 향기가 섞여 숨이 막힐 정도로 화려했다. 연회 전후로 이곳을 통과하는 인원들이 많아 하녀들은 대부분 이곳에 배치되었다.세레인은 홀 바깥, 연회장을 드나드는 입구 쪽에서 하녀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금빛 천을 정리하고, 식기를 옮기며 바삐 움직이던 와중이었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4화. 발테리움의 황제 카르안

    “괜찮아?”“피, 피는 안 나?”하녀장 펠타가 헐레벌떡 달려와 상황을 수습했다.세레인은 얼굴이 새하얘진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리에선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아 난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야.“나… 어떡해…?”작게 중얼거렸다.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제 폐하 입장 중이었는데… 이런 실수를…황제의 입장 도중 일어난 소란에 숨을 죽이고 있던 모든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쏠렸다.반 쯤 열린 장막 사이로 느껴지는 날 선 기류.황제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잠시 장막

  •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3화. 잊히지 않는 처형대

    세레인은 입을 쩍 벌린 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전까지 야생동물이 나올까 봐 쫄깃했던 마음은 어디 가고, 이제는 눈앞에 펼쳐질 기회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자, 정신 차려! 일단 배부터 채우고… 그다음엔 일자리를 알아봐야지.”그녀는 바구니 속 마델렌이 싸준 빵 덩어리를 꺼내들었다.“음, 제국은 부유하니까 하녀 월급도 훨씬 셀 거야. 운 좋으면 귀족가 대저택에 취직할 수도 있고!”세레인은 머릿속으로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큰 저택의 하녀가 되어 따뜻한 방에서 잠들고 남는 시간에는 맛있는 제국 음식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