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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Author: 삼구이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5 19:54:26

예리가 무슨 볼일이냐는 듯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자 은호가 허둥지둥 손수건을 내밀었다.

“이거, 손수건…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말 잘 썼습니다!”

은호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 놓인 손수건을 힐끔 내려다본 예리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행이네요.”

말을 마친 예리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은호가 반걸음 앞으로 나서며 다시 그녀를 불러세웠다.

“저…! 손수건은 제가 세탁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연락처라도 알려주시면….”

예리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무심한 눈매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가지든 버리든 마음대로 하세요.”

“저, 그래도…!”

예리는 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시선을 뒤로한 채 공연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홀로 남겨진 은호는 손바닥 위에 남겨진 손수건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짙은 남색과 주황색이 세련되게 배색된 실크 위로 기하학적인 패턴이 수놓아져 있었다.

손끝에 닿는 손수건의 매끄러운 감촉이 묘하게 간지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놓고 싶지 않았다.

***

극장 로비를 가로질러 주은의 대기실로 향하던 예리는 조금 전 남자의 모습이 떠올라 결국 실소를 터뜨렸다.

“고맙긴. 시끄러우니까 입 좀 틀어막으라고 준 건데.”

뭐, 그 덩치 큰 울보에게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예리는 대기실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안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대답에 예리가 문을 열었다.

“나예리!”

어느새 무대 의상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주은이 화장대 앞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예리에게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포옹부터 퍼부었다.

예리는 주은의 요란한 환영이 부담스러운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굳이 그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예리를 실컷 껴안고 나서야 팔을 푼 주은이 대기실 한편에 놓인 커다란 꽃바구니를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

“오늘도 네가 준 꽃이 제일 큰 거 알아?”

바구니에는 노란 프리지어가 탐스럽게 담겨 있었다.

“그래?”

예리는 무심하게 대꾸하면서도 시선은 잠시 꽃바구니에 머물렀다.

주은이 장난스럽게 눈썹을 꿈틀거리며 예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너어, 정말 나 좋아하는구나! 어떻게 매번 이렇게 크고 예쁜 것만 골라 보내?”

예리는 대답 대신 화제를 돌렸다.

“오늘 연기 좋더라. 객석에 있던 사람들 다 울었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오늘따라 유독 감정이 잘 올라오더라고. 아, 그래서 너도 울었어? 어? 울었냐고, 나예리!”

배시시 웃음을 터뜨린 주은이 예리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집요하게 물었다.

“나도….”

예리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주은을 바라보았다.

주은이 침을 꿀꺽 삼킨 찰나 예리가 픽 웃으며 말을 뱉었다.

“울었을 리가 없지. 뭘 뻔한 걸 물어봐.”

예리의 얄미운 대답에 찰나의 기대를 품었던 주은의 어깨가 추욱 처졌다.

“언제쯤 나예리 눈에서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는 꼴을 보려나….”

“죽어서도 그럴 일 없으니까 꿈 깨시고. 문주은 씨, 밥이나 먹으러 가시죠? 오늘은 제가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예리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주은은 예리의 손에 들린 카드를 보자마자 흥분해서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어머, 언니! 그래서 오늘 뭐 먹을 건데?”

“너 좋아하는 중식. 풀코스로 예약해 뒀어.”

“꺅! 당장 가야지. 잠만 기다려, 나 짐만 대충 정리하고!”

***

프라이빗한 룸 안, 원형 테이블 위로 윤기가 흐르는 중식 요리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칠리새우를 거의 흡입하듯 먹어 치우는 주은을 가만히 지켜보던 예리가 슬쩍 운을 뗐다.

“주은아, 너 해상 그룹 막내아들 알아?”

“해상 막내면…, 유은호?”

주은이 입안 가득 음식을 우물거리며 되물었다. 예리가 주은의 잔에 차를 채워주며 다시 물었다.

“응. 뭐 아는 거 있어?”

찻잔을 받아 든 주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예리를 째려봤다.

“이거 봐라, 이거. 딱 보니까 나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이렇게 거하게 쏘는 거였구만.”

예리는 찻잔을 들어 입술만 축이고는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뭐, 아예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주은이 입술을 씰룩이며 미심쩍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유은호는 왜 물어보는데? 네가 그 사람한테 사적인 관심이 있을 리는 없고….”

주은은 거짓말 탐지기라도 된 양 예리의 안색을 낱낱이 살폈다.

그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선을, 예리가 단칼에 잘라내며 말했다.

“박 회장이 상담하러 왔었거든.”

“뭐? 박해미? 해상 그룹 박해미?”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해상 그룹의 수장인 박 회장이 직접 다녀갔다는 말에 주은의 커다란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왜? 본인 커플 매칭… 은 아닐 테고, 설마 유은호 매칭 건이야?”

“응, 맞아.”

주은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와, 친아들 아니라고 내놓은 자식 취급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가 보네? 직접 결혼 상대까지 찾아주고.”

“아니, 엄청 싫어하던데.”

“응? 싫어하는 아들 짝을 찾겠다고 너를 직접 찾아갔다고? 그게 말이 돼?”

“최악의 짝을 찾아달래.”

예리가 제 몫의 음식을 덜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최악의 짝?!”

예상치 못한 의뢰 내용에 주은이 비명 섞인 소리로 되물었다. 예리가 입술 위로 검지를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주은은 단둘만 있는 방이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바짝 낮췄다.

“그러니까, 완전 개차반에 결혼 상대로는 최악인 사람을 붙여달라는 거지? 대체 왜?”

“글쎄, 나도 거기까지는 모르지.”

예리가 모르는 척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박 회장의 속내는 진작 파악하고 있었지만, 굳이 주은에게까지 털어놓을 이유는 없었다.

김이 샌 주은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유은호, 사실 나도 아는 게 별로 없어. 소문만 무성하고 실제로 만나본 사람은 얼마 없나 봐. 뭐, 직접 본 사람들 말로는 연예인 뺨치게 잘생겼다던데.”

“그래? 그렇게 잘생겼대?”

“어, 그런데 유은호 별명이 가면 쓴 왕자님이래. 속을 도통 안 내비치는 타입이라나 봐. 거기에 말수도 워낙 없어서 다들 신비주의라 부르더라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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