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진은 아이비의 보랏빛 눈을 흘긋거리다 시선을 떨구었다.
눈치가 빠르고 예민하다.
아까 하녀가 한 까탈스럽고 예민하다는 이걸 말하고 싶었으려나.
“죄송하지만, 하녀입니다”
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의뢰주의 추가조항은 절대 정체를 말하지 말 것.
무슨 이런 바보같은 조항이 있나 했지만, 뭐, 돈을 그만큼 주기로 했으니 따라야지.
“그래? 그럼 네 손에 난 굳은살에 대한 변명은?”
“손이 여려서 굳은살이 잘 베깁니다”
“허술해”
“이전에 정육점에서도 일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버지가 군인이십니다”
“그래서 군인이 받는 훈련을 받는다고?”
진의 단호한 얼굴에 아이비의 미간이 좁히며 책상을 툭툭 건드렸다.
어떤 인물이 또 보낸 걸까.
이력서까지 보내서 내 손으로 뽑게 할 정도라니.
내가 그렇게나 만만해 보인 걸까.
“너…”
유리창을 타고 반짝이는 무언가에, 진은 시선을 돌려 창밖 저 멀리를 바라보았다.
아, 오자마자 시작이라니.
부지런하다고 해야하나.
진은 곧장 책상을 넘어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바닥에 엎드렸다.
“너 이게 무슨…!”
말이 나기도 전에 깨지는 유리창과 자신이 있던 자리에 박히는 화살에 아이비는 놀라 진을 돌아보았다.
습격!
얼마 전에도 하녀로 분장한 암살자가 왔었다.
이제는 이런 식으로 온다니!
아이비의 떨리는 몸에 진은 가만히 아이비의 어깨를 쓸어주곤 그곳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아이비는 당황한 채 진을 올려다보았지만, 진은 아무런 말 없이 화살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화살이 꽂힌 모양새로 볼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반대편 4층 옥상.
몇이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곳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거대한 창으로 이루어져 있고….
진은 창문 아래로 아이비를 숨긴후 작게 미소를 지었다.
“여기 얌전히 계세요. 저 녀석들 실력이 좋으니까.”
진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벽에 장식된 석궁을 들고 아까의 화살을 꽂아 그곳을 향해 조준했다.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 옥상의 장식을 건드리자, 무언가 움직이는 모양새가 보여왔다.
아마 반대편은 경비대가 줄 서 있을 테니, 앞으로 내려와야겠지.
변수는 경비가 저들과 결탁하는 것.
결탁해도 대놓고 봐줄 수는 없을 테니 앞으로 내려와야 할 것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한 곳만 바라보는 진에 아이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애는 대체 뭘까.
자연스레 위치를 파악하고, 장식용 석궁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거지?
“너 정말 정체가 뭐야!”
곧 아래로 뛰어 내리는 그들에 진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유리창을 열고 그 위에 올라섰다.
“뭐, 걱정하지 마십쇼. 곧 돌아오겠습니다.”
뛰어내릴 준비를 하던 진은 다시 아이비를 돌아보았다.
“아,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아무도 방에 들이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자마자 발돋움을 하곤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진은 그들의 방향으로 가로질러 달려갔다.
곧 눈에 들어온 그들에 진은 조형물에 발돋움하곤 다리를 감아 사내를 넘어트려 그위에 올라갔다.
“남의 사업장에서 깽판을 치면 쓰나”
다른 사내들이 검을 뽑고 진에게 겨누자, 진은 사내의 위에서 한 사람씩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이놈까지 네 명이라.
많이도 보냈네.
살리는게 좋겠다만, 그게 더 어려운데!
“누구냐!”
“어우, 지긋지긋한 대사.”
허벅지를 쓸던 진은 비어있는 그것에 잠시 손을 멈추었다.
아오, 단검 챙기는 거 깜빡했네.
사내들 중 하나가 석궁을 장전하려 들자, 진은 발아래 사내의 턱을 쳐 기절을 시켰다.
너무 세게 쳤나.
죽지만 않으면 다행인데.
“근데, 너네들은 나 여자인 건 안 보이나 봐?”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은 가장 가까이의 사내의 머리에 발을 날리곤 그의 검을 빼앗아 옆의 사내에게 집어 던졌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그에 진은 쩝 하며 입안을 가다듬었다.
“이제 너뿐이네.”
검을 든 채 벌벌 떨며 뒷걸음질을 치는 그에 빠르게 달려간 진은 검을 든 손을 발로 차곤 바로 몸을 돌려 사내의 가슴 한가운데에 발길질을 했다.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자 진은 옷을 탁탁 털며 쓰러진 사내에게 시선을 천천히 다가갔다.
“아이고, 힘들다.”
“너…! 누가 보낸 거냐!”
“내가 할 대사를 자기가 하고 있어.”
가슴팍에 발을 날리자, 요란하게 넘어가는 사내에 진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더듬거리며 몸을 피하는 그에 진은 사내에게 다가가 가슴에 한쪽 발을 올렸다.
이 녀석이 말을 해주려나.
“누가 보냈냐?”
“이….정신 나간!”
꺽꺽이며 말을 이어가는 그에, 진은 허리를 숙여 복면 아래 가려진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녀석이 말을 해주면 참 좋을텐데 말이지.
“정중하게 물어 볼때 말해.”
진은 천천히 체중을 실어 사내의 가슴을 압박했다.
“얌전히 물어볼 때 대답해.”
“이…!”
“지금이라도 말하면 널 풀어주겠어.”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매한가지야”
사내의 말에 진은 미간을 좁혔다.
이 녀석, 그냥 암살자가 아니다.
설마…!
“너!”
순간 눈을 까뒤집는 사내에 진은 놀라 그의 입안에 손을 집어넣어 약을 빼내었다.
또 그녀석들이었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놈들이 아이비를 노리는거지?
진의 말에 아리엘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런걸 보면 달라지신게 하나도 없으신데.“세자 저하께서 보내시는 선물 같습니다.”“그 사람도 제정신은 아니야.”“저하의 작은 취미라고 생각하시지요.”“그렇게 생각을 해야하나….”“성격은 확실히 안좋긴 하네요.”진은 툴툴거리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진, 너가 가려고?”“넌 공녀님 옆에서 지키기나 해. 그게 더 위협적이니까.”“위협까지 필요할까.”“그렇지 않겠어?”밖으로 나온 진은 문 앞에 서 코를 긁적였다.성큼성큼 다가오는 제레미가 보이자, 진은 작게 한숨을 쉬며 그를 바라보았다.발도 빠르네. 얼마나 급했으면.“오랜만에 뵙습니다. 도련님.”금새 코앞까지 다가온 제레미에 진은 슬적 웃으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비켜라.”“잠시 기다리시지요. 공녀님께서 급한 용무 중이라”“급한 용무? 당장 비켜”이를 악물고 말하는 제레미에, 진은 입에 웃음을 걸고 삐딱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이자식도 알 거 다 알아서 이러나.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진정하시지요. 도련님”“진 그릭이라고 했나? 너, 내가….”“도련님께서 제 이름을 어찌 아시는 지는 모르겠나, 조금만 기다리시지요”진의 말에 제레미는 이를 악물었다.헨리 그자가 독을 쓸 때 티가 나지 않는 것을 써라고 했어야 했다.확실하게 죽여야 할 것을, 이렇게 살아서 귀찮게 굴다니.그 멍청한 놈 때문에 내가 지금…!“너, 허튼짓 하지 말아.”“제가 무얼했다고 그러시는지. 공녀님께서 바쁘시답니다.”진은 제레미의 얼굴을 살펴보다 작게 아이비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곧이어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진은 문을 열어주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허튼 짓 하면, 뭐 때려잡아야지 별수 있겠어?“들어가시지요. 도련님”매서운 제레미의 눈에 진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손을 뻗었다.날 선 공기와 색색이는 제레미의 숨소리.뭐,이런 백면서생 제압은 별것도 아니니.“아이비”한글자씩 끊어 말하는 제레미에 아이비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이녀석
아이비는 편지를 읽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화려한 왕세자의 친필편지에는 흥미 가득한 이야기가 가득했다.제레미가 지금껏 벌인 짓에 대한 처벌과 레이먼드에 대한 지지까지.“솔직하게 말하자면, 스피나경에 대한 지지는 예상 외였어”“저하께서 공녀님을 좋게 보셨나 봅니다.”“그렇게 보였니? 영광이라고 해야할까.”“그런 말씀은 잘 하지 않으시니 말입니다.”아리엘의 말이 웃긴지 아이비는 슬적 그를 흘겨보았다.“자네의 말 대로 특이하신 분이시긴 하더군.”“워낙 짓궂으신 분이시라.”아이비는 손을 저으며 진에게 편지를 건네었다.“스피나경께는 사람을 보냈지만, 나중에 갈 때에 이걸 전해 주렴.”“네. 적당히 상황을 보고 다녀오겠습니다.”“셈 빠르신 분은 편하긴 하네.”아이비의 말에 진은 픽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럼 이제 제레미는 어찌 되려나.녀석에게 뭐 가족 간의 정이나 이런 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한구석이 좋지만은 않았다.그냥 얌전하게 살지.“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공작가와 무관하다는 정황을 부러 만들어 주시다니. 배려 넘치시는 분 아니니?”아이비는 진의 얼굴을 보다 고개를 저었다.무슨 생각일지 모르는 저 애의 얼굴에 괜히 복잡한 심정이 올라왔다.제레미가 그런 짓을 벌였다니.그래도 나의 혈육인데.그럼 제레미는 어디까지 모두를 속이면서 그것을 준비한 것일까.정말, 소피아를 앞세워 자신의 입지를 다듬은 것일까.“머릿 속이 복잡하네”“복잡할 게 뭐 있나요. 이제 남은 건 다비드 도련님 뿐인데.”“그렇긴 하지만….”“참 귀족네들은 복잡하게 살아요. 형제고 자식이고 다들 자기 잇속 챙기기 바쁘잖아요.”진의 말에 아이비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틀린 말 하나 없는 저 말이 괜히 입안을 꺼끌거리게 만들었다.이래서야 원, 귀족의 체면 따위를 챙길 수도 없겠는걸.“그러게 말이야. 이게 무슨 가족인 건지.”“뭐, 저는 그 덕에 돈 벌고. 좋긴 합니다.”“그런 걸 보면 오히려 네가 부러워.
왕세자의 미간이 좁혀지자, 아이비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이것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을까.그럼 어떤 반응을 해 주려나.“세간에는 헨리 스피나라고 하더군요. 저희도 그놈에게 당한 것이 많은지라….”“말 돌리지 말고 정확하게 말하게.”“그분의 이름은 아셨나 봅니다.”“공녀. 말장난 할 기분이 아니다. 똑바로 말하게.”어깨를 으쓱인 아이비는 왕세자의 앞으로 서류 하나를 건네었다.”“푸른 사과의 수장. 올리버 홀슨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분은 저하께서 아시는 분이겠지요.”“빌어먹을 자식들.”튀어나오는 욕지기에 아이비는 차를 한입 마시며 주변을 돌아보았다.아무도 없는 이곳에는 어떠한 소문도 흐르지 않을 것이었다.왕세자가 저런 저속한 말을 입에 담아도, 듣는 건 나 뿐이니.“이건 어찌 알았지?”“제 개인 호위가 그들에게 당했습니다. 용병단의 수장이 움직여 그의 존재를 알아내었지요.”“용병단이라…. 아리엘이 속한 그곳인가 보군.”“실력이 좋은 이들 아닙니까. 저 또한 그들에게 빚진 것이 많습니다.”“아리엘을 통해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러니 그 정보에 대한 것은 확실하겠어.”왕세자는 주먹을 말아 쥐며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감히, 나를 속이고 제 잇속을 챙기려 들다니.어디서부터 이놈들이 움직인 것이지?거기다 나까지 움직이게 하려고 하다니.이것들을 어찌 처리를 해야 기분이 풀릴까.“내게 그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가 무엇이지? 단순히 자네의 후계 때문인가?”“저의 후계 작업은 그것이 아니어도 잘 굴러가고 있답니다. 예를 들면 하버릭 항구 같이요.”“이제는 아주 당당하군.”“그 건은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고심을 한 결과입니다.”왕세자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머리가 빠른 게 아니라 기민한건가.잘만 이용한다면, 이 여자도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공작이 되는 날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데.“그럼 왜 내게 말하는 것인가”“레이먼드 스피나경께서 전하를 설득시켜 달
“그럼 제가 드릴 이야기가 저하의 흥미를 동한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이런 불경죄는 넘어가주어야 겠지.”아이비는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그와 눈을 마주쳤다.아리엘의 말처럼 공작부인과 비슷한 성격이었다.다른 점이라면 그녀보다는 속이 더 잘 보이는 것 이겠지.아직 경험이 적어서 그런 것일까.이러나 저러나 나에게는 유리하겠지만.“공작가의 후계를 위해, 제가 레이먼드 스피나와 손을 잡은 것 정도는 알고 계시는지요.”“그 건은 솔직히 놀라긴 했네. 레이먼드 그 인간이 다른 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다니.”콧노래를 부르며 손짓을 하는 왕세자에 아이비는 가만히 그와 눈을 마주쳤다.공작가에도 눈이 있다는 말일까.내가 레이먼드와 손을 잡은 것은 공작저 내에서나 겨우 알 수 있는 이야기인데….믿을 것 하나 없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건지.“혹, 저하께서 저의 혈육인 제레미와 연이 있으신 지 감히 여쭈어 보아도 되련지요.”“제레미라…. 내가 답할 이유는 없는 것 같군.”“물론입니다.”아이비는 빙긋 웃으며 차를 한입 마셨다.그럼 그 돈들이 왕세자의 명령인 것일까?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사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어떤 변수라도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허면, 제레미의 친모가 스피나가문의 사생아와 손을 잡으신 것도 아시겠군요”왕세자는 입에 미소를 건채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무슨 또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있길래 이딴 소리를 하는지.제레미의 어미가 스피나 가문의 사생아와 손을 잡다니.그런 것은 아직 세작들에게서도 들려오지 않은 말이었다.이거, 뜻밖의 소식인데.“제가 저하의 흥미를 끌지 못 하였나 봅니다. 부디 용서 하시길”“계속 말하게.”“그리했다간 저하의 수족인 제레미를 의심하게 하는 게 아닐까 염려 되옵니다.”“공녀. 난 두 번 말하는 건 싫어 한다네.”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바라보는 왕세자에 아이비는 고개를 작게 숙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스피나가의 사생아는 그들과 손을 잡아 세력을 형성하고 있지요. 지금까지 규합된 지분은
시종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아이비는 주변을 천천히 훑어보았다.왕세자 궁의 내측에 위치한 정원은 키 작은 나무들이 미로처럼 켜켜이 이어져 있었다.누가 숨어들어도 숨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구조.늘 암살을 걱정해야 하는 왕족들에게 어울리는, 화려한 정원.“좋은일만 있어야 하는데….”“예? 무슨일 있으십니까?”“아닐세. 저하께서 오래기다리시겠어. 어서가지.”정원의 가운데 위치한 파고라에 있던 왕세자는 아이비를 보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이제 오는군.”“처음 인사 올립니다. 아이비 파말라입니다. 저하”왕세자가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하자, 사용인들이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아무래도 우리 둘만 이야기를 하는것이 편하겠지.”“배려해 주시어 감사할뿐입니다.”“그렇게 봐주면 고맙겠지.”어깨를 으쓱인 왕세자는 가만히 아이비를 바라보았다.파말라 공녀라.참 재미있는 소리들이 많이 들려 오던데.“우선 앉게. 손님을 세워둘 수도 없고.”“영광입니다. 저하.”“솔직히 아리엘에게 연락을 받고 조금 놀랐다네. 내게 이런 부탁을 하는 치가 아니니까 말 일세.”“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전하께 드릴말씀이 있어 법도를 무시한 것을 용서 하시지요.”왕세자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아이비를 바라보았다.아리엘 그자가 이런 부탁까지 들어줄 정도라면 보통의 사이가 아닐 터.둘은 무슨 사이이려나.꽤나 재미가 있어 보이는데 말이지.“사실 자네를 만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네.”“황공하옵니다.”“내가 눈독 들이던 항구를 자네가 가져갔으니. 얼마나 대단할지 궁금했달까.”빙빙 손을 솔리는 왕세자에 아이비는 미소를 지으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벌써 이걸로 찌른다라.무슨 말을 더 하려 이러는 것일까.“저하께서 그러신 줄 몰랐습니다. 저희 가신단만 바라보았을 뿐입니다.”“예의 차리기는. 말은 잘하는군.”“칭찬에 감사할뿐입니다.”왕세자는 입꼬리를 올린 채 가만히 아이비를 훑어보았다.이런 건 예상을 하고 온 것 같고.눈치가 여간 빠른 것이 아니군.재미가 있으려나.
“말씀 하신 것들입니다.”냉담한 헤이든의 목소리에 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헤이든의 눈치를 살폈다.얘가 진짜!적당히 하라니까 무슨 말을 이렇게 하는 거야?“야, 말투가 왜 그러냐?”“넌 가만히 있어”그들의 대화를 듣던 아이비는 픽 웃으며 헤이든이 건넨 서류를 훑어보았다.일처리를 빨리 해 준 것인지, 왕세자에게 가기 전 헤이든이 와주었다.좋지 않은 게 들어있으면 곤란한데.“요약하자면, 유령 상단이고, 자금의 출처는 왕실의 비자금 쪽인 것 같습니다.”“그럼 제레미가 진짜?”눈을 돌리며 고개를 젓는 진에 헤이든은 입을 다시며 시선을 돌렸다.설마설마 하는 마음에 몇 번을 대조했던지.그것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췄지만.“토목관련해서 나오는 예산 쪽으로 편취한 것 같더라고.”“그럼 횡령이네”진의 중얼거림에 헤이든은 그녀를 흘긋 바라보았다.설마 했던 우려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었다.이래서 말해주기 그랬는데….그냥 진을 내보내고 말할 걸 그랬을까.“그럼 이건 스피나가도 알고 있나?”“아직은 모를 것입니다. 저도 사람을 보내서 어렵게 알아낸 것이라.”“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상단이라…. 그것으로 국고에서 돈을 빼돌리고….”“토목공사를 하는 곳이라고는 하는데,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른 상단들에도 수소문했습니다만,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헤이든의 말에 아이비는 손끝을 꾹꾹 눌렀다.제레미가 진정으로 그럴 줄이야.대체 어디까지 속이고 있었는지 상상도 가질 않았다.이렇게까지 하면서 공작위를 얻고 싶은 건가?만약 걸리면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그랬을까.다행히 내가 그 꼬리를 잡았으니, 공작가로 피해가 오지 않았지만 왕실측에 이것이 걸렸다면 공작가가 무너질뻔한 일이었다.“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고맙네.”“그리고 다른 상단들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주로 공사와 관련된 업체들로 위장되어 있었습니다.”“그래. 델란 백작의 말로도 제레미가 그쪽으로 관련하여 예산을 측정한다고 하더군. 금액도 크고 하니 말이야.”
진은 계약서를 앞에 두고 머리를 파묻은 채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닦았다.내가 미쳤지 진짜.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 집에 내가 내 발로 들어가야한다니.심지어 뭐? 하녀?“나 진짜 그냥 때려 치고 싶어.”“늘 말했지만, 이래서 계약서를 꼼꼼하게 보라는 거야.”진은 계약서를 보다 다시 울상을 지었다.이씨, 레이먼드인지 그 미친 인간은 하녀 소리 하면 안할거 알고 이런거 같은데.중간에다가 그소리를 박아 넣는게 어딨어!“미친거 아냐 진짜.”“그러게나 말이자. 공녀님 옆으로 가는데 시종으로 갈 수도 없고.”“아니 경비도 있
“너 이 빵 어디서 샀어!”짜증 섞인 벤의 호통에 엘리를 안고 내려오던 진은 머리까지 새빨개진 벤에게 시선을 옮겼다.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들어서 저러신데.“뭐가?”“빵 말이다. 빵!”“베이커네. 거기 빵이 맛있잖아. 생각나서 기껏 사 왔더니?”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벤에, 진은 엘리를 앉혀주곤 옆에 앉아 턱을 괴었다.저 성격에 어떻게 전 용병단 단장인 건지.옛 명성이 하나도 소용이 없단 말이야.“또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드는건데?”“내가 두 블록 더 가서 쿠퍼네 가서 사라고 했잖아!”벤의 짜증에 진은 깊게 숨
“이제 누나 만나고 좀 쉬어야지.”“아, 너 바로 자지 말고 저녁 먹고 자.”헤이든의 말에 진의 몸이 굳었다.설마. 아니겠지.“뭐..?”“너 사막 가서 고생했잖아. 내가 보양식 만들어 줄게”해맑은 그의 미소에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거짓말”“튕기기는. 내가 몸에 좋은 거 만들어 줄 테니까 딱 기다려”“나 방금 사막에서 돌아왔잖아! 석 달 동안 개고생을 했는데 내가 왜 그걸 먹어!”자리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진에 헤이든은 미소를 지으며 진의 손을 잡았다.“해준다고 할 때 먹어. 너 진짜 감동할
“파말라 공녀?”헤이든의 외침에 진은 머리를 뜯으며 한껏 울상을 지었다.아씨, 이자식도 그소리 할줄 알았다.“그냥 포기할까? 근데 한두 푼이 아니란 말이야.”“너 진짜 어쩌려고 덥석 받은 거야?”“나 없는 동안 뭔 일 있었냐?”헤이든은 괜히 아무도 없는 주변을 한번 두리번거리곤 진에게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거기 공녀의 하녀가 암살 시도했다잖아. 한두번이 아냐.”“내가 내 발로 사형장에 들어가는 거구나”“너무 그러진 마라. 위험하긴 한데, 너를 콕 집어서 찾으니까.”울상을 짓는 진에 헤이든은 한쪽 눈썹을 올렸다.